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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곁의 소셜디자이너(6) – 김영진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 이사장

대전의 해묵은 골칫거리였던 화상경마장이 2021년 3월 문을 닫았다. 수많은 대전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대전 지역의 의제를 2017년 대선 후보들의 공약으로 바꾸어낸 결과다. 그 중심에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의 김영진 이사장과 월평동 주민들이 있다.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은 지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청년네트워크로, 지역문제 연구와 관련 사업으로 수익을 내고 그 수익을 다시 지역문제 해결에 투자한다. 마을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문제해결 전문 소셜디자이너, 김영진 대표를 만났다.

▲ 사회적협동조합 혁신청 김영진 이사장

20여 년간 고질적 병폐였던 화상경마장 문제를 대전시민들과 함께 해결하셨어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대전 월평동에 오래 된 화상경마장이 있었어요. 드라마 <오징어 게임> 1편에서 주인공 이정재 씨가 돈을 따는 곳이 바로 화상경마장인데요, 실제 경마장의 경주를 실시간 중계해주는 화면을 보면서 돈을 거는 거죠.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국가 공인 도박장인 셈인데, 여기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어요.

화상경마장은 원래 교외에 설치해야 하는데, 월평동은 주거지 한가운데에 고층빌딩이 들어섰어요. 연 매출이 2,700억 원쯤 됐고요. 경마가 열리는 주말이면 도박꾼들이 몰려들고 돈을 잃은 사람들이 홧김에 폭력적인 행동도 하고요. 낮에 경마로 돈을 잃은 사람들이 밤이면 근처 유흥업소에서 불법도박도 하니까, 안심하고 살 수 없는 동네가 되어버린 거죠.

지역 주민들이 계속 없애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지자체 선거에 나선 후보들도 공약을 수차례 내걸었지만 해결이 안 됐어요. 화상경마장이 1년에 내는 지방세만 100억 원이 넘다보니, 지자체 입장에선 미온적일 수밖에 없죠.

▲ 도박없이살고싶당 활동 사진 ⓒ혁신청

주민들과 어떻게 하면 화상경마장을 폐쇄할 수 있을까 이야기하다가, 지자체 차원에선 해결이 어려우니 곧 있을 2017년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으로 만드는 건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대전 화상경마장 폐지’만을 목표로 하는 가상정당 ‘도박없이살고싶당’을 결성하고 당원을 모집했는데, 순식간에 150여 명이 모이더라고요. 월평동 주민들은 물론 관심 있는 대전시민들이 함께한 거죠. 연령층도 다양했어요.

본업이 디자이너인 당원은 홍보물을 만들고, 작가인 당원은 방송에 노출할 계획을 세우고요, 시간 여유가 있는 당원은 서울로 가서 대통령 후보들 앞에서 말 가면을 쓰고 시위를 했죠. 결국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와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가 공약으로 채택했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 후 단계적으로 폐쇄절차를 밟아 2021년 3월에 완전히 문을 닫았어요.

해묵은 지역문제를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라는 새로운 해법으로 해결한 셈인데요, 이전까지는 그런 시도를 해보지 않았던 건가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화상경마장 폐쇄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가 2014년에 결성되어 매주 1인시위를 했으니까요. 그런데 출구는 안 보이고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힘들고 지치신 거예요. 그 사이 갈등도 많았고요. 그러던 중 저희와 함께 화상경마장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재정의해낸 거죠. 절실하게 문제를 느끼는 당사자들 외에, 그 문제에 같이 공감하고 함께 해결하고자 하는 동료 시민들이 있고, 또 그걸 도우려는 또 다른 시민들이 있는, 그런 의제로 발전하면서 새로운 해법을 찾아낸 경우예요.

지금도 제가 월평동에 가면 주민분들이 많이 반겨주시거든요. 예전 대책위원장이셨던 식당 사장님이 저보다 한참 어른이신데 ‘도박없이살고싶당’ 당원으로 함께 활동한 후에는 마치 친구처럼 대해주십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연대를 경험하는 것이 이 일의 매력이죠.
지역의 문제를 다루다보면 ‘해결’이라는 결과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실제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고,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해요. 그래서 그 과정을 지탱하는 관계들을 잘 만들고 지키는 게 중요하고, 결국은 그게 동력이 되더라고요.

처음 지역의 사회문제 해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 때 자원봉사 활동을 하러 갔는데, 지역아동센터에 벽화를 그리거나 그곳에서 오래 사신 주민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 집 담벼락에 그림을 그렸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마을공동체 활동’이었어요.(웃음) 당시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색깔이 있고 또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런 경험을 또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주변에 수소문을 하다가 대전의 비영리단체인 ‘풀뿌리 사람들’을 알게 됐고, 졸업을 하고 바로 입사해 마을공동체 지원 업무를 맡았습니다. 2년 정도 경험을 쌓고 퇴사했어요. 지역 이슈에 보다 밀착해서 시민들을 직접 만나며 자유롭게 일하고 싶었거든요. 이후 지속가능한 기반이 필요하다고 느껴 뜻 맞는 이들과 함께 사회적협동조합의 형태로 ‘혁신청’을 설립했습니다.

지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을 ‘사회적협동조합’의 형태로 꾸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존재가 인식을 규정한다’는 말을 좋아하는데요(웃음), 법인의 형태가 무엇인지에 따라서 그 법인의 문화가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협동조합은 1인 1표라고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체계를 가지고 있고, 조직을 결코 사유화할 수 없어요. 사회적 활동을 해야 하니까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든 게 아니라, 조직을 민주적으로 꾸리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이기 때문에 선택했습니다.

물론, 사회적협동조합의 대표는 엄청나게 힘이 들어요(웃음). 권한은 조금밖에 없는데 책임은 무한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는 사회적경제를 지원하시는 분들은 반드시 사회적협동조합을 창업해보신 분들이 지원해야 한다는 신념이 생겨버렸습니다(웃음).

혁신청은 그간 악성부채에 시달리는 청년을 위한 대안은행을 만들고 청년 정책 기획자를 양성하는 일, 청년들의 마음건강과 진로문제 상담, 청소년 기후위기단 운영 등 수많은 일들을 해왔어요. 그중에 가장 자랑하고 싶은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꼽으신다면.

특정한 사업보다는, 시민 당사자들이 지역의 사회문제 해결 과정에서 손님처럼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리와 여건을 만들어내려 노력한 것이 저희 혁신청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해요.

▲ 누구나 정상회담 타운홀미팅 사진 ⓒ혁신청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 ‘대전지역문제해결플랫폼’(이하 플랫폼)이라는 사업이 있어요. 지역의 의제를 당사자들이 직접 발굴하고 발굴한 의제들을 시민들과 함께 논의해서 지자체나 지역의 공기업, 공공기관, 시민사회 단체들과 함께 해결해 나가는 활동이에요. 예를 들면, 저희가 대전의 여러 활동가 분들과 함께 ‘누구나정상회담’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시민들이 지역 곳곳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모임을 만들어 이야기를 나누고, 거기서 나온 의견을 지방선거 공약으로 다듬어서 후보들에게 제안하는 활동이었어요. 선거 이후에는 ‘누구나정상회담’에서 나온 의제들을 플랫폼에서 시민들과 직접 실행해 나간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난을 겪고 있는 시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모으자는 취지로 온라인 타운홀 미팅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최근에는 기후위기 문제해결을 위한 일상의 실천 활동에 주력하시는 듯해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는 기후위기 관련한 의제들이 여러 사회문제 중 한 꼭지로 제기되곤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시민들이 제기하는 모든 의제들이 기후위기로 향하더라고요. 특히 지금의 청소년과 청년들은 본인들을 ‘멸종위기종’이라고 할 만큼 기후위기를 체감하고 있어요.

사실 답은 정해져 있거든요. 하지만 실제로 결심하고 실행하는 데는 굉장히 높은 장벽이 있어요. 채식이 환경에 도움이 되는 건 알지만 당장 내 식단을 바꾸기는 힘들고, 주차장이 없어져서 자동차 이용이 불편해지면 지구에는 너무 좋은 일일 텐데, 정말로 주차장을 없애기는 힘든 거죠. 그러니까 이 시민 수용성의 벽을 어떤 방식으로 낮추느냐가 앞으로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일 거라고 생각하고, 우선은 시민들이 먹고 소비하고 이동하고 폐기하는 삶의 모든 과정 속에서 작은 실천들을 할 수 있도록 좀 도와보자고 생각했어요.

좀 더 많은 분들이 채식을 지향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역의 여러 커뮤니티 매핑을 활용해서 채식할 수 있는 곳들을 찾아내서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연대하고 지원하고요, 지역의 공동체 공간이나 카페 등을 활용해서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8군데 정도 오픈했어요. 내가 조금만 결심하면 바로 제로웨이스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고 접근성을 높이는 거죠. 또 선별장에서 재활용이 안 되는 재질들의 플라스틱을 수거해서 프레셔스 플라스틱이라는 오픈소스 기술로 다시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게 하는 활동들을 하고 있어요.

▲ 플라스틱삽니다 자원순환놀이터 활동 사진 ⓒ혁신청

어찌보면 우리집에 지금 불이 너무 크게 났는데, 내 손바닥에 물을 들고 불을 끄려는 형국이죠. 하지만 이렇게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저를 포함해 많은 분들이 절실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더디더라도 꾸준히 활동을 이어나가려고 해요.

김영진 대표처럼 내 삶의 문제, 내가 사는 마을의 문제해결에 관심 있는 청년들에겐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관성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문제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은 그걸 접근하는 방식과 정의하는 방식, 그리고 해결하는 과정 모두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런 기존의 관성에 얽매이지 않게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고요. 그러려면 사실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겠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게 될 텐데 그런 경험들을 즐기는 것이 소셜디자이너들에게 제일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요.

세상이 다양해졌고 문제도 다양해졌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다양해졌기 때문에 그 다양한 것들을 흔쾌히 마주하고 또 흔쾌히 경험하고 즐길 수 있고, 나와 다른 것을 만났을 때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 그런 다양함을 경험하게 되면 문제가 해결이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적어도 그 문제해결에 참여하는 그 개인의 삶은 굉장히 다채로워질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처음에는 문제해결을 바라보고 뛰어들었지만 뒤돌아보니까 함께 연대한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있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들을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그런 소셜디자이너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 및 정리: 미디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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