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곳곳에 ‘연결의 혁신가’들이 있습니다. 자립준비청년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자립에 필요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키퍼의 김성민 대표의 글을 소개합니다.
우리나라 자립준비청년의 현실
우리나라에는 2만 명이 넘는 아동이 부모의 품이 아닌 아동양육시설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보육원과 그룹홈, 위탁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호아동’, 만 18세가 되면 ‘자립준비청년’이라 부릅니다. 만 18세는 법적으로 성인입니다. 자립준비청년은 1년에 2,500~3,000여 명이 됩니다. 아직 어린아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이들에게 18세가 되었으니 어른답게 스스로 책임지고 살아가라고 합니다. 자립준비청년이 되었을 때 아이들은 상상하지 못할 어려움에 처합니다.
후원보다 ‘일자리’에 주목한 까닭
브라더스키퍼를 설립하기 전 비영리단체를 통해 후원과 교육으로 아이들을 지원했습니다. 7년간 일하며 느낀 것은 ‘후원으로는 결코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후원이 중단된 아이들은 범죄나 사기 사건 등 다양한 문제에 노출되고 더 나아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당시 많은 보육원을 방문해 아동을 인터뷰했습니다. 자립을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자립준비청년에게 일자리를 연결해 자립을 지원하는 시도를 벌였습니다. 많은 분들의 지지와 도움으로 100개가 넘는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100명이 넘는 자립준비청년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일자리를 연결해준 자립준비청년이 가장 오래 근무한 기간이 3개월이고, 보통 1·2주 만에 퇴사한 것입니다. 회사의 대표와 자립준비청년을 인터뷰해 보니 공통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회사에서 잘해주면, ‘내가 시설 출신이라 불쌍하게 생각하나?’라는 의문을 가졌고, 반대로 일을 배우다 혼이 나면 ‘내가 시설 출신이라서 막 대하나?’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더랍니다. 이런 자격지심과 피해의식이 관계를 어렵게 했고, 자연스럽게 퇴사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자립준비청년에게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함께하는 사람의 믿음과 관심, 배려와 기다림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저의 경험으로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브라더스키퍼를 시작했습니다.
브라더스키퍼가 자립준비청년과 함께하는 방법
브라더스키퍼는 자립준비청년에게 안정적인 일자리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또한 자립준비청년의 권익과 인권을 대변하고 법과 제도를 만들거나 바꾸는 역할 또한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자립준비청년 지원제도와 정책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경제적 지원은 앞으로 더욱 확대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돈으로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제가 만나고 있는 많은 자립준비청년들 또한 홀로 살아가는 외로움에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고, 10명 중 7명은 정기적으로 약을 처방받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정서적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지켜봐주고 기댈 수 있는 ‘사회적 가족’ 연결해야
사회적 가족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바로 부모의 부재입니다. 부모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자립 18년 차인 저에게도 여전히 부모님이 필요하듯 모든 아이에게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준비된 한 가정과 한 아이를 연결하는 사회적 가족제도를 만들고 싶습니다.
자립준비청년의 삶은 위태롭습니다. 사기 사건과 범죄에 휘말리는 까닭은 조언해 줄 어른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결된 가정을 통해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내 삶을 응원하고, 격려해 주고, 함께 해 준다고 느낀다면 우리 아이들은 한 번 더 용기 내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정책 간 연계성 높이고 기업‧시민사회 참여 확대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각 회사마다 우대사항이 있듯이 브라더스키퍼는 자립준비청년을 우대합니다. 자립준비청년의 경험을 우대함으로써 좀 더 당당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동양육시설에서 지낸 시간만큼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지난 2021년에는 한국직업능력연구원과 함께 취약청년의 자립과 취업 지원 방안에 대한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이런 의견을 냈습니다. “자립준비청년을 위해서는 더더욱 일자리 지원사업 간의 연계를 통한 맞춤형 지원이 요구됩니다. 브라더스키퍼와 같은 사회적기업을 필두로 자립준비청년에게 물질적, 심리적 지원을 동시에 해 줄 수 있는 일자리의 발굴과 함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대기업과 중견, 중소기업의 참여가 절실합니다.”
고용노동부의 국민취업지원제도와 각 시·도의 청년도전지원사업을 연계해 기초와 심화 취업지원이 체계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 자립준비청년들의 역량이 강화됩니다. 아르바이트와 취업 준비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은 자립준비청년의 취업지원책 참여를 유도하려면 일반인보다는 완화된 제적사유를 적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조급함이 완화돼, 본인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고 직업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기존의 청년 자립과 취업 정책 대부분이 일반적인 대졸 청년에게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자립준비청년 역시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고 개선해 가야 합니다.
자립수당이 용기와 희망 주는 제도 되려면
마지막으로 자립수당 지원제도를 활용해 자립준비청년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활용해 주시길 제안합니다.
지난 2022년 8월에는 광주에서 아동양육시설 출신 청년 두 명이 생활고와 외로움 끝에 스스로 삶을 포기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잠시 충격에 빠지기도 했지만 저와 자립준비청년에게는 특별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평균 일주일에 두 건 정도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자립준비청년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자립수당 정책을 적극 활용해 주시길 제안합니다. 자립수당이 처음 만들어질 때 많은 전문가들이 낙인효과를 줄 수 있다고 반대했지만 저는 오히려 자립수당 신청을 통해 자립준비청년의 통계를 확인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통계뿐만 아니라 자립수당으로 자립준비청년의 극단적인 선택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자립수당이 시작된 후로 현장에서는 자립준비청년의 자살 소식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더불어 지난 10월 18일에는 강선우 의원실의 도움으로 자립수당을 받고 있는 아동의 실태까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립 수당 대상자 7,270명 중 20명이 ‘사망’으로 지원금이 중단되었습니다. 숨진 20명 중 14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자립수당을 통계 자료로 활용하면 극단적인 선택과 심리 정서•경제적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8년간 자립준비청년들을 위한 정책과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많은 결실을 맺어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들의 손길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많습니다.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로서 이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으로서 자립준비청년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자립해 갈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제안합니다. 실천적 정책 수립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글: 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 | 사진: 브라더스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