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멸의 절박함은 ‘대담한 혁신’의 동력

지방소멸은 우리사회가 맞닥뜨린 두 가지 근본적인 도전, 즉 추락에 빗댈 만한 인구감소의 속도와 극심한 수도권 집중현상이 결합해 탄생한 결과물이라고들 합니다. 그동안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설치하고 수많은 정책과 예산을 투입했다는데, 출생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고, 수도권의 인구는 비수도권 전체의 인구보다 많습니다. 전체 인구는 감소하는데 청년들은 수도권으로만 몰리는 현실. 그런 현실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단어가 지방소멸입니다.

난제는 혁신을 요구합니다. 비상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상한 상상력과 지혜를 동원해야 합니다. 막대한 정부예산, 각종 보조금과 인센티브, 대규모 인프라 투자로도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라면,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겁니다. 과거에 어떤 성공과 실패가 존재했는지 되돌아봐야 하고, 우리가 가진 자원을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투입하거나 재배치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일본의 ‘지방창생 전략’과 독일의 ‘동등한 생활조건 위원회’

널리 알려져 있듯,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문제를 우리보다 조금 먼저 겪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는 일본입니다. 1990년대에는 육아지원에 방점을 둔 엔젤플랜 등 저출산 대책을 쏟아냈고, 2010년대부터는 각 지역에서 도쿄 등 거대도시권으로의 인구이동 심화에 대응하기 위한 ‘지방창생 종합전략’을 세워 각종 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주촉진과 인구유출 방지를 위한 노력들이 지자체 간 제로섬 게임을 불러왔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국가전략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비전을 마련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균형발전의 문제와 관련해 보여준 지혜와 역량을 우리가 배워야 할 사례도 있습니다. 통일 이후 독일 연방정부는 솔리다르팍트(Solidarpakt; 연대협약)를 통해 동독 지역에 대규모 자원을 투입했는데, 2005~2019년에 지원된 1,560억 유로(약 208조원) 중 510억 유로(약 68조원)가 경제, 연구 및 혁신, 교통 인프라, 도시 개발 등에 지원됐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2020년부터 모든 연방부처와 주정부가 참여하는 ‘동등한 생활조건 위원회’로 전환됐고, 옛 동독은 물론 서독 낙후지역의 혁신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통합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독일 국민이라면, 어디에 살고 있든, 삶과 일자리의 관점에서 공정한 기회를 누리는 것이 사회통합의 필수요건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희망제작소가 최근 ‘인구감소 지방소멸 시대, 지방정부 생존법’을 주제로 진행한 좌담회에서, 참석한 전문가들은 근본적 전환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지방소멸 문제의 해법은 지역의 자원을 발굴하고 지역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혁신, 일자리, 돌봄, 교육, 에너지 생산 등이 통합된 주거 공간을 제공하는 주거플랫폼, 지역경제의 실핏줄인 농촌을 살리기 위한 농촌주민수당, 지역의 자원과 고유의 역량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산업정책 등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내놓았습니다.

지방소멸 위기는 혁신과 전환의 기회

최근 경북 문경시에서 만난 한 로컬크리에이터는 처음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이게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창업을 고민하던 청년의 관점을 드러내는 말일 테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사회 전체를 일깨워주는 발상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동체 붕괴, 청년 일자리 부족,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시스템과 문화, 교육과 돌봄의 공백, 불평등과 각자도생의 현실 등이 지방소멸을 불러왔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과 도전은 공동체, 일자리, 육아, 교육, 돌봄 등 생태계의 근본적 전환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일자리혁신, 돌봄혁신, 교육혁신, 생태적 전환… ‘지방소멸’은 비관과 냉소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혁신을 강제하는 ‘창조적 제약요건’이 되어야 합니다. 절박한 자는 대담해지는 법이니까요.

* 글: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