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들 찾아다니는 게 진로랑 무슨 상관이냐고요?”
– 2020 내일상상프로젝트 연구 활동 공유
남원과 진주 청소년들과 함께 보낸 두 번째 해, 청소년 진로탐색 지원사업 ‘내일상상프로젝트’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 활동을 진행하면서 청소년이나 현장 파트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뭐 할 게 없는데요, 여기서 진로탐색이 가능한가요?”
“동네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게 청소년들 진로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
핵심을 건드리는 질문입니다. 서울, 수도권, 대도시를 두고 ‘가까운 동네’와 ‘주변’에서 진로를 고민해보자는 게 공허한 외침이 되진 않을지 저희도 비슷한 고민이 있으니까요.
청소년은 지역에, 또 지역은 청소년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프로젝트 참여 청소년부터 지역 현장의 교사, 학부모, 동네 주민, 마을카페 사장님, 유튜버, 목공소 주인까지…….
진로탐색 활동 안에서 ‘지역자원’이란 개념은 특정 직업 분야의 전문가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넓은 범주에서 ‘다양한 삶의 양식을 가진 동네 사람 혹은 공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원 연계 프로젝트가 청소년의 진로의식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커먼즈(commons)적 관점에서 내일상상의 자원 활용은 어떠한 의의를 갖는지, 2020 연구 활동 결과를 간단히 소개합니다.
연구보고서 읽기 지역자원과 연계한 청소년 진로탐색 활성화 방안 연구 – 내일상상프로젝트릍 중심으로
🔸 ‘직업’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성장하는 진로의식
2020년 내일상상에 참여한 14개 프로젝트 가운데 12개(86%)팀이 동네 주민을 진로 활동 멘토로 활용하거나, 인터뷰를 하거나, 공간이나 자원을 대여받는 등 적어도 한 번 이상 지역의 자원과 적극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었습니다. 1차년인 2019년의 연계 현황(프로젝트 9개 중 5개, 56%)과 비교해봐도 그 적극성은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양상이 참여 청소년의 진로의식에는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요? 응답자 71명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참여 전후 진로의식 관련 5가지 핵심역량(①자아이해력, ②협업능력, ③진로주도성, ④직업의식, ⑤지역인식) 지수를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표 <핵심역량 지수> 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5점 척도 26개 문항 모두 점수가 증가하였을뿐 아니라 전체 문항 평균 점수도 3.46점(참여 전)에서 4.09점(참여 후)으로 상승했습니다.
유의미한 변화 중 하나는 ①자아이해력 관련 항목(표 <핵심역량 지수 변화> 참고)입니다. 내일상상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은 단순히 재능을 찾아 훈련하는 직업적 접근이 아닙니다.
일과 삶의 모양을 다층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경험을 중시하죠. ‘자기이해’와 ‘자아인식’ 문항과 관련한 참여 청소년의 FGI(포커스그룹인터뷰) 응답은 이러한 가능성을 잘 보여줍니다.
“…기타리스트나 대금연주자나, 이게 어떤 직업의 개념으로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되게 멋져 보이잖아요. 그런데 (사람책 진행하면서) 그 뒤에 힘든 점도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해야 되나. 그런 게 제가 앞으로 뭔가 결정할 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요.” (참여 청소년 G)
이는 진로교육의 목적 자체를 뒤집어보게 하는 말입니다. ‘나에게 알맞은 직업을 반드시 찾는 것’이 우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다양한 활동 속에서 전과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 전에는 몰랐던 내 관심을 발견하는 것도 진로탐색 영역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활동 주제인) 영상을 촬영하는 것도 좋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 어른들이나 학생들을 인터뷰하러 다닌 게 너무 좋았어요. 제가 원래 낯을 심하게 가리고, 처음 보는 사람이랑은 아예 말을 못하거든요. 생각보다 내가 말을 더 잘 할 수 있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참여 청소년C)
④직업의식 항목에서도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장래 직업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6가지 요소별로 묻는 문항인데요. 표 <직업의식>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높은 소득’과 ‘안정성’이라는 요소는 소폭 감소했습니다.
반면, ‘협동’과 ‘기여’, ‘흥미’ 요소는 작게는 0.9점부터 크게는 1.3점 가까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진로 고민에 있어 돈과 안정적 직업은 중요한 기준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것 외에도 나의 진로를 위해 고려할 만한 선택지는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일단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게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목표였거든요. 그런데 이 활동을 하면서, 직업이 있지만 다른 일을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내가 지금은 이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나중에는 또 다른 일도 해 볼 수 있고, 해 보고 싶다’라는 분들을 만나면서, 저도 용기를 얻게 된 것 같아요.”(참여 청소년 I)
참여자의 진로 및 목표 설정 여부에 대한 질문에는 표 <진로 및 목표 설정 여부>의 결과를 보면 ‘있다’는 응답이 43.7%에서 54.9%로 증가했습니다. 물론 설정한 진로가 있다는 응답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러한 응답을 하는 데 진로의식의 변화가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접 멘토를 찾아갔을 때) 너무 일찍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참여 청소년D)
“사실 저는 노래 부르는 게 재미있기는 하지만 이걸로 직업을 갖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이걸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해보게 됐어요. 더 좋아지고,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해볼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래도 현실적으로 다른 고민이 생기면 안 할 수는 있지만, 그걸 지금 결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요.”(참여 청소년 F)
설정한 진로나 목표가 ‘없다’라고 답한 응답자에 한해 미설정 이유를 물은 결과 ‘내 적성과 흥미를 잘 몰라서’, ‘어떻게 준비를 시작해야 할지를 몰라서’라는 답변이 높게 나타났는데요.(표 <진로 및 목표 미설정 이유> 참고)
흥미롭게도 이중 ‘지금부터 결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라는 응답이 2차에서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이 활동이 진로랑 무슨 관련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요?
🔸 커머닝(commoning), 동네에 자원이 뿌리내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프로젝트의 목적과 주제가 반드시 직업과 연결되지 않더라도 참여 청소년의 진로의식 역량지수는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그것은 내일상상프로젝트가 설정한 진로의 상想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프로젝트의 목적은 동일한 직업 분야의 팀원들이 만나 기술적인 연마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관심을 가졌더라도 공동의 목적을 가진 프로젝트 안에서 자기 역할을 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싹틔우고 확장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커먼즈(commons)와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커먼즈와 내일상상 진로 자원 모두 자원의 특성보다는 자원을 관리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주목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프로젝트 청소년들과 연계했던 자원들은 ‘2개 이상의 관심사를 가진 사람’, ‘아직 꿈이 없는 동네 청년’, ‘N잡러’와 같이 직업의 틀만으로 유형화할 수 없는 다양한 진로 특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안에서 활용하는 진로 자원은 ‘발굴→배포’라는 단선적 형태가 아니라 위 표처럼 순환 형태로 프로젝트와 연결됩니다. 각 자원(사람과 공간)은 단일한 직업이나 전공 분야의 지식을 일방적으로 청소년에게 제공하는 형태가 아닌, 청소년의 니즈에 맞는 방식으로 도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진로체험처를 리스트업해 참여자 수에 맞춰 일괄 분배하는 기존 진로교육 전달체계와 차별성을 갖습니다. 실제 청소년의 진로 고민에서 그러한 빈틈이 갖는 한계를 채워주고자 합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지역사회나 구성원에게 큰 관심이 없더라도, 자신의 진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원을 직접 찾아보는 과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는 지역에 대한 인식을 반드시 긍정적으로 변화로 만들거나, 청소년을 지역에 남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참여자들이 필연적으로 자신의 생활 기반을 구성하고 있는 주변 환경을 새롭게 인지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해보는 경험은 향후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겠죠. 이러한 일련의 활동 안에서 참여 청소년과 지역사회 구성원들은 비로소 사회적 커머닝(commoning)의 주체적 실천가(commoner)가 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 준비 과정부터 마무리하기까지 전부 다 우리 지역 안에서 모두 도움을 받아서 해결할 수 있었던 게 놀라웠어요. 주변에 이렇게 도움을 주고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 많구나 하는 걸 새삼 알았어요.” (참여 청소년D)
조금 더 욕심을 내본다면,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청소년만이 아닙니다. 청소년 활동을 매개로 지역사회구성원 역시 자신의 역할이 확장되고, 새로운 주체와 연결되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네 청소년에게 변화를 기대하고 자꾸만 지역에 남으라고 하기보다는, 누구라도 함께 하고 싶은 활동과 사람들이 많이 있는 동네를 만드는 게 먼저”라는 한 지역파트너의 말처럼, 내일상상의 모든 주체가 그러한 변화를 꿈꿉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3차년인 올해는 희망제작소와 지역파트너가 함께 학교와 마을, 그 안팎의 다양한 주체들을 만납니다. 그동안 발굴한 자원망이 지역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끝매듭을 잘 지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2년간 지역 곳곳을 누볐던 청소년들의 풍부한 상상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도록,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이 될 올해 활동에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 드립니다.
– 글: 이시원 연구사업본부 연구원·lsw@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