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를 소비처럼, 소비를 기부처럼

내가 좋아하는 지역에 기부로 나의 관심을 전할 수 있는 제도가 시행되었다. 10만원까지는 전액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고, 연간 500만 원까지 기부가 가능하다. 내가 내야할 세금에서 10만 원을 미리 내는 것으로 지역별 정해놓은 답례품을 받을 수 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고향사랑e음 또는 농협 창구에서 기부자 주소지 외의 지역에 100원부터 기부가 가능하다. 지역을 선택하고 기부 결제를 하면, 답례품을 고를 수 있다. 답례품으로는 쌀이나 고기, 채소류를 선택하거나 청, 꿀, 들기름, 한과 등 가공식품부터 컵, 마스크팩, 화장품, 파우치, 그릇 등 생활용품 선택이 가능하다. 단, 기부자가 기부한 지역에 한해서 답례품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내가 필요한 상품을 구매하는 경험과 같다. 기부자가 마음에 드는 상품이 있을 때, 기부 형태로 소비할 수 있는 온라인 스토어이다. 다른 점은 선택의 폭이 아직 좁고, 지역 특산품, 지역 내 생산품이라는 것을 해당 지방정부가 인증한다는 점이다. 기부한 지역에서 제공하는 답례품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 특별한 애정이나 관심이 없다면, 내가 필요한 상품을 중심으로 지역을 선택하게 된다.

지역을 응원하는 소비

가치소비는 남에게 보이는 과시소비, 무조건 아끼는 알뜰소비가 아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에 맞는 제품에는 과감하게 소비하는 소비 트렌드이다. 가치 소비자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이나 의식, 신념 등을 적극적으로 표출한다. 업사이클링 제품을 찾거나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 친환경 제품부터 채식을 위한 식품, 환경보호를 하는 브랜드 등을 의식적으로 찾고 소비한다.

이러한 소비형태의 변화는 기업의 변화와도 맞물려서 확산되고 있다. 소비하는 시점에 가치를 전달하는 제품, 서비스, 브랜드 일수록 소비자는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주변에 알린다. 알고 소비했든 그렇지 않았든 대나무 칫솔, 폐플라스틱으로 만들어낸 의류 등을 구입하거나 소비하는 활동은 소비자에게 환경보호라는 가치를 즉시 전달한다. 동구밭에서 만든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거나 베어베터에서 만든 굿즈를 소비하는 것도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소비임을 소비자가 직접적으로 의식할 수 있다.

농산물 직거래 또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의 제품 소비로 지역 활성화를 응원할 수 있다. 농부가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응원하는 농사펀드, 못난이 과일과 채소를 구입할 수 있는 어글리어스를 이용하는 것도 친환경 농가, 지역 농가를 응원하는 소비이다. 지역 내 자원으로 소비를 일으키는 로컬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도 지역경제에는 도움이 된다. 이렇게 기부와 소비로 받을 수 있는 사회적 가치에 큰 차이가 없는 지출 형태가 바로 가치소비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일상이 되어있는 것이다.

기부와 비슷한 소비 경험

사회적 가치와 의미 전달이 즉시 일어나는 소비와는 다르게, 기부는 기부자에게 가치가 전달되는 시점이 늦다. 인권, 환경, 복지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사회에 기부하는 것은 활동을 지지하거나 장기적인 변화를 응원한다는 의미 외에 즉시적인 사회 변화와 가치 전달이 어렵다. 고향사랑기부도 기부를 통해 애정하는 지역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지만,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부 시점에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지방정부마다 특색있는 답례품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고, 답례품을 통한 기부 확산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미 가치소비에 익숙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답례품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점은 모든 지방정부가 경계해야 한다. 지역만의 특색있는 상품을 보여주는 것보다 장기적인 지역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기부자에게 전달하려는 가치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 답례품을 선정해야한다. 지역별 특색있는 브랜드는 이미 로컬 영역에서 많이 다뤄지고 있고, 여러 채널을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로컬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과 고향사랑기부를 통해 받는 답례품은 어떻게 달라야 할까?

보다 긴 호흡이 필요한 때

소비자에게 상품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양질의 제품, 기업의 메시지, 사회적 가치를 담은 브랜딩은 이제 기본 조건이 되었다. 모두가 사회적 가치를 전하고, 제품과 서비를 만들어 매장을 통해 전달한다. 이제는 수동적인 메시지 전달을 넘어서 다른 경험을 전달하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

밀가루 브랜드 곰표는 맥주, 팝콘, 패딩 등 굿즈를 만들어 오래된 브랜드가 아닌 젊은 세대에게도 인식되는 브랜드로 전환했다. 굿즈 협업만이 아니라 친환경 캠페인으로 플로깅까지 진행하며 새로운 곰표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씨낵(SEA+SNACK)은 친환경과 여행을 결합한 플로깅 캠페인이다. ‘바다 쓰레기가 돈이 되는 과자 상점’이라는 슬로건으로 쓰레기 수거 캠페인을 진행했고, 수거한 쓰레기 무게에 따라 해양생물 모양 과자를 제공했다. 바다 쓰레기를 줍는 과정에 새로운 경험을 주었고, 참여한 사람들의 인식 개선을 가져왔다.

소비자와 가까운 지역다움

새로운 경험을 주는 것은 굿즈, 캠페인만이 아니다. 상품과 서비스뿐 아니라 매장 인테리어까지 신경써서 방문하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는 팝업스토어도 있다. 특정 기간, 특정한 장소에 열리는 팝업스토어는 방문한 소비자들에게 한정된 특별한 경험을 전달한다. 브랜드 경험을 전달하는 팝업스토어는 유명한 제품에 한정되지 않는다. 옥천의 농산물과 가공품, 시즌 상품과 굿즈로 구성한 ‘로컬마켓, 옥천’, 괴산의 로컬 콘텐츠와 먹거리, 제품들로 괴산의 로컬 라이프를 보여준 ‘괴산상회’ 등 로컬을 주제로 팝업스토어가 열리며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로컬의 경험을 전달했다.

고향사랑기부제를 알리기 위한 방안으로 미래의 지역 변화상을 현재의 로컬 콘텐츠와 제품으로 보여주며, 지역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은 어떨까? 또 이런 경험이 고향사랑기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소비자와 가까운 곳에서 한시적으로 연다면 새로운 지역 경험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장기적인 지역의 변화를 위해서는 직접 소비보다 고향사랑기부로 활용처가 특정되어있는 기금에 참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답례품으로 고향사랑기부제를 알린다면 소비자에게 이미 널리 인식된 로컬 브랜드와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도 고향사랑기부제를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지역 내에서만 생산하거나 한정 판매하는 상품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것도 답례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일 것이다.

정리: 안영삼 미디어팀 팀장 | sam@makehope.org

참고자료
“10명 중 8명이 가치소비 해봤다”…MZ세대가 가장 적극적, 연합뉴스, 2022.07.05.
해변에서 주운 북한쓰레기가 과자로… ‘씨낵’의 달콤한 마법, 뉴스펭귄, 2022.07.31.
한정판의 경험을 사러갑니다… 떴다! ‘팝업스토어’, 경향신문, 2022.07.02.
이태원에 등장한 로컬 팝업 스토어 ‘괴산상회’, 디자인프레스, 2022.05.04.
옥천 로컬의 맛이 서울에 왔다, 헤이팝, 2021.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