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해 헤어지기로 결심한 사람들-‘헤어질 결심’ 챌린지 후기
공중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마다 작은 고민에 빠집니다. 손을 툴툴 털어 옷에 슥 닦아버릴까, 아니면 간편하게 페이퍼타올을 쓸까? 옷이 젖는 것도 싫고 쓰레기를 만들기도 싫다면 ‘손수건’이라는 좋은 방법이 있지요. 그런데 지난 몇개월동안 전 희망제작소에서 화장실을 갈 때마다 아래 과정을 겪었습니다.
1.손을 닦는다
2.손수건을 깜빡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3.페이퍼타올을 쓸지말지 고민한다
4.’환경을 생각하는 마음’과 ‘뽀송한 손을 원하는 마음’이 싸운다
5.대부분 ‘뽀송손 마음’이 이기고 페이퍼타올로 손을 닦는다(‘환경 마음’이 이기는 때에는 옷에 손을 슥- 닦는다)
6.내일은 꼭 손수건을 갖고와야지, 결심한다
7.다음날 화장실 이용 시 1번부터 반복한다
바보같은 패턴을 깨기 위해 혼자서 ‘손수건 프로젝트’에 몰두했습니다. 끈질긴 페이퍼타올과 헤어지기 위한 프로젝트죠. 그 시작은 집안 곳곳 숨어있던 손수건들을 찾아 모으는 것이었어요. 그 다음은 손수건을 잊지 않고 가방에 챙기는 것이었고, 그 다음은 화장실을 갈 때 손수건을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해보이지만 한 단계, 한 단계씩 모든 과정을 넘어가는 데 2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손수건을 사용하는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지금 저의 손수건 성공률(?)은 90%를 넘습니다. 드디어 손수건 쓰는 습관이 들었어요! 이를 계기로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데는 ‘습관 들이기’와 ‘묵직한 가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묵직한 가방을 감수하는 습관! 이것이 쓰레기를 줄이는 길이더군요.
시민과 함께 헤어지기로 했어요 💪
그래서 시민과 함께 지구를 위한 <헤어질 결심>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일회용품을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을 매일 가방에 챙기는 챌린지입니다.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면서 ‘앗, 텀블러 깜빡했네’ 하지 않도록, 물건을 사고 비닐봉지를 받아들며 ‘장바구니 가져올걸’ 후회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저 혼자서는 2달이 걸렸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 더 짧은 시간에도 가능할 것으로 믿었어요.
이번 챌린지에 함께한 200여명의 시민들은 매일 ‘나만의 헤어질 결심 3종 세트(장바구니, 손수건, 텀블러)’를 가방에 챙긴 후 네이버 밴드에 인증샷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일상 생활 중 일회용품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마시고 할인도 받았어요”
😅 “무심코 페이퍼타올을 뽑다가 멈추었어요”
😎 “날이 너무 더워서 손수건으로 손도 닦고 땀도 닦고 유용하게 썼어요”
자연스럽게 일회용품을 덜 쓸 수 있는 팁들도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 “현관문 앞에 ‘결심 세트’를 가져다두면 잊지않고 챙겨나갈 수 있습니다”
😊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거나 손목/목에 두르고 다니면 언제든 쓸 수 있어요”
😋 “혹시 모르니 반찬용기도 가지고 다니면 갑작스러운 음식 포장 시 좋아요”
😁 “씨리얼 등의 식품용 지퍼백을 잘 씻어서 재사용하면 지퍼백 사용을 줄일 수 있어요”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아쉬움까지,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소중한 의견이 모였습니다.
😒 “에코백이나 텀블러 무료로 나누어주는 건 그만하고, 이제 사용하기가 더 중요해요”
😔 “오늘 간 식당에서 종이컵을 주더라구요. 소비자만 노력하는 것으로는 부족해요.”
😳 “기업들이 필요없는 포장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해요”
지긋지긋한 일회용품, 그동안 즐거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각자의 일상을 돌아보고 서로 이야기에 공감하며 2주를 보낸 결과, 함께 절감한 탄소는 약 67kg입니다. 소나무 16그루가 1년동안 흡수하는 양이랍니다. 소나무 16그루가 자라는 작은 숲을 상상해보고, 우리가 이 숲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무척 뿌듯했습니다.
활동 종료 후 설문조사 결과, 답변자의 87%가 ‘이번 활동이 실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응답하셨어요. 일회용품 대체품을 가방에 들고 다니는 것이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데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향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행동을 지속할 의향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하신 모든 분들이 ‘그렇다’ 혹은 ‘매우 그렇다’라고 답하셨어요. 평소에도 환경을 생각하며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이 참여해주셔서 긍정적인 답변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텀블러나 장바구니는 이미 잘 사용하고 있었는데, 손수건을 새롭게 사용하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시민과 함께 친환경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항상 노력하는 사람만 더욱 노력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혹은 소비자가 열심히 해도 기업이나 동네 가게가 바뀌지 않으면 헛수고가 아닐까하는 좌절감도 느낍니다. 그래도 저같은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에 헛헛했던 마음이 넉넉히 차오릅니다. 희망이 열매를 맺으려면 수많은 사람들의 햇살같은 손길이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이들의 노력을 보이게 하고, 이들이 외롭지 않도록 서로를 연결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희망제작소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텀블러를 쓴다고 해서 이 땅의 일회용 컵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물티슈를 한 번 거절하는 것이 쓰레기 산을 없애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어서 매일 아침 텀블러와 장바구니, 손수건을 가방에 넣습니다. 각자 할 수 있는만큼 하다보면 하루라도 빨리 좋은 변화가 오지 않을까요? 그 날이 올 때까지 희망제작소는 끊임없이 시민들에게 손을 내밀겠습니다.
시민이음본부 이규리 연구원 / kyouri@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