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이면서 운동, 운동이면서 사업”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는데도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제3국, 개발도상국을 여행하다보면 이런 의구심이 쌓인다. 가까이 30여 년 전,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단군이래 처음으로 배고픔을 잊고 살아간다는 오늘의 한국인들은 가난하지만, 따뜻한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힘겨운 모습을 보며 단지 옛일로만 지나칠 것인가. 여기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사람이 있다. ‘한국공정무역연합(Korea Fair Trade Organization)’ 박창순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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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이 지났어도 폭설이 내리고 한파가 몰려오는 요즈음, ‘공정무역’에 관해 좀 더 알고 싶어 포럼 장을 찾았다. 날씨 탓인지. 포럼장 안이 썰렁하다. 열 서너 명이 눈을 반짝이며 강의에 귀를 기울인다.

사업이면서 운동, 운동이면서 사업

“27년 동안 EBS PD로 교양, 교육 프로그램을 제작하다가 퇴직하였습니다. 그 후 여행 다니며 놀았는데, 노는 것이 일하는 것보다 더 힘들더군요. ‘한살림’ 운동에 참여하면서 공정무역에 관해 듣고 ‘환경적 실천운동’이라고 생각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습니다.

2005년 12월부터 시작하였는데 또 하나의 넓은 세상을 보게 되었죠. 공정무역 생산국인 인도, 네팔 등과 소비국인 영국, 네덜란드 등 실제 현장을 다니면서 2006년 ‘희망을 사고팔다’ 2부작을 제작해 방송하였습니다.”

박 대표는 방송 후, 이런 엄청난 일을 1회성으로 끝나야겠는가 싶어 공정무역 일에 전념한다. 2007면 4월, 빈곤ㆍ환경문제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대학생들과 함께 ‘한국공정무역협회’ 카페를 개설하자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료를 올리며 함께 하고자 하였다.

그 후, 공정무역에 관한 공부모임도 갖고, 워크숍도 열면서 사업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공정무역이 이렇게 좋은데 말로만 해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에게 도움이 되게끔 실제 사업을 해야 합니다. 사업이면서 운동이고, 운동이면서 사업인거죠.”

실제 생활 속에서 어떻게 활동을 해야 하는가. 답은 ‘공정무역 제품을 사서 써야한다’이다. 우리 가까이에서 공정무역 제품이라면 커피, 초콜릿, 또 뭐가 있을까.박대표는 5천여 개에 이르는 상품이 있다며 부부가 함께 쓴 책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와 공정무역 관련 국제단체가 펴낸 책 <공정무역의 힘>을 소개하였다.

아동이 노동을 하지 않으려면?

그렇다면 왜 공정무역이 필요한 것인가.

“지구촌의 당면과제가 제3세계의 인권, 환경문제입니다. 공정무역으로 두 가지를 해결할 수 있어요.”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를 따는 농장에서 아동들이 아침 6시부터 노예처럼 일을 한다. 쵸콜릿을 먹어본 적이 없는 아동들이 카카오열매 수백 개를 따고 있다.

서부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 가나에서 카카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가구당 연소득이 100불에서 110불이다. 이 소득으로 온 식구가 생활해야 하니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다. 아이들도 농장에서 일해야 하는 현실이다. 박 대표가 실제로 가나에 가보니 점심을 먹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시중에 나오는 초콜릿 값은 1달러.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가 돌아갔는지 의문이 생긴다.

박 대표는 공정무역을 통해 개발도상국 생산자들에게 공정한 가격을 보장한다며 영상에 비춘 축구공을 깁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파키스탄의 한 공장에서 아이들이 축구공을 꿰맵니다. 학교에 가지 않고요. 12살 소년이 축구공 32쪽 가죽을 일일이 바느질해서 꿰맵니다. 세 살짜리 인도 아이도 바느질을 하고 있어요. 2006년 라이프지에 이 사진이 게재되어 전 세계에서 ‘나이키 불매운동’을 벌였지요. 지금은 나이키에서 아이들 노동을 금하도록 하청공장과 협약을 맺어 양성적으로는 이런 일이 없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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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이 노동을 하지 않으려면? 부모가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한다. 그러나 이윤추구가 최대 목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실은 다르게 나타난다.

“2000년대 들어 국제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습니다. 카카오는 1파운드 당 120달러에서 40센트 가까이로 폭락하고 면화, 설탕, 커피 등의 가격도 하락했죠.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무역장벽을 쌓고 자국 농부들에게 보조금을 줍니다.

제3세계 농부들 빈곤문제가 더 심화되었죠. 공정무역은 국제 농산물 가격이 아무리 폭락해도 농부들이 안전하게 생산하게끔 최저가격을 보장합니다. 공정무역은 소규모 조합으로 참여하기에 기본 가격보다 약간 더 줍니다.

이익금은 조합원이 회의를 거쳐 마을에 펌프, 진료소, 학교 등을 설치하는 데 사용하고요. 전 세계 공정무역참여자가 150만 명, 가족까지 합하면 750만 명이 혜택을 보고 있다고 국제단체에서 평가합니다.”

공정무역은 이렇게 생산자의 경제적 자립을 돕고, 지역사회를 발전시킨다. 또한, 구매자와 생산자가 장기적으로 협력관계를 구축하니 당연히 환경 친화적 물품을 생산하게 된다. 지구를 살리는 일이다.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공정무역운동이 왜 생겨났을까. 많은 사람들이 유엔개발계획(UNDP), 국제부흥개발은행(IBRD),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제공하는 원조 방식에 의문을 가졌다. 수십 년 동안 경제 원조를 해도 가난한 원주민들은 여전히 굶주리고 있으니까.

“스페인 출신 수녀님이 인도에서 ‘Creative Craft’ 라는 단체를 만들어 여성들에게 재봉 기술과 뜨개질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옷, 가방 제품을 유럽에 가져다가 팝니다. 스스로 자립하도록 도와주는 거죠.

돕기만 하는 게 아니라, 혜택도 돌아옵니다. 일례로 영국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공정무역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해 수익을 올립니다. 시민들이 원하니까요.”

1988년 ‘막스하벨라르’ 커피는 네덜란드 시장 진출 첫해에 2%의 점유율을 기록해 공정무역운동에 희망을 심어주었다. 과테말라 커피 농부들이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우리가 일하는 정당한 대가만 쳐 달라’며 시작한 공정무역상품이다.

1946년 미국의 시민단체 텐사우전드빌리지가 푸에르토리코의 바느질 제품을 구매하면서 시작된 공정무역의 역사는 60여 년이 흐르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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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국제공정무역연합(IFAT)은 70개국에서 300여 조직을 거느린 단체이다. IFAT는 IFTA의 10대 기준을 충족하고 감시를 받는 공정무역 조직에 공정무역 마크를 제공한다.

1)경제적으로 불리한 생산자들에게 기회부여 2)투명성과 책임 3)역량 강화 4)공정무역 촉진
5)공정한 가격 지불 6)성 평등 7) 노동 환경 8)아동노동 9)환경보호 10)지속적인 무역 관계

이런 기준 하에 가입하려면 자기 검증을 해야 한다. 또 상대가 평가를 해야 한다. 상호평가ㆍ상대평가 후 자격이 갖추어지면 ‘세계공정무역기구’에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엔 아직 없다.

세계가 다 함께 살 수 있는 기회

영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대형 백화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공정무역이 성장한 이면에는 영국인의 땀방울이 녹아있다. 특히, 정치인, 종교인 등 사회지도층이 틈틈이 국민들에게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카카오 농장을 방문하여 농부들과 이야기하는 총리, 공정무역의 필요성을 설교하는 주교의 모습이 영국인들에게 낯설지 않다. 또 영국 정부는 공정무역자료를 만들어 보급하는 일을 지원한다.

그 결과 영국민 70%가 공정무역을 이해하고 공정무역 운동에 참여한다.

그 혜택은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생산자에게 정당한 가격을 지불했으니 좋은 제품이 돌아오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가 다 함께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게 원조라면, 물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공정무역입니다. 공정무역 시장은 해마다 3, 40% 늘고 있습니다. 사업적인 마인드가 있는 분들이 많이 참여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이 사업을 성공시키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동참으로 한국 공정무역시장이 활발해져서 세계인들이 우리를 새롭게 인식하기를 바랍니다.”

글ㆍ사진_ 해피리포터 정인숙

Comments

““사업이면서 운동, 운동이면서 사업”” 에 하나의 답글

  1. 석상열 아바타
    석상열

    말로만 듣던 공정무역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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