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뛰어놀지 않는 놀이터’, ‘쓰레기를 버리지 못할 정도로 예쁘기만 한 쓰레기통’. 어디선가 한 번쯤 봤을 법한 풍경이다.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 모습은 오늘날 정책환경의 단면을 보여준다. 타당성을 검토하고 전문가 자문을 얻어 설계한 정책이 쓸모를 잃은 것이다. 다양한 수요와 상충하는 이해로 더욱 복잡해진 세상에서 공무원이 살펴야 할 부분이 늘어나고 있다.
지금의 정책환경은 공무원에게 새로운 덕목을 요구한다. 바로 시민의 ‘공감’을 얻어내는 능력이다. 공감은 제품과 서비스를 설계하는 디자이너의 직업적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다. 나아가 공감은 함께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믿는 근간이 되기도 한다. 사회 곳곳에서 공감이 요구되는 흐름은 공공영역에서 디자이너이자 협력파트너로서의 공무원이 필요함을 말해준다.
한발 앞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새로운 역할을 해낼 만한 인재 발굴 및 성장 프로그램에 목말라 하고 있다. 하지만 어제의 교육 방법으로 오늘 새로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훈련을 마련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특히 기존 공직자 교육의 경우 체계적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발 빠르게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희망제작소는 새로운 현실에서 능동적 대처가 필요할 때마다 늘 시민과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왔다. 축적된 ‘시민 공감’ 역량을 녹여낸 프로그램으로 지역공동체가 요구하는 새로운 공무원 교육에 힘쓰고 있다. 바로 ‘시민 중심 정책설계 과정’이다. 이 과정은 사용자 위주의 문제접근 방식인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과 희망제작소가 개발한 숙의・소통하는 워크숍 기법인 ‘희망드로잉’을 아우른 ‘공감 정책설계’ 프로그램이다.
올해에는 여러 지자체와 함께 ‘공감 정책설계’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를 시작으로 전북 완주군, 경남 거제시 등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두 개의 목표를 지향한다. 첫째, 공무원 스스로 ‘시민 중심 정책설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둘째, 주민을 대하는 공무원이 현장에서 활용할 만한 문제발견 기법과 숙의 방법을 실습하는 것이다. 즉, ‘시민의 눈’으로 보고, ‘시민의 언어’로 소통하는 게 교육의 알맹이인 셈이다.
‘공감 정책’의 첫째는 ‘시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비싼 놀이기구로 채운 놀이터에 아이들이 찾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아이의 눈으로 놀이터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디자이너처럼 행정 설계자도 ‘관찰과 발견’을 통한 눈으로 바라봐야 시민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다. ‘시민 중심 정책설계 과정’에서는 ‘시민의 눈’이 있고, 없고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생생한 사례를 접할 수 있다. 수강자는 다른 지자체와 해외 사례와 벤치마킹이 어떨 때 실패하고, 어떨 때 성공하는지를 스스로 깨닫게 된다.
‘공감 정책’을 만드는 데는 ‘시민의 언어’도 중요하다. 시민 중심으로 정책문제를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민과 소통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의 언어로 풀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비로소 시민은 정책의 대상, 수요자가 아닌 공동 생산자가 된다. ‘시민 중심 정책설계 과정’에서는 희망제작소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숙의・소통 방법을 고스란히 담아낸 ‘희망드로잉’ 워크숍 기법을 다룬다. 수강자는 공동 디자인과 민관협치의 기초를 마련하는 과정을 워크숍의 형태로 참여하면서 워크숍 기법을 익힐 수 있다.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는 역할은 다른 이에게 요구하기는 쉬워도 스스로 실천하기란 어렵다. 조직문화와 업무 관성을 벗어나는 것은 번거로움을 넘어 때론 고통스러울 수 있다. 무작정 공직자의 등을 떠밀어 역할 변화를 재촉하는 게 마냥 바람직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 다만, 현장에서 시민의 불편을 고민해온 희망제작소는 그 역시 시민인 지역 공무원들과 지자체와 함께 새로운 공무원, 정책 디자이너의 시대를 위한 고민을 나누며 나아가고 있다.
– 글: 이동욱 시민주권센터 연구원·ymarx@makehope.org
– 사진: 시민주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