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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하자 ‘아닌 밤중 홍두깨로 느닷없이 보도듣도 못한 이야기’라며 용산구청장이 강력하게 반발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전 같으면 대통령 당선인의 첫 행보에 대놓고 구청장이 반발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었겠지만, 이제는 주민불편을 이유로 당당하게 말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중앙정부의 필요나 요구가 아니라 지역주민의 편의와 공공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지방자치의 존재 이유이다.

87년 민주화 항쟁의 성과로 부활한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오랜 군부독재 시절 억압과 통치에서 각종 인허가권을 쥐고 시민위에 군림하던 행정은 시민의 행복을 실현하는 도구로 자리바꿈하고 있다. 특히, 민선 5기부터는 주민참여와 민관협치를 통해 지방자치를 내실화하고 있는데, 일부 지방정부에서 선도적으로 시행되던 주민참여예산제는 2011년부터 의무화되면서 정책 결정 과정에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창구로 자리 잡았다. 복지허브동과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청년배당(수당), 지역 먹거리체계와 먹거리전략수립, 전 지구적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탄소 중립과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처럼 지방정부가 앞서 모범사례를 만들고 중앙정부가 이를 뒤따르는 사례가 많아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방자치에 대한 무관심과 지방자치 무용론도 끊임없이 대두되었다. 여기엔 지방자치제도가 꾸준히 개선되고는 있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적 구조, 2할의 지방자치라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지방자치 부활 이후 자치분권을 강화하려는 노력은 지속해서 이어져 왔지만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 뒤에야 ‘중앙행정 권한의 지방 이양 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2003년 참여정부의 ‘지방분권 5개년 종합실행계획’을 통해 구체화 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32년 만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과 2차례에 걸친 재정분권을 통해 국세 대비 지방세 비중을 조금 늘리며 자치분권2.0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지방정부의 자치행정권, 자치조직권, 자치입법권을 보장할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형 개헌은 20대 국회에서 좌절되었다. 이제 공은 차기 정부로 넘어갔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자치분권에 관한 공약이 전무해 최소한의 고민도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다행히 인수위원회 산하에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지방의 권한과 책임성 강화를 위해 중앙권한의 지방 이양, 지방재정 자율성 및 건전성 강화, 자치입법권 및 자치조직권 강화를 검토했다는 소식이 들려 그나마 다행이다.

2020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정책 수립의 기준이 되는 인구통계에서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인구 데드크로스가 시작되었고,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넘어섰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도시 과밀화로 인한 집값 상승 등의 문제를 일으키고, 과도한 생존경쟁에 내몰리면서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 20여 년간 중앙정부 차원의 저출산고령화대책, 지역균형발전대책을 수립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중앙정부의 획일적 대책은 한계에 봉착했고, 이제는 지역별 특성에 맞춘 정책, 현실에 기반하면서도 혁신적인 시도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금 청와대 집무실 이전이 시급한 과제가 아니다.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운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소멸 대응 이주활성화지역 지정, 지역별 문화 격차 해소를 통한 문화자치 시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자치분권이 획기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32년 만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치혁신을 위한 자치분권은 미흡하다. 무엇보다 자치행정권과 자치조직권, 자치입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지방분권형 개헌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어, 2할의 지방자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방정부의 재정자율권을 확대하기 위한 재정분권이 혁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작성: 송정복 자치분권팀장 | wolstar@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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