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를 당했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빚으로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고민해야 할 때, 혹은 치매로 후견인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까지. 출생에서 상속에 이르기까지,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법적 조언과 지원의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고령화, 주거 불안, 빈곤 등 한국 사회의 주요 과제를 법무사들이 현장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짚어봅니다. 삶이 흔들리는 국면에서 어떤 선택이 가능한지, 일선에서 활동하는 법무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아울러 지역밀착형 법률 서비스의 필요성과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좌담회도 함께 전합니다.
성년후견제를 아시나요?
사례 1. A씨는 일찍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장사를 해 자녀들을 키우고 재산을 모았다. 수년 전부터 치매 증세가 시작돼 현재는 자녀들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고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A씨의 자녀들은 어머니의 재산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고 A씨를 돌보는 일은 뒷전으로 밀렸다.
사례 2. D씨 부부에게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 E씨가 있다. 성인이 된 E는 간단한 일상생활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으나, 물건을 사거나 근로계약을 맺을 때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D씨 부부는 자신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E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성년후견제는 A씨와 E씨처럼 치매나 정신질환 등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법원이 적합한 후견인을 선임해 책임지고 돌보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후견인은 법원의 감독 하에 피후견인이 하기 어려운 공과금 납부, 보험청구, 부동산 매각 등 금융업무·법률적 판단을 대신할 뿐 아니라 수술 동의나 요양시설 입소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신상 보호 역할까지 수행해 '현대판 집사'로 불리는데요. 기존 금치산·한정치산 제도가 정신적 제약을 지닌 이들의 권한 행사를 일방적으로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성년후견제는 피후견인의 인격권과 존엄을 지키는 데 방점을 뒀습니다.
2013년 7월 도입된 이후 후견개시 접수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에서 발간한 <2014-2024 통계로 알아보는 우리나라 후견(감독)사건의 현황>을 보면, 시행 첫해 637건이었던 전국 법원 후견 개시 사건 접수 건수는 2024년 말 기준 누적 14만6045건에 달합니다. 2023년 한 해에 1만 6880건, 2024년엔 1만8055건 접수됐습니다. 그 바탕엔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있습니다. 85세 이상 초고령 인구는 2022년 92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 수는 2025년 약 97만 명에서 2030년 약 121만 명, 2040년 약 180만 명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치매 환자와 함께 성년후견 이용자의 또 다른 한 축인 뇌병변 장애(25만여 명), 지적 장애(19만여 명) 환자도 증가 추세입니다.
문선수 법무사는 대한법무사협회가 후견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공익사단법인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에서 지난 2021년 전문가 성년후견인 양성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성년후견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료로 법률 조언을 해주는 ‘서울시 마을법무사’로도 10년째 활동하고 있는 문 법무사의 현장 이야기를 전합니다.

- 성년후견 개시 청구 관련 상담도 하시는데요. 현장에서 느끼시기에도 수요가 늘고 있나요?
= 고령화가 가속되면서 관련 상담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어제도 성년후견 관련 상담을 했는데요, 치매에 걸린 어머니 명의로 아파트가 있는데 자녀들이 이를 역모기지로 전환해 어머니 간호비나 생활비로 쓰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본인이 치매 상태라 계약이 불가능했죠. 후견 개시 심판 청구는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후견인 또는 후견감독인, 검사,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 청구해요. 법원이 피후견인의 의사와 상황, 이해관계, 수행능력, 갈등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후견인을 선임합니다.
가족 갈등과 돌봄 사이, 후견인의 선택은 어떻게 이뤄질까
- 성년후견인으로도 활동하고 계신데,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요?
=가족 간 갈등이 심하고 쟁점이 복잡해 개인 후견인이 다루기 힘들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법인을 후견인으로 선임합니다. 법인은 다양한 사례를 다뤄 정보를 축적해 왔고 내부적으로 자문 기구가 있어서 함께 논의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사)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가 법인후견인으로 선임된 사건의 후견사무담당자로 활동을 했어요. 첫 사건이 기억에 가장 남는데요. 사별한 어머니가 치매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자녀들 사이 갈등이 심했어요. 수십 년간 쌓인 갈등이 한꺼번에 터진 거예요. 다른 자녀가 어머니 명의 재산을 유용할까봐 후견 개시를 청구한 경우였어요. 어머니로부터 상속한 재산에 대한 세금도 처리해야 했고요. 후견 심판 진행 중에도 자녀들 사이에 치열한 대립이 있었어요.
- 후견인의 업무 범위가 재산 관리에서 신상 보호까지 넓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일하시나요?
=신상 보호 측면에서는, 피후견인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면서 본인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가족의 돌봄이나 의료적 보호가 적합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주거지·의료시설 등을 결정해요. 피후견인의 성향, 의향을 알아야 하는데 피후견인은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가족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해요. 생애사를 다 듣죠.
신상 보호를 놓고도 가족 간 대립이 심하거든요. 앞서 소개한 경우를 보면, 한 자녀는 서울 외곽에 시설 좋고 비용이 비싼 요양병원을 고집했어요. 다른 자녀는 가족들이 더 자주 찾아뵐 수 있도록 가깝고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을 주장하고요. 제가 양쪽 요양병원을 모두 방문해 보고 종합적으로 검토해 가족들이 방문하기 좋은 가까운 곳으로 결정했는데 이걸 설득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어요. 또 피후견인의 부동산 등 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사전에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해요.
후견인은 피후견인이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한 달에 한 번 방문해 요양보호사, 의사, 물리치료사 두루 면담해요. 그래야 병원에서도 할머니(피후견인)에게 더 신경을 써줄 테니까요. 그리고 재산이나 신상 관련 변동 상황은 증빙 서류를 첨부해 법원에 보고합니다.
- 감정 소모가 클 거 같아요.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도 존중해야 하고요.
=피성년후견인의 필요를 최대한 예측하는 게 어렵죠.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가족이 자기 이익을 위해 피후견인의 의사를 왜곡하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를 걸러내야 해요. 논리적으로 반론하는 분들도 있지만 막무가내로 큰소리치며 화를 내기도 해요. 저는 일단은 다 듣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는 마음으로 임해요. 가만히 들어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거든요. 이 일을 하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해요. 그래도 제 조정으로 갈등이나 오해가 풀리기도 하고 피후견인의 복리를 북돋우는 일이니까 보람이 있죠.
어느 정도 사무처리능력이 있을 때는 한정후견을 하거든요. 피한정후견인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게 된 건지 이유와 과정을 알아야 하고, 정확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건지 확인해야 해요. 피한정후견인의 결정이 본인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어디까지 조율해야 할지 문제죠. 피후견인의 의사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되 그 결정에 따른 불이익이 클 경우에는 더 나은 결정을 하도록 유도해야 해요.

Gemini로 제작된 가상 이미지
- 재산 관리와 신상 보호를 모두 다루려면 복지에 대한 이해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법무사분들도 꽤 있어요. 저는 사회복지기관에서 자원봉사를 오래 했습니다. 법원에서 피후견인의 상황에 따라 후견인을 복수로 선임하기도 해요. 재산관리는 법률 전문가, 신상관리는 가족이 담당하는 식으로 법원이 역할 범위를 정해줍니다.
-후견인의 일탈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을 거 같아요.
=법원은 후견인을 감독할 후견감독인을 별도로 선임하기도 해요. 또 후견인은 일탈 행위에 대하여 민사·형사적 책임을 집니다. 후견인의 대리권 범위는 후견등기사항증명서에 공시되어 거래 상대방도 알 수 있어요. 피후견인의 재산변동 사항 등은 증빙서류와 함께 법원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 상태가 좋아지면 성년후견을 종료할 수 있나요?
=상황이 나아졌다면 법원의 재판을 통해 후견 유형을 변경하거나 종료할 수 있어요. 성년후견을 한정후견으로 변경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성년후견은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경우이고 한정후견은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범위 내에서 후견이 필요한 경우예요. 특정후견은 일시적이거나 특정한 사무에 한해 후견이 필요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임의후견은 인지 능력이 있는 동안 미리 후견인을 정해두는 거죠. “내가 치매에 걸리면 이 사람이 내 후견인으로 일하게 해달라”고요. 나중에 정신적 제약이 생겼을 때 후견이 개시되는 방식입니다.
- 후견인 비용이 버거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후견비용(보수)을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경우, 공공후견 지원 사업이나 국선후견인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공후견은 지방자치단체가 치매·발달장애·정신장애 분야로 나눠 대상자를 발굴해 지원하는 방식이고, 국선후견인 제도는 법원이 비용을 부담하고 전문가의 공익활동을 결합한 형태입니다.
- 전문가 후견인이 부족하지는 않나요?
=법원마다 사회복지사, 법률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후견인 후보자 명부가 있어요. 아직은 피후견인의 가족이 후견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 후견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전문가 후견인 수요도 늘어날 거예요. 일본의 경우 전문가 후견인 선임 비율이 85%에 달해요. 고령화가 심화되고, 1인 가구도 늘어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도 양질의 전문가 후견인을 미리 많이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견 업무를 하려면 인권에 대한 감수성, 피후견인에 대한 이해 등이 필요하거든요.

문선수 법무사 ⓒ희망제작소
고령사회, 성년후견제는 ‘복지’로 작동할 수 있을까
-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후견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요. 법원에서 발급받은 서류(후견등기사항증명서)를 가져가도 은행에서 잔고 증명서 하나도 안 떼주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본사 법무팀에 문의해야 한다며 되돌려보내기도 하고, 담당자가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해요.
후견 업무의 영역이 넓으니 관련 단체가 역할을 나누고 협업하는 시스템을 지역 단위로 구성해 운영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 가정법원, 금융기관, 의료기관, 법무사협회, 변호사협회, 사회복지사협회, 기타 후원기관 등이 지방자치단체의 주도로 지역별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후견제도 활성화에 필요한 교육, 교류, 역할 분담, 공동 사무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거죠. 지방자치단체는 인적 사항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잖아요. 지자체에서 어떤 사람이 후견이 필요한지 발굴하고 비용도 연계하는 작업을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해 나간다면 성년후견제도가 복지서비스로 자리잡을 수 있을 거예요.
초고령화로 치매 노인 및 발달장애인 등 의사결정 취약계층이 급증하면서, 이들의 재산과 신상을 보호해 존엄을 지키는 성년후견제도가 필수 법률서비스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 밀착형 전문가인 법무사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공공적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 복지서비스의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후견제도가 필요한 사람은 크게 늘었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행정적 비협조와 인식 부족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있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가 개인의 헌신을 넘어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공공 네트워크’ 구축이 시급합니다. 지자체가 대상자를 발굴하고 법무사 등 전문가 집단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금융·의료기관이 협력하는 지역 단위 체계가 가동되어야 합니다. 결국 성년후견제가 보편적 복지로 안착하려면 법률 전문성과 지역 복지의 결합이 필수적입니다. 현장에서는 법무사, 사회복지사, 요양복지사 등이 피후견인을 살피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공익 네트워크의 강화가 필요합니다. 고령화 시대 주민들을 위한 복지서비스, 의료서비스에 법률서비스가 결합된다면 더 든든한 지역 밀착형 안전망이 될 것입니다. |
인터뷰 및 글: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한상규 지역혁신팀 연구위원
사진: 희망제작소
전세사기를 당했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빚으로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고민해야 할 때, 혹은 치매로 후견인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까지. 출생에서 상속에 이르기까지, 삶의 중요한 고비마다 법적 조언과 지원의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고령화, 주거 불안, 빈곤 등 한국 사회의 주요 과제를 법무사들이 현장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짚어봅니다. 삶이 흔들리는 국면에서 어떤 선택이 가능한지, 일선에서 활동하는 법무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아울러 지역밀착형 법률 서비스의 필요성과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는 좌담회도 함께 전합니다.
사례 1. A씨는 일찍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장사를 해 자녀들을 키우고 재산을 모았다. 수년 전부터 치매 증세가 시작돼 현재는 자녀들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고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A씨의 자녀들은 어머니의 재산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고 A씨를 돌보는 일은 뒷전으로 밀렸다.
사례 2. D씨 부부에게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 E씨가 있다. 성인이 된 E는 간단한 일상생활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으나, 물건을 사거나 근로계약을 맺을 때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도움이 필요한 상태다. D씨 부부는 자신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E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활을 영위해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성년후견제는 A씨와 E씨처럼 치매나 정신질환 등으로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 법원이 적합한 후견인을 선임해 책임지고 돌보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후견인은 법원의 감독 하에 피후견인이 하기 어려운 공과금 납부, 보험청구, 부동산 매각 등 금융업무·법률적 판단을 대신할 뿐 아니라 수술 동의나 요양시설 입소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신상 보호 역할까지 수행해 '현대판 집사'로 불리는데요. 기존 금치산·한정치산 제도가 정신적 제약을 지닌 이들의 권한 행사를 일방적으로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성년후견제는 피후견인의 인격권과 존엄을 지키는 데 방점을 뒀습니다.
2013년 7월 도입된 이후 후견개시 접수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사)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에서 발간한 <2014-2024 통계로 알아보는 우리나라 후견(감독)사건의 현황>을 보면, 시행 첫해 637건이었던 전국 법원 후견 개시 사건 접수 건수는 2024년 말 기준 누적 14만6045건에 달합니다. 2023년 한 해에 1만 6880건, 2024년엔 1만8055건 접수됐습니다. 그 바탕엔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있습니다. 85세 이상 초고령 인구는 2022년 92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 환자 수는 2025년 약 97만 명에서 2030년 약 121만 명, 2040년 약 180만 명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치매 환자와 함께 성년후견 이용자의 또 다른 한 축인 뇌병변 장애(25만여 명), 지적 장애(19만여 명) 환자도 증가 추세입니다.
문선수 법무사는 대한법무사협회가 후견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공익사단법인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에서 지난 2021년 전문가 성년후견인 양성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성년후견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무료로 법률 조언을 해주는 ‘서울시 마을법무사’로도 10년째 활동하고 있는 문 법무사의 현장 이야기를 전합니다.
- 성년후견 개시 청구 관련 상담도 하시는데요. 현장에서 느끼시기에도 수요가 늘고 있나요?
= 고령화가 가속되면서 관련 상담이 계속 늘고 있습니다. 어제도 성년후견 관련 상담을 했는데요, 치매에 걸린 어머니 명의로 아파트가 있는데 자녀들이 이를 역모기지로 전환해 어머니 간호비나 생활비로 쓰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본인이 치매 상태라 계약이 불가능했죠. 후견 개시 심판 청구는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후견인 또는 후견감독인, 검사,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주소지 관할 가정법원에 청구해요. 법원이 피후견인의 의사와 상황, 이해관계, 수행능력, 갈등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후견인을 선임합니다.
- 성년후견인으로도 활동하고 계신데,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요?
=가족 간 갈등이 심하고 쟁점이 복잡해 개인 후견인이 다루기 힘들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법인을 후견인으로 선임합니다. 법인은 다양한 사례를 다뤄 정보를 축적해 왔고 내부적으로 자문 기구가 있어서 함께 논의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사)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가 법인후견인으로 선임된 사건의 후견사무담당자로 활동을 했어요. 첫 사건이 기억에 가장 남는데요. 사별한 어머니가 치매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자녀들 사이 갈등이 심했어요. 수십 년간 쌓인 갈등이 한꺼번에 터진 거예요. 다른 자녀가 어머니 명의 재산을 유용할까봐 후견 개시를 청구한 경우였어요. 어머니로부터 상속한 재산에 대한 세금도 처리해야 했고요. 후견 심판 진행 중에도 자녀들 사이에 치열한 대립이 있었어요.
- 후견인의 업무 범위가 재산 관리에서 신상 보호까지 넓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일하시나요?
=신상 보호 측면에서는, 피후견인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하면서 본인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고 가족의 돌봄이나 의료적 보호가 적합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주거지·의료시설 등을 결정해요. 피후견인의 성향, 의향을 알아야 하는데 피후견인은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가족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야 해요. 생애사를 다 듣죠.
신상 보호를 놓고도 가족 간 대립이 심하거든요. 앞서 소개한 경우를 보면, 한 자녀는 서울 외곽에 시설 좋고 비용이 비싼 요양병원을 고집했어요. 다른 자녀는 가족들이 더 자주 찾아뵐 수 있도록 가깝고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을 주장하고요. 제가 양쪽 요양병원을 모두 방문해 보고 종합적으로 검토해 가족들이 방문하기 좋은 가까운 곳으로 결정했는데 이걸 설득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어요. 또 피후견인의 부동산 등 재산을 처분하는 것은 사전에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해요.
후견인은 피후견인이 요양병원에 입원한 이후에도 한 달에 한 번 방문해 요양보호사, 의사, 물리치료사 두루 면담해요. 그래야 병원에서도 할머니(피후견인)에게 더 신경을 써줄 테니까요. 그리고 재산이나 신상 관련 변동 상황은 증빙 서류를 첨부해 법원에 보고합니다.
- 감정 소모가 클 거 같아요.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도 존중해야 하고요.
=피성년후견인의 필요를 최대한 예측하는 게 어렵죠.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가족이 자기 이익을 위해 피후견인의 의사를 왜곡하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를 걸러내야 해요. 논리적으로 반론하는 분들도 있지만 막무가내로 큰소리치며 화를 내기도 해요. 저는 일단은 다 듣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는 마음으로 임해요. 가만히 들어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거든요. 이 일을 하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해요. 그래도 제 조정으로 갈등이나 오해가 풀리기도 하고 피후견인의 복리를 북돋우는 일이니까 보람이 있죠.
어느 정도 사무처리능력이 있을 때는 한정후견을 하거든요. 피한정후견인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게 된 건지 이유와 과정을 알아야 하고, 정확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건지 확인해야 해요. 피한정후견인의 결정이 본인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경우도 있어요. 어디까지 조율해야 할지 문제죠. 피후견인의 의사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되 그 결정에 따른 불이익이 클 경우에는 더 나은 결정을 하도록 유도해야 해요.
Gemini로 제작된 가상 이미지
- 재산 관리와 신상 보호를 모두 다루려면 복지에 대한 이해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법무사분들도 꽤 있어요. 저는 사회복지기관에서 자원봉사를 오래 했습니다. 법원에서 피후견인의 상황에 따라 후견인을 복수로 선임하기도 해요. 재산관리는 법률 전문가, 신상관리는 가족이 담당하는 식으로 법원이 역할 범위를 정해줍니다.
-후견인의 일탈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을 거 같아요.
=법원은 후견인을 감독할 후견감독인을 별도로 선임하기도 해요. 또 후견인은 일탈 행위에 대하여 민사·형사적 책임을 집니다. 후견인의 대리권 범위는 후견등기사항증명서에 공시되어 거래 상대방도 알 수 있어요. 피후견인의 재산변동 사항 등은 증빙서류와 함께 법원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 상태가 좋아지면 성년후견을 종료할 수 있나요?
=상황이 나아졌다면 법원의 재판을 통해 후견 유형을 변경하거나 종료할 수 있어요. 성년후견을 한정후견으로 변경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성년후견은 사무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경우이고 한정후견은 사무처리 능력이 부족한 범위 내에서 후견이 필요한 경우예요. 특정후견은 일시적이거나 특정한 사무에 한해 후견이 필요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임의후견은 인지 능력이 있는 동안 미리 후견인을 정해두는 거죠. “내가 치매에 걸리면 이 사람이 내 후견인으로 일하게 해달라”고요. 나중에 정신적 제약이 생겼을 때 후견이 개시되는 방식입니다.
- 후견인 비용이 버거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후견비용(보수)을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의 경우, 공공후견 지원 사업이나 국선후견인 제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공후견은 지방자치단체가 치매·발달장애·정신장애 분야로 나눠 대상자를 발굴해 지원하는 방식이고, 국선후견인 제도는 법원이 비용을 부담하고 전문가의 공익활동을 결합한 형태입니다.
- 전문가 후견인이 부족하지는 않나요?
=법원마다 사회복지사, 법률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후견인 후보자 명부가 있어요. 아직은 피후견인의 가족이 후견인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앞으로 후견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전문가 후견인 수요도 늘어날 거예요. 일본의 경우 전문가 후견인 선임 비율이 85%에 달해요. 고령화가 심화되고, 1인 가구도 늘어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도 양질의 전문가 후견인을 미리 많이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견 업무를 하려면 인권에 대한 감수성, 피후견인에 대한 이해 등이 필요하거든요.
문선수 법무사 ⓒ희망제작소
-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후견제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해요. 법원에서 발급받은 서류(후견등기사항증명서)를 가져가도 은행에서 잔고 증명서 하나도 안 떼주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본사 법무팀에 문의해야 한다며 되돌려보내기도 하고, 담당자가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해요.
후견 업무의 영역이 넓으니 관련 단체가 역할을 나누고 협업하는 시스템을 지역 단위로 구성해 운영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 가정법원, 금융기관, 의료기관, 법무사협회, 변호사협회, 사회복지사협회, 기타 후원기관 등이 지방자치단체의 주도로 지역별로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후견제도 활성화에 필요한 교육, 교류, 역할 분담, 공동 사무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거죠. 지방자치단체는 인적 사항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잖아요. 지자체에서 어떤 사람이 후견이 필요한지 발굴하고 비용도 연계하는 작업을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해 나간다면 성년후견제도가 복지서비스로 자리잡을 수 있을 거예요.
초고령화로 치매 노인 및 발달장애인 등 의사결정 취약계층이 급증하면서, 이들의 재산과 신상을 보호해 존엄을 지키는 성년후견제도가 필수 법률서비스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 밀착형 전문가인 법무사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공공적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 복지서비스의 새로운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후견제도가 필요한 사람은 크게 늘었으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행정적 비협조와 인식 부족이라는 벽에 부딪히고 있는데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문가 개인의 헌신을 넘어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공공 네트워크’ 구축이 시급합니다. 지자체가 대상자를 발굴하고 법무사 등 전문가 집단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며, 금융·의료기관이 협력하는 지역 단위 체계가 가동되어야 합니다.
결국 성년후견제가 보편적 복지로 안착하려면 법률 전문성과 지역 복지의 결합이 필수적입니다. 현장에서는 법무사, 사회복지사, 요양복지사 등이 피후견인을 살피고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공익 네트워크의 강화가 필요합니다. 고령화 시대 주민들을 위한 복지서비스, 의료서비스에 법률서비스가 결합된다면 더 든든한 지역 밀착형 안전망이 될 것입니다.
인터뷰 및 글: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한상규 지역혁신팀 연구위원
사진: 희망제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