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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지역 일자리가 주목받고 있다. 청년들은 지역을 떠나 일자리를 찾기 위해 수도권으로 향한다. 지역에 남고 싶어도 생애 경로에 따라 나만의 커리어를 쌓기란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희망제작소는 지난 3일 양승훈 교수(경남대 사회학)와 줌(zoom) 인터뷰를 통해 ‘지방소멸과 청년 일자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양 교수는 저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에서 지역사회와 산업의 관계. 산업의 흥망성쇠에 주목했고, <추월의 시대>에서 80년대 시각으로 한국 사회의 성장기를 들여다보고 재해석한 바 있다.

Q. 지난 10여 년 동안 청년들의 취업 절벽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 요인이 영향을 끼치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우리 사회가 청년에게 어떤 일자리를 공급했는지 살펴야 한다. ‘중위계층 청년이 취업하기 좋은 환경이었나’를 따져봐야 한다. 대개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제조업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의 제조업 일자리도 1990년대 이후로 비정규직화되었다. 정규직 채용도 줄어들면서 누적된 게 청년 취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대학생이 늘었난 점도 들 수 있다. 2000년대쯤부터 대학진학률이 70%까지 높아졌다. 대졸 청년들은 ‘화이트칼라’인 사무직이나 엔지니어직 혹은 연구직으로 가고 싶어 하는데 이러한 대졸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졌다. 비정규직화 등 제조업 일자리의 질도 많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

Q. 실제 정부와 지자체에서 다양한 일자리 정책을 펴고 있지만 산발적이고, 임시적이라 ‘좋은 일자리’는 아닙니다. 이에 관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정부와 지방정부가 만들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공무원과 공기업밖에 없다고 본다. 청년취업 시장의 압박이 커지면서 공공부문에서 직접 일자리를 창출했지만, 시험을 치러야 하기에 허들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다수의 청년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두고 ‘나하고는 먼 일자리’라고 여길 정도로 장벽이 높다.
또 다른 축으로는 정부가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며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 간접 일자리다. 대표적으로 고용노동부의 디지털 일자리 사업(개발자, 빅데이터 분석가, 유튜브 제작자)을 들 수 있다. 해당 사업은 정부가 기업에 인건비 제공 및 최소 6개월 고용을 보장하는 등 기업과 대학 간 이해가 맞물려 나름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당사자인 청년이 볼 때 근무형태, 근무조건, 처우의 질이 떨어지는 간접 일자리가 많았다.
일자리 사업이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중소기업이 강소기업이 되는 동시에 청년은 커리어 패스를 만들 수 있는 구조여야 하는데 미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일 사례처럼 중소기업의 현황과 기술, 직무 등을 표준화해 업데이트하며 관리‧평가한다면 학교나 지자체에서 연결하는 간접 일자리의 질도 표준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Q. 부산, 울산, 경남(이하 부울경)은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제조업의 중심축입니다. 어찌 보면 청년일자리가 풍부할 것처럼 보입니다.

부울경 중 부산과 울산‧경남은 다른 양상이다. 부산은 영세기업과 중소규모 이상의 서비스업 위주의 일자리가 있지만, 임금이 열악하다. 부울경 청년 중 화이트칼라로 일하고 싶은데 수도권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부산으로 취직해 박봉으로 일을 시작한다.
노동시장의 공급은 많고 수요가 적기 때문이다. 반면 울산‧경남은 전체 일자리를 보면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이다. 들여다보면 생산직 일자리가 많고 전문직, 사무관리직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 양승훈 교수(좌)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우)

Q. 실제 현황은 어떤가요. 부울경의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일자리의 질적 전환 측면에서 보면, 생산직 일자리가 많아도 일자리의 질은 다른 문제다. 자동차 기업이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는 추세다. 생산직 인력이 필요함에도 정규직이 아닌 원하청 도급 형태로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구직자가 ‘n차 하청’에 일할수록 일자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열악해지고 있는 셈이다. 주로 생산직에 취업하는 남성 청년은 ‘하청 일자리’를 아르바이트처럼 경험할 수 있어도 ‘직업’으로 삼기 어려운 실정이다.

여성 청년은 서비스업이 많은 부산에서 일하는데 박봉이기 때문에 이직을 원한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울산‧경남의 사무보조직으로 이직하고 싶어도 단기‧무기계약 형태가 많다. 만약 결혼하거나 출산하는 등 생애 경로 변화를 감안하면 일자리에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규직으로 자신만의 커리어 패스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역 일자리와 구인‧구직 간 구조적 미스매칭이 벌어지고 있다.

Q. 청년이 지방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지방소멸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청년이 지방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또 이런 흐름을 바꾸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청년이 지방을 떠나는 요인은 복합적이지만 일자리 문제가 크다. 현재 일자리가 열악하더라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면 지역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다. 용접을 배워 생산직으로 일하다가 ‘이직 사다리’를 타고 커리어패스를 만들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일자리의 상향 이동이 어렵다. 대졸 사무직은 근속이 쌓여도 초봉 언저리를 맴돌고, 기술이 있는 생산직도 연봉 형편이 조금 나아도 비슷한 수준이다.

이밖에 지역에서는 대기업의 스핀오프로 생긴 중소기업이나 지자체의 사업이나 정부의 보조금으로 인건비만 유지하는 정도의 기업이 많아서 청년들이 지방에 남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자리 관점에서 보면 이 중 하나는 보장돼야 한다. 진급 혹은 이직을 통해 더 나은 임금을 받을 수 있거나 처우나 인정 등 대우를 잘 받을 수 있어야 한다.

Q. 지방소멸의 이슈와 연결되는데 지방대학의 위기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대학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지방사립대 중 올해 25%가 신입생을 뽑지 못한 곳이 다수다. 내년에는 지방대학의 위기가 전면화될 것이다. 지역에서 청년을 머금은 곳이 ‘일터’와 ‘대학’이다. 대학이 없어지면 지역에 청년이 없어지는 것이다. 현재 지방사립대에서는 정원 미달한 학과를 폐과하고 있는데 향후 지역의 전문가가 사라지는 동시에 물리치료, 사회복지, 다문화 전공 위주로 남는 상황을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들 전공은 유연화된 일자리가 대부분이고, 직업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 국립대 네트워크, 공영형 사립대 등의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즉, 지방국립대는 대학원 중심으로, 지방사립대는 학부 내실화 및 직업교육‧연계 전공 등으로 기초소양 역량을 보강하는 쪽으로 역할을 분담하면 어떨까 싶다.

Q. 지방정부들이 청년조례를 만들거나 다양한 청년정책을 벌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는 합니다. 지역의 청년정책과 관련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지방정부가 다양한 청년 정책 및 조례 제정 등을 펼쳤지만 청년 맞춤형으로 다원화된 모델을 개발한 경험이 미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역마다 ‘베스트 프렉티스’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으로 ‘청년몰’ 사업이 아닐까. 청년몰은 ‘먹거리’, ‘미술’, ‘수공예’ 등으로 꾸려지지만 막상 사업을 들여다보면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어렵다. 이처럼 ‘청년’의 이름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신화에 갇힌 정책들이 있다.
만약 해당 지역이 제조역량을 지녔다면, 이에 걸맞은 청년 정책을 발굴해야 하는데 오히려 관광산업으로 돌리는 등 선례를 따르고 있다. 지역의 전적인 잘못이기보다 다양한 청년 정책 및 사업의 개발이 더디고, 성공사례를 조직하지 못한 탓이다. 다만, 정책을 개발하는 더딘 속도보다 지방소멸 속도가 빠르다는 게 고민이다.

Q. 교수님께서는 지방소멸, 청년정책 등과 관련해, 여러 칼럼을 통해 청년의 언어가 없다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이에 대한 조금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나 ‘의대생 국시 거부 사태’ 등으로 ‘청년’과 ‘공정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들 사태는 엘리트 게임으로 노동시장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데 주목하고, 대다수 청년이 처한 현실은 다뤄지지 않았다. 대기업 일자리를 늘린다고 해도 일부 청년만 누릴 수밖에 없다.
청년으로 호명되는 사람이 누구인지 봤을 때 다수 청년의 목소리는 투영되지 않고 있다. 고졸 남성과 여성, 전문대, 지방사립대 등 다양하게 구직하는 청년의 목소리를 대표해야 한다. 오히려 지방의 기업에 청년이 일할 만한 환경을 만드는 표준 체제를 어떻게 도입할지 논의하는 게 건전하지 않을까. 청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논의에서 평범한 청년의 목소리가 자꾸만 소거되는데, 이러한 지점에서 청년의 언어가 필요하다.

Q. 우리나라에서는 산업구조의 전환도 함께 요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에너지전환, 전기차, 스마트팩토리 등). 청년 정책과 산업구조의 전환이 함께 결합될 수 있을까요.

자동차 산업이 수소차‧전기차로 전환되고 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전자‧전기 계통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수도권에, 내연기관 클러스터는 대구‧경북‧울산 반경으로 있다. 산업 전환 관련한 연구의 원천 기술은 수도권에서 개발하지만, 실제 기술로 구현하려면 동남권의 현장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이처럼 지역에서만 궁리할 수 있는 일자리와 작업이 있다는 것을 좀 더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대개 ‘회사의 다각화’라는 측면으로만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지역의 ‘장소성’을 부각하고, 산업의 전환을 꾀한다면 역설적으로 지역에, 그리고 구직하는 청년에게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Q. 최근 희망제작소에서는 ‘지역차별언어 바꾸기’ 캠페인 설문조사(440명 응답)를 벌인 결과 40~50대 응답이 높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20대 청년의 응답이 높았고, 지역차별에 관한 체감도 높았습니다. ‘지역 격차’와 ‘차별’이 가까이에 존재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관한 의견 있으신가요.

대학의 서열화가 심해진 측면이 있다. 과거부터 대학의 서열화가 존재했고, 차별의 언어도 있었지만 갈수록 그러한 언어를 일상적인 언어로 쓰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고졸자’를 향해 ‘고졸 인성’이라는 둥 학력을 인성과 연결 짓기도 한다. 또 젊은층 사이에서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가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이라면 지역 격차나 지역 차별도 덩달아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 인터뷰 진행: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
– 정리: 방연주 미디어팀 연구원 yj@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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