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희망제작소는 잊혀졌던 사할린 한인 문제의 역사와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사할린 한인 정의복권재단의 김복곤 이사장님을 초청해 대화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관련 연구자, 관심있는 시민, 사할린 한인 2세 등 다양한 청중들이 모여서 사할린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돼야 하는 한국 사회의 과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인이었고 미국에도 살았고 현재는 러시아국적자로서 사할린에 살고 있습니다. 같은 한민족으로서 울분을 토하고 싶습니다. 러시아국적을 선택하지 않고 지금껏 조국의 부름을 기다려온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국적자로서의 비참한 삶뿐이었습니다. 민족차원에서 실리적으로 도와달라고 말하고자 멀리 러시아에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합리와 논리를 가지고 체면살리기를 하고자 할 뿐 실리적으로 도움을 주고자하는 실질적인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사할린한인들을 통해 외교적 마찰을 피하려는 정부,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는 세력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한국내의 여론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학살과 강제동원,인종차별등 처절한 억압의 역사를 여기모인 젊은이들도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민족적 차원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한국에서 큰 목소리를 내주면 사할린의 한인들에게 정말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러시아의 사할린 섬으로 강제동원된 4만 3천여명의 한인들은 1945년 해방이 됐어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70여년간 정든 고국과 지독한 생이별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리고 ‘잊혀진 70년‘이 가진 슬픈 숙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들을 안고 있다.

잔류한인 1세 지원의 문제, 미래세대의 교육문제, 영주귀국의 문제, 역사청산 소송 등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된 사할린 한인의 역사회복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중대한 과제들이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일본정부의 책임회피 속에서 사할린 한인들은 러시아 땅에서 철저히 소외된 삶을 살아내고 있다.

희망제작소는 지난 2월 19일 오후1시 희망제작소 2층 세미나실에서 ‘2009 해외연사초청 특별강연’ 두 번째 시간으로 김복곤 사할린 한인 정의복권재단 이사장을 초청해 『잊혀진 사할린 한인들의 희망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대화마당을 개최했다.

김복곤이사장이 주 발제자로 나서 사할린 한인1세로서 겪은 사할린의 현황을 알렸고 사할린 희망 캠페인단을 기획 중인 배덕호 지구촌동포연대(KIN) 대표,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일제의 강제동원을 조사 중인 방일권조사관이 논찬자로 참석해 사할린 한인, 관련 시민단체, 정부기관의 다양한 시각에서 사할린한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과 현실적 대책들을 대화하고 의견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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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70년, 사할린 한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조국의 관심

먼저 발제자로 나선 김복곤 이사장은 강연참석자들에게 생소한 사할린 한인문제의 실상과 이를 둘러싼 러시아와 일본,한국의 역사적 맥락들을 생생히 전해주었다.

“여러분들은 사할린한인들의 슬픈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일제강점기, 일본은 전쟁과 석탄 등의 지하자원을 위한 노동력으로 사용하려고 10만명이 넘는 젊은 조선사람들을 만주,북해도,사할린 등으로 강제동원해 끌고 갔습니다.

당시 15만명이 넘던 사할린 한인들은 현재는 겨우 2만4천여명 정도만 남았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머지 12만 사할린 한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일본의 이중징용과 학살과 조국의 무관심속에서 그들은 멀고 먼 죽음의 땅, 사할린에서 소리없이 눈을 감아야 했습니다”

문제의 쟁점이 되는 것은 일본정부의 법적인 책임문제와 보상문제이다. 김이사장은 사할린 한인문제에 대해 법적책임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일본정부와 일본 및 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만을 우려해서 사할린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한국정부가 가진 문제점들을 비판하며 강력하게 문제해결을 위한 책임의식을 촉구했다.

“일본의 사할린 한인들에 대한 강제징용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강력한 국가적 역사청산요구와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외교부를 비롯한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사할린동포지원특별법이 국회에서 표류하는 사이, 일본은 영주귀국을 위한 인도적 지원과 약간의 보상금지원만으로 모든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고 사할린 문제를 일단락하려 하고 있습니다. 강제징용이 아닌 자발적 지원이었다는 등의 뻔뻔한 역사왜곡 및 사할린 한인들간의 내분을 조장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소수의 사할린 한인들의 힘만으로는 강대국 일본을 상대로 진실을 밝혀낼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정부의 침묵 앞에서 국제법과 유엔등의 국제기구에 호소할 수 밖에 없는 상태라고 한다. 뜻있는 이들의 모금과 미국,러시아,일본의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일본을 상대로 한 민사적 소송은 진행되고 있지만 정식적인 일본정부차원의 적절한 배상과 공식적인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한국정부차원의 법적대응 및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이 가장 시급하다. 또한 현실적 이유로 영주귀국을 포기한 한인1세 및 2세등의 생계 및 보상에 대한 논의와 한국의 영주귀국을 택한 한인1세들과 러시아에 남은 한인2세들간의 이산가족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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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의 진상규명 의지를 총괄할 전담기구와 법,제도적 장치마련이 선결과제

김이사장의 발제가 끝나고 논찬자로 나선 방일권조사관은 앞선 김이사장의 문제제기에 대한 정부측의 현실적 입장과 시각차, 앞으로의 문제해결을 위한 선결문제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제가 3년동안 사할린강제동원과 관련한 조사를 맡아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당시 강제동원된 인원수 ,강제동원피해자의 범위에 대한 개념정의부터 사할린한인 1세 당사자들과 관련 시민단체 및 한국과 일본정부 모두 각각의 수치를 제시하며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는 현실입니다.

사할린한인들과 일본의 변호사들의 노력으로 일본에서 열린 사할린 관련 민사재판, 적십자사의 관심과 지원활동, 80년대 사할린 한인 귀환운동 등 개인들의 노력에 비해 정부가 벌인 활동의 양과 성과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방조사관은 18대 국회에서 논의가 되고 있는 사할린한인지원특별법제정 논의와 더불어 일본의 법적책임을 따질 수 있는 역사적 자료 및 증거 등의 데이터가 우리 정부측에 충분히 쌓이려면 앞으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사할린문제가 잊혀지고 정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사할린 한인문제는 정부의 진상규명 의지표명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루빨리 사할린관련특별법과 제도에 의해 특별법제도에 의해 하나의 총괄기구가 필요합니다. 현재 사할린문제는 각각의 관점에서 접근을 하기 때문에 정책이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주귀국정책에서도 영주귀국자의 국내생활 및 적응, 러시아에 남은 가족과의 연락 등 보건복지부,국토해양부등이 주무부서인 외교부와 연결이 긴밀히 연결돼야 해결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기구간의 고유업무의 충돌문제등으로 정부 내에서조차 효율적인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먼저 정부의 진상규명의지를 천명할 전담기구와 법적 장치 및 제도적 정비를 마련한 후 사할린 역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사할린의 한인들과 관련시민단체 및 국내여론의 목소리를 세계로 전하여 사할린사건의 인권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단계적 문제해결방식을 강구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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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귀국정책의 그림자, 사할린 한인들의 가려진 실상에 대한 관심과 목소리 필요

이어서 보조 발제자로 나선 배덕호대표는 작년에 30명의 NGO활동가가 모여서 사할린 전역을 답사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민간사업공동체로서의 한계를 절감했다며 역시 정부차원의 국내의 무관심에 아쉬움을 피력했다.

“2010년까지 영주귀국을 원하는 1세들을 한국으로 영주귀국시킨다고 하는데 그러면 사할린의 70년간의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현장에 사람이 없고 증언할 수 있는 사람조차 여러곳으로 흩어지고 있고 1세분들이 사망하시고 나면 역사에 남기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몇 개의 민간단체의 힘만으로 러시아땅에서 이런 자료들을 모으고 체계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에 남은 역사적 흔적들을 자료로 모아서 역사 기념관을 만들어서 후세에 귀감이 되고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문제는 한국내에서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지적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배대표는 더불어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영주귀국한 사할린 한인1세들과 한인 2세들의 현실적 고충을 듣는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한다고 말했다.

“사할린 한인 1세분들이 한국에 돌아와서 사는 것은 굉장히 힘듭니다. 조국이지만 낯선 곳에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새로운 생활을 꾸려가는 것은 고령대의 이분들에게는 더욱 힘듭니다. 국회의 특별법제정을 통한 정식적인 일본정부에 대한 피해배상청구와 한국정부차원의 지원과 보상문제와는 별도로 그 사이에서 정말 시급한 현장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별도의 지원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어서 진행된 질의응답시간에는 멀리에서 참석해주신 사할린 한인분들은 보다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사할린한인 문제의 심각성과 관심촉구를 거듭 부탁했다.

“저는 사할린 한인 2세입니다. 한인1세인 저희 어머니께서는 정부정책에 의해 낯선 할머니와 짝을 맞추어 한국으로 영주귀국을 하셨습니다. 저도 어머니와 함께 귀국하고 싶었지만 정부방침상 1945년 이전 출생자만 영주귀국대상자이기에 저는 함께 갈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그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고령의 어머니께서는 홀로 안산에서 생계걱정과 사할린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힘겹게 살고 계십니다. 저희 어머니 세대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평생을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합니까. 어려서는 부모님과 떨어져 머나먼 이국땅에서 살아야했고 나이들어서는 또 자식과 떨어져 살아야 합니까…”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한인 2세분의 눈물을 보며 강연장은 더욱 숙연해졌다. 아직도 사할린의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강제징용되거나 이들을 따라 함께 사할린으로 옮겨온 그들의 가족들인 사할린한인 1세들은 한국으로의 영주귀국정책 앞에서 다시 한 번 좌절을 하게 된다. 영주귀국을 택할 경우 영주귀국대상이 아닌 사할린의 가족들과 다시 이산가족이 되어 홀로 낯선 조국으로 떠나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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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한인문제의 해결의 단초는 우리에게 있다

“예전에 사할린한인의 첫 귀환이 신문기사 1면을 장식할 때는 전국이 사할린1세의 귀환운동으로 들썩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한인들의 이야기가 나오면 대부분 냉소로 일관하지요. 또 눈물짜는 이야기구나 하며 진지하게 들어볼 생각도 안합니다. 사할린 한인들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것은 조국 사람들의 무관심입니다. 동시에 가장 힘이 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해결의지와 여론의 관심이지요”

방조사관이 지적한 것처럼 사할린문제의 해결이 지지부진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 사할린한인의 문제는 국가적 자존심회복과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한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17대 국회에서는 장경수 전 의원의 ‘사할린동포지원을 위한 특별법안’과 한명숙 전 의원의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및 정착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됐으나,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된 바가 있으며 현재 18대 국회에서는 김영진 민주당 의원이 ‘사할린동포지원 특별법안(가칭)’ 입안을 준비 중이고,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도 관련 법안을 별도로 준비 중에 있다.

사할린 한인의 역사회복을 위하여, 더이상 지체할 수 없는 역사 현장의 보존 문제 및 사할린에 남은 한인 1세들의 긴급 지원의 문제가 시급하다. 또한 강제동원의 역사가 남긴 미래세대 교육문제 및 자식과 생이별을 해야만 하는 한국으로의 영주귀국의 현실적 문제, 국제법상 소멸시효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역사청산 소송 등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사회는 과연 어떤 책임을 가지고 희망을 얘기해야만 하는지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날의 대화마당이 제2의 대화마당과 토론, 다양한 계층의 관심과 참여를 촉진해 사할린동포지원을 위한 18대 국회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