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 삶을 바꾸는 변화가 시작되는 곳

희망제작소 3주년 기념 서평이벤트 ‘책이랑 놀자! 서평쓰며 놀자!’ 수상작 3편을 발표합니다. 이번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희망제작소 책 많이 사랑해주세요.

☞ 서평콘테스트 최우수작/조혜진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 “마을 – 삶을 바꾸는 변화가 시작되는 곳”

☞ 서평콘테스트 우수작/박석훈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민주주의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몽타주”

☞ 서평콘테스트 장려/황용운
<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현장의 목소리로 찾아가는 우리시대 민주주의”

-서평콘테스트 최우수작/조혜진

[##_1L|1231504342.jpg|width=”205″ height=”300″ alt=”?”|박원순 | 검둥소 | 2009_##]오랜만에 집에 내려갔더니 언니가 달걀을 꺼내놓는다. 웬 달걀이냐고 물어보니 목초지에서 풀어놓고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이란다. 텔레비전에서 공장식 달걀의 문제점에 대해서 보도를 할 때, 방사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에게, 그리고 닭에게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가격이 비싸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언니 말을 들어보니 마트에서 파는 달걀과 가격차가 크게 나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생산자가 인터넷을 통해 파는 계란을 소비자가 직접 사기 때문이란다. 평생을 마트에서 계란을 사던 우리집이 직거래를 통해 방사란을 사다니. 변화는 이미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정도로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박원순의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는 바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곳에 대한 기록이다. 우리는 이미 주변에서 ‘마을’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도시에는 아파트로 빽빽이 들어찬 ‘동’이라는 행정구역을 마을이 대신하고 있고, 농촌의 마을은 인구가 점점 줄어 노인들만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바랄 희 자에 바랄 망 자를 쓰는 이 말은 텔레비전의 공익광고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 막연한 말을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현장에서 찾으려고 노력한다. 즉, ‘마을’이라는 현대사회에서는 생경한 곳에서 ‘희망’이라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것 같은 단어를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작은 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에 있는 여러 희망 보고서 중에 해운대 반송마을의 경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부산에 살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해운대는 신시가지일 뿐이었다. 즐비한 아파트와 고급 주택,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백화점, 유흥과 놀이를 위한 호텔. 그러나 내가 알지 못하는 진짜 해운대는 반송마을에 있었다. 원래 피난민을 위한 판자촌 단지였던 반송마을은 해운대의 원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가장 생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곳일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수억 원을 들여서 지어놓은 고층 아파트 단지에 없는 것이 있었다. 과연 창문도 열지 못하는 아파트의 꼭대기 층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할까? 행복하다고 하더라도 닭장 같은 아파트를 넘어서 이웃과 그 행복을 나눌 수 있을까? 내가 아파트에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해봤을 때 그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송마을의 사람들은 어떤 것을 자신들이 원하는지 선명하게 알고 그것을 이뤄내었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지역주민들을 위한 무료 급식을 하고,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무료 공부방을 만드는 것 자체도 대단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런 일들은 더 많은 자본을 지닌 대기업에서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내가 정말 그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반송마을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어내었다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많은 돈을 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역 주민들의 힘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진정한 저력은 낮은 곳에서, 가장 작은 조직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들이 바로 반송마을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한드미 마을의 정문찬 이장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마을의 변화를 가져온 사람이었다. 그는 도시에서의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시골 마을로 들어와서 이장이 되었다. 어떤 15세기의 철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젊었을 때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고, 좀 더 나이 들어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바꾸고자 했었지만 실패했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 우리 가족을 바꾸고 싶었지만 그것도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인생의 말년에 나를 바꾸기로 결심했는데, 내가 바뀌면 우리 가족이 바뀌고 우리 가족이 바뀌면 마을이 바뀌고, 마을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가 스스로 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에게 변화를 일으키고, 마을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학교, 집, 도서관을 쳇바퀴처럼 오가면서 항상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지난 시간 동안 다른 사람들이 살아오는 대로 그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여전히 학점에 목매고, 영어 점수에 목매며, 보다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항상 학교가, 가족이, 사회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댄다. 그러나 내가 변화한다면, 우리 가족도, 학교도, 세상도 변화하지 않을까? 한드미 마을의 이야기는 나에게 작은 용기를 조금 더 불어 넣어주었다.

집안 식탁 위에 올라와 있는 방사란을 보면서 희망은 달걀 같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딱딱한 껍질을 보면 이 안에 무언가 새로운 생명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힘겨운 노력이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낸다. 희망은 그처럼 내부의 부단한 노력이 세상의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희망은 분명 나에게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