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C 6월 모임/후기] 북촌을 거닐다

[##_1C|1242033618.jpg|width=”450″ height=”297″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커피 공정무역에 앞장서고 있는 아름다운커피숍에서 회원들은 만났다_##]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역사와 전통의 도시 서울의 곳곳에는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특히 북촌은 과거 조선시대 양반들이 거주했던 지역으로 그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오늘 Hope Makers’ Club(아래 HMC)은 이곳 북촌의 한옥마을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잊고 지내던 우리 문화의 멋을 다시금 느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_1C|1373961529.jpg|width=”450″ height=”297″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북촌길에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회원들_##]

아침 10시, 따가운 햇살이 오후의 무더위를 예고해주는 것 같다. 안국동 아름다운 카페에 모여 시원한 커피 한잔으로 목을 축인 회원들은 곧바로 윤보선 고택으로 향했다. 아직도 윤보선 전 대통령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인지라 일반에 개방하지 않는데 집주인의 배려로 오늘은 특별히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장남이자 HMC의 회원이기도 한 동서코퍼레이션의 윤상구 대표가 고택의 주인인데, 오늘은 주인 대신 한국내셔널트러스트 김홍남 대표가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주인은 어디 가고 객이 와서 있나 하시겠지만 집주인께서 개인 사정 때문에 바쁘셔서 못 나오시고 제가 대신 이 자리에 나오게 됐습니다. 저 자신도 1991년부터 지금까지 근 20년 동안 북촌에 살아오고 있으며, 이 집 주인과 함께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방문하신 이 집은 내셔널트러스트의 사이트 중 한 곳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김홍남 대표는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서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서 윤보선 고택을 소개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주었다.

“처음 지어질 당시에는 99칸으로 북촌에서 가장 큰 집이었는데 지금은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1870년에 건립된 주택을 윤보선 전 대통령의 부친인 윤치소 옹이 1910년 무렵에 구입하여 140년간 자손들이 보존을 잘 해 오고 있습니다. 겉모습은 한옥이지만, 내부는 청나라 양식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으며 전통한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조도 눈에 띕니다.”

[##_1C|1164984877.jpg|width=”450″ height=”434″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우리나라 명당 중의 명당인 윤보선 고택은 역사와 문화의 산실이다_##]

역사에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 시절 상해에 머물렀으며 영국 유학도 다녀왔다. 그래서인지 이 집에는 전통한옥의 양식에 청나라식과 영국식의 건축요소가 곳곳에 들어가 있다. 본인만의 새로운 양식이 창조된 것인데 윤 전 대통령은 본인이 아마추어 건축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도 했단다. 직접 디자인했다는 문과 리모델링된 건물을 보니 과연 아마추어의 작품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앞에 보이는 건물은 산정채로, 바깥사랑채인데 정치사적인 의미가 큰 곳 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민주정당인 한국민주당의 산실로써 1950~1990년대 야당의 사무실과 회의실로, 때로는 정치인들의 피난처로도 사용됐습니다. 현판의 ‘유천희해(遊天戱海)’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저기 안동교회 우측에 오래된 건물이 있는데 옥탑 안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집 안의 야당 인물들을 감시했다고 합니다.”

김홍남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집안 곳곳을 둘러봤다. 한국식 정원은 잔디가 없다는데 여기에는 잔디가 깔려있다. 오래된 집이라서 유지보수비용이 만만치 않다고 하는데 다행히 2002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어 국가로부터 관리비용의 일부를 지원받고 있다고 한다. 뒤뜰 텃밭에는 쑥갓, 깨, 박하, 콩, 호박, 고추, 상추 등 온갖 채소들이 심어져 있다. 일부 새로 보수된 흔적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훌륭하게 보존되어 있다.

“종각 밑을 남촌이라 하고 그 북쪽을 북촌이라고 합니다. 근 150년간 권세를 누렸던 노론은 북촌에, 소론과 북인, 남인 등 권세가 없던 사람들은 남촌에 살았는데 북촌은 아주 부유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살던 곳입니다. 저 밑에 별궁식당은 별궁에 있던 자리에 지어져서 별궁식당이라고 한답니다. 맞은편에 있는 안동교회가 1909년에 세워져 그 역사가 100년이 넘습니다. 50m만 나가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 터가 있고 손병희, 이상재, 박영효 집터와 규장각, 홍문관 터 등 각종 유적과 사적이 남아있는 곳이 바로 이곳 북촌입니다. 이 부근이 모두 현대화되고 있는데 4대문 안은 역사적 유적지로 그 가치가 높기 때문에 반드시 보존해야 합니다.”

[##_1C|1150207466.jpg|width=”450″ height=”299″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윤보선 고택은 전통과 청나라 양식이 어우러진 또 하나의 문화유산이다_##]

일제시대 때 북촌의 한옥이 소규모로 분할되었는데 윤보선고택처럼 이렇게 남아있는 곳이 드물다고 한다. 특히 6.25 이후 분할현상이 가속화되다가 1980년대에는 한옥보존지역으로 지정됐지만 1990년대에 규제가 풀리면서 한옥이 2,000채에서 900채로 줄어들게 됐고 북촌은 본격적으로 망가지지 시작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종로 구민들이 한옥보존사업을 시작했고 서울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북촌의 명맥이 이어질 수 있게 되었다.

[##_1C|1008249089.jpg|width=”450″ height=”15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한옥마을에 자리잡은 한정식집에서 선비처럼 화채전도 먹고 막걸리도 한잔 했다_##]

식사를 마치고 이동한 곳은 재단법인 아름지기였다. 아름지기는 우리 전통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을 위한 사업을 하는 단체다. 윤보선 고택의 행랑채를 개조해서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신연규 이사장은 “2002년에 매입, 개보수 후 2003년 3월 아름지기의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이자, 한옥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해 열려 있는 개방형 한옥으로 문을 열었다”면서 “실용적으로 설계된 한옥이 현대 생활을 하는데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이곳은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_1C|1380445423.jpg|width=”450″ height=”368″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우리의 전통문화에 현대적인 감각을 되살려 문화계승에 앞장서고 있는 아름지기 모습_##]

다음 방문지는 북촌동양문화박물관이다. 가회동 31번지의 잘 보존된 한옥을 지난 후 고불 맹사성의 집터라는 표시가 나오는 곳이 동양문화박물관이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하고 건설업을 했던 권영두 관장이 직접 건물을 설계하고 구석구석을 꾸몄다. 입구에서 보이는 벽면에는 큼직한 용이 한 마리 그려져 있다. 권관장이 직접 그린 작품으로 오래된 기와를 잘라서 쌓은 벽면에 조각을 하고 색을 칠해서 만든 작품이다. 용뿐만 아니라 모든 작업을 기술자를 고용하지 않고 그가 직접 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전시실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층의 제1전시관에는 티베트와 중국, 한국, 태국 등의 불교예술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제2전시관에는 한국과 중국의 선비문화와 관련된 예술품 및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이곳에는 권영두 관장의 조상이기도 한 양촌 권근의 효행록과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등 조선 선비들의 명필 서간들도 포함되어 있다. 2층 전시실에는 우리 고미술품들과 함께 장구와 징, 꽹과리 등 민속민예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_1C|1087020111.jpg|width=”450″ height=”434″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고불 맹사성 정승의 집터에 위치한 북촌동양문화박물관에 들어서면 중국과 티벳에 여행온 듯한 느낌이 든다_##]

양촌 권근의 18대손인 권영두 관장에게 있어서 이 박물관 터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동양문화박물관이 고불 맹사성의 집터에 세워졌는데 고불의 스승이 바로 양촌인 것이다. 권관장은 18대를 이어온 인연에 달라는 대로 다 주고 이 집터를 사들였다고 한다. 권광장이 가장 자랑하는 유물은 물건이 아닌 이곳 박물관 터, 그리고 이 집터의 주인이었던 고불 맹사성과 그의 제자인 세종대왕에 얽힌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사제지간이다. 고불 맹사성은 황희 정승과 더불어 조선 전기의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세종은 대군시절부터 고불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왕위에 오른 뒤에도 강론을 들었다고 한다.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에 세종은 삼청동 제일 높은 집인 이곳 맹사성의 집에 촛불이 꺼진 것을 보고서야 침전에 들었다고 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군왕의 자리에 있음에도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에 단 한 번도 먼저 잠자리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600년을 전해 내려오는 미담으로 인륜이 무너진 오늘날에 큰 귀감이 되고 있다.

관람을 마친 회원들은 2층 고불헌으로 자리를 옮겼다. 창문 너머 저 아래로 왕의 침소인 경복궁 강령전이 내려다보이는 고불헌에서 5월 행사 동영상을 보며 맥주와 수박으로 잠시 더위를 식혀본다.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나누며 살면 인생에 대한 답이 나온다는 도법스님의 설법이 다시금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이어서 한국연협회 리기태 회장이 마이크를 들었다.
“북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다수의 한옥이 밀집한 가회동과 삼청동을 비롯하여 계동, 재동, 화동, 소격동, 사간동, 안국동, 원서동 등을 아울러 북촌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좌청룡과 우백호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유래가 깊은 명당자리로 여기 앉아계시기만 해도 좋은 기운을 받습니다.”

리기태 회장이 마리아나 카이트 페스티벌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해서 연을 날리는 모습이 미국 사이판뉴스에 방송되었는데 그 영상을 회원들과 함께 관람한 후 리회장이 말을 이어갔다.

“1,400년 된 우리의 전통연은 레저스포츠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모든 전통놀이가 땅에서 이뤄지지만 연날리기만은 하늘에서 이뤄집니다. 천지인이 하나가 되었을 때 연이 날릴 수 있는데 연을 날리면 소원이 이뤄집니다. 오늘 오신 모든 분들께 연을 하나씩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꼭 날려보시기 바랍니다. 세계 곳곳에 연 박물관이 있는데 우리나라만 없습니다. 지방자치단체를 다니면서 연 박물관 설립에 대해 건의를 드렸는데 임정엽 완주군수로부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고 또 이번에 재선이 되셨습니다.”

[##_1C|1403075722.jpg|width=”450″ height=”299″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가회동 31번지는 한옥이 가장 잘 보존된 북촌 8경의 하나다_##]

오랜만에 만난 회원들과 식사도 함께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유쾌한 시간을 가지다보니 어느새 마칠 시간이 다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본다. 국사시간에 배우는 단편적인 사실에만 집중한 나머지 역사의 큰 흐름과 우리문화의 정수는 놓쳐버린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본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 중에 ‘옛 것을 알고 새 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라는 구절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며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 사는 우리가 명심해야할 구절이 아닌가 싶다.

*글 : 김성재 회원재정센터 인턴연구원
*사진 : 정재석 콘텐츠센터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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