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우리가 누리고 사는 민주주의는 당연한 걸까.’
‘우리 매 순간 들이마시는 공기 같았던 민주주의는 어떻게 지켜졌을까.’

지난 5월 28일 희망제작소에서 누구나학교에서 ‘민주주의에 끝은 없다’라는 주제로 열린 명사특강은 모두 숨죽여 집중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희망제작소의 이웃 단체인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소장과 함께 한 강연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 소중한 줄 몰랐던 ‘민주주의’를 되새기는 자리였습니다. 희망제작소가 박래군 소장을 강연자로 모신 이유는 5월은 ‘가정의 달’이면서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있는 달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장의 최전선을 누빈 박래군 소장의 통찰력이 묻어나는 강연을 짧게나마 전합니다.

박래군 소장은 故박래전 열사의 형입니다. 청년 시인 박래전 열사는 1988년 6월 4일 숭실대를 다니던 중 “광주는 살아있다”라며 외치며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스스로를 희생한 분입니다. 박래전 열사의 유가족은 민주화운동 정부 보상금 전액을 <인권재단 사람>에 기부했고, <인권재단 사람>은 박래전 열사의 필명 동화(冬花)를 따서 <인권도서관 동화>의 문을 열었습니다. 박래전 열사는 독재정권에 맞서 분신했고, 박래군 소장의 인권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박 소장이 “네 몫까지 싸울게”라고 한 약속은 2019년 현재까지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박 소장은 ‘싸워야 할 곳’이 어디든 찾아갔습니다. 민주화실천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대추리 미군 기지 반대 투쟁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용산참사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이어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공동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동생이 분신한 이후 인권운동에 뛰어든 그가 한국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을 가장 앞에서 지키는 과정에서 그는 숱하게 감옥 신세를 졌습니다. 그래서 박 소장은 “최루탄 냄새가 반갑고,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감옥”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당연히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우여곡절 끝에 얻어내는 것입니다. 박 소장도 민주주의가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독재와 탄압으로 얼룩진 시대를 통과할 때 겁나고 무서웠지만, 그래도 가슴에 뜨거움을 품고 행동했던 사람들이 함께 투쟁하고, 옥살이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 목숨까지 잃는 과정에서 불안하게 흔들렸던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시대에 따라 민주주의도 변화합니다. 박 소장은 과거의 민주주의가 단체 중심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연대하고, 행동하는 모습이었다면, 현재의 민주주의는 세월호 참사와 촛불혁명을 지나면서 시민들이 누군가가 정한 방향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시민 스스로 방향을 정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나가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시민들이 성숙한 방식으로 소통했고, 촛불혁명의 성공이 시민의식의 고양과 능동적인 참여를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냐’,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냐’라고 의심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박 소장은 민주주의를 향한 비관론에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그는 현재가 회의를 걷어낼 수 있다고 직언합니다. 행동하고, 연대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점차 세상의 변화를 불어넣어 현재를 이뤄냈다는 것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에 대한 사회적 변화와 우리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면 ‘바뀌고 있는 세상’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정권이나 권력 중심이 아니라 더디더라도 시민이 함께 한 걸음씩 전진한 게 오늘날의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도 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시민이 이끈 촛불혁명의 뜨거운 기운을 시민사회단체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데 자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현 정부에서는 인권 개선에 힘쓰려고 하지만, 실제로 인권 관련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는지에 대해 박 소장은 아쉬움을 표합니다, 인권이 향상됐다고 하지만, 피해자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환경은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후원회원은 인상 깊은 강연이라 소회를 전해왔습니다. 그는 “‘고통 앞에 중립 없다’라는 말처럼 나 또한 내가 선 자리에서 고통받는 약자 곁에 서는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순간이었다”라며 “귀한 자리를 마련한 희망제작소와 박래군 소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민주주의는 한 명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박 소장 스스로 초심이 흔들릴 때마다 자신이 구속됐던 사진을 꺼내어 본다고 말한 것처럼 인권과 민주주의는 우리 곁에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에서부터 힘이 발휘될 수 있음을 떠올립니다. 40년 전 광주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던 당시 서로 주먹밥을 나눠 먹었던 것처럼 권리를 넘어 밥까지 나눌 수 있는 민주화가 되길 소망합니다. 또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손을 꼭 쥐고 있는 소녀상의 옆자리에 앉겠다는 마음을 되새깁니다.

– 글: 한상규 이음센터 센터장·thomashan@makehope.org
– 사진: 이음센터

6월 희망제작소는 지역에 계신 후원회원님을 만나러 갑니다. 대구·경북 지역 후원회원을 만나는 <하이 후원회원>은 6월 27일 대구 참여연대 지하강당에서 열립니다. 이어 오는 7월에도 유익한 명사특강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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