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C 4월 모임 후기] 아날로그식 감성 충전소

버스는 파주 시내를 가로질러 헤이리에 도착했다. 헤이리는 ‘예술인들이 꿈꾸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15만평의 넓은 부지에 세워진 예술마을이다. 미술인, 음악가, 작가, 건축가 등 380여명의 예술인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집과 작업실,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을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으며 연중 내내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안녕하세요. 밤을 잊은 그대에게 황인용입니다. 이밤도 라디오와 함께 공부하거나 일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분이 많이 계시죠? 밤을 잊은 그대와 함께 하시면서 하루의 피로를 풀어보시죠. 처음 들려드릴 곡은 딥퍼플의 ‘솔져 오브 포춘‘입니다.”

[##_1C|1324246930.jpg|width=”450″ height=”294″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반갑습니다” 황인용 대표와 대화마당을 갖고 금발의 제니를 감상하는 회원들은 행복하다_##]70, 80년대 라이오 DJ로 유명한 황인용씨를 기억할 것이다. 바로 그 황인용씨가 운영하는 음악카페 ‘카메라타에 도착했다. ‘카메라타(Camerata)’는 이탈이아어로 ‘작은방’ 혹은 ‘동호인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16세기말 피렌체 예술가들의 소그룹을 통칭하던 말이란다. 건물은 건축가 조병수씨의 작품으로 2004년에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했는데 노출콘크리트기법을 사용해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콘크리트와 목재가 잘 어우러진 인테리어에 오렌지빛 조명이 더해져 근사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방송실 안에 있던 황인용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70이 넘는 나이지만 목소리는 아직도 마이크 선율을 따라 흐르는 듯하다. 캐주얼한 옷차림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왼쪽 발목을 다치셔서 목발을 짚고 이동하는 모습에 모두 걱정스런 눈빛이다.

“노후에 특별하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이 곳 헤이리에 온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치밀한 계획이 없이 일을 벌이는 게 한국인의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카메라타도 그럭저럭 잘 되고 있습니다. 디지털은 현실이고 아날로그는 추억인데 이런 아날로그적인 정서와 추억을 살짝살짝 건드려보자는 계획이 꽤 효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저 뒤에 박힌 대형 스피커는 히틀러시대에 만들어져 제3제국의 사자후를 부르짖었던 그야말로 악명 높은 스피커입니다.”

이곳에는 1만 5천장이 넘는 LP가 소장되어 있다.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황인용 대표가 직접 음악을 선곡해 들려주고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에는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직접 DJ를 보고 있다고.

“요즘 일본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푹 빠져있습니다. 그 사람이 음악을 상당히 잘 아는데 독학으로 음악 감상을 시작했다고 그러더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카메라타에서는 고전음악만 들려주고 있는데 주말이면 젊은이들이 백 명도 넘게 다녀가곤 합니다. 그러고 보면 젊은 사람들도 추억을 되돌아보고 싶어 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합니다. 그럼 음악을 한 곡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형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바이올린 연주로 ‘금발의 제니’가 흘러나왔고 곡이 이어지는 동안 음악 외에 다른 소리는 전혀 들려오지 않을 정도로 모두 그 포근하고 깊은 소리에 매료됐다.

[##_1C|1279153742.jpg|width=”450″ height=”127″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테이블 위의 몽당연필과 맛있는 머핀 빵은 이곳에 한없이 머물게 한다_##]“요즘 듣는 소리와는 좀 차이가 있어서 그 맛에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팔아서 생존한다는 건 사실상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그림 쪽이 더욱 그렇습니다. 이 옆에 있는 갤리리가 지어진 지 올해로 6년째인데 전시회를 세 번 밖에 못하고 있습니다. 헤이리 사람들이 예술을 파는 행위에 대해 능숙하지 못한데 요즘은 그래도 조금 잘 하는 편입니다. 10년 정도 지나면 세계적인 예술마을로 거듭나서 많은 사람들이 재미를 보게 되겠죠. 하지만 현재는 어렵습니다. 헤이리는 초기에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많이 신경을 썼지만 저도 이 건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어느 날 와보니 이렇게 되어 있어서 ‘이걸 정말 내가 지었나.’싶을 정도였습니다. 초기에는 문 닫고 싶을 때 닫고 열고 싶을 때 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전 어느 날 월요일에 문을 닫았는데 전화가 오더군요. 목포에서 오신 분이었는데 와보니 문이 닫혔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문을 닫고 싶을 때 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곡 더 들으시죠. 스티븐 포스터가 아내인 금발의 제니를 그리워하며 지었다는 곡, ‘금발의 제니’입니다.”

같은 ‘금발의 제니’여도 한번은 연주곡으로, 한번은 노래로 들어보는 것도 이색적인 감동을 준다. 다시 한 번 그 깊은 소리에 빠져들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정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꼭 다시 와보리라 다짐하며 문 밖으로 나섰다. 버스에 탑승한 회원들은 새로운 손님을 맞았다. 일정대로라면 이미 2시간 전에 만났어야 했던 미술평론가 이주헌 선생이다.

“황인용 선생님처럼 저도 대책 없이 이곳에 입주했습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글을 쓴다는 게 답답하게 느껴졌고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자연 속에서 함께 살고 싶은 마음에 헤이리로 오게 되었습니다. 2003년에 이사 와서 글 쓰고 강의도 하며 살고 있는데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문화관련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 어려운 상황인데도 굉장히 긍정적이십니다. 얼마 전 조사에서 헤이리가 해남의 땅끝마을 다음으로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로 뽑혔다고 합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계시며 앞으로도 헤이리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_1C|1143323660.jpg|width=”450″ height=”294″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프로그램일정이 빡빡해도 회원들의 표정은 밝고 흐뭇하다_##]8시, 프로방스 마을에 도착했다. 가는 곳마다 차려진 푸짐한 다과상 덕분에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간식용 배, 식사용 배 따로 있다지 않은가? 양식 레스토랑인 ‘프로방스’에서 담소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나누며 이번 행사는 막을 내렸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하지만 부족한 점도 많았고 정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지나간 하루였다. 이번 행사의 주제는 책. 국내 한 대형서점의 기업철학이라고 하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문구처럼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책은 무엇보다도 큰 역할을 한다. 먹는 음식이 내 몸을 만들고 키워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 예전처럼 책을 많이 읽지는 않는 것 같다. 일에 치이고 시간에 쫒기며 쉴 틈 없이 바쁜 게 현대인의 일상이지만 그래도 책 한권 읽을 정도의 여유는 가지고 살아야지 않을까?

“취미가 무엇입니까?” “독서입니다.” 말보다는 진심어린 행동으로 독서에 임해야겠다.
[##_1C|1211136697.jpg|width=”450″ height=”294″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4월 생일회원 축하합니다" 귀가하는 회원들의 양손과 마음은 선물로 한가득_##]

*글: 희망제작소 회원센터 김성재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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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희망제작소 콘텐츠팀 정재석 인턴 / 대림공업사 장태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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