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희망제작소는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생각해볼 틈도 없이 취업경쟁과 스펙쌓기에 내몰리는 청년들에게 직업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가능성을 보여주고자 마련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당시 희망제작소 연구진은 “전 세계를 다니며 만난 사람들, 다가올 미래를 선도할 유망 직업들, 세상을 바꾸는 소셜비즈니스를 한데 모아” 청년을 위한 재미있고 의미 있는 직업 천 개를 제시했는데요, 이 중에는 이미 별도의 직업으로 분류된 것도 있지만 직업이 아닌 ‘직무’에 해당하는 것도 있습니다. 한두 명의 선구자들이 이제 막 시작한 경우도 있었고, 아주 작은 가능성만 보이던 분야, 연구진이 마음껏 상상력을 펼친 결과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2010년 당시 직업의 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시대적 흐름을 다음과 같이 짚었습니다. ①생태적 세상, ②문화와 예술과 디자인의 시대, ③시민사회의 시대, ④버려진 곳들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시대, ⑤전통과 기술이 만나 고부가가치 상품이 창출되는 새로운 전통의 시대, ⑥영역을 넘나드는 새로운 전문가의 시대, ⑦창조와 혁신의 시대, ⑧파트너십과 거버넌스의 시대, ⑨지역의 전문성이 경쟁력이 되는 글로컬 시대, ⑩공익적 가치를 비즈니스로 연결하는 창조적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희망제작소 연구진의 예측은 얼마나 적중했을까요?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 12년 후 시상식’을 총 5개 부문에 걸쳐 진행합니다.
01. 생태‧환경 분야의 부상은 현실이 됐어
2010년 프로젝트에서 연구진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70여 개의 생태‧환경 관련 직업을 제시했습니다. 업사이클 아티스트, 에코 라이프 디자이너, 대안에너지 사업가, 태양광발전 설비업자, 비건 전문가, 자전거 대여업자, 친환경 상품 디렉터, 재생용지 메이커, 도시농업설계사, 천연화장품회사 CEO 등인데요, 지난 10여 년간 생태‧환경 분야가 주목받으면서 관련 직업과 창업이 활발해졌다는 것은 쉽게 공감하실 수 있을 겁니다.
흥미로운 점은 2010년 당시 연구진이 ‘직업’의 형태로 제시한 것이 오늘날 ‘앱’의 형태로 서비스되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당시 연구진은 보다 친환경적인 생활방식을 안내하는 ‘에코 라이프 디자이너’가 각광받으리라 전망했지만, 요즘은 ‘오늘의 분리수거’, ‘내손안의 분리배출’, ‘기후행동 1.5’와 같은 다양한 에코 라이프 가이드 앱이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 개의 직업’에 소개된 직무와 직업이 앱 서비스로 구현된 사례는 생태‧환경 분야뿐 아니라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으로, 지난 12년간의 눈에 띄는 변화이자 추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02. 로컬 중심 세계관은 현실이 됐어
2012년 국내 지방정부들이 잇따라 마을공동체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2014년 도시재생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경제적 활동영역과 직업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로컬’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된 후 한층 가속화됐는데요, 덕분에 2010년 당시 연구진이 예견했던 ‘정부와 주민 사이의 장벽을 걷어내는 주민소통전문가’를 비롯해 마을기업 전문가, 마을회사 운영자, 통반장 및 이장학교 교육가, 지역공동체 예술가, 커뮤니티 비즈니스 전문가, 도시재생 전문가, 마을공동체 컨설턴트 등의 직업이 현실이됐습니다. 새롭고 재미있는 마을축제를 기획하는 창조적 이벤트 디자이너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겠죠.
03. 먹방 시대의 도래는 현실이 됐어
1인미디어 확산과 ‘먹방’ 유행이 불러온 식‧음료 분야 창직‧창업 활성화를 예견했던 걸까요? 2010년 연구진이 제시한 우리 술 소믈리에, 분자 요리사, 음식 투어 가이드, 메뉴개발자, 음식점 전문 컨설턴트, 요리 전문 방송 제작자, 요리 전문 방송인, ‘타국 음식을 우리나라로’ 셰프 등은 요즘 ‘흔한’ 직업이 되었습니다.
04. 사회적기업 활성화는 현실이 됐어
수요 공급 곡선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경제시스템을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새롭게 설계하는 ‘사회적경제’는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2010년 사회적기업 활성화를 예견하며 연구진이 제시한 사회적기업 허브 운영자, 사회적기업 포털 사이트 운영자, 사회적기업 잡지 발행인, 사회적기업 컨설턴트, 기업 사회공헌 컨설턴트, 사회적기업 아카데미 운영자, 청년 사회적벤처 운영자 등은 어느새 ‘핫’한 직업이 되었습니다.
05. 공익‧공공디자인의 성장은 현실이 됐어
도시와 마을을 공동체 구성원들의 편의와 삶의 질을 고려해 다시 디자인하려는 시도는 공익‧공공디자인 분야의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최근 10년 간 공공디자이너, 공공의자 디자이너, 도시 벽 디자이너, 예술간판디자이너, 시민공간설계자 등의 활약이 눈에 띄었고, 친환경 디자인 흐름에 힘입어 바람길 디자이너, 친환경 놀이터 디자이너도 등장했습니다.
2010년 연구진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디자이너, 장애인을 위한 맞춤형 제품 디자이너의 활약도 예견했는데, 이는 최근 연령, 성별, 국적, 장애의 유무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유니버설 디자인’과도 연결될 듯합니다.
06. 노인돌봄 분야 확대는 현실이 됐어
2010년 연구진은 시니어살롱 운영자, 독거노인을 위한 상담 도우미, 시니어여행 전문가, 시니어 긴급콜 활동가와 같은 직업을 제시했는데요,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에 힘입어 어느 하나 빠짐 없이 ‘유망 직종’으로 부상했습니다.
07. 건강·복지 분야 급성장은 현실이 됐어
건강과 복지 분야는 최근 10년 간 가장 각광받은 분야 중 하나입니다. 연구진이 예견한 대로 건강레스토랑 운영자, 수면카페운영자, 불치병 환자를 위한 음식 컨설턴트, 웰니스코치, 걷기 운동 전문가 등이 생겨났고, 좋은 병원‧의사 가이드와 전국 병의원, 의사 디렉토리 운영자는 앱 서비스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사회복지 규모가 확대되면서 각종 복지제도를 안내하는 서비스(전국복지지도 제작자)가 등장했고, 청년이나 노인, 저소득층을 위한 식당(나눔식당 운동가)도 여럿 생겨났습니다.
예상을 뛰어넘어 각광받고 보편화된 직업들을 꼽아볼까요? 코로나19 팬데믹과 가상현실 기술 발달에 힘입어 미술관과 박물관이 3D 전시로 눈을 돌리면서 ‘3D 갤러리 전문가’가 맹활약 중입니다. 연구진이 당시 신생 영역으로 간주한 ‘집 바꾸어 살기 사이트 (운영자)’는 문을 닫았지만,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이 주춤하면서 국내 특정 지역에서 ‘일주일 살기’, ‘한달 살기’ 등이 유행했고 덕분에 관련 시장이 급성장했습니다. 팬데믹 시기 ‘방콕’하는 시민들을 위해 마을의 걷기코스와 관련 앱이 등장하면서 ‘함께 걷기 좋은 길을 만드는 워킹 코디네이터’의 활약도 두드러졌지요.
그밖에 뜻밖의 직업으로는 우선 쓰레기통 디자이너를 꼽을 수 있는데, 카이스트(KAIST) 배상민 산업디자인학과 교수가 850g의 폐지를 재활용해서 ‘쓰레기로 만든 쓰레기통’을 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립니다. 또한 아크로바틱 요가붐에 힘입어, 국내 첫 서커스스쿨(서커스학교 운영자)가 서울 모처에 문을 열기도 했습니다.
최근의 흐름에 힘입어, 2010년 당시보다 더욱 성장이 기대되는 직업은 무엇이 있을까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지역 인구감소 대응 정책 등의 영향으로 본격적인 ‘세컨드하우스’ 시대가 열린다면, ‘세컨드하우스 헌터’가 각광받을지 모릅니다. 피트니스와 기후변화에 대한 최근의 높은 관심을 고려하면 ‘그린 헬스클럽 운영자’도 주목되지요.
지역살이를 희망하는 도시민들의 증가로 점차 젊어지고 있는 ‘마을이장’도 기대됩니다. K팝과 K콘텐츠의 대유행으로 만개할 K관광산업, 그리고 지역의 특성을 살린 체험 프로그램이 각광받는 세계적인 여행트렌드에 힘입어 ‘한국 이색체험 관광상품 개발자’가 대활약을 펼칠 날도 오지 않을까 싶네요.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 중에는 현실 직업은 아니지만, 꼭 생겨났으면 하는 직업도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사랑방인 학교 앞 문방구가 사라지는 서글픈 현실을 타개할 ‘문방구 디자인 사업가’는 어떤가요? 관계맺기에 서툰 사람들을 위한 ‘사람 잘 사귀는 학교 교장’도 시급합니다. 시간빈곤 시대의 해법을 제시할 ‘시간관리사’,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더욱 재미있고 역동적인 삶을 위한 ‘숨은 끼 발견가’도 꼭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내 현실에 비춰볼 때 과연 현실이 될까 싶었는데 예상을 뛰어넘은 직업 중에 ‘캠핑카 제작자’가 있는 반면, 높은 주거비라는 현실을 감안해도 생겨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 직업으로 ‘거주용 배 제작자’를 꼽을 수 있습니다. 수상가옥이 보편화된 미래는, 과연 올까요? 하나 더, 제아무리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라 해도 ‘구취측정사’는 좀처럼 생겨나기 어려운 직업이 아닐까요?
2010년 희망제작소는 직업이 개인의 삶을 넘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과 비전을 갖고 ‘천 개의 직업’을 제안했습니다. 2022년 희망제작소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일(직업)’로 이어가는 우리시대 소셜디자이너들을 찾고, 연결하는 프로젝트 ‘소셜디자이너클럽’을 진행 중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과 일자리에 대한 희망제작소의 연구와 활동은 계속됩니다!
* 정리: 이미경 미디어팀 연구위원 | nanazaraza@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