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사람을 잇는 ‘고향사랑기부제’

우리는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20년 0.84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올해는 1차 베이비부머 세대(55~64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된 시점이다. 그런가하면 정부는 올해 처음으로 89곳의 시·군·구를 인구소멸위험 지자체로 지정했다. 청년들이 떠난 지방을 바라보는 마음은 헛헛하고, 수도권에 몰려든 청년들의 삶은 팍팍하다. 문제들은 모두 연결돼 있다.

일본은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문제를 우리보다 조금 먼저 겪었다. 1990년대부터 육아지원에 방점을 둔 엔젤플랜 등 저출산 대책을 쏟아냈고, 2018년에는 각 지역에서 도쿄 등 거대도시권으로의 인구이동 심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창생 종합전략’을 발표했다. 정주인구의 증가를 목표로 이주촉진과 인구유출을 막기 위한 여러 정책들이 마련됐으나, 지자체간의 제로섬 게임 내지 의자뺏기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았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최근 일본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관계인구’ 개념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정책대안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일본의 로컬 저널리스트인 다나카 데루미는 관계인구를 ‘실제로 지역에 살지 않아도 지역에 다양하게 참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살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사람, 특산품을 구매하는 사람, 지역과 관계를 맺고 사업을 영위하는 사람, 지역을 응원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 무관심층과 정주인구 사이에 다양한 관계인구 층이 존재한다. 관계인구에 주목하는 정책전문가들은 지역 외 인재와의 관계망을 활성화하고, 지역에 공헌하는 인재들이 지역과 맺는 관계를 심화·지속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관계인구를 통한 지역살리기 ‘고향사랑기부금법’

지난 10월 국회를 통과해 2023년 1월1일 시행되는 고향사랑기부금법은 관계인구를 통한 지역살리기를 제도화한 사례다. 현재의 기부금품법은 국가나 지자체가 기부금품을 모집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고향사랑기부금법이 만들어지면서 지자체가 주민복리 증진 등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해당 지자체의 주민이 아닌 사람으로부터 개인별 연간 500만원 한도에서 기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기부자는 일정한 세액공제를 받고, 지자체로부터 답례품도 받는다.

고향사랑기부금이 지방소멸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2008년부터 납세자가 지자체에 낸 기부금에 대해 주민세 일부를 공제하는 고향납세제도를 운용 중이다. 지자체들은 이렇게 기부한 사람들에게 답례품을 제공한다.

중앙정부는 답례품을 ‘기부의 30% 이하인 지역생산물품’으로 한정하도록 했다. 하지만 기부금의 50~70%를 초과하거나, 아마존 상품권 등 뜬금없는 답례품을 보내는 지자체들이 속출했다. 그렇게 거둔 기부금이 지역 활성화와 지역주민 삶의 질 제고를 위해 제대로 쓰였는지도 문제다.

고향사랑기부금이 시민들이 외면하는 제도가 되거나, 지자체 간 과잉경쟁 대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할 방법은 무엇일까. 기부자들이 ‘지역을 따뜻하게 응원하는 관계인구'(이음인구)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일본 홋카이도의 가미시호로초나 아쓰마초는 기부금을 활용해 무료보육, 노인복지, 주거복지, 에너지자립마을 등을 추진하고, 답례품을 마련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산업과 사회적경제를 튼튼하게 만드는 지역혁신의 사례지역으로 꼽힌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고향사랑 기부금,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고장을 만드는 고향사랑 기부금, 찾아가면 힐링이 되고 은퇴 뒤에 정주하고 싶은 고장을 만드는 고향사랑 기부금… 이를 통해 지역을 아끼고 공감하는 마음의 불씨를 품은 이음인구가 늘어날 때 지방소멸이라는 난제를 풀 실마리가 발견될 것이다.

– 글: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