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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3일 희망제작소 누구나학교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작년 10월부터 7개월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방문학자로 베를린의 도시재생과 사회혁신을 살피고 돌아온 하승창 교수(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입니다. 이번 명사특강은 베를린의 도시재생을 통해 변신한 오래된 공간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혁신을 꿈꿔온 하 교수와 함께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의 모습과 변화를 상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하 교수와 함께한 시간을 곱씹어 보며 느낀 것은 그의 경험이 ‘사회혁신에 대한 베를린식 정답’을 찾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베를린식 도시재생에서 그가 던진 질문들을 우리는 마치 여행하듯이 마주하고, 베를린이 주는 아이디어 속에서 그의 꿈을 함께 나눠볼 수 있었습니다. 하 교수가 베를린에서 던진 질문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리고 그가 질문에서 발견한 것들을 이번 후기를 통해 공유합니다.

하승창 교수(전 청와대 사회혁신수석)가 강의하는 모습

베를린에서 하 교수의 눈길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동네 가게’였습니다. 베를린에는 한자리에서 10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온 동네 가게들이 무척 많다고 합니다. 비록 맥주 한 잔이지만 여유롭게 카드놀이를 즐기는 어르신들을 품는 음식점부터 10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길게 늘어선 손님들을 맞이하는 빵집, 125년의 역사를 자부하는 동네 장례식장까지 하 교수의 발길은 동네 곳곳의 오래된 가게들을 따라다니며 어떻게 가게가 유지되는지, 그리고 동네라는 공동체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합니다.

도시재생을 통해 새롭게 조명받는 베를린의 오래된 건물들은 그의 질문 다음으로 바라본 것들입니다. 베를린은 도시재생의 사례에서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스타트업 생태계를 잘 구축해온 도시로 최근 5년간 스타트업 생태계가 잘 조성된 도시 세계 10위 안에 들 정도로 스타트업을 활용한 도시재생의 사례가 많은 곳입니다. 그런데 베를린은 왜 도시재생의 사례가 많은 것일까요. 하 교수는 도시라는 단위를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자 문제 해결의 단위로 정의하고, 분단과 기억의 창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것이 ‘베를린식 도시재생의 차이’라 정의합니다.

베를린 시민의 ‘자발적 행동’과 통일 이후 전쟁과 분단을 향한 기억의 창으로 도시를 재설계하는 ‘베를린시의 접근법’이 만나며 탄생한 ‘베를린식 도시재생’은 다양한 성공과 실패의 사례들을 남겼습니다. 그중 ‘팩토리 베를린 프로젝트’는 오래된 양조장을 민간이 직접 인수해 상업지원센터로 재생시킨 사례로 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다양한 스타트업 업체들이 들어와 활동하는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베를린에는 또한 분단 시절 중심지였으나 통일 이후 급격히 쇠퇴해버린 많은 지역이 있습니다. 통일 이후 버려진 영화제작소가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우파 파브릭(ufafabrik)은 30여 명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만든 공간입니다. 처음에는 버려진 건물에 무단으로 들어온 이들이었던 예술가들은 이곳에서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자유학교라는 이름의 대안학교를 만들어 예술과 수업을 접목한 다양한 실험들을 진행했습니다. 이들은 실험과 함께 자신들이 운영할 수 있는 콘텐츠를 시에 직접 제안하였고, 60년간 공간을 임대할 수 있는 권리를 베를린시로부터 받았습니다. 이후 동네 주민들도 즐길 수 있는 서커스 공연, 댄스, 요가 교실 등이 들어서며 주민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분단에서 통일로 넘어가는 시간 속에서 버려진 초콜릿 공장에는 여성의 자립을 위한 목공 공장이 세워지고, 기차역 화물 창고가 미술관으로 활용되며, 동독 시절 맥주 양조장은 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등 베를린 도시재생의 다양한 사례들은 공간에 대한 주민의 상상과 행동이 때로는 시의 의견과 경합하고 화합하면서 만들어낸 도시혁신이며 사회혁신이었습니다.

베를린의 도시재생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기억의 보존’입니다. 1.2km 구간의 장벽에 세계 각지에서 온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장벽은 분단의 기억이 주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벽이 처음부터 잘 보존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어느 구간은 떼여져서 팔리기도 하고, 작은 조각은 열쇠고리로 만들어져 팔리고 있을 만큼 장벽에 대한 관리는 매우 허술했다고 합니다. 이에 베를린시는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 2005년 ‘베를린 장벽에 관한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장벽보존을 위한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예술품이 된 장벽을 보존하는 일과 장벽 자체를 보존하는 사업은 종합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재단을 통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승창 교수가 장벽에 대한 보존보다 더 주목한 것은 바로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에 대한 기억 작업입니다. ‘걸림돌’이라는 뜻의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은 나치 정권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이 실제 거주했던 거리 곳곳에 설치된 작은 기억 동판입니다. 동판에는 이곳에 희생된 사람이 거주했으며, 언제 추방되었고, 사망했는지를 기록했는데, 베를린 거리에서 시작한 슈톨퍼슈타인은 독일 전역뿐만 아니라 유럽의 다른 여러 나라에도 설치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가기 위해 긴 줄을 섰던 베를린 그루네발트(grunewald) 기차역 또한 죽음의 열차에 올랐던 유대인들의 이름과 행선지를 철로에 빽빽이 기록한 장소로, 도시에 새겨진 희생의 모든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베를린의 노력이 엿보이는 사례입니다.

전쟁과 분단에 대한 기억과 문화예술이 합쳐져 새로운 도시로 재생해가는 베를린의 여러 사례를 뒤로하며 하승창 교수가 마지막으로 제시한 질문은 ‘도시의 혁신은 어떠해야 하는가’였습니다. 끝으로 도시재생은 “사회가 가진 시스템에 대해 다르게 보아야 할 필요성과 그 사회를 움직이는 주체들의 의지가 결합했을 때”라고 말하는 그의 꿈이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도 이루어지기를 희망해봅니다.

– 글: 이규홍 대안연구센터 연구원·diltramesh@makehope.org
– 사진: 이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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