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에서 부산, 서울로 온 이현정 씨와 김민지 씨

우리 모두 ‘태어나고 자란 장소’의 영향을 받은 ‘어디 사람’입니다. 이 말은 나 또한 우리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이방인’이자 ‘소수자’가 된다는 의미죠. ‘소수자’를 떠올리기 어렵다면 나의 경험을 비춰보면 됩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집니다. 노래 ‘여수 밤바다’를 즐겨 부르고, “머선 일이고!”라는 사투리를 즐겨 쓰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출신 지역으로 ‘우리’와 ‘그들’을 구분합니다.

“너네 동네엔 이런 거 있어?”
“왜 노래 부를 땐 사투리 안 써?”
“(거기는) 지하철 없이 어떻게 살아?”
“OO지역 사람은 못 믿겠더라.”
“명절에 ‘시골’ 잘 다녀와!”

희망제작소 지역차별언어 바꾸기 프로젝트 ‘어디 사람’은 지역의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도록, 지역차별의 말을 모아, 시민들과 함께 더 나은 말을 찾는 프로젝트입니다.

🔶지역 차별? 지역 차이?🟢

한 사람의 삶에서 ‘어디 사람’인 것은 얼마나 중요하며,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이현정 씨(가명)와 김민지 씨(가명)는 경남 출신으로 양산에서 학창 시절을 공유한 친구이다. 서울과 부산에서 각각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터를 잡아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얼마 전에도 제주도 여행을 함께 다녀왔을 정도로 친한 사이다. 하지만 다른 삶의 궤적을 거쳐서 일까. 두 사람의 지역 차별에 대한 첫 생각은 조금 다르다.

“지역차별은 지역에 살면 누구나 느껴봤을 겁니다.”
“지역차별은 시대가 지나감에 따라 지나가고 있는 개념인 것 같아요. 차별보다 차이가 아닐까요?”

‘차이’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이다. ‘차이’가 다르다는 상태를 정적으로 나타낸다면, ‘차별’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 등급이나 수준 따위의 차이를 두어서 구별한다’에서 보다 능동적인 행동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정복 대구대 교수는 “‘차별 표현’, ‘차별언어’를 ‘사람들의 다양한 차이를 바탕으로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편을 나누고, 다른 편에게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드러내거나 다른 편을 불평등하게 대우하는 과정에서 쓰는 언어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지역의 차이는 차별일까, 아니면 차이일까. 한 사람의 삶에서 차별과 차별을 흑백처럼 구별하는 게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대학교 OT에서, 취업을 앞둔 면접에서 두 사람이 느낀 감정과 경험은 차이와 차별의 중간에 있다. 일상의 순간, 삶의 중요한 지점에서 ‘어디 사람’이라서 겪은 이현정 씨와 김민지 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Q. 자기 소개를 한다면. 

현정 :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현재는 경남 부산 지역 거주 중이다.
민지 : 울산 울주에서 출생해 양산 통도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해 작년부터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Q. 어떻게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었나.

현정 : 친구에게 소개 받았다. 지역차별언어에 관해 의식한 적은 없었는데, 지역에서 산 사람이라면 한 번은 경험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사소하지만 나누고 싶었다.

민지 : 지역 차별이 주제라고 해서 사실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지역차별’이 아닌 ‘지역의 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역성에 관해 부정적이지 않아서 인터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지역에서 서울로 오고 나서 이 차이를 역이용해 사람들과 더 빨리 친해지고 잘 지냈다. 과거에는 지역 이동이 많지 않아서 선입견이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세대 중에 한 지역에서만 사는 사람은 거의 없고, 왕래가 잦기 때문에 ‘지역 차별’이란 개념은 지나온 개념 혹은 지나가고 있는, 그래서 저절로 해소되는 개념이 아닌가 싶었다.

Q. 실제로 지역에서 오래 거주한 사람들은 ‘지역차별’을 느끼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역이용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민지 : 대학 진학하며 서울에 처음 왔는데, 사람들과 친해지는 게 겁이 났다. 신입생 때 어떻게 사람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오히려 사투리를 티 나게 썼다. 일부러 “맞제” 하면서 목소리도 크게 내고. 그러면 “너 사투리 쓰네, 어디서 왔어?” 한번이라도 말을 걸도록 말이다. 부산에서만 쓰는 단어 ‘시다(=쌔그럽다)’를 괜히 자주 쓰면서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이용했던 것 같다.

“면접에서는 사투리를 고치세요”

Q. 지역에 거주한다면 누구나 지역차별을 경험했을 거라고 했는데 기억나는 게 있다면.

현정 : 취업 준비 시절 면접 경험을 공유하고 싶다. 본사는 서울에, 지사는 지방에 있는 회사였다. 지방에서 근무하지만, 면접은 서울에서 본다고 했다. 취업 스터디에서 면접 준비하는데 한 팀원이 “면접에서 표준어를 쓰는데 혼자 억양 있는 말을 쓰면 튀어 보이니, 부드럽게 말하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하더라. 혼자 사투리를 쓰면 튀니까 좋은 인상을 받기 어려울 것 같아 억양의 고저를 없애려고 연습한 뒤 면접을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면접관은 모두 서울말을 썼지만, 면접 참여자들은 모두 사투리를 썼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튀어 보이지 않았지만, 당시 팀원의 그 말을 의식했던 것도 지역차별 경험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한다.

민지 : 얘길 듣다 보니까 떠오르는 경험이 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친구들은 “너 화났어? 괜찮아?”라며 계속 묻는다. 억양과 뉘앙스가 화가 난 것처럼 느꼈나 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사전에 해명했다. “나 화난 거 아니야”라고. 반면, 억양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방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너 되게 여성스러워졌다”, “차분해졌다”라고 하더라. 스스로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알게 모르게 뭔가 바뀐 게 아닐까 싶다.

또 20대에 서울에서 계속 지내니까 고향에 계신 부모님 전화 받는 일이 아니면 자연스레 서울말을 사용했다. 사람들과 한참 이야기하다가 내 고향이 부산이라고 하면 ‘너 서울 사람인 줄 알았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럼 나는 “그럴 수 있지. 서울에서 10년 살면 서울사람이지”라면서 좋아했는데,  문득 ‘내가 왜 좋아하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게 차별인지 돌아봤다.

지역을 모르는 사람들

Q. 지역에 대한 이미지와 관련한 경험도 있을 것 같다.

민지 : 대학교 친구들과 학교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이런 대화를 한 적도 있다.

💁‍♀️ 상황1.
친구: 너네 급식에 회 나와?
민지: 아니, 급식인데 똑같이 나오지.
친구: 수요일에 특식 날은 회 안 나와?
민지: 짜장면, 요구르트 이런 거 나와.

💁‍♀️ 상황2.
친구: (부산 사투리를 듣고) 땡초가 뭐야?
민지: 청양고추.
친구: 그럼, 귤은 뭐라고 해?
민지: 귤은 귤이라고 해.
친구: 삼겹살은?
민지: 삼겹살도 삼겹살이라고 해.

서울은 문화 생활하기 좋은 곳?

민지 : 지역에 사는 엄마가 생일날 베스킨라빈스(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쿠폰을 받으면, 대부분 나에게 혹은 동생한테 보내주셨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1시간 이상 갈 수는 없지 않나. 운전해서 갔다 온다 해도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녹기에 절대 사용할 수 없는 기프티콘인 셈이다.

현정 : 실제 서울에 상경한 친구들과도 대화하면 다섯 명 중 다섯 모두가 서울에 정착할 거라고 말한다.  문화 생활과 결혼 후 자녀 교육 때문에. 서울에서는 극장과 미술관을 갈 수 있다고 하길래 “(부산에도) 영화관 있고, 벡스코도 있으니 여기서도 즐길 수 있는데?“라고 되물으니 “그래도 다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민지 : ‘시골’이 도시화 되지 않았다고 해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소득이 낮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놀랐다. 시골에 농사짓는 많다고 하더라도 부농인 분들도 많다. 반면 도시에 살아도 아르바이트하면서 20~30만 원을 버는 사람도 있지 않나. 시골과 도시를 단편적으로만 바라보는 것 같다.

현정: 지방에도 좋은 시설과 교육 여건이 갖춰져 있는데 왜 꼭 서울을 ‘정답’, 혹은 ‘목적지’인 것처럼 말할까. 서울로 가야 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친구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지방에 살고 있는 나조차도 서울은 문화 생활 하기 좋은 곳이라고 하나둘 받아들이다가 무슨 일이든 지방이 아닌 서울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는 순간 차별이 일어나지 않을까. 차별은 처음부터 차별이 아니고, 편견이 쌓여 차별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수도권 안에서도 차별은 있다

민지 : 서울에 살다가 수도권 A 도시로 왔는데, 해당 지역 사람들 스스로 A 도시에 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A 종특’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더라. 거칠게 운전하는 사람을 향해 “아~ 진짜 A 종특이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사실 A 지역에 오기 전만 해도 잘 몰랐는데, 타 지역 친구한테도 많이 A 지역에 관한 얘길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편견 같은 게 생긴 것 같다. 지금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A 지역에서 출산할 계획을 세우려니 지역 분위기가 괜히 무섭게 느껴지고, 아이를 키워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밖에 결혼 예정인 (수도권 출신) 남자친구를 부산에 사는 친척에게 소개하면 “서울 남자네“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니 ‘자상하고 배려심 깊지만 강단있는 모습은 부족한’ 이미지를 서울 남자라고 말하나 싶었다. 그런데 서울 남자도 천차만별이지 않나. 개인마다 다른 건데 서울 남자, 부산 남자, 서울 여자에 대해 어떻게 이미지화되고 있는지 생각하는 계기였다.

인서울 대학이 뭐길래

민지 : 얼마 전까지 동생이 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서울 사람들은 지방대는 죽어도 가기 싫어했다. 차라리 서울에 있는 다른 대학을 가지. 커트라인이 높은 학교라도 지방대는 가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립대를 갈 정도여도 서울의 다른 사립대를 간다고 했다. ‘지방에 가면 인생이 망한다는 것인가?’ 싶었다. 만약 연세대나 고려대가 지방으로 간다면 어떨까. 재밌는 상상이지 않나.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한 전공대학이 경기 지역으로 옮긴다고 하니 학생들의 시위가 많았다. 서명 운동도 일어나고. 멀지 않은 경기도 지역으로 가는 건데 엄청 반발이 심했다. 똑같은 대학, 커트라인, 교육과정이고, 경기 지역 캠퍼스의 시설이 더 좋은데도 졸업장에 ‘어떤 지역’이 찍히면 취업에 지장이 생긴다는 인식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인서울 대학이 중요하다는.

차이를 알아야 차별이 보인다

Q. 이 문제를 인지하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아이디어가 있을까. 

현정: 어떻게 차별을 인식하게 되었는지 짚어보면 서울 사람과 교류해야 지역차별을 인지한다는 점을 알았다. 타 지역 사람과 교류하며 (차별을) 인식했다면 반대로 서로 교류하며 좁히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개개인도 좋지만 정부, 회사 차원에서도 교류하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한다.

민지 : 차별과 차이의 기준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의도,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는 부모 세대와는 다르게 지역 감정이 나쁜 경우보다 오히려 지역 별 차이를 이야기 나누거나, 지방에 대한 인식이 열려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이후 유튜브나 도서에서도 비슷한 콘텐츠가 유행하기도 했다. 즉, 대중적으로 유행이 일어났다는 건 니즈가 있다는 것이고, 그만큼 지역에 관한 인식도 차츰 좋아진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실제 ‘제주도 한 달 살기’나 아예 지역으로 이사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는 지역에 대해 긍정적 신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처 몰랐던 차별적 상황을 인식 시키는 것보다 요즘 세대에게 유연하게 접근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본다. 너무 전투적이고(?), 강건한 자세, 마음가짐, 또는 집회처럼 꼭 ‘진지한’ 형태일 필요는 없다.

현정 : 제주도 택시기사 분에게 제주도 사투리 대회가 있다는 얘길 들었다. 이처럼 각 지역의 사투리나 문화를 자랑하는 대회를 하는 건 어떨까. 전국 각지에서 모여서 문화의 차이를 경험하면 그 차이를 인식하는 것부터 차별을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유다인 이음팀 연구원 yoodain@makehope.org, 이규리 이음팀 연구원 kyouri@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