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회원 프로그램

”사용자

月夜瞻鄕路 浮雲飄飄歸
월야첨향로 부운표표귀

緘書參去便 風急不聽廻
함서참거편 풍급부청회

我國天岸北 他邦地角西
아국천안북 타방지각서

日南無有雁 誰爲向林飛
일남무유안 수위향림비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
뜬 구름은 너울너울 고향으로 돌아가네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지금 이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남쪽 나라 뜨거운 곳에는 기러기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신라)으로 날아가리

– 혜초의 오언시-여수(旅愁) 중에서

1천300년 전 신라 혜초는 서역의 외로운 곳에서 이렇게 고향을 그리워했다. 기러기라도 있었으면 무탈하다며 고향에 소식을 전했겠지만, 타국의 하늘에는 기러기도 없었으니 얼마나 그의 마음은 황량했으랴. 구도자라고 해서 외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 최초의 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희망제작소 ‘Hope Makes’ Club’ 회원들은 1월 행사 번개팅으로 ’세계문명전「실크로드와 둔황-혜초와 함께 하는 서역 기행」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회원들은 야간 관람을 위해 든든하게 박물관 내 한식당에서 비빔밥과 해물파전으로 배를 채웠다.

식사 후 중앙박물관 아시아부 민병훈 박사의 설명으로 실크로드전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회원들 대부분 지난 해 여름 중국 실크로드를 탐방한 경험이 있어 벌써부터 자신들이 다녀온 지역에 관심이 대단하고 친숙하기만 하단다.

1,283년 만의 귀환 ‘왕오천축국전’

이번 전시에서 백미(白眉)는 단연 신라 혜초(慧超:704∼787)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이다. 723-727년(8세기) 혜초는 다섯 천축국(인도의 옛 이름)과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등 서역지방을 기행하고 「왕오천축국전」을 썼다.

1900년 둔황 천불동 17호굴에서 이 문서가 발견된 이후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이 단 한 번도 외국으로의 반출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이번 관람을 위해 최초로 승인했다고 한다.

무려 1,283년 만에 한국에 최초 공개되는 귀중한 유물로서, 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 왕오천축국전.

”사용자

그 실제본을 보면 혜초의 숨결이 보이는 듯하다. 한 땀 한 땀씩 수를 놓기라도 한 것처럼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기 그지 없다. 그 누가 이 글이 1,300년이 지나 후세들이 들여다 보면서 자신을 추억하고 우리의 귀중한 역사 기록물로 칭송받을 수 있다고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왕오천축국전을 보고 있자니 감개무량과 외국에 다시 돌려줘야 하는 안타까움에 회한이 밀려온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1900년 둔황 천불동 17호굴에 숨겨 있던 수만 권의 문서를 발견한 프랑스의 동양학자 펠리오(Paul Pelliot, 1878~1945)가 생생한 발굴 현장을 역사에 남기고 싶은 욕심이었는지 발굴 중인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누란의 전통, 목각

둔황 지역에 존재했던 고대 왕국 ‘누란’ 그곳에서는 망자를 하늘로 보낼 때 시신을 매장하면서 나무를 잘 다듬어 사람의 얼굴 형상으로 만든 목각을 시신의 심장 위에 올려 둔다고 한다. 죽은 이를 지키려는 신앙이었을까.

당대를 주름잡았던 국제상인 ‘소그드인’

실크로드의 중심지, 당시의 상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무역을 주름잡았던 사람들이 소그드인들이다. 그들이 왜 뼛속까지 대상인인지 알 수 있는 이야기 하나. 소그드인들은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입에는 꿀을 한 입 떠서 넣어주고, 손에는 아교를 쥐어줬다고. 꿀을 먹이는 것은 꿀 같은 감언이설(?)로 장사를 잘하라는 의미이고, 손에 아교는 한 번 재물을 손에 쥐면 절대로 놓치지 말라는 의미. 대단해요 소그드인.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 타클라마칸

현재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에 위치한 타클라마칸(Takla Makan Des.)사막. 위구르어로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쿤룬, 텐샨 산맥과 타림 분지(물이 모이는 곳을 의미), 파미르 고원에 둘러싸여 있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무엇도 살 수 없는 곳. 생명이 살지 않는 그곳을 이천년 전의 사람들은 먼저 떠난 이들의 시체와 백골을 이정표 삼아 앞으로 나아갔으리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먼저 간 많은 이들, 이름 없는 이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숭고한 것일지니.

실크로드의 종착지, 경주의 흔적 ‘괘릉’

실크로드는 장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까지 이어졌다. 그 흔적은 경주의 신라 왕릉에서 찾을 수 있는데, 신라 제38대왕이었던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의 무덤 괘릉(掛陵)이 그것이다. 괘릉을 지키는 무인석상인데, 입을 한일자로 꽉 다물고, 두 눈은 부릅뜨며 한 손엔 철봉을 단단히 붙들고 무덤을 지키는 형상이다. 마치 왕의 릉을 침입하는 자는 가차 없이 내리치겠다는 듯이. 이 석상이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최근 이것과 동일한 것이 둔황 지역에서 출토되어 이것이 페르시아인이 아니라 바로 소그드인의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사용자

민병훈 박사의 열정적인 해설에 감읍하여 회원들은 폐장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실크로드의 도시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스치면서 이 실크로드의 결정체로 꽃핀 경주를 가 보고 싶다.

5월 호프메이커스클럽에서 경주를 1박2일로 방문한다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민병훈 박사가 동행한다니 금상첨화이다.

글 : 회원재정센터 윤현석 인턴연구원
사진 : 사무국 권호현 인턴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