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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언가를 선택하길 두려워하는 ‘프로후회러’입니다. 요즘 ‘회귀’를 소재로한 판타지물이 유행이라는데, 일상이 후회의 연속이고 자책이 습관이며 생의 주요 고비마다 헛발질을 했다고 여기는 사람에겐 ‘회귀’가 판타지일 수 없습니다.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한다고 해서 후회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고 말하는 김태진 ‘동네줌인’ 대표(인터뷰 보기)를 만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커피트럭을 운영하며 전국을 다녔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세계 30개국을 여행한 뒤 무일푼으로 귀국했습니다. 이후 맘 잡고 취직을 하긴커녕 ‘청년 커뮤니티 공간’이란 걸 만들었는데, 그 커뮤니티가 일이 되고 밥이 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았답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고 그런 삶에 행복과 만족감을 느끼다 보니, 선택에 점점 자신감이 생겨 남다른 선택을 계속할 수 있었다”나요? 결국 그가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비결은, 선택을 잘하는 게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든 쉽게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는 데 있었던 겁니다.

남다른 선택을 자신 있게 하는 사람들

그러고 보면, 소셜디자이너들은 남 보기에 별난 선택을 자신 있게 하는 사람들인 것도 같습니다. 이종건 ‘오롯컴퍼니’ 대표(인터뷰 보기)는 건축공학과를 나와 특수부대 출신에 중동 파병 경험까지 있으니 ‘중동지역 건설 전문가’로 성장하기에 더없이 좋은 스펙입니다. 그런데 그는 서울의 오래된 마을을 돌아다니고 반지하의 곰팡이를 연구하는 한편, 버려진 나무젓가락을 건축자재로 재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골몰했습니다.

최정원 ‘청춘연구소 컬처플러스’ 대표(인터뷰 보기)는 평생교육학을 전공한, 타고난 카운슬러입니다. 보험설계사의 인생상담을 해줄 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마을에서 행복하게 먹고사는 청년 양성’에 힘쓰는 중입니다. 장종욱 ‘협동조합 소이랩’ 대표(인터뷰 보기)는 입사 1년 만에 대표직에 올라 회사 명칭과 비전을 바꾸고 10여 명의 직원들을 책임져온 걸출한 청년 기업인입니다. 매출이 커지는 것보다는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삶과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보람을 느낀다”니 확실히 남다르긴 하지요.

살고 싶은 곳을 선택하고, 바꾸는 사람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고자 살고 싶은 ‘지역’을 선택한 소셜디자이너도 있었습니다. 최지백 ‘더웨이브컴퍼니’ 대표(인터뷰 보기)는 연고가 없는 강릉시에서 창업해, 강릉을 청년의 활력이 넘치는 워케이션의 메카로 만들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서울토박이인 김만이 ‘초록코끼리’ 대표(인터뷰 보기)는 홍성을 진지로 지역농산물 새벽배송 시스템을 구축해서 우리나라 농산물유통 분야에 혁명을 불러올 작정입니다. 도원우 ‘리플레이스’ 대표(인터뷰 보기)는 낡은 고택을 문경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만들었습니다.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지역에 뿌리내린 기업활동을 통해 소멸위기에 놓인 지역을 살리려 합니다.

곡성에서 ‘협동조합 팜앤디’를 운영하며 최근 3년간 외지청년 36명의 곡성살이를 이끈 서동선 대표(인터뷰 보기)는 “지역살이를 선택한 청년들은 그곳을 자신이 꿈꾸던 동네로 변화시키는 동시에 스스로 원하는 삶을 개척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소셜디자이너들은 혼자 별난 선택으로 하며 독불장군처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통해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키고 이롭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사람들

사람들 속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셜디자이너들은 다양한 사람들을 모으고 연결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냅니다. 정은빈 ‘청춘여가연구소’ 대표(인터뷰 보기)는 본인을 포함해 셋만 모이면 재미난 커뮤니티를 뚝딱 꾸리는 커뮤니티의 마술사입니다. 이 놀라운 마법을 활용해, 각자도생의 삭막한 도시문화에 생기발랄한 균열을 냅니다. 김영진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 이사장(인터뷰 보기)은 시민들과 함께 ‘도박없이살고싶당’을 결성해 대전의 20년 묵은 골칫거리인 화상경마장을 없애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전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오늘도 각양각색의 시민들과 기발한 작전을 모의합니다.

고유미 ‘커피클레이’ 대표(인터뷰 보기)가 커피박(찌꺼기)에 관심을 가진 후, 커피박은 쓰레기가 아닌 소중한 자원이 되었습니다. 커피박이 세상을 돌며 일자리를 만들고 환경을 살리는 ‘커피박 지역순환 시스템’은 고유미 대표가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와 아이들이 마음 편히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열망하고 “한 명이 천 원 벌기보다 열 명이 백만 원씩 버는 세상”을 꿈꾼 결과입니다.

나는 선택의 결과가 잘못될까봐 벌벌 떨면서 되도록 선택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으니 남들이 선택해둔 공인된 길을, 남들 가는 만큼 그럭저럭 따라갔습니다. 큰 문제는 없었어요, 별 재미나 의미 없이 ‘견디는 삶’이라는 것 정도죠. 그런데 조금 다르게 살고 싶어졌습니다. 후회 없는 삶이란 선택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일 용기를 갖는 것이며, 스스로를 진심으로 믿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소셜디자이너들에게 배웠거든요. 상상을 현실로 바꾸려는 그들의 시도가 나를 매혹하고, 자신을 믿고 증명하려는 의지가 나를 자극했습니다. 소셜디자이너를 만난 후, 나는 소셜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 글: 이미경 미디어팀 연구위원 | nanazaraza@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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