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방만 경영의 대표 사례로 혁신의 대상이던 공공기관은 이제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 됐고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이렇듯 특권적 위치에 놓인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 이원재 LAB2050 대표
“많은 공공기관이 전담 조직을 구성해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의 개념이 아직 모호한 데다, 관련 업무가 기관 운영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일부 제기되는 등 일선 담당자들은 추진과정에서 다양한 애로사항을 겪고 있습니다.” – 임종순 한국가스공사 상생협력부장
지난 7월 5일 대전컨벤션센터·무역전시관에서 열린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포럼’은 사회적 가치 실현과 확산을 위한 과제 및 실행방안에 대해 주요 공공기관 관계자, 관련 연구자 등 전문가들이 모여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눈 자리였다. 현 정부 핵심 과제 중 하나인 사회적 가치에 대해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는 가운데, 주요 추진 주체인 공공기관들이 느끼는 다양한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았다.
‘제2회 대한민국 사회적 경제 박람회’의 부대 행사로 열린 이날 포럼은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협의체’ 주관으로 열렸다. 협의체는 올해 2월 한국가스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를 비롯한 공공기관과 희망제작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등 연구 및 지원기관 등이 모여 사회적 가치 실천과 확산을 도모하기 위해 꾸린 기구다.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 미흡한 수준”
포럼의 첫 포문은 이원재 LAB2050 대표가 열었다. 그는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와 국민 인식’이라는 주제를 통해 지난 5월 국민 1,027명을 대상으로 LAB2050이 실시한 ‘국민 인식조사’ 결과를 공개했다(온라인, 95% 신뢰수준 오차범위 ±3.06%). ‘국민들은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야 하지만, 현재는 미흡한 상황으로 인식한다’는 게 골자였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사회적 가치 기본법 내 13가지 사회적 가치 유형을 ‘실현수준’에 따라 응답하도록 한 조사(5점 만점)와 ‘사회적 가치 우선 책임 주체’를 묻는 설문 결과가 이를 뒷받침했다. 실제 사회적 가치 13개 유형의 평균 실현수준은 2.85점으로 ‘보통’(3점)과 ‘실현되지 않음’(2점) 사이에 머물렀고 ‘사회적 가치 우선 책임 주체’로는 응답자의 34.4%가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을 1위로 꼽았다.
사회적 가치의 범위가 시간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과거 ‘발전국가’ 시대의 사회적 가치는 경제 영역에 국한하고 개인이나 조직에 가치를 두었던 데 반해, 현재 통용되는 ‘혁신적 포용국가’에서 사회적 가치는 사회, 환경 영역을 아우르고 공동체와 미래세대까지 포괄한다는 것이다. 이원재 대표는 “사회적 가치는 현세대의 삶의 질과 미래세대를 위한 지속가능성을 함께 키우는 것이 목적”이라며 “공공기관은 다양한 영역과 가치를 포괄할 수 있도록 사회적 가치를 조직운영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 개념, 기관별 설립 목적에서 찾을 수 있어”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임종순 한국가스공사 상생협력부장은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실현의 어려움과 극복방안’이라는 주제로 업무 담당자로서 현장에서 느낀 현실적인 고민들을 언급했다. 재직 기간의 절반(15년)을 사회적 가치(사회적 책임) 업무에 몸담은 그는 먼저 사회적 가치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데서 느끼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혁신’, ‘선진화’, ‘창조경영’ 등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분야 핵심 요소로 언급됐다가 사라진 여러 구호들과 현재 ‘사회적 가치’가 얼마나 다른지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사회적 가치는 시대 흐름인 만큼, 구체적인 개념은 개별 공공기관의 설립 목적에서 찾아야 한다”며 스스로 해답을 내놓았다. “경영혁신, 선진화, 창조경영이 공공분야의 목적 달성을 위한 정부의 정책 슬로건(방법론)이었다면 사회적 가치는 공공성에 바탕을 두고 기관 본래 목적에 충실한 경영을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임종순 부장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한 다섯 가지 핵심 원칙도 거론했다. ▲긴 안목의 업무 추진, ▲설립 목적을 토대로 실행 전략 마련, ▲현 상황진단을 통한 방향 설정, ▲타 공공기관 및 민간과 협업, ▲지역 시민사회와 소통이 그것이다. 그는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추진은 경영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미래세대 고려하는 수고 감수해야”
세 번째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실현 사례와 유형’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은 주요 공공기관에서 진행된 실제 사례를 예로 들며 참석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는 연구를 통해 최근 정리한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 방법을 소개했다. ‘기관 설립 목적 및 고유사업 정비’(타입 1), ‘조직 운영상 사회적 책임 이행’(타입 2), ‘가치사슬(Value Chain) 상 사회적 가치 이행 및 확산’(타입 3)의 세 가지였다.
조현경 센터장은 ‘기관 설립 목적 및 고유사업 정비’(타입 1) 대표 사례로 한국철도공사의 산간벽지 주민을 위한 ‘공공택시 철도연계서비스’를 거론했다. 철도공사와 지자체 간 협력을 통해 평소 이동에 불편이 큰 주민들이 지역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로 현재 전국 100개 시·군에서 추진 중이다. ‘철도운영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높여 철도산업과 국민경제에 이바지한다’는 기존 한국철도공사법 제1조(목적)에 ‘국민들에게 편리하고 안전하고 보편적인 철도서비스를 제공하며, 저탄소 교통체계를 확산한다’는 문구를 추가해 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다.
‘타입 2’ 사례로는 한국수자원공사의 ‘계량기를 이용한 어르신 고독사 예방 사업’을 거론했다. 공사의 일상업무인 수도검침 작업을 통해 지역사회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 행정과 연계하는 서비스로 지난해 총 34명이 긴급생계비 지원을 받았다. ‘타입 3’ 사례의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하도급 건설노동자 적정임금제 시범사업’이 거론됐다. 그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공공기관은 시민 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고 미래세대까지 고려해야 해서 업무 과부하가 있을 것”이라며 “일의 개수를 줄이는 ‘마이너스 혁신’도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공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조화시킬까?”
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업무 담당자들의 공감의 발언들이 쏟아졌다. 오수진 한국수자원공사 사회가치창출부장은 “공공기관은 수익성을 놓지 않은 채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기관 전체 차원에서 사업추진 프로세스와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우성 한국철도공사 윤리경영부장도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더라도 공공성과 효율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공공기관 구성원들에 대한 당부도 나왔다. 김영식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사무국장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외부 기관의 진단이나 평가 등을 제도화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도 “다만 구성원들이 사회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작업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일부 논쟁점도 던져졌다. 정창기 희망제작소 대안연구센터장은 사회적 가치를 ‘경제·환경·사회 영역의 다양한 가치를 균형있게 포괄하는 조직운영의 원칙’이라고 본 이원재 LAB2050 소장의 발제 내용에 대해, “사회적 가치에 관한 논의가 공공기관을 넘어 공공부문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칫 실현 주체와 영역이 한정될 우려도 있다”고 언급했다. 또 사회적 가치 ‘용어’나 ‘개념’이 아닌, ‘정책’ 인지도가 61%에 달한다는 ‘국민 인식조사’ 결과가 과연 현실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우려를 나타냈다. 이와 함께 ‘공사의 설립 목적에 사회적 가치가 충분히 반영돼 있다’는 임종순 한국가스공사 상생협력부장의 발언에 대해선 “‘양질의 일자리’, ‘국민편익’ 등 일부 공사 설립법에 명시된 표현이 ‘경제성장’이나 ‘국가경제’와 같은 과거 발전국가의 가치를 극복한 것인지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공공기관 담당부서 관계자, 관련 연구자 등 100여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채,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포럼은 ‘사회적 가치를 공공기관 경영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깊은 공감대 속에서 활발하게 진행됐다. 사회적 가치의 개념과 추진 방법에 대한 현장의 혼란을 고스란히 듣고, 수익성과 공공성 사이에서 적절한 지점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 등 향후 과제를 짚어본 점 역시 큰 수확이었다. 때문에 앞으로 공공기관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추진될 사회적 가치 실현 작업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나아가 민간 기업, 그리고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그림도 어렴풋이 그려졌다.
※ 공공기관 사회적 가치 포럼 자료집 ☞ 내려받기(클릭)
-글: 이규홍 대안연구센터 연구원 · diltramesh@makehope.org | 김현수 대안연구센터 연구원 · ddackue@makehope.org
-사진: 대안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