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 프로그램

유달리 기대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바로 1004클럽·HMC회원 모임인데요. 삶에서 기부를 실천하는 분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면 배울 게 많고, 귀감이 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벌써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올해 네 번째 1004클럽·HMC 정기모임이 희망제작소에서 열렸습니다. 희망제작소를 아끼는 1004클럽·HMC회원 12명이 자리해 의미있는 이야기를 나눠주셨습니다.

후회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김형권 님.
희망제작소가 나아가는 길에 도움이 될 것을 다짐한 심재엽 희망제작소 감사 님.
50여년의 삶을 돌아보고 ‘륙십파티’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인 유상모 님.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며 시야가 트이는 것을 느끼고 계시는 정미영 님.
환절기의 선선한 바람에 서로의 건강을 기원한 정진수 님.
최근 남북간 정세에도 좋은 일을 놓지 말자고 격려한 홍성완 님.

이어 10년간 고마운 인연을 이어준 장완익님, 정진수님, 홍성완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리더십 스토리, 30여 년 넘는 회계사 활동에서 느낀 것

후원회원 자신만의 신념과 방식을 통해 꾸려간 삶을 나누는 ‘리더십 스토리’에서는 1004클럽 황효진 님이 나섰습니다. 황효진 님은 30여 년 넘게 회계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공공기관의 감사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지난 2017년에는 인천도시공사 사장으로 취임해 공공기관의 투명한 운영과 혁신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황 선생님은 공공기관에서 각자 일하는 의지를 북돋을 수 있도록 리더의 역할과 이를 지원하는 업무시스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리더십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 투명한 업무 시스템과 이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역할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재차 이야기했습니다.

황 선생님의 리더십을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는 다양한 동문활동을 통해 이어온 기부입니다. 황 선생님은 다양한 모임을 조직하고, 이를 장학재단으로 만들어 기부까지 연결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많게는 5천 여명을 모아 매년 1억원을 모아 기부하는 등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관심과 실천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공직에서 물러났지만, 또 다른 삶의 궤적이 기대할 수밖에 없는 건 황 선생님의 지치지 않는 열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종일관 유쾌하고 겸손하게 삶의 여정을 공유해준 황 선생님이 만들어갈 다음 희망을 보고 싶어졌습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길고 긴 싸움

이어 1004클럽 회원이자, 현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완익 변호사를 모셨습니다. 올해 한국사회의 뜨거운 화두는 한일관계일텐데요. 현재 일본이 ‘경제 보복’의 정치적 도구이자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게 바로 ‘강제동원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입니다.

장 변호사는 18년동안 이어진 길고 긴 싸움의 시작부터 함께 했습니다. 재판의 역사만큼 단번에 이해하기에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준 덕분에 역사적인 사실을 보다 깊게 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장 변호사가 긴 싸움에 참여한 계기는 1994년 위안부 할머니 소송 때문입니다. ‘잠시’ 맡을 줄 알았던 위안부 소송 사건을 연달아 담당하면서 1997년 일본 기업에 강제 징용된 피해자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요. 소송 관련 도움을 요청받으면서 변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2018년 일본기업의 배상 책무를 인정하는 역사적인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엎치락 뒤치락이 있었지만, 그 시작은 참으로 초라했습니다. 1990년대 일본에서 이미 위안부 피해자를 포함해 일제강점기 피해자의 재판이 이어졌지만, 단 1건도 일본 정부를 이긴 재판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정부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한 건도 승소하지 못하자, 일제시기 피해자를 지원해온 일본 변호사가 한국에서 재판을 해보는 것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2000년 5월 1일, 강제동원 피해자 6명을 원고로 미쓰비시 중공업을 대상으로 소를 제기했는데요. 그런데 일본재판과 비슷한 양상으로 미쓰비시 측에서는 한일청구권협정 및 일본에서 진행 중인 소송을 근거로 법적 문제를 제기합니다.

장 변호사와 피해자모임은 한일청구협정 관련 문서의 실체를 알고, 이를 부산지방법원에 제출하면, 승소의 단서를 얻을 수 있으리라 판단해 문서를 제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외교부에서는 문서 공개를 거부했고, 결국 한일청구권협정 문서 공개를 요청하는 지난한 소송을 이어갑니다.

마침내 2005년 승소하면서 한일청구권협정에 대한 법적 효력에 관해 민관위원회에서는 다음과 결정을 내립니다. 보상이 아닌 배상, 즉 불법행위로 입은 피해에 대해 개인의 배상 청구는 가능하고, 일본 기업의 반 인도적인 불법행위는 일본 정부의 불법 식민 지배와 직결됐다고 전제한 내용입니다.

우여곡절끝에 2005년 공개된 청구협정 관련 문서를 부산지방법원에 제출했는데요. 2007년, 재판의 결과는 놀랍게도 패소했습니다. 이유는 손해배상 등 민사채권의 시효가 10년이기 때문에 훨씬 지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항소한 2심의 결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 2005년,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일본제철)을 대상으로도 강제동원피해자 4명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앞선 경우처럼 우리나라 재판부에서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의 시효가 소멸되고, 현재 일본제철과 당시 일본제철은 전혀 다른 회사라는 점으로 청구 소송을 기각하고, 2009년 2심에서도 패소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2012년 대법원은 원고 승소 취지의 파기 환송 판결을 내립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불법이며, 이로 인한 일본의 판결은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고,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국가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국민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 점이 근대법의 원리에 맞다고 판결한거지요.

2013년 일본제철이 상고하며 최종적인 대법원의 판결은 2018년 내려지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원고 4명 중 3명이 이미 사망하고, 마지막으로 생존한 이춘식 할아버지는 대법원 판결 당시 98세였습니다.

한일관계, 놓치지 말아야 할 역사적 기억

장 변호사는 21세기인 지금도 국제법은 강대국 논리라고 일갈합니다. 일본의 패전에 대한 책임으로 전범재판 등이 논의되었으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지요. 이제라도 국제법은 국가의 권리만이 아니라 개인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돌아가신 피해자에게 국가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13년의 기나긴 싸움을 벌인 이춘식 할아버지에게 국가는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아직 배상을 받기 위해 또 다른 장애물을 넘어서야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역사적 기억과 피해자의 기억을 잊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1004클럽·HMC회원 9월 모임은 9월 18일 (수) 저녁 7시 성산동 희망제작소에서 열립니다. 9월 모임에는 광복회의 김원웅 회장을 초대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우리에게 남은 숙제를 훑어보려고 합니다. 후원회원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글: 유다인 이음센터 연구원 | yoodain@makehope.org
– 사진: 이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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