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협치 10년, 폐단이 아닌 변화의 마중물

서울시 오세훈 시장은 지난달 두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시 민간위탁 관리지침’에는 행정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각종 비정상 규정이 ‘대못’처럼 박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간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려고 시도한 민간위탁이 오히려 효율성과 서비스 질을 저하시키는 현상이 나타났다”라며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선포했다.

민관협치는 그간 참여 민주주의와 숙의 민주주의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행정 패러다임의 변화가 요구되면서 활성화되었다. 희망제작소는 오세훈 시장의 소위 ‘서울시 바로 세우기’를 통해 제기된 민관협치의 근본을 훼손하는 무분별한 비난을 바로잡고자 지난 1일 긴급좌담을 열었다. 다양한 전문가들이 자리해 협치 정책의 의의와 평가를 짚어보고, 새로운 협치의 방향을 모색했다.

▲송창석 희망제작소 이사,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 문석진 서울 서대문 구청장, 유창복 전 서울시 협치자문관(사진 좌측부터)

민관협치 10년의 몰이해는 시대적 흐름을 역행

송창석 희망제작소 이사,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유창복 전 서울시 협치자문관, 문석진 서울 서대문구 구청장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날 좌담회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민관협치를 비난하는 시각에 반기를 들었다.

송창석 희망제작소 이사는 “유럽·북미 등 세계적으로 행정의 한계와 예산 부족 문제를 개선할지 논의하는 사회혁신 흐름이 나타났다”라며 “영국 보수당 출신 수상 데이비드 캐머런이 2010년 밝힌 ‘빅 소사이어티(Big Society)’ 정책의 취지를 받아들여 사회적 경제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사회혁신 관점에서 마을공동체, 사회적 경제, 공유경제 등 다양한 정책을 만들었고, 협치 정책으로 자리매김한 만큼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 소장도 “협치는 보수나 진보를 떠나 민주주의 확대와 같은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사회적 전진과 관련된 흐름이다”라며 협치 정책을 평가했다.

김 소장은 “대표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구현 방법이 다를 수 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서울시 바로 세우기’의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행정에서 협치를 위해 어떤 전략을 짜느냐는 방법론적 변화를 시도할 수 있지만, 사업 자체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은, 지역 풀뿌리 민주주의나 참여 민주주의가 잘못된 거라는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피력했다.

유창복 전 서울시 협치자문관은 협치는 ‘공적인 문제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여하는 시민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지난 10년 간 진행한 협치 정책의 의미를 ‘참여’에서 찾았다.

유 전 협치자문관은 “이웃들이 동네에서 각 단위의 삶의 현장에서 만나고 토론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점이 의미 있다”며 “내 문제가 이웃의 문제가 되고, 이웃의 문제가 동네의 문제가 되면서 서로 연결됨을 깊게 고민하고, 차이에 대한 감수성을 익힐 수 있다”고 말했다. 차이를 통한 감수성을 통해 민주적인 시스템을 만들고, 실제 주민자지회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는 자치를 구현했다는 것이다.

이날 ‘서울시 바로 세우기’ 발표를 통해 도마에 올랐던 민간위탁의 인건비 비중 문제도 반박했다.

유 전 자문관은 “(오 시장은) 시민사회에 위탁한 마을공동체 사업에서 인건비가 절반이 넘는다고 문제 삼았다”라며 “오히려 마을공동체 사업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연결망을 만들고 사회적 자본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인건비가 90%까지 드는 게 맞다. 지역에서 공동체 활동 및 가치에 관한 사회적 보상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0년 구청장 취임 이후 3선을 연임 중인 문석진 서울 서대문 구청장은 “협치의 역사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민선 5기부터 7기를 거치면서 주민들도 익숙해졌다”라며 “행정 서비스 관점에서 주민이 주인이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표출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방식이 협치”라고 강조했다.

문 구청장은 민관협치가 마을 및 사회적 경제, 공유경제로 이어지는 만큼 지방정부로서 포기할 수 없는 의제라고 주장했다. 문 구청장은 “협치를 진영논리나 정치적 계산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라며 “협치는 주민의 효능감과 주민자치를 위해 포기할 수 없다. 정치의 문제가 아닌 시대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협치 정책, ‘문제해결형’으로 거듭나고, ‘투명성’ 확보해야

참석자들은 기존 민관협치의 문제점이 일부 있지만, 협치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문제해결형’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창복 전 자문관은 민관협치가 변화를 위한 마중물인 만큼 ‘문제해결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민관협치는 행정이 주도하는 혁신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됐지만,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인책 및 혜택을 제공하는 등 지역 주민의 주도성을 높여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첫 단계로 ▲지역의 데이터 수집 및 학습 ▲단기 위주의 사업에서 중장기 사업으로 개편 ▲지역 내 로컬리스트 육성을 꼽았다.

문석진 구청장은 지난 10년간 민관협치의 토대를 일궈온 만큼 향후 투명성 담보를 통해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구청장은 “(시민사회가) 회계 투명성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언제든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올가미에 걸리기 쉽다”라며 “민간위탁 업체나 중간지원단체가 정당한 감사를 받을 수 있게끔 시스템을 만드는 등 회계 투명성을 담보하는 데 힘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송창석 이사는 “현재 민관협치 정책은 사회혁신의 일환으로 도입 단계를 지나 고도화 단계에 진입했는데,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은 원색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라며 “진영이 다르다고 해서 민관협치 정책을 무조건 바꿀 게 아니라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김병권 소장은 “협치가 공론장 민주주의를 상당히 진화했는데, 도시를 둘러싸고 ‘전환’이라는 키워드가 부상하고 있다”라며 “향후 도시를 바라볼 때 환경, 건강, 가치 등을 미뤄봤을 때 시민의 참여와 공유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민관협치에도) 풀뿌리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비롯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희망제작소는 향후 서울시 민관협치 10년의 성과를 돌아보고 평가하는 정책연구 등을 통해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참여민주주의의 정신이 우리사회를 근본부터 혁신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혁신 2.0’의 시대를 열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 정리: 방연주 미디어팀 연구원·yj@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