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는 어른들만의 것일까
도시 곳곳에 청소년 공간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청소년 수련관, 진로체험센터, 청소년 문화공간 등등. 다양한 세대가 섞여 사는 도시 속에서 공간을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오롯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의 중요성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공간만 구축해 놓고 실제 쓰임새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청소년의 시각으로, 청소년이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을 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뚜렷한 목적이 없이 그저 시간을 죽이며 빈둥댈 수 있는 공간,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합니다.
하지만 청소년 공간 밖 도시 환경에서 아동과 청소년들은 여전히 눈치를 봐야 하는 군식구 같은 존재입니다. 대중교통 손잡이는 어른의 키에 맞춰져 있고, 좌석에 앉아서도 발이 닿지 않아 자신도 모르게 앞 좌석을 툭툭 차버리면서 성가시게 굴죠. 모든 것들이 어른의 눈높이에 맞춰 설계된 공공장소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공간이라는 감각을 가질 수 있을까요. 도시는 어른들만의 것일까요.
🏡 청소년 문제, 청소년이 문제일까
목포의 청소년이 여가에 자주 가는 곳은 ‘장미의 거리’나 ‘평화 광장’입니다. 여느 도시의 도심처럼 유흥 시설, 상업 시설이 즐비한 공간에서 청소년들은 무엇을 하고 놀 수 있을까요. 어른들의 공간 속에서 청소년들은 골칫거리입니다. 거리에서 소란을 피우는 청소년을 만나면, 따가운 시선부터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요. 정말로 그들이 문제의 근원일까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지역에서도 비슷한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어로 ‘되는 대로 맡겨두라(Laat de natuur haar gang gaan)’는 글귀가 적힌 나무 한 그루가 심겨있는 작은 공원은 청소년들이 좋아해서 자주 찾으면서 소란을 피우는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인근 주민들은 공원에 모이는 청소년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고, 지자체와 경찰이 주의를 기울이고 노력했지만 10년이 넘게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탓에 공신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케니슬란드(Kennisland)는 주민, 청소년, 공무원, 전문가를 모았습니다. 그전까지 시도되었던 해결책에는 청소년은 정작 빠져있었습니다. 공공 공간에서 일어나는 청소년 문제에 청소년을 배제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청소년을 함께 공간을 공유하는 동료 시민이 아닌, 어른들의 공간을 침범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존재로 대하기 때문이죠.
케니슬란드는 청소년에게 공간을 공유하는 주체로서 주민, 공무원, 관련 기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에 동등한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지역에서 오래된 이 문제는 ‘어떻게 청소년을 교화할 수 있을까’에서 ‘도시에서 공공 공간을 어떻게 조화롭게 공유하며 살 수 있을까’로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이 공원을 찾는 청소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 공원을 좋아할까?’, ‘그들은 누구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누굴까. 우리는 같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학교 앞’ 공간을 청소년이 직접 디자인하는 실험을 했습니다.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알발라드(Alvalade) 지역의 한 학교 앞에 대부분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거리와 광장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청소년들에게 물었습니다.
주차장 대신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간, 날씨와 상관없이 언제든지 머무를 수 있는 나무 그늘,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탁자와 의자, 동그란 벤치, 와이파이, 건널목과 좁은 차도, 플라스틱이 적고 친환경적인 장소 등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도시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는 뻔한 공간을 원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소소한 변화를 통해 청소년이 진정 원하는 것은 도시 환경에서 어른들과 동등하게 존중받고 싶은 것입니다.
🏡 실제 쓰임이 있는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데 왜 청소년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참여해야 할까요. 청소년의 권리를 주장하는 관점에서도 청소년의 직접 참여는 중요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제대로 작동하는 해결책을 만들어내려면 청소년의 시각이 필수적입니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깨끗한 물에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혁신적인 시도가 벌어졌습니다. 깨끗한 물을 길어 오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데 이 일을 주로 아동들, 특히 여아들이 도맡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물동이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시간을 빼앗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까이에서 쉽게 깨끗한 물을 기를 수 있는 해결책으로 제시된 플레이펌프는 이런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놀 수 있는 놀이기구에 펌프를 연결하여 물을 길어 올리는 원리로 만들어졌거든요.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아 플레이펌프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어린이들이 싫증이 나서 놀지 않는 놀이기구가 되어버린 탓이 가장 큽니다. 왜 싫증을 느끼게 되었을까요. 놀이는 기본적으로 무(無)목적이어야만 흥미롭습니다. 놀이에 물을 기른다는 실용적인 목적이 생기자, 일반 놀이기구보다 많은 힘을 들여야 했고, 아이들은 더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서비스 최종 사용자(이 경우에는 아이들)의 실제 사용 행태와 시각이 반영되지 않아 비용과 자원이 낭비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주변에서 이런 사례를 흔히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특히 청소년을 위한 시설이나 서비스가 겉으로 보기에는 잘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쓰임이 많지 않아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직접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에 오래된 문제를 청소년들이 주도해서 해결할 수도 있죠. 노르웨이에서 시도했던 ‘오슬로 리빙랩(Oslo Living Lab)’은 고등학생들이 모여 지역의 쓰레기 배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 해결책을 찾아낸 끝에 로컬 비즈니스로 이어진 사례입니다.
처음에는 ‘쓰레기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와 같은 광범위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오슬로 시내 그린란드(Grønland) 지역에 있는 거리 상점에서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로 퇴비를 만드는 실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비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의 조언도 얻어 장비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도 끝에 만들어진 퇴비로 식물 키트를 만들고 상품화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판매합니다. 지역 주민들을 소비자로서 만나고 조사하여 상품성을 갖췄죠. 브랜드를 만들고 디자인하는 과정도 모두 청소년들이 직접 이끌었습니다.
<고등이노베이터의 로컬실험실>은 전남 목포, 무안의 청소년들이 도시 환경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는 것, 그리고 살고있는 지역에서 불편을 느끼는 지점을 발견하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지역사회 어른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에 중심을 둡니다.
각자가 살아가는 도시 전체를 실험실 삼아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보는 과정은 도시 환경에서 소외되었던 청소년이 스스로 자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해당 글은 단행본 <고등이노베이터의 로컬실험실> ‘우리의 문제는 우리의 멋으로 해결하지’ 중 일부 발췌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