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반려 지렁이로 음식물 50kg 없앤 이야기

저는 실용적인 것을 좋아하는 ISTJ입니다. 의미 있는 선물보다 쓸모 있는 선물을 좋아하고, 두 가지 기능을 가진 물건(의자 겸 수납장 같은)을 보면 탐이 납니다. 그래서 지렁이에게 이끌렸던 것 같아요. 지렁이는 제가 본 동물 중 가장 실용적인 동물이니까요. (생명을 실용성으로 판단하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좋은 건 좋다고 말하렵니다) 

지렁이는 정말 인간에게 '쓸모있는 동물'입니다. 지렁이 집에 음식물을 묻으면 싹 처리해줘요. 그러면 음식물쓰레기를 밖에 내다버릴 필요가 없고, 쓰레기차가 이를 운송하며 발생하는 탄소도 크게 줄일 수 있지요. 게다가 지렁이는 아주 조용하고 다른 생물은 절대 해치지않는 평화주의자라서, 온도와 습도만 관리해주면 크게 손이 갈 일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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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쓸모있는 동물' 바로 '지렁이'🐛 

지렁이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저는 희망제작소 입사 면접 때 ‘희망제작소에서 뭘 하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에 ‘지렁이를 키우고 싶습니다’라고 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입사 2년 뒤, 진짜로 희망제작소에서 연구원들과 지렁이를 키웠습니다.(👉제렁이 모임 이야기) ‘제작소’와 ‘지렁이’를 합쳐 ‘제렁이’ 모임이라고 이름 짓고 사무실에서 나오는 음식물을 지렁이로 분해했어요. 처음 1년 정도는 지렁이에게 적절한 환경(습도/사육통/먹이 등)을 찾아주지 못해 여러 지렁이가 희생되었지만, 마침내 감을 잡았습니다. 이후 희망제작소 지렁이들은 연간 약 10kg 정도의 음식물을 없애주고 있어요. 어느 날 건강한 지렁이들이 꿈틀대는 모습을 보다 생각했습니다. ‘이제 때가 되었다. 지렁이를 분양할 때가.’ 이렇게 지렁이 분양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6월, ‘지렁이 키우기 키트’를 나눠드리고 분양 OT를 진행했습니다.(👉 OT 현장 후기) 그리고 세달간 따로 또 같이 지렁이를 키우며 소통하는 ‘지렁이 커뮤니티’를 네이버 밴드에 운영했습니다. 시민분들은 지렁이에게 이름을 붙이고, 각자의 집, 사무실, 학교 등 다양한 곳으로 지렁이를 데려가 키웠어요. 똑같은 흙과 지렁이를 분양했는데, 똑같은 경험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지렁이 알을 발견하고, 날벌레가 꼬이고, 곰팡이가 피고, 지렁이를 다른 집으로 이사시키고. 지렁이를 키우며 일어난 일들과 궁금한 점을 나누며 서로에게 배웠습니다.

지렁이를 분양 받은 시민들이 지렁이를 키우고, 처리한 음식물을 인증한 기록들 ⓒ희망제작소 

그 결과, 우리는 세달동안 음식물쓰레기 50kg을 분해시켰습니다. 작은 음식물쓰레기봉투로 치면 83개 분량이랍니다. 무게 측정을 깜빡 잊었다는 분들도 종종 계시니 실제로는 더 많을 거에요. 이만큼의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면 127kg의 탄소를 줄인 효과가 있는데(Food waste diversion calculator 계산), 나무 18그루가 1년간 흡수하는 탄소량입니다. 희망제작소가 혼자 했다면 5년만에 해냈을 일을 세달만에 한 셈이죠. 1명이 아주 열심히 노력하는 것보다 여러 명이 조금씩 노력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지렁이와 함께 90일을 보낸 시민들의 생각은?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지렁이를 키우기 전과 후 각각 설문을 진행해 참여자분들의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측정했습니다. 

1. 음식물쓰레기를 덜 자주 배출하게 되었어요🙋
   - 응답자 42%의 음식물쓰레기 배출 주기가 늘었음(33% 동일, 25% 주기 감소)
2.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이 22% 줄었어요 🔽
   - 1주일 평균 배출량이 봉투 1.79개에서 1.39개로 감소
3.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좀 더 노력하게 되었어요 ✊
   - 노력한 정도가 3 → 3.17 로 증가(1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4 매우 노력했다 중 선택)
4. 다만 환경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다는 효능감이 증가하진 않았어요 👀
   - 개인적 실천으로 음식물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 수준이 변동 없음
   - 지렁이 키우기를 통해 음식물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묻는 질문에 긍정적 답변 감소
5. 환경 관련 시민 참여활동에 대한 관심이 소폭 감소했고, 다른 비슷한 활동에 또다시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도 줄어들었어요 ✅
   

지렁이 키우기는 실제 음식물쓰레기 배출을 줄였고 개인의 노력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었어요. 하지만 지렁이만으로 음식물쓰레기로 인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음식물쓰레기 문제를 비롯한 환경 문제를 진짜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복합적/전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끼신 게 아닌가 합니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을 시민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더욱 고민하겠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렁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분들이 실제로 지렁이로 음식물 처리를 시도해보도록 장벽을 낮추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 이후 계속하시면 더 좋고요. 참여자 중 75%의 분들이 계속해서 지렁이를 키우신다니, 지렁이 전도사로서는 무척 기쁩니다. 더 많은 분들이 지렁이의 매력을 알아주길 바라며, 꿈꿔봅니다. 언젠가 집들이 선물로 (실용적인)지렁이를 주고받는 날이 오기를! 그 때가 되면 우리 지렁이 커뮤니티가 시대를 앞선 자들로 기억될지도 몰라요. 함께 지렁이를 키운 분들의 후기를 덧붙이며 글을 마칩니다.

지렁이 분양 프로젝트 결과공유회 단체사진 ⓒ희망제작소

참여자들의 후기와 '지렁이 키우기' 꿀팁  

이연옥 님 💭  “지렁이 키워 보기가 저의 버킷리스트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희망제작소 덕분에 소원성취했어요. 🐛‘귀렁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도 일주일이 걸렸어요. (중략) 뭔지 모르는 싹이 콩나물처럼 올라오고 (음식물쓰레기를) 급여할 때 흙을 뒤적이면 여기저기 보이는 귀렁이를 보고 식겁하여 혼자 소리 지르곤 했는데 귀렁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 길고 애정이 늘어나서인지 이젠 놀람의 정도가 많이 낮아졌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실지렁이도 보이고 뚜껑을 열었을 때 흙 위에 싸놓은 윤기 나는 똥도 눈에 띄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군요. 다른 분들은 알도 발견했다고 하시던데 저는 아직 알을 못 본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한 주 한 주 인증을 놓치지 않은 저의 어깨를 토닥이며 칭찬하고 싶어요.”

오영미 님 💭 “이제는 지렁이와의 협업 생활이 하루의 루틴입니다. 전날 요리를 하거나 간식을 먹으면서 나온 것들을 분쇄기에 모아 두었다가 아침이면 드르륵 드르륵 갈아(겸사겸사 팔 운동은 덤) 지렁이에게 주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음식물을 하나도 쓰레기로 배출하지 않은 날의 뿌듯함과 행동을 실천하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이 일상에 작은 활력을 주네요. 흙을 뒤집으면 재빨리 쏙쏙 숨는 지렁이를 귀여워하게 된 것도 아주 큰 변화입니다. 함께 나누어 먹으니 ‘식구’네요.”

이나리 님 💭  “초기 참가자의 90%가 끝까지 참여해 50Kg 이상의 음쓰를 줄이다니... 이런 그룹의 일원이였다는 것이 영광스럽습니다. 지렁이는 지내는 공간에 개체 수를 맞춘다고 하셨는데 저희 집 토토🐛 들이 통통하게 잘 살쪄서 그런지 개체수도 늘어난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잘 키워서 음쓰 줄이는 일에 힘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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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을 아주 작게 분쇄해요. 잘게 잘라서 쑥버무리처럼 흙과 잘 버무려 주면 건강하게 빨리 삭아서 날파리도 덜 생기고 흙에서 늘 향긋한 냄새가 나요."

💡 "야외에서 키우면 확실히 벌레가 더 많이 생겨요. 공벌레, 날파리, 개미 등 잔뜩 꼬이는데 해가 되는 건 아니니 괜찮았어요. 그래도 벌레가 싫다면 실내에서 키우는 것이 좋을 듯 해요."

💡 "지렁이는 다육이를 키울 때와 비슷한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너무 과하지도 않고 너무 덜하지도 않게(과욕은 습기와 흰곰팡이를 부른다ㅎㅎ) 약간은 느슨하게 지렁이들의 식사를 기다려줄 것!"

 💡 "습도가 너무 높아서 톱밥을 흙에 섞어주었더니 도움이 되었어요. 신문지를 잘게 잘라 주는 것도 좋습니다.

지렁이 키우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참여자들의 아이디어는?

💡 "지렁이를 키우기 쉬운 용기가 개발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재생자원으로 만들고 통풍이나 물 빠짐도 잘 되고 날파리가 들어갈 수 없게 잘 밀폐된 그런 용기요. 누가 좀 만들어 주면 지렁이 키우기 더 확산되지 않을까요?^^"

💡 "옥상이나 화단에 토분을 두고 지렁이를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주르륵~ 줄 지어선 토분에 음쓰처리 카드키 찍는 대신 갈갈이로 드륵드륵 갈아서 버리기. 아이들에겐 재미있는 놀이가 될 수도 있지 않울까 생각됐습니다."

💡 "재활용품을 리사이클하는 플랫폼(재활용스테이션)이 곳곳에 시범 설치된 걸 봤는데 지렁이스테이션이 마을 곳곳에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단체급식을 하는 초등학교에서 환경교육과 연계해 시범사업을 시작하고,각자 집으로 분양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사람이 먹는 음식들은 염분, 단백질, 고탄수화물이 많아서 음식물쓰레기를 직접적으로 소모하기 어렵지만 관공서 화단이나 공공 공원 옆에 식물류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이 있어서 지렁이 밥으로 줄 수있는 프로젝트를 시작해보면 좋겠어요."

글: 이규리 시민연결팀 선임연구원 kyouri@makehope.org

이 활동은 숲과나눔의 2025 풀씨 사업이 지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