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에 꿈을 담는 ‘명함 코디네이터’

시사IN 기자들이 희망제작소가 제안한 천개의 직업 중 일부를 직접 체험하고 작성한 기사를 시사IN과 희망제작소 홈페이지에 동시에 연재합니다. 본 연재기사는 격주로 소개됩니다.
 

체험, 1000개의 직업 (14) 명함 코디네이터

손바닥만 한 종이 몇 장을 앞에 펼쳐두고, 요가 강사 박유미씨(25)는 생각에 잠겼다. “제가 하는 일의 목적이요? 음… 요즘 몸과 마음이 틀어진 사람들이 요가를 많이 찾는데 그런 분들의 잘못된 자세를 잡아주면서 마음의 병도 함께 치료해주고 싶어요.” 이어 박씨는 지금까지 해온 일, 앞으로 포부, 요가 강사로서 자신이 가진 강점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박씨는 구직을 위해 면접을 보는 중이 아니다. 자신의 명함을 만드는 중이다.

지난 8월10일, 전략명함연구소 유장휴 대표(29)의 도움을 받아 명함 코디네이터 일일 직업 체험에 나섰다. 상담을 통해 의뢰인의 명함에 찍힐 타이틀과 슬로건 등을 정하는 게 명함 코디네이터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 이날 찾아온 요가 강사 박유미씨는 입소문으로 1대1 요가 강습을 소개받은 고객에게 나눠줄 개인 명함이 필요했다. 소속된 요가 센터에서 발급된 명함이 있긴 하지만 센터 로고와 이름, 연락처만 덩그러니 찍힌 그 명함에는 도저히 정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_1C|1151497362.jpg|width=”600″ height=”4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시사IN 백승기 _##]
문제는 새로 만들 그 ‘특별한’ 명함에 무엇을 어떻게 담는가이다. 작은 종이 한 장에 박씨가 어떤 사람이고 뭘 잘하는지를 표현해내야 명함을 받은 사람들이 요가가 필요할 때 그를 찾게 될 것이다. 성공적인 명함을 만들기 위해 유 대표는 질문지 한 장을 준비해왔다. 명함의 목적, 의뢰인의 강점 혹은 상품, 명함을 나눠줄 대상, 타이틀과 슬로건, 스토리를 카테고리별로 나눠 정리할 수 있는 문서이다. 한 시간여 동안 인터뷰해 박씨의 명함을 만들어줄 기초 정보들을 질문지에 채워나갔다.

“명함 만들면서 삶이 정리되는 느낌 받았다”

평소에도 고객들에게 물을 마실 때의 비법 등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요가 수련 팁(정보·조언)을 종종 알려준다는 박씨의 설명에, 명함 한 면에 찍힐 콘텐츠의 윤곽이 얼추 그려졌다. 물 마시기법 등 간단한 팁을 정리한 문서를 PDF로 만들어 다운로드할 수 있는 웹 주소를 명함 뒷면에 기재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유 대표가 먼저 냈다. 3가지 정도 간단한 팁을 텍스트로 명함에 기재해도 전문성을 돋보이게 할 수 있겠다는 기자의 제안도 받아들여졌다. 머리가 맑아지거나 뱃살이 빠지는 요가 동작을 간단한 사진과 이미지 컷으로 넣어도 눈길을 끌겠다는 아이디어가 컨설팅 과정 중에 나왔다.

가장 고심한 건 박씨 이름 앞을 꾸밀 ‘타이틀’이었다. 보통 명함에는 회사 이름과 직함이 박히지만, 명함 코디네이터가 만들어주는 명함에는 조직 속 개인이 아닌 의뢰인 스스로가 정의하는 자기 자신의 브랜드가 담겨야 한다. 논의 끝에 유 대표가 제안한 ‘요가 스페셜리스트’와 박씨가 가장 마음에 들어한 ‘요가 변화 전문가’ 정도로 타이틀이 좁혀지고, ‘몸을 깨우는 사람’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이 그 앞을 수식하는 슬로건 후보에 올랐다. 이렇게 자신을 꾸밀 단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박씨는 끊임없이 자신이 이제껏 한 일과 앞으로 더 확장시킬 꿈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분명 명함을 만들러 왔는데 삶이 한번 정리되는 느낌이다. 앞으로 내가 내 능력을 확실하게 믿고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_1C|1110278052.jpg|width=”600″ height=”119″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전략명함연구소 유장휴 대표가 만든 명함들. 내리막 해결사·건강 디자이너·진심 복주머니 등 독특한 ‘타이틀’이 눈길을 끈다. _##]
명함에 목표 담으면 목표가 이루어진다?

명함 코디네이터는 명함 디자이너와 다르다. 명함을 예쁘게 꾸며주는 업체는 이미 많다. 하지만 명함 코디네이터는 사람마다 각각 지닌 이야기를 간단한 메시지로 뽑아내 그것을 시각 디자인으로 꾸며내야 한다. 유 대표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2009년 초. 한 실버(노령층) 관련 업체에서 마케팅 업무를 담당하던 중 ‘명함 만들기 프로젝트’라는 일회성 이벤트를 연 것이 계기가 됐다. ‘일이 없으니 명함도 없는 게 당연하지’라며 지레 포기하면서도 자신을 표현할 수단이 없어서 늘 불안하고 주눅 들어 있던 은퇴 후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연 행사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주위를 둘러보니 주부·대학생·1인 창업가 등 자기 정체성을 찾고 남에게 알리고 싶지만 쉽사리 명함을 찍기가 민망해 머뭇거리는 사람이 꽤 많았다.

스스로 만든 명함 속에 ‘명함 코디네이터’라는 직함을 찍어 사람들을 만나고 다닌 지 3년여. 수많은, 하지만 단 하나뿐인 명함들이 유씨의 도움을 거쳐 탄생했다. 회사를 다니다가 퇴직해 1인 창업가로 나섰지만 선뜻 사람들 앞에 나서기 움츠려졌던 이들이 ‘소통서비스 경영 전문가’ ‘마케팅 스페셜리스트’ ‘생각 경영가’ ‘커리어경영 전문가’라 찍힌 명함을 들자 한결 자신감이 높아졌단다.

유장휴 대표가 가장 좋아하고 남들에게도 권하는 명함이 바로 ‘꿈 명함’이다.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바를 이름 석 자와 함께 찍어 다른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순간, 그 꿈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단다. 유 대표 스스로 경험하기도 했다. 지난해 대학에서 강의하기·책 쓰기·주부에게 명함 교육하기 등 이루고 싶은 목표를 뒷면에 적은 명함을 사람들에게 나눠줬더니 알음알음 소개를 통해 그 꿈이 모두 이뤄졌다. 마라톤 완주가 꿈인 고객에겐 ‘42.195㎞ 도전 중’이란 문구를, 세계 여행이 꿈인 고객에겐 가고픈 지역을 점선으로 연결한 지도를 명함에 새겨줬더니 몇 달 뒤 “정말 꿈이 이뤄졌어요”라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

유 대표가 명함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꿈꾸는 세상은 바로 ‘세대 소통이 원활한 세상’이다. “명함을 주고받을 땐 누구나 평등하잖아요.” 나이가 적건 많건, 직업을 가진 청년이든 은퇴한 노년이든 사회와 조직이 정의한 직함이 아닌 스스로 부여한 브랜드를 통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유장휴 대표의 여러 명함 가운데 한 장에 적힌 슬로건은 ‘종이 한 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다’이다.

[##_1C|1269013729.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유장휴 대표(위 가운데)는 의뢰인이 가진 이야기를 한 줄의 메시지로 뽑아내는 데 탁월하다. ⓒ시사IN 백승기_##]


이 직업은
명함 코디네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카피라이팅’ 능력이 필요하다. 유장휴 대표 같은 1인 기업가에겐 무엇보다 영업력이 필수이다.

관심이 있다면 유 대표가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꿈 명함 프로젝트’와 ‘트위터 명함 프로젝트’(www.agbridge.kr 또는 cafe.naver.com/myonepaper 참조)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_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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