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매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안신숙의 일본통신 35
버려진 땅에 체험 농장을 만든 일본 청년들
요코하마 시 카타크라역에서 내려 10여 분을 걸어가면 아담한 주택들이 언덕을 끼고 늘어서 있는 조용한 주택가가 나온다. 그 언덕을 따라서 올라가니 잘 가꿔진 밭들이 흐드러지게 핀 벗꽃 나무들과 함께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화훼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를 지나 ‘키친팜 신요코하마’ 입간판을 확인하고 농장에 들어서자 아라이 카츠야(荒井克也) 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준다. 그는 인터뷰 요청에 농장을 직접 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이곳으로 초대했다. 2007년 설립된 ‘주식회사 마이팜’은 농가의 경작 포기지를 빌려 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2년 전 이곳 요코하마 시에 새로운 형태의 체험농장 ‘키친팜 신요코하마’를 열었다. 아라이 씨는 도쿄, 요코하마, 치바, 사이타마에 위치한 23개의 체험농장을 관리하는 관동지역 책임자다.
사실 그의 권유를 받고 살짝 걱정스러웠다. 보통 체험농장은 도시에 있다고 해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기엔 불편하지 않은가? 그런데 키친팜 신요코하마 농장은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뛰어났다. 또 하나의 인기 비결은 이름 그대로 체험농장에 키친이 있어서 이용자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를 바로 조리해 먹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다.
“키친팜은 내가 가꾼 채소로 맛있는 요리를 해서 식탁에 올린다는 콘셉트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장에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농기구와 작은 키친까지 준비돼 있습니다. 이용자들은 휴일에 아이들과 함께 빈손으로 와서 채소를 가꾸고 수확하여 직접 조리해 먹습니다. 주 3일 농장에 상주하는 관리인의 도움을 받아서 토양 만들기, 야채 심기, 퇴비 주기 등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초보자는 물론 아이들도 농사에 손쉽게 도전할 수 있습니다. 또 채소 건조하기, 과실주 담기, 조리 교실 등의 이벤트를 매달 개최해 수확의 보람과 함께 먹는 기쁨도 나누고 있죠. 가마에서 직접 구워 먹는 피자가 제일 인기 있습니다.”
키친팜 신요코하마는 15㎡ 넓이로 정비된 140여 개 구획의 밭이 조성되어 있다. 현재 모든 밭에 이용자가 들어와 있으며, 이용자들은 5~6개 구획의 밭에 가정의 식탁에 올리고 싶은 제철 채소를 기르고 있다. 또 공동 밭에는 국산 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20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관록이 엿보이는 아라이 씨에게 아직 젊은데 농업과 관련된 일을 선택한 것을 후회되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은 모두 회사에 취직해 넥타이를 매고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과 비교해 급여가 적다는 것 외에는 이 일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흙을 만지며 사니까 스트레스가 없고, 늘 사람들과 함께 하니 즐겁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업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경작 포기지 제로에 도전하다
마이팜에는 아라이 씨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농업과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팔을 걷어 붙이고 뛰어든 젊은이들이 많다. 니시츠지 카즈마(西?一?,32세) 사장은 교토 대학을 졸업하고 잠깐 동안의 회사 근무 경험을 거쳐, 2007년 26세의 젊은 나이에 마이팜을 설립해 농업계와 사회적경제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었다. 농가가 아닌 셀러리맨 가정에서 자란 그가 ‘지산지소(地産地消)를 넘어 자산자소(自産自消)의 새로운 농업 모델로 경작 포기지 제로, 농업 재생을 이루겠다’며 나섰으니 말이다.
농업과 관련된 경험이라고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마당에서 작은 텃밭을 가꾼 것이 전부인 니시츠지 사장을 움직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농가의 고령화로 여기저기 잡초만 무성한 채 버려져 있는 경작 포기지였다. 실제 일본의 경작 포기지는 전국에 약 40만ha로 도쿄 면적의 약 2배다. 농업 종사자 또한 10년 전에 비해 약 33% 이상이 감소했으며, 평균 연령 65.8세, 60세 이상 의 고령자가 약60%, 70세 이상의 고령자가 약 30%를 차지한다(2012년 일본 농림수산부 통계). 농업 인구를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그가 대학 4학년 때 생각한 것이 경작 포기지를 정비하여 체험농장으로 운영하는 사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농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면 당연히 농업 인구가 증가할 것이라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창업 후 그는 경작 포기지를 빌려 줄 농가를 찾아 매일매일 뛰어다녔다. 교토, 효고, 오사카 등에서 반년 동안 300가구 이상을 돌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도회지에서 온 새파랗게 젊은이에게 선조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고집스럽게 뛰어다니던 그에게 돌파구를 마련해준 것이 타니 노리오(谷則男, 52세) 마이팜의 현 부사장이다. 당시 지역 농협의 요직에 있던 타니 부사장은 니시츠마 사장의 이상과 패기에 공감해 농가의 모임에 그를 데리고 다니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덕분에 계약 농가가 조금씩 늘어 체험농장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마이팜의 체험농장은 관동?관서 지방에 약 80개, 2,500여 구회의 밭에 이용자가 입주해 있으며, 지금까지 약 1만 명의 이용자들이 마이팜을 이용했다. 마이팜 체험농장의 강점은 역시 각 농장에 어드바이저라는 관리인이 있어 채소 재배의 지도를 받을 수 있으며, 평일에는 관리를 대신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이팜의 주 이용자는 30대의 가족 회원으로, 도시 샐러리맨들도 무농약 유기 재배에 도전해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자연 지향의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뜻을 가진 농업가 육성을 위한 어그리 이노베이션 대학
마이팜이 두 번째로 도전한 사업은 교육 사업이다. 체험농장을 통해 농업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인 학습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0년 ‘마이팜 아카데미’를 개강해, 주말에 전문 강사진과 함께 유기 재배 기술을 공부한다. 1년 간의 교육 과정을 거친 뒤 취농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농업 기구나 비품을 지원하고 수확 작물을 매입하는 형태로 지원하고 있다. 전업 농업 생활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농협 등에 취직을 알선하여 겸업 농업 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는 어그리 이노베이션 대학으로 이름을 바꿔서 농업 기술 코스 외에 생산, 판매, 가공,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을 공부하는 종합 코스와 양봉 코스 등을 개설해 그야말로 농업 관련 전문 비지니스 스쿨을 지향해 가고 있다. 현재 오사카, 교토, 도쿄, 요코하마 등 8곳에서 진행하고 있으며, 그동안 350명이 졸업했다. 이들 중 약 40명 정도가 취농에 성공했고, 25세의 나이에 연 800만 엔의 농업 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체험농장, 교육, 취농, 판매의 순환고리를 완성하다
세 번째 사업으로 2014년에 교토와 도쿄, 그리고 나고야에 ‘마이 파머’라는 채소 소매점을 시작했다. 어그리 이노베이션 출신의 취농자들이 생산한 채소와 체험농장에서 수확한 채소를 판매하기 위한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로써 농업에 관심을 높이고, 교육을 제공하며, 취농을 지원하고, 수확한 작물을 판매하는 순환의 고리가 완성된 셈이다.
현재 일본 전국의 농가 수는 약 250만 호이다. 전업 농가와 겸업 농가에 이어 ‘자산자소의 취미로 농업을 하는 사람’들 또한 제3의 농가 혹은 농가의 예비군이라는 것이 마이팜의 생각이다. 또한 이들의 수를 1,200만 명까지 늘리고 싶다는 것이 마이팜의 포부다. 이들의 포부처럼 어쩌면 최근에 대학생 등 20대의 체험농장 이용자가 늘고 있다는 사실이 일본의 농업을 바꿀 수 있는 한줄기 빛이 될지도 모르겠다.
글_ 안신숙 희망제작소 일본 주재 객원연구위원 / westwood@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