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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단어이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이는 과거의 향수가 묻어나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2012년 서울시를 시작으로 전국에 확산한 마을공동체 사업은 동네 단위의 공동체가 생겨나는 마중물이 되었다. 우리는 마을공동체가 만들어낸 다양한 혁신 활동을 경험하였고, 그것이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10년 사이에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다. 등장 당시 신선했던 공동체의 이미지는 너무나 익숙해졌고, 절대다수의 시민은 공동체에 무관심하다. 게다가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넘쳐나고, 부르면 집 앞까지 오는 서비스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굳이 타인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아쉬운 것이 없는 지금, 마을공동체 정책은 여전히 유효할까?

행정이 마을공동체에 주목한 이유 👀
초기 마을공동체 정책의 목표는 단절된 관계망의 회복이었다. 도시화의 과정에서 사람들의 공동체 정신은 희미해졌다. 이웃 얼굴을 모르고 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육아나 돌봄을 중심으로 상부상조하는 주민의 움직임이 있었고, 이런 관계망이 사회문제의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행정은 주민의 관계망을 회복하여 행정서비스의 틈새를 보완해나가고자 했다. 그래서 일단 사람들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도록 지원했고, 작은 모임들을 서로 연결했다. 이렇게 삭막한 도시에도 공동체의 씨앗이 뿌려졌다.

각자의 이유로 공동체를 시작한 사람들의 관심은 공통분모인 마을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그 과정에서 주민자치, 참여예산, 봉사활동으로 활동을 확장해나가기도 했다. 행정의 입장에서도 주민이 참여하여 정책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도시재생, 평생학습, 교육정책에 공동체 사업이 함께 있는 이유이다. 이렇게 공동체 정책은 평범한 한 명의 주민을 지역의 주인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공동체 사업은 주로 지방정부가 지원한다. 그래서 지방정부 범위 안에 있는 마을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도록 돕는다. 지리적으로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같은 환경을 공유하여 관심사가 비슷하다. 관심사에 따라 지방정부의 관련 사업에 참여할 수도 있다. 즉, 공동체 사업은 지방정부의 정책과 주민을 연결하는 다리인 셈이다.

이것도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

한편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의 관계망이 생겨나고 있다. 순전히 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소모임이다. 이들은 딱 한 번만 만나거나, 온라인에서 만난다. 심지어 서로 이름도 나이도 모른 채 익명으로만 소통한다. 그 성격과 형태가 다종다양해서 유형도, 그 수도 파악되지 않는다. 소위 말해서 ‘요즘 것들’이 사람을 만나는 방식이다.

이들에게 ‘공동체’라는 끈끈한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활발하게 확산하고 있다는 점(소모임을 중개하는 꽤 비싼 서비스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공동체 정책에서 찾아보기 힘든 젊은 세대가 여기로 모여든다는 점이다. 이런 소모임의 특징을 딱 잘라 정의하긴 어렵지만, 기존 공동체와 뚜렷한 차이는 지리적 범위의 탈피, 그리고 유연한 관계성이다.

먼저 이들은 지리적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모인다. 심지어 도시와 도시를 넘나들며 만나기도 한다. 관심이 있는 주제로 열리는 소모임이라면 먼 거리를 이동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접근성 높은 공동체 공간을 확보하려는 행정의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소모임의 성격에 따라 온라인 모임도 가능하고, 오픈 채팅방이나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의 커뮤니티 게시판, 익명 대화도 가능하니 같은 지역 사람만 모일 필요가 전혀 없는 셈이다.

다음으로 사람들의 관계 맺는 수준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이다. 기존의 공동체가 참여자 간의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멤버십을 강조한다면, 이들은 필요할 때 잠깐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맛집 세트 메뉴를 같이 먹을 사람이나, 반려견 산책 중에 함께 할 사람을 찾기도 한다. 모임을 주최하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서로 부담 없이 가볍게 제안하고 받아들인다. 지속적이고 엄격한 출석이 요구되는 모임에서도 리더가 이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적으로 고군분투하지 않는다. 불참자는 사전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참여를 일부 제한하거나, 새로운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다.

지금 시대에 맞는 공동체 정책은 🧐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행정의 노력에도 반응이 다소 미지근한 상황에서, 이런 소모임이 자발적으로 생기고 심지어 돈을 지불하면서 참여한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그렇다고 공동체 정책의 유효기간이 만료되었다는 것으로 귀결되어선 안 된다. 지방정부는 주민을 지역의 주체로 만들어 정책과 연결해나가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웃은 서로 만나 대화하면서 개인의 관심을 지역사회로 확장해 간다. 주민이 공공의 이익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점은 정책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결국 공동체 정책을 지속해야 할 행정은 새로운 형식의 소모임, 그리고 지역 기반의 마을공동체 모두와 닿아있어야 한다. 여러 토양에서 생겨나는 공동체의 씨앗과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그들의 에너지를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모임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서 관련 정책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바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공적 활동과 접점을 계속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마을공동체 형성을 촉진하는 것도 여전히 필요하다. 드나듦이 많은 도시는 새로운 사람이 유입되고 또 빠져나간다. 마을공동체가 고정된 관계망이 아니라 열린 형태로 운영될 수 있도록 촉진하여 지역의 주체를 만들어가야 한다. 모이는 형식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사람과 지역사회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재난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가까운 이웃의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모든 생활이 마을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지만, 내가 가장 자주 드나드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관계망은 삶의 중요한 한 축이 될 수 있다. 공동체 정책을 둘러싼 환경이 시시때때로 변하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여 더욱 다채롭고 흥미로운 공동체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 글: 이다현 연구사업본부 부연구위원 | mangkkong2@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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