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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 ‘아쉬운 주민참여공론장? 그럼에도 기대해야 하는 이유’ < ☞ 칼럼 읽기 >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주민참여 공론장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전했다. 이번 글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주민참여 공론장을 준비하는 주최 측이 주요하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요소에 대해 나눠보고자 한다.

크고 작은 주민참여 공론장이 많아지면서 숙의과정을 경험한 주민이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갖게 되는 참여효능감과 주제에 관한 관심으로, 주민들은 더 많은 참여기회와 권한을 기대한다. 한편 공론장을 열고자 하는 주최 측에서도 좋은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숙의과정을 준비하고자 하지만, 막상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공론장 준비과정의 실무적 선택은 결과물의 질과 참여자의 만족도를 좌우한다. 그래서 주최 측은 목적에 따라 공론장을 상세하게 설계하고 점검해야 한다. 그 내용은 목적과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므로, 이 글에서는 공론장 준비 시 공통적으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주요 요소를 짚어보고자 한다.

무엇을 위한 공론장인가?

다양한 주민참여방법 중, 공론장 개최를 선택했다면 그를 통해 달성하고 싶은 목적이 있을 것이다. 주제에 대한 의견수렴, 정책의 찬반결정, 새로운 정책과제 발굴 등이 될 수 있다. 이 목적에 따라 공론장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다양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해 참여자 부담을 낮춤으로써 대화를 촉진할 수 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주제에 대한 참여자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정보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제공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새로운 정책과제를 발굴한다면 정책수요를 정확히 도출하여 해결방안과 연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론장이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참가자 구성, 전문가 참여 여부, 필요한 정보의 수위 등이 결정되는 것이다.

한편 공론장 개최에는 가시화되지 않은 또 다른 목적이 수반된다. 주제에 대한 주민의 관심도 제고, 주민의 역량 강화, 숙의민주주의의 실현 등이다. 이상과 같은 여러 목적을 한 번의 공론장을 통해 달성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열렸던 ‘국가이슈포럼’ 중 한 포럼은 이민자의 영어 문맹 퇴치교육과 공론장 방식을 결합함으로써, 문해력 교육과 동시에 정치에 배제된 집단의 정치참여 활성화와 효능감을 높였다.1) 숙의의 과정은 민주주의의 강화와 시민역량을 높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며, 여기에 뚜렷한 문제의식을 반영한다면 여러 목적을 한 번에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내용을 한 번의 공론장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 실제로 몇 개월이 걸리는 과정을 몇 시간 안에 진행하기 위해 수박 겉핥기식의 학습과 억지 결론을 도출하는 경우도 있다. 참여자와 주최 측 모두가 불만족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여러 개의 목적을 나열해보고 그것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요한 목적을 참여자들과 공유하여 함께 달성하고, 그 외의 것들은 유연하게 운영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으로 공론장을 운영할 수 있다.

최고의 난제, 참여자의 모집

참여자 모집은 공론장 준비과정에 겪는 가장 큰 난관이다. 우리 사회에 토론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을뿐더러, 공적토론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소수 주민이 중복대표성을 갖게 되고, 지역의 인구구성과 사회문화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다양한 참여자의 확보는 공론장 진행의 핵심과제이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단체가 공론장 진행의 주요 주체라 할지라도, 지역의 다른 단체, 기관 등과 협력한 공동개최가 필요하다. 이들은 서로 다른 관계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정 의견에 치우치지 않는 참여자를 모집할 수 있다. 여기에는 민간과 행정의 상호협력도 포함된다. 그리고 같은 공론장을 시기와 장소를 달리하여 여러 번 개최하는 것도 좋다. 이는 주제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선택권을 줌으로써, 참여를 망설이는 유보적 태도의 주민을 이끌 수 있다.

개최 공간도 참여자에게 중요한 요소이다. 1990년대 후반, 미국 필라델피아의 시장선거 과정에 진행한 ‘시민들의 목소리’ 프로젝트는 지역사회 내 공동체 간의 단절로 인하여 참여자가 확장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공동체 영역이 아닌 곳에서 개최되는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에 ‘시민 지도화(civic mapping)’ 작업을 통해 지역공동체의 특성을 고려한 행사 개최 장소를 곳곳에 확보함으로써 다양한 참여자를 구성해낼 수 있었다. 2)

만약 토론주제가 어렵지 않고, 많은 주민의 참여가 중요하다면 개최 장소를 아예 참여자에게 맡기는 것도 시도해볼 수 있다. 2018년 지방선거 시기에 대전시에서 열린 ‘누구나정상회담’ 사례는 최소한의 규칙만 제시하고 주민에게 대화모임을 진행할 일시, 장소, 주제를 선택하게 하였다. 주민들은 집, 동네카페, 학교 등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자유로운 공론장을 열었고, 결과적으로 231개의 소규모 공론장에 1,800여명의 주민이 참여한 성과를 냈다. 이는 낯선 공간이 주는 부담을 덜어냄으로써 더 많은 주민참여를 이끈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해볼 만하다.

토론을 촉진하는 기법과 도구

토론을 돕는 적절한 기법과 도구도 공론장 진행에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 쉽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으며, 소수의 대화독점을 방지하고, 모든 참여자의 의견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효과를 강화하기 위한 수많은 토론기법이 있으므로 목적에 따라 적절히 적용할 수 있다.

몇 가지 적용방안을 간단히 살펴보자. 처음에는 참여자의 관점을 확장하는 것이 좋다. 주어진 주제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함으로써 균형 있는 토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현재의 제약조건이 아닌, 변화된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부터 출발하여 과제를 찾아내거나, 자신의 견해와 반대되는 의견을 의도적으로 찾아봄으로써 다양한 관점을 고려할 수 있다. 참여자의 막연한 문제의식을 다듬어 문제의 원인과 의제를 직접 발굴하는 것도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이 가진 자원을 모아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짜볼 수 있다. 필요에 따라 공론장의 주최 측이 관련 자료를 직접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토론기법은 매우 다양하므로 짧은 글로 모두 설명할 수 없지만, 상황에 따라 기존의 방법을 유연하게 응용할 수 있다. 한가지 염두에 둘 점은, 이러한 방법론은 주민참여와 토론을 촉진하는 도구일 뿐, 그것이 공론장의 원래 취지와 주객전도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때론 과도한 토론기법과 도구가 자유로운 대화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왕왕 보인다. 토론을 촉진하는 수준의 적절한 도구로 활용하도록 유념해야 한다. (자세한 토론 및 워크숍 기법에 대해서는 희망제작소에서 제작한 『희망드로잉 26+ 워크숍 활용설명서』를 참고할 수 있다.☞자세히보기)

결과에 대한 피드백

주민참여 과정을 경험한 사람들의 주된 불만 중 하나는 이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피드백이 없다는 점이다. 토론을 통해 주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아진 참여자들은 그것의 실행과정에도 관심이 높아지는데, 결과가 반영되었는지, 반영이 안 되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이후 계획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드백의 부족은 참여자의 노력이 일회성 행사에 동원만 되었다는 인식과 함께, 주최 측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래서 결과물을 어떻게 반영하고 피드백할 것인지는 공론장 개최 전부터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공론장의 결과물은 정책결정을 위한 주민자문 의견으로 제시하거나, 정책에 직접 반영할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후속 프로그램이 필요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참여자에게 토론결과가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 사전에 충분히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참여자들은 토론의 동기를 부여받고, 책임감과 공적 자세를 가지고 토론에 임할 수 있다.

피드백을 준다고 해서 단순히 의견의 ‘수용’, ‘검토’, ‘불가’와 같은 형태로 통보하는 것도 곤란하다. 수용되었다면 누가 어떻게 진행한다는 것인지, 불가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함께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피드백을 통해 주민이 정책결정 과정의 주요 파트너임을 인식시킬 수 있다. 그래서 공론장을 단순한 행사를 치르는 것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나가는 말

이상에서 제시한 요소 외에도 주민참여 공론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려할 것은 매우 많다. 그리고 그 준비에 생각보다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이 반영되지 않은 단순 행사성 공론장은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끝나버릴 위험이 크다. 그래서 공론장의 시작부터 결과의 반영까지, 미리 준비하고 점검해야만 기대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상태에서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공론장 설계는 곤란하다. 많은 주민참여 방법 중 공론장 개최를 선택했다면, 숙의토론이 함의하는 민주적 절차와 방식을 잘 살려내기 위한 태도도 중요하다. 이러한 고민을 담은 공론장은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뿌리인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글: 이다현 희망제작소 대안연구센터 연구원·mangkkong2@makehope.org
– 사진: 희망제작소 자료사진

* 각주
1),2) 존 개스틸, 피터 레빈. 2018. 『시민의 이야기에 답이 있다』. 시그니처

* 해당 글은 (가)한국공론장네트워크에 공동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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