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먹고사는 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창업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온 새로운 시민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작은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 이 인터뷰 시리즈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누르세요' 대신 '같이해요'를 가르치는 사람들
터치제주 김경화, 양지원, 이채은, 정보경, 홍군택 @제주
할머니 한 분이 수영 교실 등록을 하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 한참 기다려 버스를 타고 주민센터에 도착하니, “인터넷으로 신청 하셔야돼요”라는 말이 돌아옵니다. 사람보다 기계와 먼저 대화해야 하는 세상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을 배워볼까 싶어 찾아간 수업에서는 “이거 누르세요, 저거 누르세요”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급한 마음에 받아 적기 바빠집니다.
제주는 느린 시간과 빠른 기술이 공존하는 지역입니다. 2024년, 제주특별자치도는 ‘AI와 디지털 대전환 로드맵’을 선언하며 “모든 도민이 디지털 혁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행정, 교통, 생활 서비스 전반을 빠르게 디지털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모두에게 알맞은 것은 아닙니다. 한때 손끝으로 밭을 일구던 세대는 이제 손끝으로 기계 화면을 눌러야 하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낯설고 급격한 변화 속에 어르신들은 점점 고립되고 자신감을 잃어 갑니다.
이 장면 앞에 멈춰선 사람들이 바로 터치제주입니다. “수업 끝나면 다 잊어버린다”, “막상 혼자 해보려니 겁이 난다” 현장에서 반복해서 들려오는 말과 표정을 보며 이들은 스스로에게, 또 서로에게 물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디지털 교재를 만들 수는 없을까?’
터치제주는 제주에서 미디어 교육을 하는 강사들이 시니어 디지털 교육의 고민을 나누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느슨하지만 단단한 네트워크입니다. 현재 10명의 강사가 함께하고 있으며,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중 5명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미디어 리터러시에 매력을 느껴 미디어 강사가 된 양지원,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다 미디어교육으로 전향한 이채은, 공학을 전공했지만 사회 문제 해결에 매력을 느껴 미디어 활동을 이어온 김경화, 제주로 이주해 미디어 강사로 새로운 경력을 쌓아온 정보경, 그리고 미디어 제작과 콘텐츠 교육을 병행하는 만능해결사 홍군택까지.
제주 어르신들이 일상 속에서 디지털을 익히고, 낯선 기술의 세계에서 자신감을 찾도록 ‘동행’하면서, 세상과 연결되는 과정을 함께 설계하는 터치제주를 제주에서 만났습니다.

터치제주팀 (왼쪽부터) 홍군택, 양지원(대표), 김경화, 이채은, 정보경 ⓒ희망제작소
느린 시간과 빠른 변화가 공존하는 제주도에서 ‘제주형’ 스마트폰 교육을
- ‘터치제주’가 만든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재, 어떤 점이 특별한가요?
=(이) 같은 도민이 제주의 지역 특화 서비스를 잘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서 만든 교재라는 점에서 특별하죠. 단순히 ‘스마트폰을 잘 쓰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고, ‘어떤 정책들이 있는지 나열’하는 책도 아니에요. 어르신들이 지금 당장 실생활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중심으로 교재를 구성하고 교육을 기획하거든요. 예를 들어 제주 택배비 지원 사업이나 문화센터 수강 신청, ‘옵서버스(콜택시처럼 승객이 부르면 도착하는 제주특화 버스)’처럼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실습해요. ‘제주도민 대학(제주 평생학습 플랫폼)’에서 어르신이 듣고 싶은 강의를 신청하거나, ‘제주120만덕콜’로 생활 민원을 제보하기도 하고, 도내의 문화·예술 정보나 혜택을 확인하는 법을 연습해요. 디지털을 통해 삶의 범위를 더 다양하고 넓게 확장해가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거죠.
=(양) 터치제주팀은 모두 제주 전역에서 미디어 교육을 하고 있는 전문 강사들이에요. 그래서 제주 어르신들이 어떤 생활 방식이나 문화를 가지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 스마트폰 사용에 불편함을 겪을 수 밖에 없는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이해하고 있죠. 그런데 기존 시니어 디지털 교육에서 사용하는 교재는 제주에서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많아요. 예를 들어, 제주에는 KTX가 없는데도 KTX 기차 예매법을 교육하곤 하죠. 제주 어르신들께 필요한 건 육지로 오가는 비행기표 구매하기, 비오는 날 집 앞에서 택시 부르기, 순환 버스 시간 확인하기, 고사리 채취 중 오름에서 길을 잃었을 때 위치 보내는 법 같은 생활 기반의 디지털 정보거든요.
=(정) 또 기존의 시니어 디지털 교육은 대부분 단발성으로 끝나다보니 스스로 반복해서 복습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요. 교육의 양은 늘었지만 어르신들이 실제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속적 학습 환경이 부족한 거죠. 제주의 디지털 교육 참여는 전국 평균 참여율보다 두 배 높은 수준인데, 여전히 앱 설치나 온라인 활용은 거의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화면도 작고 복잡하다보니 실수도 생기고,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것도 못하지..”하며 스스로를 탓하게 되죠. 그런 감정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지게 되구요. 그래서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건, 교재가 아니라 환경이에요. 제주도민 누구나 쉽게 디지털을 활용해서 나답게 살 수 있는 제주형 생활 환경이요.
- 이미 미디어 강사로 오랫동안 활동해오셨는데, 터치제주라는 팀을 만들고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재까지 개발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양) 디지털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니어 교육을 하다보니 맞춤형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걸 매일 체감했어요. 제주 지역 특성을 반영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걸 더 예민하고 긴급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요. 이런 고민을 함께 해결해 나가기 위해 TF 형태로 동료를 모아 ‘터치제주’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홍) 저희가 현장에서 겪는 경험을 바탕으로 시니어 디지털 교육을 더 개선하고 싶었어요. 기존 교육은 강의 자료를 PPT 화면으로 띄워드리고, 교육생은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면서 따라하는 방식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면 강사는 자료 화면만 보면서 “이거 누르세요, 저거 누르세요”를 반복하게 되고, 교육생은 따라가기 바쁘죠. PPT 화면과 본인 기기의 화면이 다른 경우에는 더 혼란스러워하시고요. 저희는 현장에서 이런 어려움을 더 생생히 느꼈죠.
또 시니어 교육은 반복 학습이 중요한데 디지털 학습 훈련을 위한 교재나 환경이 충분하지 못했어요. 어르신들은 수업 내용을 까먹거나 놓칠까봐 걱정하시며 빼곡하게 필기를 하세요. 그런데 필기를 하다보면 실습에 집중하지 못하니 혼자 복습이 어려워지는 거죠. 수업이 끝난 후에도 “선생님, 그 기능 어떻게 하는 거였죠?”하며 연락을 주시는 어르신들도 많으시고요. 저희는 수업 전후 학습의 공백을 메우고 싶었어요.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재 기초편 수업자료와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육 현장(사진 왼쪽부터) ⓒ터치제주
시니어 디지털 교육, 단순한 기능학습 넘어 사회 구성원으로 재진입 과정
-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재의 제작 과정과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합니다.
=(양) 교재 제작은 ‘기획-디자인-현장 적용’이 한 흐름 안에서 이루어져요. 기획할 때는 수업 중 어르신들이 어려워하시거나 질문이 많았던 부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순서를 조정해요. 터치제주가 만든 교재는 ‘기본 학습용’과 ‘제주 특화용’ 두 종류에요. 후자는 앞서 말씀드린 제주 생활에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고 활용하는 내용들인데, 이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 학습 파트에서 훈련을 충분히 해야하죠. 디자인 과정에선 세로형 대신 가로형을 적용해 글자 크기를 키우고, 글꼴을 단순화해서 가독성과 집중도를 높여요. 손가락 위치나 클릭 버튼을 아이콘·화살표·컬러 포인트로 직관적으로 반영했어요. 말그대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직관적으로 배우는 터치제주만의 시각형 교재”를 만든거죠.
=(김) 저희 교재의 특별한 점은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반영했다는 점이예요. 사용자의 욕구와 생각에 초점을 두고 내용과 디자인을 설계했어요. 예를 들어 수업할 때 가장 많이 어려워하시는 파트가 ‘결제’거든요. 연습 과정에서 실수로 실제 지출이 발생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익숙한 사고 흐름대로 교재를 구성하고, 손 동작 그림도 넣고, 더불어 실습 프로그램까지 개발해서 실제 어플과 똑같은 디자인과 구조로 어르신들이 결제 과정을 훈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 터치제주가 만든 교재, 현장 반응은 어떤가요? 변화가 느껴지던가요?
=(이) 출석률부터 다르죠. 현장 반응이 가장 정확해요. 저희가 팀 활동을 하면서 사례도 모으고, 피드백도 바로 반영하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개발하고 있다는 걸 어르신들이 가장 잘 알아주세요. “오늘은 새로운 기능 배우는 날이니까 꼭 가야지”하시면서, 본인께 필요치 않은 내용이 있는 날에도 빠짐없이 출석하시고요. 교육 자체가 하나의 생활 루틴이 된 셈이죠.
=(양) 터치제주의 수업은 꾸준한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흥미로운게, 개인이 변하면 커뮤니티도 변해요.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니, 이젠 주변의 다른 수강생에게 먼저 다가가서 알려주기도 하시더라고요. 어떤 교육이든 개인마다 습득 속도가 다르니 편차가 생길 수 밖에 없잖아요. 저희가 수강생 모두를 봐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상호교육, 상호돌봄으로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뿌듯하고 감동적이었죠.

터치제주팀의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육 현장 ⓒ터치제주
농어촌 디지털 격차 심각…정부·행정 공백기를 채워야
- 공공기관에서도 시니어 디지털 교육이 운영되고 있는데, 터치제주는 왜 민간에서 이 일을 계속 이어가고 있나요?
=(김) 결국 ‘속도’의 문제 때문이죠. 기술은 너무 빠르게 변하는데 행정 절차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든요. 디지털 교육은 업데이트 되는 어플, 사이트에 재빠르게 대응하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공공 사업은 예산 집행, 절차, 심의 과정이 복잡하니까 변동 사항이 실제 현장에 적용되어 전달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저희는 현장에서 강의를 준비하면서 변경 내용을 수시로 업데이트해서 강의나 교재에도 즉각 반영할 수 있다는 큰 강점이 있죠.
=(이) 미디어 강사들은 대부분 정부의 디지털·미디어·교육 예산 사업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요. 매년 예산이나 운영 일정에 따라서 공백기가 생겨요. 그 기간에는 공식적인 수업이 멈출 수 밖에 없고요. 그런데 기술과 디지털 발전은 멈추지 않잖아요. 계속해서 정부 서비스는 바뀌고,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고, 이용 방법도 달라지죠. 그 사이에 그럼 어르신들은 또 뒤쳐지고 고립될 수 밖에 없는거예요. 그래서 터치제주는 공백기 없이 배움이 지속되도록 자체적인 사업도 운영하고 있어요.
=(정) 특히 제주는 농어촌 지역 인구가 급감하고 고령화 비율이 높아지면서 번화가를 조금만 벗어나도 동네에 어르신들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곳은 디지털 격차가 더 크고, 디지털 교육 공백이 길어질 수록 더 쉽게 고립되죠. 배울 수 있는 기관과도 멀리 떨어져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단순히 기능, 조작을 알려드리는 걸 넘어서 ‘불안감을 덜어주는 소통’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은행 이체 기능을 배울 때에도, 어르신들께서 느끼는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는 저희와 정도가 달라요. “은행 어플만 깔아도 돈이 사라질까봐 무섭다”, “버튼 하나 잘못 눌러서 돈이 다 빠지면 어떻게 하냐”, “사기(보이스피싱)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홍) 행정이 해야할 일을 대신한다기보다는, 그 속도를 ‘사람의 속도’에 맞추게 끔 완충 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변하는 속도와 사람이 익히는 속도에는 늘 간극이 있잖아요. 그 틈을 메우는 건 저희 같은 민간의 몫이라고 봐요. 디지털이 불편한 분들에게 가장 먼저 닿는 건 결국 ‘사람’이거든요.
- 어렵게 찾아와주시는 만큼 좋은 수업을 만들기위해 고군분투 하시는 과정이 인상적이에요. 그만큼 현장에 가면 보람과 에너지를 얻기도 하시나요?
=(김) 강사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거예요. 수업이 잘 됐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은 수업을 마치고 문을 닫고 나올 때죠. 그때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으면 대체로 잘 된 수업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딘가 아쉬움이 남아요. 사실 어르신 수업은 일반 학생 수업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요. 같은 내용을 두세 번씩 반복해야 하니까요. 그런데도 터치제주에서 강의를 하면 늘 기분 좋게 교실 문을 닫고 나와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수업을 들으시는 분들이 저희를 ‘선생님’으로 존중해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은 90세 어르신께서 제 수업에서 영상 제작을 배우신 적이 있었어요. 그 이후로도 잊어버릴까 봐 연습하신다며, 2년 동안 한 달에 한두 번씩 직접 만든 영상을 제게 보내주셨어요. 그렇게 선생님과 학생을 넘어 서로 마음이 이어질 때, 정말 뿌듯하죠.
=(홍) 제가 수업하면서 제일 큰 보람을 느낄 때는 어르신들의 변화를 볼 때에요.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시는 모습에서 늘 감동을 받아요. 예전에 86세 어르신이 영상 편집을 배우신 적이 있었는데, 열정이 정말 대단하셨어요. 올해는 두 시간씩 버스를 타고 오는 부부 수강생도 계시고요. 그렇게 찾아오시는 분들을 보면, 더 잘 가르쳐드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죠.
수강생분들이 ‘고맙다’며 직접 담근 간장이나 매실청을 챙겨오실 때도 있어요. 먼 길을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하나라도 챙겨주시는 그 마음이 참 따뜻하죠. 하지만 제가 가장 뿌듯한 순간은 일상에서 변화가 느껴질 때예요. 요즈음 제주 농장은 외국인 노동자분들과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번역 어플로 외국인 노동자분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됐다거나, 손녀에게 이모티콘을 보내게 됐다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죠. 젊은 세대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어르신들에겐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특별한 경험이거든요. 그 변화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에요.
= (정) 작년 수업에서 만난 어르신이 기억에 남아요. 이미 스마트폰을 꽤 잘 다루시는 분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수업에 들어오시면 맨 뒷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시곤 했어요. 본인이 아는 내용이 나오면 중간에 벌떡 일어나서 나가시기도 하고요. 처음엔 솔직히 신경이 쓰이고 긴장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 분을 만족시킨다면, 오늘 수업은 성공이다”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분이 조금씩 앞자리로 오시더니, 나중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죠.
종강 후에 그 분이 메세지를 보내주셨어요. ‘내가 40년 간 교직에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이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쳐본 적이 없다. 많이 배우고 반성했다.’ 그 말을 보고 정말 울컥했어요. 제게는 잊을 수 없는 감사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어요.

시니어 수강생과 나눈 메세지 ⓒ터치제주
- 이 문제가 해결됐을 때, 터치제주가 상상하는 제주의 모습은 어떤가요?
=(김) 요즘은 뭐든 디지털로 바뀌잖아요. 그런 세상에서 모든 어르신들이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일상을 누리셨으면 해요. 지금은 대부분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분들이 수업을 들으시지만, 정말 이런 교육이 필요한 분들은 제 엄마처럼 해녀로 일하시거나 농어촌에 사시는 분들이거든요. 그 분들은 배우러 나올 시간조차 없으시죠. 언젠가는 그런 분들도 부담 없이 디지털을 배우고, 쓰고,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정) 이제 대부분 전화나 문자 같은 건 다 잘 하세요. 문제는 그 다음이죠. 스마트폰 밖에서 새로운 과제가 계속 생겨요. 이번 주엔 어르신들과 제주공항에 실습을 나갔는데요. 어플로 택시 부르고 이동까지는 완벽했어요. 그런데 막상 출국장 키오스크 앞에서 막히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은 손바닥만 찍으면 바로 통과하잖아요. 그래서 수업도 점점 더 세밀해지고 있어요. 챗GPT로 유산 분배 얘기도 나누고, 인공지능을 일상 주제로 연결해보기도 해요. 어떤 어르신은 이제 ‘챗GPT 강사가 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단순히 배우는 걸 넘어, 자아를 확장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양) 어르신들이 ‘뒤처질까 봐’ 불안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이거 재밌겠다’ 하는 마음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디지털이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는 거죠. 그래서 터치제주 수업이 어르신들에게는 새로운 놀이이자 취미처럼 느껴지면 좋겠어요. 또 전국에 있는 다른 시니어 디지털 강사분들과도 더 많이 교류하면서 터치제주만의 프로그램을 더 발전시키고 싶고요. 그러니 이 인터뷰를 읽고 계신 분 중, 저희 교재가 궁금하시다면 꼭 연락주세요!
인터뷰 및 정리: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이혜진 연구원, 최나현 선임 연구원, 안영삼 팀장

『소셜디자이너 인터뷰 시리즈』는 자신이 발 딛고 선 지역에서, ‘먹고사는 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소셜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공익 활동이나 창업이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온 새로운 시민들. 희망제작소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로 호명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묻고 싶습니다. 작은 실천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바꾸고, 그 변화가 다시 지역을 움직이는 힘이 되는지. 이 인터뷰 시리즈가 또 다른 누군가의 상상과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누르세요' 대신 '같이해요'를 가르치는 사람들
터치제주 김경화, 양지원, 이채은, 정보경, 홍군택 @제주
할머니 한 분이 수영 교실 등록을 하러 아침 일찍 집을 나섭니다. 한참 기다려 버스를 타고 주민센터에 도착하니, “인터넷으로 신청 하셔야돼요”라는 말이 돌아옵니다. 사람보다 기계와 먼저 대화해야 하는 세상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을 배워볼까 싶어 찾아간 수업에서는 “이거 누르세요, 저거 누르세요”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어, 급한 마음에 받아 적기 바빠집니다.
제주는 느린 시간과 빠른 기술이 공존하는 지역입니다. 2024년, 제주특별자치도는 ‘AI와 디지털 대전환 로드맵’을 선언하며 “모든 도민이 디지털 혁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행정, 교통, 생활 서비스 전반을 빠르게 디지털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도가 모두에게 알맞은 것은 아닙니다. 한때 손끝으로 밭을 일구던 세대는 이제 손끝으로 기계 화면을 눌러야 하는 시대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낯설고 급격한 변화 속에 어르신들은 점점 고립되고 자신감을 잃어 갑니다.
이 장면 앞에 멈춰선 사람들이 바로 터치제주입니다. “수업 끝나면 다 잊어버린다”, “막상 혼자 해보려니 겁이 난다” 현장에서 반복해서 들려오는 말과 표정을 보며 이들은 스스로에게, 또 서로에게 물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디지털 교재를 만들 수는 없을까?’
터치제주는 제주에서 미디어 교육을 하는 강사들이 시니어 디지털 교육의 고민을 나누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느슨하지만 단단한 네트워크입니다. 현재 10명의 강사가 함께하고 있으며, 이번 인터뷰에서는 그중 5명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미디어 리터러시에 매력을 느껴 미디어 강사가 된 양지원,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다 미디어교육으로 전향한 이채은, 공학을 전공했지만 사회 문제 해결에 매력을 느껴 미디어 활동을 이어온 김경화, 제주로 이주해 미디어 강사로 새로운 경력을 쌓아온 정보경, 그리고 미디어 제작과 콘텐츠 교육을 병행하는 만능해결사 홍군택까지.
제주 어르신들이 일상 속에서 디지털을 익히고, 낯선 기술의 세계에서 자신감을 찾도록 ‘동행’하면서, 세상과 연결되는 과정을 함께 설계하는 터치제주를 제주에서 만났습니다.
터치제주팀 (왼쪽부터) 홍군택, 양지원(대표), 김경화, 이채은, 정보경 ⓒ희망제작소
- ‘터치제주’가 만든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재, 어떤 점이 특별한가요?
=(이) 같은 도민이 제주의 지역 특화 서비스를 잘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서 만든 교재라는 점에서 특별하죠. 단순히 ‘스마트폰을 잘 쓰는 법’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고, ‘어떤 정책들이 있는지 나열’하는 책도 아니에요. 어르신들이 지금 당장 실생활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중심으로 교재를 구성하고 교육을 기획하거든요. 예를 들어 제주 택배비 지원 사업이나 문화센터 수강 신청, ‘옵서버스(콜택시처럼 승객이 부르면 도착하는 제주특화 버스)’처럼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실습해요. ‘제주도민 대학(제주 평생학습 플랫폼)’에서 어르신이 듣고 싶은 강의를 신청하거나, ‘제주120만덕콜’로 생활 민원을 제보하기도 하고, 도내의 문화·예술 정보나 혜택을 확인하는 법을 연습해요. 디지털을 통해 삶의 범위를 더 다양하고 넓게 확장해가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거죠.
=(양) 터치제주팀은 모두 제주 전역에서 미디어 교육을 하고 있는 전문 강사들이에요. 그래서 제주 어르신들이 어떤 생활 방식이나 문화를 가지고 있고, 어떤 상황에서 스마트폰 사용에 불편함을 겪을 수 밖에 없는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이해하고 있죠. 그런데 기존 시니어 디지털 교육에서 사용하는 교재는 제주에서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많아요. 예를 들어, 제주에는 KTX가 없는데도 KTX 기차 예매법을 교육하곤 하죠. 제주 어르신들께 필요한 건 육지로 오가는 비행기표 구매하기, 비오는 날 집 앞에서 택시 부르기, 순환 버스 시간 확인하기, 고사리 채취 중 오름에서 길을 잃었을 때 위치 보내는 법 같은 생활 기반의 디지털 정보거든요.
=(정) 또 기존의 시니어 디지털 교육은 대부분 단발성으로 끝나다보니 스스로 반복해서 복습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요. 교육의 양은 늘었지만 어르신들이 실제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속적 학습 환경이 부족한 거죠. 제주의 디지털 교육 참여는 전국 평균 참여율보다 두 배 높은 수준인데, 여전히 앱 설치나 온라인 활용은 거의 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화면도 작고 복잡하다보니 실수도 생기고,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것도 못하지..”하며 스스로를 탓하게 되죠. 그런 감정이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계에서도 멀어지게 되구요. 그래서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건, 교재가 아니라 환경이에요. 제주도민 누구나 쉽게 디지털을 활용해서 나답게 살 수 있는 제주형 생활 환경이요.
- 이미 미디어 강사로 오랫동안 활동해오셨는데, 터치제주라는 팀을 만들고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재까지 개발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양) 디지털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니어 교육을 하다보니 맞춤형 미디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걸 매일 체감했어요. 제주 지역 특성을 반영해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걸 더 예민하고 긴급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요. 이런 고민을 함께 해결해 나가기 위해 TF 형태로 동료를 모아 ‘터치제주’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홍) 저희가 현장에서 겪는 경험을 바탕으로 시니어 디지털 교육을 더 개선하고 싶었어요. 기존 교육은 강의 자료를 PPT 화면으로 띄워드리고, 교육생은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면서 따라하는 방식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면 강사는 자료 화면만 보면서 “이거 누르세요, 저거 누르세요”를 반복하게 되고, 교육생은 따라가기 바쁘죠. PPT 화면과 본인 기기의 화면이 다른 경우에는 더 혼란스러워하시고요. 저희는 현장에서 이런 어려움을 더 생생히 느꼈죠.
또 시니어 교육은 반복 학습이 중요한데 디지털 학습 훈련을 위한 교재나 환경이 충분하지 못했어요. 어르신들은 수업 내용을 까먹거나 놓칠까봐 걱정하시며 빼곡하게 필기를 하세요. 그런데 필기를 하다보면 실습에 집중하지 못하니 혼자 복습이 어려워지는 거죠. 수업이 끝난 후에도 “선생님, 그 기능 어떻게 하는 거였죠?”하며 연락을 주시는 어르신들도 많으시고요. 저희는 수업 전후 학습의 공백을 메우고 싶었어요.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재 기초편 수업자료와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육 현장(사진 왼쪽부터) ⓒ터치제주
-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재의 제작 과정과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합니다.
=(양) 교재 제작은 ‘기획-디자인-현장 적용’이 한 흐름 안에서 이루어져요. 기획할 때는 수업 중 어르신들이 어려워하시거나 질문이 많았던 부분 중심으로 내용을 구성하고 순서를 조정해요. 터치제주가 만든 교재는 ‘기본 학습용’과 ‘제주 특화용’ 두 종류에요. 후자는 앞서 말씀드린 제주 생활에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고 활용하는 내용들인데, 이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 학습 파트에서 훈련을 충분히 해야하죠. 디자인 과정에선 세로형 대신 가로형을 적용해 글자 크기를 키우고, 글꼴을 단순화해서 가독성과 집중도를 높여요. 손가락 위치나 클릭 버튼을 아이콘·화살표·컬러 포인트로 직관적으로 반영했어요. 말그대로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직관적으로 배우는 터치제주만의 시각형 교재”를 만든거죠.
=(김) 저희 교재의 특별한 점은 ‘인터랙티브 디자인’을 반영했다는 점이예요. 사용자의 욕구와 생각에 초점을 두고 내용과 디자인을 설계했어요. 예를 들어 수업할 때 가장 많이 어려워하시는 파트가 ‘결제’거든요. 연습 과정에서 실수로 실제 지출이 발생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어르신들에게 익숙한 사고 흐름대로 교재를 구성하고, 손 동작 그림도 넣고, 더불어 실습 프로그램까지 개발해서 실제 어플과 똑같은 디자인과 구조로 어르신들이 결제 과정을 훈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 터치제주가 만든 교재, 현장 반응은 어떤가요? 변화가 느껴지던가요?
=(이) 출석률부터 다르죠. 현장 반응이 가장 정확해요. 저희가 팀 활동을 하면서 사례도 모으고, 피드백도 바로 반영하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개발하고 있다는 걸 어르신들이 가장 잘 알아주세요. “오늘은 새로운 기능 배우는 날이니까 꼭 가야지”하시면서, 본인께 필요치 않은 내용이 있는 날에도 빠짐없이 출석하시고요. 교육 자체가 하나의 생활 루틴이 된 셈이죠.
=(양) 터치제주의 수업은 꾸준한 학습과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흥미로운게, 개인이 변하면 커뮤니티도 변해요.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니, 이젠 주변의 다른 수강생에게 먼저 다가가서 알려주기도 하시더라고요. 어떤 교육이든 개인마다 습득 속도가 다르니 편차가 생길 수 밖에 없잖아요. 저희가 수강생 모두를 봐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상호교육, 상호돌봄으로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뿌듯하고 감동적이었죠.
터치제주팀의 제주형 스마트폰 활용 교육 현장 ⓒ터치제주
- 공공기관에서도 시니어 디지털 교육이 운영되고 있는데, 터치제주는 왜 민간에서 이 일을 계속 이어가고 있나요?
=(김) 결국 ‘속도’의 문제 때문이죠. 기술은 너무 빠르게 변하는데 행정 절차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거든요. 디지털 교육은 업데이트 되는 어플, 사이트에 재빠르게 대응하는 게 중요해요. 하지만 공공 사업은 예산 집행, 절차, 심의 과정이 복잡하니까 변동 사항이 실제 현장에 적용되어 전달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저희는 현장에서 강의를 준비하면서 변경 내용을 수시로 업데이트해서 강의나 교재에도 즉각 반영할 수 있다는 큰 강점이 있죠.
=(이) 미디어 강사들은 대부분 정부의 디지털·미디어·교육 예산 사업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데요. 매년 예산이나 운영 일정에 따라서 공백기가 생겨요. 그 기간에는 공식적인 수업이 멈출 수 밖에 없고요. 그런데 기술과 디지털 발전은 멈추지 않잖아요. 계속해서 정부 서비스는 바뀌고,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고, 이용 방법도 달라지죠. 그 사이에 그럼 어르신들은 또 뒤쳐지고 고립될 수 밖에 없는거예요. 그래서 터치제주는 공백기 없이 배움이 지속되도록 자체적인 사업도 운영하고 있어요.
=(정) 특히 제주는 농어촌 지역 인구가 급감하고 고령화 비율이 높아지면서 번화가를 조금만 벗어나도 동네에 어르신들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곳은 디지털 격차가 더 크고, 디지털 교육 공백이 길어질 수록 더 쉽게 고립되죠. 배울 수 있는 기관과도 멀리 떨어져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래서 단순히 기능, 조작을 알려드리는 걸 넘어서 ‘불안감을 덜어주는 소통’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은행 이체 기능을 배울 때에도, 어르신들께서 느끼는 ‘모른다’는 두려움과 공포는 저희와 정도가 달라요. “은행 어플만 깔아도 돈이 사라질까봐 무섭다”, “버튼 하나 잘못 눌러서 돈이 다 빠지면 어떻게 하냐”, “사기(보이스피싱)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홍) 행정이 해야할 일을 대신한다기보다는, 그 속도를 ‘사람의 속도’에 맞추게 끔 완충 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변하는 속도와 사람이 익히는 속도에는 늘 간극이 있잖아요. 그 틈을 메우는 건 저희 같은 민간의 몫이라고 봐요. 디지털이 불편한 분들에게 가장 먼저 닿는 건 결국 ‘사람’이거든요.
- 어렵게 찾아와주시는 만큼 좋은 수업을 만들기위해 고군분투 하시는 과정이 인상적이에요. 그만큼 현장에 가면 보람과 에너지를 얻기도 하시나요?
=(김) 강사분들은 아마 공감하실 거예요. 수업이 잘 됐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은 수업을 마치고 문을 닫고 나올 때죠. 그때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으면 대체로 잘 된 수업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딘가 아쉬움이 남아요. 사실 어르신 수업은 일반 학생 수업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요. 같은 내용을 두세 번씩 반복해야 하니까요. 그런데도 터치제주에서 강의를 하면 늘 기분 좋게 교실 문을 닫고 나와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수업을 들으시는 분들이 저희를 ‘선생님’으로 존중해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은 90세 어르신께서 제 수업에서 영상 제작을 배우신 적이 있었어요. 그 이후로도 잊어버릴까 봐 연습하신다며, 2년 동안 한 달에 한두 번씩 직접 만든 영상을 제게 보내주셨어요. 그렇게 선생님과 학생을 넘어 서로 마음이 이어질 때, 정말 뿌듯하죠.
=(홍) 제가 수업하면서 제일 큰 보람을 느낄 때는 어르신들의 변화를 볼 때에요.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시는 모습에서 늘 감동을 받아요. 예전에 86세 어르신이 영상 편집을 배우신 적이 있었는데, 열정이 정말 대단하셨어요. 올해는 두 시간씩 버스를 타고 오는 부부 수강생도 계시고요. 그렇게 찾아오시는 분들을 보면, 더 잘 가르쳐드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죠.
수강생분들이 ‘고맙다’며 직접 담근 간장이나 매실청을 챙겨오실 때도 있어요. 먼 길을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하나라도 챙겨주시는 그 마음이 참 따뜻하죠. 하지만 제가 가장 뿌듯한 순간은 일상에서 변화가 느껴질 때예요. 요즈음 제주 농장은 외국인 노동자분들과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번역 어플로 외국인 노동자분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됐다거나, 손녀에게 이모티콘을 보내게 됐다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죠. 젊은 세대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어르신들에겐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특별한 경험이거든요. 그 변화를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에요.
= (정) 작년 수업에서 만난 어르신이 기억에 남아요. 이미 스마트폰을 꽤 잘 다루시는 분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수업에 들어오시면 맨 뒷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시곤 했어요. 본인이 아는 내용이 나오면 중간에 벌떡 일어나서 나가시기도 하고요. 처음엔 솔직히 신경이 쓰이고 긴장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 분을 만족시킨다면, 오늘 수업은 성공이다”라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준비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분이 조금씩 앞자리로 오시더니, 나중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죠.
종강 후에 그 분이 메세지를 보내주셨어요. ‘내가 40년 간 교직에 있었는데, 학생들에게 이렇게 열정적으로 가르쳐본 적이 없다. 많이 배우고 반성했다.’ 그 말을 보고 정말 울컥했어요. 제게는 잊을 수 없는 감사하고 감동적인 경험이었어요.
시니어 수강생과 나눈 메세지 ⓒ터치제주
- 이 문제가 해결됐을 때, 터치제주가 상상하는 제주의 모습은 어떤가요?
=(김) 요즘은 뭐든 디지털로 바뀌잖아요. 그런 세상에서 모든 어르신들이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일상을 누리셨으면 해요. 지금은 대부분 시간적 여유가 있는 분들이 수업을 들으시지만, 정말 이런 교육이 필요한 분들은 제 엄마처럼 해녀로 일하시거나 농어촌에 사시는 분들이거든요. 그 분들은 배우러 나올 시간조차 없으시죠. 언젠가는 그런 분들도 부담 없이 디지털을 배우고, 쓰고,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정) 이제 대부분 전화나 문자 같은 건 다 잘 하세요. 문제는 그 다음이죠. 스마트폰 밖에서 새로운 과제가 계속 생겨요. 이번 주엔 어르신들과 제주공항에 실습을 나갔는데요. 어플로 택시 부르고 이동까지는 완벽했어요. 그런데 막상 출국장 키오스크 앞에서 막히는 거예요. 젊은 사람들은 손바닥만 찍으면 바로 통과하잖아요. 그래서 수업도 점점 더 세밀해지고 있어요. 챗GPT로 유산 분배 얘기도 나누고, 인공지능을 일상 주제로 연결해보기도 해요. 어떤 어르신은 이제 ‘챗GPT 강사가 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단순히 배우는 걸 넘어, 자아를 확장하는 단계로 가고 있다는 걸 느껴요.
=(양) 어르신들이 ‘뒤처질까 봐’ 불안해서 배우는 게 아니라, ‘이거 재밌겠다’ 하는 마음으로 오시면 좋겠어요. 디지털이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는 거죠. 그래서 터치제주 수업이 어르신들에게는 새로운 놀이이자 취미처럼 느껴지면 좋겠어요. 또 전국에 있는 다른 시니어 디지털 강사분들과도 더 많이 교류하면서 터치제주만의 프로그램을 더 발전시키고 싶고요. 그러니 이 인터뷰를 읽고 계신 분 중, 저희 교재가 궁금하시다면 꼭 연락주세요!
인터뷰 및 정리: 희망제작소 사회혁신팀 이혜진 연구원, 최나현 선임 연구원, 안영삼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