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의 희망, 200명의 응원..“소셜디자이너, 문제를 문제로 두지 않는 사람들”

2025-12-12

15개의 희망, 200명의 응원.. “소셜디자이너, 문제를 문제로 두지 않는 사람들” 

‘2025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이하 SIR대회) 현장


지난 4일 아침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오후엔 큰 눈이 내렸죠. 추위를 뚫고 ‘2025 사회적가치투자(SIR)대회’(이하 SIR대회)’가 열린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 청중심사단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사회적가치투자(SIR) 대회에 청중심사단 200명을 모집했는데 조기 마감됐답니다. ‘먹고 사는 일’로 지역과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청년혁신가(소셜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을 시민이 확인하고 직접 투자할 수 있는, 한국에서 유일한 대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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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심사단이 1인당 100만원의 모의투자금(임팩트코인)을 지급받아 투자하면 그 비율대로 실제 상금을 나눕니다. 이 투자는 전국 각지에서 고군분투하는 소셜디자이너들을 향한 응원이지요. ‘당신이 만들고 있는 가치는 대단하다’고요. 이은경 희망제작소 소장은 “100만 원 임팩트코인은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관계가 이어지도록 힘을 보태는 도구”라며 “이 팀이 붙잡은 문제는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 팀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우리 동네는 어떻게 달라질지, 100만 원으로 어떤 관계와 이야기가 더 자라면 더 좋을지 고민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올해 무대에 오를 소셜디자이너 15개 팀은 바짝 긴장했습니다. 피칭 시간은 7분입니다. 그 뒤 라운드테이블에서 프로젝트를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지만, 그 7분 동안 일단 심사단의 마음을 끌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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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의 브로셔를 모아 소셜바인더를 만드는 청중심사단의 모습 ⓒ희망제작소


‘식품 사막화’, ‘바다 사막화’에 맞서는 소셜디자이너들 눈길

이날 피칭과 투자는 두 가지 트랙으로 진행됐습니다. ‘시작을 응원하는 무대(The New Stage)’에는 올해 처음으로 호명된 소셜디자이너 10개 팀이 올랐습니다. 상금 2천만 원을 모의투자비율로 나눴습니다. 순위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결과가 궁금하시죠? 

이중 전남 영광에서 찾아가는 이동장터 서비스를 벌이고 있는 동락점빵사회적협동조합이 가장 많은 투자를 받았습니다(18%). ‘식품 사막’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유통망에서 소외된 지역에서는 돈이 있어도 장 보기 힘듭니다. 상점이 없으니까요. 동락점빵은 이 ‘장 볼 권리’를 되찾아주는 팀입니다. 사회적 인프라가 무너진 42개 오지 마을에 매주 생필품을 실은 트럭으로 찾아갑니다. 마을 노인들에게 비싸게 팔 수 없으니,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일입니다. 제품 구성이 소비자 입맛에 맞아야 하니 상품 구성에 신중합니다. 

김동광 사회복지사는 “간장만 해도 수십 가지 종류가 있다”며  “가지고 갈 두부 정하는 데도 한 달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이 ‘이동 점빵’은 ‘이동형 복지 거점’ 역할도 합니다. 물건 팔고 끝이 아니라 어르신들 냉장고까지 배달하고 안부를 살피거든요. 김동광 복지사는 “어르신과의 대화, 구매 품목, 주변 환경 등을 꼼꼼히 운영기록지에 적고 있다”며 “이 데이터를 활용해 지표를 만든다면 지역이 공통으로 처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프로젝트가 이렇게 큰 지지를 받을 줄은 몰랐다”면서 “상금으로 어르신들이 집 밖으로 나와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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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심사단이 뉴스테이지에 모의투자한 결과 ⓒ희망제작소


‘시작을 응원하는 무대’에서 동락점빵사회적협동조합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투자를 받은 오션캠퍼스(15%)는 경북 울진과 포항에서 ‘바다 사막화’에 맞서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입니다. 수온 상승, 부영양화, 해양 산성화 등으로 해조류가 사라져 바닷속이 사막처럼 황폐해져갑니다. 해조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탄소를 저장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중요한 자원이기도 합니다. 이 팀은 시민 다이버와 함께 바다 폐기물을 수거하고 해조류를 이식해 바다숲을 되돌리고 있습니다. 방점은 ‘시민과 함께’에 찍혀 있어요. ‘반려 해조류 분양’ 프로젝트를 하는 까닭이기도 하죠. 김태오 이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숲 이슈가 이렇게 큰 공감을 받을지 몰랐다”며 “상금으로 해조류 이식하는 데 필요한 밧줄 등 장비를 더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향기 나는 물감을 개발한 부산의 ㈜어나더데이(14%), 제주에서 발달장애인에 친화적인 상점을 발굴해 지도를 만들고 발달장애 부모 학교를 연 행복하게게사회적협동조합(13%), 제주어를 소재로 세대 간, 지역 내 소통을 위한 보드게임을 만드는 헤삭이탐라(12%) 등도 고루 지지를 받았답니다.

올해 ‘시작을 응원하는 무대’에 오른 팀들이 골몰하는 열쇳말은 환경, 돌봄, 공동체였습니다. 이 어려운 문제들 앞에서 소셜디자이너들은 위축되지 않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로 하나씩 대응하고 있습니다. 서울 성동구에서 활동하는 ㈜의식주의는 호텔 폐침구, 폐섬유를 재활용합니다. 원래는 소각된다고 하네요. 그 천을 재활용해 환경 교구 키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구 유성구에 자리잡은 ㈜재작소는 시민이 직접 만들고 고쳐 버려진 자원을 재활용하는 경험을 제공해요. 폐자원을 모으는 ‘자원순환 소재 정류장’도 만들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6070 주민이 2인1조로 이웃을 살피는 동네 관계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시니어활동연구소 ‘오늘도봄날’이 꾸려가지는 함께 돌봄의 안전망이죠. ‘오늘도봄날’은 치매 예방형 인지 활동 워크북 ‘굿레시피’를 개발해 보급합니다. 공동체의 핵심은 대화이겠지요? 

대구 레인메이커협동조합은 대화의 촉진자입니다. 1920년대 지어진 오래된 여관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 ‘대화장’을 열었어요. 세종 조치원에서 청년희망팩토리사회적협동조합은 청년들에게 ‘머물 이유’가 되는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비빌둔덕이죠. 그 공간에서 청년들은 아이디어를 나누고 실험하며 ‘지역 효능감’을 기워갑니다.


기존 소셜디자이너 멤버들의 ‘심화 버전’ 프로젝트도

‘실험을 확장하는 무대(The Next Stage)’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올랐습니다. 기존 소셜디자이너 5개 팀이 그간 실험을 확장·심화한 프로젝트를 소개했습니다. 이 트랙 상금 1천만 원은 가장 많은 모의투자금이 모인 두 팀에 500만 원씩 돌아갔습니다. 

2030 투병매거진 <병:맛>을 발행하는 스튜디오어중간은 여러 이유로 공백을 겪고 있는 청년 창작자들이 최근 활동이나 실적 증명 없이 무상으로 머물며 작업할 수 있는 ‘레지던스 굴(Guul)’ 프로젝트를 소개해 가장 많은 지지(32%)를 받았습니다. 김가현 대표는 “가장 없어질 거 같은 프로젝트를 밀어주신 거 같다”며 “상금으로 굴을 함께 운영할 사무국을 꾸리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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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심사단이 넥스트스테이지에 모의투자한 결과 ⓒ희망제작소


두 번째로 많은 지지를 받은(24%) 박누리 (전)월간 옥이네 편집장은 읍·면자치가 활발한 7~8개 지역의 생활문제 해결 과정을 기록·분석하는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제안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왜 농촌 현장의 사례는 공유되지 못할까? 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데 각자 ’처음처럼‘ 헤맬까?’ 16년째 옥천에 살고 있는 박누리 전 편집장이 본 농촌은 주민 주도로 교육, 돌봄 문제를 풀어가는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박누리 전 편집장은 “한 지역의 실험이 다른 지역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학습 매뉴얼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원도 홍천에서 쓰레기 문제를 노인 일자리, 돌봄과 엮어 해결해 가는 ‘삼삼은구’를 기억하시나요? 동네 쓰레기 분리수거 등을 어르신 일자리와 연결해 풀어간 ‘텃밭모아’에서 시작해 무럭무럭 성장했더군요. ‘공방모아’은 제로웨이스트 공방이에요. ‘수리모아’에선 물건을 고쳐쓰는 곳입니다. 환경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공부모아’도 꾸렸어요. 이날은 지역 주민들이 겪는 자잘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콜센터모아’ 프로젝트를 가지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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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디자이너들의 프로젝트에 더 궁금한 점을 직접 묻고 답을 들을 수 있는 라운드테이블 현장 모습 ⓒ 희망제작소


국내 최초로 로컬 유기농 밀키트와 군단위 새벽배송에 성공했던 ㈜초록코끼리의 김만이 대표는 이날 “유기농 계의 박진영이 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로컬스타트업빌리지 ‘집단지성’도 꾸려가고 있는데요. 5개 팀이 시작해 지금은 40개팀이 함께 하고 있답니다. 그가 이날 내세운 건 ‘오리 아이돌’입니다. 이름하여 ‘유기덕’, 유기농과 오리를 합친 말이죠. 지금 대한민국 유기농업은 붕괴 위기에 처했답니다. 농가수, 면적 모두 줄고 있습니다. 유기농을 ‘먹거리’에 국한하는 한 이런 침체는 더 심해질 거라는 게 그의 문제의식입니다. 먹거리에 머물지 않고 ‘유기농 라이프 스타일’을 젊은 세대에도 알리려면 매력적인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유기덕’입니다. 이 오리 캐릭터들, 진짜 아이돌입니다. 팬사인회도 할 거라네요. 

커피박을 업사이클링해 벽돌, 연필 등을 만들고 또 그 기술을 여러 시니어 그룹에 전수하는 ㈜커피클레이 고유미 대표는 ‘커피 리마인드’ 브랜드를 가져왔어요. 커피박으로 ‘인지 향상 놀이키트’를 만들고 시니어 전문 강사를 양성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어르신들이 ‘수혜 대상’ 아니라 ‘주인공’이 되는 프로젝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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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중심사단이 심사숙고하며 모의투자하고 있는 모습 ⓒ희망제작소 


“청중심사단은 소셜디자이너의 파트너”

뭉클하지 않으신가요? 사회적가치투자대회는 청중심사단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아이디어와 열정을 접하는 자리였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청중심사단으로 참여한 허사랑 씨는 “청중심사단은 소셜디자이너와 손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파트너”라며 “함께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간다는 데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한 청중심사단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 참여하게 됐다”며 “우리 지역에도 활용해 볼만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이 행사를 하는 데도 협력이 필요했습니다. 2025년 SIR대회의 파트너사로는 대한상공회의소 신기업가정신협의회, 아산나눔재단, 카카오, KB금융그룹이, 협력사로는 대구광역시시민공익활동지원센터, 열고닫기, 임팩트얼라이언스, 제주소통협력센터, 충북시민사회지원센터, 청도혁신센터 등이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SIR 사전행사로는 ‘사회혁신가 발굴 및 육성을 위한 공동선언식’이 열렸어요. 국회의원 10명, 지방자치단제창 15명, 사회혁신네트워크와 희망제작소가 참여한 공동선언문은 소셜디자이너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윤종화 한국사회혁신가네트워크 이사장은 공동선언문을 낭독하며 △사회혁신 시민·청년 사회혁신가 발굴 및 육성 △ 사회혁신 활동 생태계 조성 △제도적으로 지원 등을 다짐했어요. 이날 선언식엔 최혁진 국회의원, 김영배 국회의원이 참여했습니다. 윤석인 희망제작소 이사장은 “희망제작소는 사회혁신가 활동을 기록하고, 지역과 중앙, 공공과 민간, 시민과 투자자가 만날 수 있는 장을 꾸준히 만들며, 제도와 투자 구조를 바꾸는 연결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어떠세요?  소셜디자이너들이 전국 곳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니, 세상이 좀 더 살만해질 것 같지 않으신가요? ‘윤달’이란 분은 자신의 네이버 블로그에 이렇게 소감을 적었습니다. “문제를 문제로만 두지 않는 사람들, 그 자리에서 얻은 에너지.”


글: 시민연결팀 김소민 연구위원 | 사진: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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