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먹고사는 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창업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온 새로운 시민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작은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 이 인터뷰 시리즈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는 ‘돌봄’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우리를 자라게 하고, 또 다른 손길로 누군가의 시간을 받칩니다. 양육과 간병, 일상의 안부에서 긴급 상황까지. 개인의 삶도 공동체의 관계도, ‘돌봄’ 없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안부와 손길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가치와 노동도 쉽게 잊곤 합니다. 이 무감각이 쌓일수록 ‘돌봄’의 공백은 더 넓어집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오늘도봄날&굿서포트를 운영하는 윤서우 대표는 ‘돌봄’ 테두리 바깥의 과제를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실험하고 실행하는 소셜디자이너입니다. 시니어가 ‘돌봄’과 ‘활동’을 함께 제공받을 수 있는 교재를 자체 개발하고, 경력을 보유한 중장년층 활동가의 사회 재진입을 돕고, 지역 주민이 서로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이웃돌봄 활동가를 양성하여 현장에서 새로운 돌봄 문화를 실험하고 있는데요.
이 모든 사업의 핵심은 ‘자기돌봄’과 ‘서로 돌봄’의 연결입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이 각자의 역할과 존엄을 확인하고, 구성원의 학습이 지역의 일로 이어지는 구조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선순환을 만듭니다. 공공·행정·시장이 메우기 어려운 돌봄의 공백을 채우는 현장의 해결사, ‘끝까지 나답게 사는’ 돌봄 생태계를 그려가며 현실로 만드는 오늘도봄날&굿서포트 윤서우 대표를 만났습니다.

오늘도봄날&굿서포트 윤서우 대표. ⓒ희망제작소
삶의 전환기에서, ‘돌봄’을 만나다
- 시니어 돌봄을 주제로 활동하고 계신데, 출발점은 청소년 상담이었다고요.
= 우연한 계기로 23살 때 철거민 마을 공부방 선생님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했어요. 이상하게 저는 늘 적응을 잘 못하고 울타리 밖으로 자꾸 뛰쳐나가려는 친구들에게 더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이들의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고민은 결국 어른이 마주하는 구조적 한계와 연결되는 것이었거든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천직이라 생각했고 청소년 진로 상담을 직업으로 삼았어요.
아이 셋을 키우다보니 직업을 잠시 중단할 수 밖에 없는 시기가 있었어요. 부모님도 챙겨드려야하는 상황이었고요.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아이와 부모님을 돌보려면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했어요. 또 저는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라서,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게 됐어요. 그래서 마을의 아지트 같은 식당을 만들게 됐죠. 일 하는 과정이나 시간이 날 때 동료들, 동네 주민들하고 수다도 떨고 재미있는 일도 작당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5년 정도 운영했어요.
그러다 2020년, 예상치 못한 인생의 고비가 찾아왔어요. 폐차해야할 정도로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거든요. 거의 6개월 동안 일어나지도 못하고 병원에서 집으로, 집에서 병원으로 오가며 누워만 있었어요. 그동안 나름 제 삶을 의미있게 긍정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는 있을까 괴롭고 좌절스러웠어요.
조금씩 일상으로 복귀하던 무렵,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알게 됐어요. 인생의 정체기에 있거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중장년을 위한 <인생학교>라는 교육 과정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저랑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공감과 위로를 주고 받으며 ‘나만의 일’을 찾아보자는 용기가 생겼고, 그때 자연스럽게 ‘돌봄’이 떠올랐어요. 그동안 뉴스나 책에서 많이 본 단어였지만 제 삶에서 마주하기 전까지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거든요. 코로나 시기에 6개월 간 힘겹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병원 생활을 오가던 동안 양가 어머님은 모두 치매 판정을 받으셨어요. 아이들도 돌봐야 하다보니 돌봄 문제를 피부로 체감하면서 일상에서부터 더 깊게 ‘돌봄’을 고민하게 됐었어요. ‘돌봄’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자 사회적 과제라는 걸 깨달았고요.
- 함께 공부하며 봉사하던 동료들과 ‘서로돌봄’ 커뮤니티 ‘동행’을 만드셨다고요. 삶의 전환점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만난 관계라 더 시너지가 컸을 것 같아요.
= ‘노인과 인지활동’에 대한 공부를 함께 하던 동료들과 ‘동행’ 이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처음엔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활동을 해보자는 맘으로 무작정 치매안심센터에 찾아갔죠. 부모님의 치매로 돌봄을 직면하게 된 시기였고, 교육으로 동기 부여도 된 상태니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용기를 내서 문을 두드렸는데, 당시 코로나로 모든 복지시설이 폐쇄되고, 방문 활동도 다 중단된 상태라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도울 수 있는 기회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외출도 못 하고 불편한 몸으로 집 안에만 계시느라 지치실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조급한 마음도 들었거든요. 3개월 정도 기다렸더니 감사히도 한 곳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어르신들께 코로나가 감염될수도 있는 상황이니, 2차 예방접종까지 마치고 마스크 두 겹을 착용한 채 2인 1조 팀으로 찾아가는 어르신 돌봄 서비스를 12회 정도 실행해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이 오로지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달려든 일인데(하하) 오히려 그 경험이 저에게는 더 큰 보람과 용기가 됐어요. 머릿 속에서 막연히 상상만 하던 일이 현장에서 실제로 실행되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조금씩 경험이 쌓이니까 단순한 ‘돌봄’을 넘어서 각자의 재능과 전공을 활용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요. 다양한 배경과 지역, 삶의 경험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해서 가능한 일이었죠. 물론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우리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사회적으로 지속가능성이 있느냐를 증명하는 것도 힘들지만, 중장년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갑작스럽게 돌봄에 대응해야하는 상황이 잦다는 거예요. 본인이 갑자기 아파서 자기 돌봄을 해야하거나 가족의 돌봄을 위해 일을 중단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금은 각자의 상황에 맞춰 따로 또 같이 일을 하게 되었죠.




코로나 시기의 ‘동행’ 활동 사진 ⓒ윤서우 대표
- 보람있는 봉사활동 경험으로 그칠 수도 있는데, ‘오늘도봄날’을 창업하면서 선의를 일로 연결하셨다는 점이 인상 깊어요.
= 처음에는 봉사활동에서 만난 동료들과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서 창업을 생각했어요. 중장년 동료들이 가진 전문성과 열정이 끊기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서울시 50플러스재단과 LH가 주최한 <신중년 도시재생 창업프로젝트 점프업5060> 지원하면서 먼 곳이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부터 방법을 찾게 됐어요. 그런데 신원마을에는 저와 동료들이 일할 수 있는 복지관이나 문화센터가 거의 없더라고요. 신도시다보니 신혼부부, 청년가구가 많아 청년층 비율이 꽤 높고, 인구도 많은 편에 속하는 데도 개발제한구역이라는 이유 때문에 노유자 시설을 포함한 충분한 행정복지시설이 조성되지 못했어요. 게다가 이 동네는 고령화 속도가 평균보다 빠른 고양시 내에서도 특히 고령화 속도가 빨라 고령 인구가 더욱 많아요. 동네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모습은 주로 길가 의자에 멍하니 앉아 계시거나, 하루 종일 아파트 단지 바깥을 돌아 다니다 집에 들어가시는 장면이었어요.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 문화 시설이 거의 없고, 정부 지원이 닿는 계층은 소수이고, 1인 가구는 늘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소외와 고립으로 이어질 사각지대에 닿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해법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지역 내 돌봄 활동가도 양성하고, 동료들의 활동도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봄날'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르신 자신의 삶 담을 수 있는 교재 마련
- 그렇게 2년간 개발하신 시니어 인지활동 워크북, ‘굿레시피’는 어떤 교육 자료인가요?
= ‘오늘도봄날’ 창업 목표 중 하나가 예방적 돌봄 활동과 프로그램을 위한 워크북 ‘굿레시피’ 개발이었어요. 창업 지원금으로 첫 시안을 만들었고, 2년 동안 수업을 해보며 계속 고치고 다듬고 있고요. 시니어를 위한 인지활동 워크북인데, 시중 교재는 대부분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조금씩 각색해서 사용하고 있어서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치매 예방이 목적이라기 보단, 치매에 걸리신 분들이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단순한 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그런데 실제로는 치매 전 단계의 어르신이 훨씬 많기 때문에 예방적 돌봄이 굉장히 절실하거든요.
반면 저희는 활동 프로그램 내 여러 장치를 통해 현재의 인지 기능을 파악하고, 신체 능력과 공간 지각 능력을 훈련 하면서 치매 단계 이전의 돌봄이 필요한 분들을 발굴하고 이 분들을 위한 교육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펜과 종이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드로잉 기법(젠탱글 패턴 등)을 활용해 집중과 미세한 손 움직임을 확인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의력, 공간 지각, 소근육 사용 같은 신호를 부드럽게 살피며 가능한 범위를 진단하게 되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어르신들이 활동 과정에서 정서적 지지와 지원을 받으면서 우울감을 해소하고, 자존감을 회복하세요.
보통은 ‘돌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픈 사람을 보살피는 장면을 떠올리죠. 그런데 결국 누군가를 ‘돌본다’라는 건, 그의 아픈 상태, 질병을 넘어서 그 사람 자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돌아본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몸이 아파도 누군가랑 이야기하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회가 말하고 제공되는 ‘돌봄’은 청소해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씻겨주고가 다인 거예요. 돌봄을 받는 입장은 미안해하고 수치스럽고, 돌봄을 하는 사람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처럼만 보여지는 게 우리와 사회가 말하고 원하는 돌봄인가? 하는 고민들을 끊임없이 하게 돼요. 그래서 오늘도봄날&굿서포트는 행복하게 나이들어갈 수 있는 사회에서의 돌봄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 ‘굿레시피’를 현장에서 직접 사용해보며 개선해가고 계시다고요. 실제 어르신들은 어떤 반응이시던가요? 기대했던 대로 작동이 되던가요?
= 2023년에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운영하는 ‘노인인지케어단’ 양성 교육과 활동에 참여하신 분들께 이 워크북의 시제품을 무료로 1년 간 지원해드린 적이 었어요. 저 혼자 교재를 들고 다닐 때보다, 여러 사람이 더 많은 참여자들과 교육을 진행해주시니 더 많은 사례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죠. 교재의 필요성과 효과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공감해주시고요. 이 때 참여해주신 분들 중에 지금도 현장에서 이 워크북을 활용해서 시니어 프로그램을 하고 계시고, 판매를 제안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제가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활동과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기돌봄이에요. 저는 이 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흐름을 돌아보고, 자기를 스스로 돌보면서 나이듦을 긍정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존재감과 자기효능감’을 느끼고 발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반복 훈련에만 머물지 않도록 ‘이야기’를 연결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같은 소소한 질문을 차근차근 던지죠. 겉으로 보면 소박한 문항이라, 누군가는 평범한 교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질문에 답하며 어르신들이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자아를 찾아갈 수 있어요, 진짜 본인의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달라지고 목소리에도 힘이 붙어요. 나이가 들어서 하지 못 하게 된 일이 아니라, 젊을 때 하지 못했지만 지금 할 수 있게 된 일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요.

윤서우 대표가 제작한 어르신 인지 활동 워크북 교재. 어르신들의 건강한 나이듦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희망제작소
부족한 복지 지원의 틈을 메꾸며 이웃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서로 돌봄'
- 주로 활동하고 계신 지역이 경기도 고양시 신원동이라고요. 대도시라 복지 안전망이 어느 정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주민들이 스스로 이웃 돌봄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 몇 해 전, 저희 마을에서 어르신 고독사 사건이 발생했어요. 그때 주민들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이런 일이 또 생길 수 있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해 주민들과 함께할 새로운 안전망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처음 주민들을 모집했을 때 장노년층 어르신들이 많이 와주셨어요. 그중에서도 복지 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는 분들은 '나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의지를 보이셨죠. 그렇게 50여 분이 넘는 주민이 모였고, 올해로 2년째 ‘이웃더하기’라는 이름으로 장노년층이 함께 서로돌봄을 위한 사회관계망을 만들고 있어요.
이웃돌봄 활동가는 두 차례로 나눠서 교육이 진행되었는데요. 우선 행정 업무를 위해 담당 공무원, 공공 기관 실무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했어요. 저는 공공, 행정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지역안에서의 돌봄이라는 건 민간 자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공공 자원만으로도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더 당당하고 확실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공과 직접 일하는 범위도 접점이 높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죠.
이후에는 ‘이웃더하기’ 사업에 지원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요. 이때에는 단순히 행정 업무 처리를 넘어서, ‘자기돌봄’과 ‘서로돌봄’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요. 어떻게 인사하고 다가갈지, 이웃을 존중하는 의사소통이란 무엇인지처럼 관계를 맺는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연습하죠. 이렇게 양성된 활동가는 2인 1조로 팀을 이뤄서 단지 내 가구를 순회하며 동네 주민을 직접 만나 안부를 묻는 대화를 나누고 위험 징후를 미리 발견해요. 만약 도움이 필요한 대상을 발견하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연결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 구조를 만들었고요.
- ‘이웃더하기 활동가 사업’이 고양시장상까지 받으셨다고요, 정말 대단하네요! 올해로 벌써 사업 2년차인데, 변화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나요?
= 복지가 필요한 어르신도 많고, 각각 필요한 돌봄의 종류도 많은데 이걸 나서서 하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게 현장의 현실이에요. 저는 ‘이웃더하기’ 사업을 통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이 최대한 구석구석 닿을 수 있도록 나서주시는 ‘이웃’이 분명히 있고, 이들의 움직임이 변화를 만드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노년층의 돌봄을 돈과 시장의 논리로 설명하는 영역도 분명 존재하거든요. 하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영역도 분명히 있고, 무작정 혜택 받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다해도 해결될 수 없는 부분도 있거든요.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잖아요. 그럼 결국 지금 노년층, 어르신들이 부딪힌 문제는 결국 다 내가 마주할 과제이기 때문에, 돌봄은 누군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로, 내 가족과 이웃의 문제로 봐야한다는 거죠.
‘이웃더하기’ 활동을 하면서 지역 주민들이 서로의 연결을 체감하고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처음엔 활동가분들도 당연히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으셨죠. “어떻게 문을 두들겨요..문 안 열어줄텐데…’, “이걸 한다고 얼마나 바뀌겠어요”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으셨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여는 이웃이 보이고, 그 과정에 본인이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활동에 자신감을 느끼고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세요.
고독사 예방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웃더하기’ 활동은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다는 신호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죠.

‘이웃더하기’ 활동가 교육 현장 ⓒ윤서우 대표
- 경기도 고양시 신원동은 신도시 아파트 단지가 많은 곳이잖아요. 대표님도 서울 출신이시고요. 그런데 ‘마을’이라는 단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흥미로워요.
= 그런가요? 철거민 마을에서 공부방 교사를 했던 경험 덕분인지 ‘마을’이라는 단어가 저에겐 어색하진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이 신원동이라는 경기도 신도시 동네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는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예요. 12년째 이동네에 살고 있으니까, 거의 2기 신도시가 생길 때 즈음 이주를 온 셈이거든요. 물론 많은 분들이 ‘마을’이라는 말을 듣고 단층 주택집이 모여있는 동네를 쉽게 떠올리실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긴 처음 조성될 때부터 아파트촌이었기 때문에, 마을의 개념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아파트가 많은 동네의 장점도 있어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신도시 아파트엔 학교가 많으니까, 그럼 아이도 많고 그만큼 학부모도 많잖아요. 그럼 이들과 오가며 인사하고 학교 활동을 같이하면, 자연스럽게 친목을 넘어서 뭔가 더 할만한 일이 없을까 이야기를 하게 돼요. 아파트라는 공간 때문에 생기는 벽을 깨고, 그저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인식을 주고 싶어요. 사업을 할 때도 동네 사람들이 계속 섞이고 만나면서 벽을 흐트러뜨리도록 장치를 만들고요.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관계가 만들어지는 곳이 곧 ‘마을’이니까요.

연구소 한편에 붙어 있던 문구. 윤서우 대표가 바라는 돌봄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희망제작소
모두가 건강하게 나이 들어갈 수 있도록
- ‘돌봄’이라는 영역에서, 특히 민간에서 수익성을 고려한 일을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잖아요.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떤 걸 준비하고 계신가요?
= 현재 수익의 대부분은 강사비예요. 몇 년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더니 감사하게도 여러 곳에서 먼저 불러주시는데, 제가 복지시설에 시니어 프로그램을 먼저 제안해서 진행하기도 하고요. 그 수입으로 프로그램과 사무 운영을 3년째 지속해오고 있어요. 하지만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강사비 이외에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가진 가능성은 결국 ‘빈 틈을 채우는 것’에 있는데, 그 틈을 메꾸기 위해서 또 다른 일을 해야한다는 게 참 어려운 상황이긴해요.
우선 조직 형태를 재정비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처음에 마음이 앞서서 무작정 창업을 한 것이다보니 안정화를 위해선 조직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겠더라고요. 지금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고, 이후에 사회적기업 승인을 받으려고 컨설팅도 받고 있어요. 앞으로를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고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때마다 저를 붙잡아준 말을 떠올려요. “대표님께서 갖고 계신 진정성과 열정이 다 타들어가기 전에, 분명 그 마음과 뜻을 같이 풀어낼 동료를 만날 수 있으니 절대로 포기마시고 일을 지속하셔야 한다”고. 언젠가 저와 함께할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기회도 모색하고 있어요. 중장년 사회공헌 활동이나 교육이 대부분 대도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웃 중심의 돌봄이 더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작은 규모의 도시거든요. 이번에도 좋은 기회가 생겨서 남원에서 관심있는 분들과 연결되어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장(지리산포럼)에 참여하게 됐어요.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티다보니까 이런 인연이, 연결이, 자원이 자꾸 생기니까 저도 제가 해야될 몫이라 생각하고 계속 하게 되네요.
- 활동을 지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 제가 꿈꾸는 미래는, 이 사무실이 어르신들의 놀이방이 되는 거예요. 대화 상대가 필요하면 이곳에 오시고, 같이 재미있는 작당모의도 하시고. 제가 워크북을 들고 처음 어르신들을 만났을 때, 다들 표정이 어떠셨는 지 아세요? 굳어있고, 경계하시고, 긴장하신 분도 있고요. 여쭈어보니 “나라에서 지원금 받아 살아서 그렇다”고, 창피해서 그렇다고 답변하시는 거예요. 너무 속상했죠. 그런데 12회차나 되는 교육을 빠짐없이, 열심히 받으시더니 마지막 수업 때는 다 웃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계셨어요. 본인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웃는 얼굴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하신 분도 있고요. 그런 순간이 보람이 되고, 제가 계속 일을 하게 만들죠.
이런 변화를 더 많은 분들과 만들고 싶은데, 이런 교재나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여러 곳에 연락을 드려봐도 “돈이나 물건으로만 받지 프로그램을 받진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할 수만 있다면 제가 최대한 많은 곳에 가고 싶죠. 그런데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더욱 혼자 가는 방식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지역밀착형 돌봄 활동가’가 많아져야한다고 생각해요. 꼭 제가 그 마을, 그 지역에 가서 활동과 프로그램 운영을 하지 않아도 저와 같은 문제의식, 고민, 실천의지를 가진 분들이 제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활용해서 스스로 활동가가 되어 교육을 하면 더 좋잖아요. 그런 분들이, 그런 동네가 많아지면 아마도 1인가구로 지내시는 어르신 뿐만 아니라 지역에 계신 다른 어르신들도 이런 프로그램을 더 많이 경험도 하시고 받으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앞으로의 역할은 '연결자'이자 '촉진자'라고 생각해요. 초고령화 사회에서 '사람 중심의 돌봄'이 마을의 일상이자, 누군가에겐 좋은 일자리가 되고, 서로를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도록 만들고 싶어요.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는 동네를 위해, 제 자리에서 연구와 교육, 새로운 모델 개발에 힘쓰면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글: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이혜진 연구원

『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먹고사는 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창업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온 새로운 시민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작은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 이 인터뷰 시리즈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삶에는 ‘돌봄’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우리를 자라게 하고, 또 다른 손길로 누군가의 시간을 받칩니다. 양육과 간병, 일상의 안부에서 긴급 상황까지. 개인의 삶도 공동체의 관계도, ‘돌봄’ 없이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안부와 손길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가치와 노동도 쉽게 잊곤 합니다. 이 무감각이 쌓일수록 ‘돌봄’의 공백은 더 넓어집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오늘도봄날&굿서포트를 운영하는 윤서우 대표는 ‘돌봄’ 테두리 바깥의 과제를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실험하고 실행하는 소셜디자이너입니다. 시니어가 ‘돌봄’과 ‘활동’을 함께 제공받을 수 있는 교재를 자체 개발하고, 경력을 보유한 중장년층 활동가의 사회 재진입을 돕고, 지역 주민이 서로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이웃돌봄 활동가를 양성하여 현장에서 새로운 돌봄 문화를 실험하고 있는데요.
이 모든 사업의 핵심은 ‘자기돌봄’과 ‘서로 돌봄’의 연결입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이 각자의 역할과 존엄을 확인하고, 구성원의 학습이 지역의 일로 이어지는 구조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선순환을 만듭니다. 공공·행정·시장이 메우기 어려운 돌봄의 공백을 채우는 현장의 해결사, ‘끝까지 나답게 사는’ 돌봄 생태계를 그려가며 현실로 만드는 오늘도봄날&굿서포트 윤서우 대표를 만났습니다.
오늘도봄날&굿서포트 윤서우 대표. ⓒ희망제작소
- 시니어 돌봄을 주제로 활동하고 계신데, 출발점은 청소년 상담이었다고요.
= 우연한 계기로 23살 때 철거민 마을 공부방 선생님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했어요. 이상하게 저는 늘 적응을 잘 못하고 울타리 밖으로 자꾸 뛰쳐나가려는 친구들에게 더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이들의 개인적인 어려움이나 고민은 결국 어른이 마주하는 구조적 한계와 연결되는 것이었거든요.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천직이라 생각했고 청소년 진로 상담을 직업으로 삼았어요.
아이 셋을 키우다보니 직업을 잠시 중단할 수 밖에 없는 시기가 있었어요. 부모님도 챙겨드려야하는 상황이었고요.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지만, 아이와 부모님을 돌보려면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어야 했어요. 또 저는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라서, 이 세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게 됐어요. 그래서 마을의 아지트 같은 식당을 만들게 됐죠. 일 하는 과정이나 시간이 날 때 동료들, 동네 주민들하고 수다도 떨고 재미있는 일도 작당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5년 정도 운영했어요.
그러다 2020년, 예상치 못한 인생의 고비가 찾아왔어요. 폐차해야할 정도로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거든요. 거의 6개월 동안 일어나지도 못하고 병원에서 집으로, 집에서 병원으로 오가며 누워만 있었어요. 그동안 나름 제 삶을 의미있게 긍정적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사회생활을 할 수는 있을까 괴롭고 좌절스러웠어요.
조금씩 일상으로 복귀하던 무렵,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알게 됐어요. 인생의 정체기에 있거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중장년을 위한 <인생학교>라는 교육 과정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저랑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공감과 위로를 주고 받으며 ‘나만의 일’을 찾아보자는 용기가 생겼고, 그때 자연스럽게 ‘돌봄’이 떠올랐어요. 그동안 뉴스나 책에서 많이 본 단어였지만 제 삶에서 마주하기 전까지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거든요. 코로나 시기에 6개월 간 힘겹게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병원 생활을 오가던 동안 양가 어머님은 모두 치매 판정을 받으셨어요. 아이들도 돌봐야 하다보니 돌봄 문제를 피부로 체감하면서 일상에서부터 더 깊게 ‘돌봄’을 고민하게 됐었어요. ‘돌봄’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자 사회적 과제라는 걸 깨달았고요.
- 함께 공부하며 봉사하던 동료들과 ‘서로돌봄’ 커뮤니티 ‘동행’을 만드셨다고요. 삶의 전환점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만난 관계라 더 시너지가 컸을 것 같아요.
= ‘노인과 인지활동’에 대한 공부를 함께 하던 동료들과 ‘동행’ 이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처음엔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활동을 해보자는 맘으로 무작정 치매안심센터에 찾아갔죠. 부모님의 치매로 돌봄을 직면하게 된 시기였고, 교육으로 동기 부여도 된 상태니 더 이상 미루지 않고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용기를 내서 문을 두드렸는데, 당시 코로나로 모든 복지시설이 폐쇄되고, 방문 활동도 다 중단된 상태라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도울 수 있는 기회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외출도 못 하고 불편한 몸으로 집 안에만 계시느라 지치실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조급한 마음도 들었거든요. 3개월 정도 기다렸더니 감사히도 한 곳에서 연락을 주셨어요. 어르신들께 코로나가 감염될수도 있는 상황이니, 2차 예방접종까지 마치고 마스크 두 겹을 착용한 채 2인 1조 팀으로 찾아가는 어르신 돌봄 서비스를 12회 정도 실행해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이 오로지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달려든 일인데(하하) 오히려 그 경험이 저에게는 더 큰 보람과 용기가 됐어요. 머릿 속에서 막연히 상상만 하던 일이 현장에서 실제로 실행되니 자신감이 생겼어요. 조금씩 경험이 쌓이니까 단순한 ‘돌봄’을 넘어서 각자의 재능과 전공을 활용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고요. 다양한 배경과 지역, 삶의 경험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해서 가능한 일이었죠. 물론 어려운 점도 있었어요. 우리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사회적으로 지속가능성이 있느냐를 증명하는 것도 힘들지만, 중장년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갑작스럽게 돌봄에 대응해야하는 상황이 잦다는 거예요. 본인이 갑자기 아파서 자기 돌봄을 해야하거나 가족의 돌봄을 위해 일을 중단해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지금은 각자의 상황에 맞춰 따로 또 같이 일을 하게 되었죠.
코로나 시기의 ‘동행’ 활동 사진 ⓒ윤서우 대표
- 보람있는 봉사활동 경험으로 그칠 수도 있는데, ‘오늘도봄날’을 창업하면서 선의를 일로 연결하셨다는 점이 인상 깊어요.
= 처음에는 봉사활동에서 만난 동료들과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서 창업을 생각했어요. 중장년 동료들이 가진 전문성과 열정이 끊기지 않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저는 서울시 50플러스재단과 LH가 주최한 <신중년 도시재생 창업프로젝트 점프업5060> 지원하면서 먼 곳이 아니라 제가 살고 있는 곳에서부터 방법을 찾게 됐어요. 그런데 신원마을에는 저와 동료들이 일할 수 있는 복지관이나 문화센터가 거의 없더라고요. 신도시다보니 신혼부부, 청년가구가 많아 청년층 비율이 꽤 높고, 인구도 많은 편에 속하는 데도 개발제한구역이라는 이유 때문에 노유자 시설을 포함한 충분한 행정복지시설이 조성되지 못했어요. 게다가 이 동네는 고령화 속도가 평균보다 빠른 고양시 내에서도 특히 고령화 속도가 빨라 고령 인구가 더욱 많아요. 동네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모습은 주로 길가 의자에 멍하니 앉아 계시거나, 하루 종일 아파트 단지 바깥을 돌아 다니다 집에 들어가시는 장면이었어요. 어르신들을 위한 프로그램, 문화 시설이 거의 없고, 정부 지원이 닿는 계층은 소수이고, 1인 가구는 늘어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소외와 고립으로 이어질 사각지대에 닿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해법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지역 내 돌봄 활동가도 양성하고, 동료들의 활동도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봄날'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그렇게 2년간 개발하신 시니어 인지활동 워크북, ‘굿레시피’는 어떤 교육 자료인가요?
= ‘오늘도봄날’ 창업 목표 중 하나가 예방적 돌봄 활동과 프로그램을 위한 워크북 ‘굿레시피’ 개발이었어요. 창업 지원금으로 첫 시안을 만들었고, 2년 동안 수업을 해보며 계속 고치고 다듬고 있고요. 시니어를 위한 인지활동 워크북인데, 시중 교재는 대부분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조금씩 각색해서 사용하고 있어서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치매 예방이 목적이라기 보단, 치매에 걸리신 분들이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도록 단순한 훈련에 초점이 맞춰져 있죠. 그런데 실제로는 치매 전 단계의 어르신이 훨씬 많기 때문에 예방적 돌봄이 굉장히 절실하거든요.
반면 저희는 활동 프로그램 내 여러 장치를 통해 현재의 인지 기능을 파악하고, 신체 능력과 공간 지각 능력을 훈련 하면서 치매 단계 이전의 돌봄이 필요한 분들을 발굴하고 이 분들을 위한 교육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펜과 종이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드로잉 기법(젠탱글 패턴 등)을 활용해 집중과 미세한 손 움직임을 확인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의력, 공간 지각, 소근육 사용 같은 신호를 부드럽게 살피며 가능한 범위를 진단하게 되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어르신들이 활동 과정에서 정서적 지지와 지원을 받으면서 우울감을 해소하고, 자존감을 회복하세요.
보통은 ‘돌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아픈 사람을 보살피는 장면을 떠올리죠. 그런데 결국 누군가를 ‘돌본다’라는 건, 그의 아픈 상태, 질병을 넘어서 그 사람 자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돌아본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몸이 아파도 누군가랑 이야기하면서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회가 말하고 제공되는 ‘돌봄’은 청소해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씻겨주고가 다인 거예요. 돌봄을 받는 입장은 미안해하고 수치스럽고, 돌봄을 하는 사람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처럼만 보여지는 게 우리와 사회가 말하고 원하는 돌봄인가? 하는 고민들을 끊임없이 하게 돼요. 그래서 오늘도봄날&굿서포트는 행복하게 나이들어갈 수 있는 사회에서의 돌봄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 ‘굿레시피’를 현장에서 직접 사용해보며 개선해가고 계시다고요. 실제 어르신들은 어떤 반응이시던가요? 기대했던 대로 작동이 되던가요?
= 2023년에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운영하는 ‘노인인지케어단’ 양성 교육과 활동에 참여하신 분들께 이 워크북의 시제품을 무료로 1년 간 지원해드린 적이 었어요. 저 혼자 교재를 들고 다닐 때보다, 여러 사람이 더 많은 참여자들과 교육을 진행해주시니 더 많은 사례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죠. 교재의 필요성과 효과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공감해주시고요. 이 때 참여해주신 분들 중에 지금도 현장에서 이 워크북을 활용해서 시니어 프로그램을 하고 계시고, 판매를 제안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제가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활동과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기돌봄이에요. 저는 이 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흐름을 돌아보고, 자기를 스스로 돌보면서 나이듦을 긍정하고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존재감과 자기효능감’을 느끼고 발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반복 훈련에만 머물지 않도록 ‘이야기’를 연결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다시 가보고 싶은 장소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같은 소소한 질문을 차근차근 던지죠. 겉으로 보면 소박한 문항이라, 누군가는 평범한 교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질문에 답하며 어르신들이 스스로의 삶을 돌이켜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자아를 찾아갈 수 있어요, 진짜 본인의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달라지고 목소리에도 힘이 붙어요. 나이가 들어서 하지 못 하게 된 일이 아니라, 젊을 때 하지 못했지만 지금 할 수 있게 된 일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요.
윤서우 대표가 제작한 어르신 인지 활동 워크북 교재. 어르신들의 건강한 나이듦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희망제작소
- 주로 활동하고 계신 지역이 경기도 고양시 신원동이라고요. 대도시라 복지 안전망이 어느 정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주민들이 스스로 이웃 돌봄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건가요?
= 몇 해 전, 저희 마을에서 어르신 고독사 사건이 발생했어요. 그때 주민들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이런 일이 또 생길 수 있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죠. 그래서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통해 주민들과 함께할 새로운 안전망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처음 주민들을 모집했을 때 장노년층 어르신들이 많이 와주셨어요. 그중에서도 복지 지원을 받은 경험이 있는 분들은 '나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라는 의지를 보이셨죠. 그렇게 50여 분이 넘는 주민이 모였고, 올해로 2년째 ‘이웃더하기’라는 이름으로 장노년층이 함께 서로돌봄을 위한 사회관계망을 만들고 있어요.
이웃돌봄 활동가는 두 차례로 나눠서 교육이 진행되었는데요. 우선 행정 업무를 위해 담당 공무원, 공공 기관 실무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했어요. 저는 공공, 행정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지역안에서의 돌봄이라는 건 민간 자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공공 자원만으로도 한계가 있거든요. 그래서 현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더 당당하고 확실하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공과 직접 일하는 범위도 접점이 높을 수록 좋다고 생각하죠.
이후에는 ‘이웃더하기’ 사업에 지원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해요. 이때에는 단순히 행정 업무 처리를 넘어서, ‘자기돌봄’과 ‘서로돌봄’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요. 어떻게 인사하고 다가갈지, 이웃을 존중하는 의사소통이란 무엇인지처럼 관계를 맺는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연습하죠. 이렇게 양성된 활동가는 2인 1조로 팀을 이뤄서 단지 내 가구를 순회하며 동네 주민을 직접 만나 안부를 묻는 대화를 나누고 위험 징후를 미리 발견해요. 만약 도움이 필요한 대상을 발견하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와 연결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 구조를 만들었고요.
- ‘이웃더하기 활동가 사업’이 고양시장상까지 받으셨다고요, 정말 대단하네요! 올해로 벌써 사업 2년차인데, 변화가 느껴지는 순간이 있나요?
= 복지가 필요한 어르신도 많고, 각각 필요한 돌봄의 종류도 많은데 이걸 나서서 하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게 현장의 현실이에요. 저는 ‘이웃더하기’ 사업을 통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봄이 최대한 구석구석 닿을 수 있도록 나서주시는 ‘이웃’이 분명히 있고, 이들의 움직임이 변화를 만드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노년층의 돌봄을 돈과 시장의 논리로 설명하는 영역도 분명 존재하거든요. 하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영역도 분명히 있고, 무작정 혜택 받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난다해도 해결될 수 없는 부분도 있거든요. 우리 모두는 나이가 들잖아요. 그럼 결국 지금 노년층, 어르신들이 부딪힌 문제는 결국 다 내가 마주할 과제이기 때문에, 돌봄은 누군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로, 내 가족과 이웃의 문제로 봐야한다는 거죠.
‘이웃더하기’ 활동을 하면서 지역 주민들이 서로의 연결을 체감하고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처음엔 활동가분들도 당연히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으셨죠. “어떻게 문을 두들겨요..문 안 열어줄텐데…’, “이걸 한다고 얼마나 바뀌겠어요”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으셨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마음을 여는 이웃이 보이고, 그 과정에 본인이 있다는 걸 확인하면서 활동에 자신감을 느끼고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세요.
고독사 예방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는 과정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이웃더하기’ 활동은 자신의 어려움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다는 신호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죠.
‘이웃더하기’ 활동가 교육 현장 ⓒ윤서우 대표
- 경기도 고양시 신원동은 신도시 아파트 단지가 많은 곳이잖아요. 대표님도 서울 출신이시고요. 그런데 ‘마을’이라는 단위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흥미로워요.
= 그런가요? 철거민 마을에서 공부방 교사를 했던 경험 덕분인지 ‘마을’이라는 단어가 저에겐 어색하진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이 신원동이라는 경기도 신도시 동네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는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예요. 12년째 이동네에 살고 있으니까, 거의 2기 신도시가 생길 때 즈음 이주를 온 셈이거든요. 물론 많은 분들이 ‘마을’이라는 말을 듣고 단층 주택집이 모여있는 동네를 쉽게 떠올리실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긴 처음 조성될 때부터 아파트촌이었기 때문에, 마을의 개념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아파트가 많은 동네의 장점도 있어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신도시 아파트엔 학교가 많으니까, 그럼 아이도 많고 그만큼 학부모도 많잖아요. 그럼 이들과 오가며 인사하고 학교 활동을 같이하면, 자연스럽게 친목을 넘어서 뭔가 더 할만한 일이 없을까 이야기를 하게 돼요. 아파트라는 공간 때문에 생기는 벽을 깨고, 그저 같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인식을 주고 싶어요. 사업을 할 때도 동네 사람들이 계속 섞이고 만나면서 벽을 흐트러뜨리도록 장치를 만들고요.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관계가 만들어지는 곳이 곧 ‘마을’이니까요.
연구소 한편에 붙어 있던 문구. 윤서우 대표가 바라는 돌봄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희망제작소
- ‘돌봄’이라는 영역에서, 특히 민간에서 수익성을 고려한 일을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잖아요.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떤 걸 준비하고 계신가요?
= 현재 수익의 대부분은 강사비예요. 몇 년간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더니 감사하게도 여러 곳에서 먼저 불러주시는데, 제가 복지시설에 시니어 프로그램을 먼저 제안해서 진행하기도 하고요. 그 수입으로 프로그램과 사무 운영을 3년째 지속해오고 있어요. 하지만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강사비 이외에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가진 가능성은 결국 ‘빈 틈을 채우는 것’에 있는데, 그 틈을 메꾸기 위해서 또 다른 일을 해야한다는 게 참 어려운 상황이긴해요.
우선 조직 형태를 재정비하는 데서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처음에 마음이 앞서서 무작정 창업을 한 것이다보니 안정화를 위해선 조직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겠더라고요. 지금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고, 이후에 사회적기업 승인을 받으려고 컨설팅도 받고 있어요. 앞으로를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고 어려워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때마다 저를 붙잡아준 말을 떠올려요. “대표님께서 갖고 계신 진정성과 열정이 다 타들어가기 전에, 분명 그 마음과 뜻을 같이 풀어낼 동료를 만날 수 있으니 절대로 포기마시고 일을 지속하셔야 한다”고. 언젠가 저와 함께할 누군가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기회도 모색하고 있어요. 중장년 사회공헌 활동이나 교육이 대부분 대도시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이웃 중심의 돌봄이 더 절실하고 필요한 것은 작은 규모의 도시거든요. 이번에도 좋은 기회가 생겨서 남원에서 관심있는 분들과 연결되어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장(지리산포럼)에 참여하게 됐어요. 힘들어도 어떻게든 버티다보니까 이런 인연이, 연결이, 자원이 자꾸 생기니까 저도 제가 해야될 몫이라 생각하고 계속 하게 되네요.
- 활동을 지속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 제가 꿈꾸는 미래는, 이 사무실이 어르신들의 놀이방이 되는 거예요. 대화 상대가 필요하면 이곳에 오시고, 같이 재미있는 작당모의도 하시고. 제가 워크북을 들고 처음 어르신들을 만났을 때, 다들 표정이 어떠셨는 지 아세요? 굳어있고, 경계하시고, 긴장하신 분도 있고요. 여쭈어보니 “나라에서 지원금 받아 살아서 그렇다”고, 창피해서 그렇다고 답변하시는 거예요. 너무 속상했죠. 그런데 12회차나 되는 교육을 빠짐없이, 열심히 받으시더니 마지막 수업 때는 다 웃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고 계셨어요. 본인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웃는 얼굴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하신 분도 있고요. 그런 순간이 보람이 되고, 제가 계속 일을 하게 만들죠.
이런 변화를 더 많은 분들과 만들고 싶은데, 이런 교재나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여러 곳에 연락을 드려봐도 “돈이나 물건으로만 받지 프로그램을 받진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할 수만 있다면 제가 최대한 많은 곳에 가고 싶죠. 그런데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더욱 혼자 가는 방식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 ‘지역밀착형 돌봄 활동가’가 많아져야한다고 생각해요. 꼭 제가 그 마을, 그 지역에 가서 활동과 프로그램 운영을 하지 않아도 저와 같은 문제의식, 고민, 실천의지를 가진 분들이 제 프로그램을 이용하거나 활용해서 스스로 활동가가 되어 교육을 하면 더 좋잖아요. 그런 분들이, 그런 동네가 많아지면 아마도 1인가구로 지내시는 어르신 뿐만 아니라 지역에 계신 다른 어르신들도 이런 프로그램을 더 많이 경험도 하시고 받으실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앞으로의 역할은 '연결자'이자 '촉진자'라고 생각해요. 초고령화 사회에서 '사람 중심의 돌봄'이 마을의 일상이자, 누군가에겐 좋은 일자리가 되고, 서로를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도록 만들고 싶어요.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나이 들어가는 동네를 위해, 제 자리에서 연구와 교육, 새로운 모델 개발에 힘쓰면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글: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이혜진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