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재난 치유를 위한 4가지 제언 ②

프로젝트 참여자 4인 미니 인터뷰

10.29 참사를 기억하고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시도로서 ‘사회적 재난 치유 소셜디자이너’ 프로젝트가 처음 기획된 것은 지난해 11월 말,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성균관대학교 심리학과 대학원 교수진과 학생들, 희망제작소 연구진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12월 중순입니다. 이후 참가자들은 강연과 워크숍, 그룹토론 등을 갖고 총 4개 팀으로 나뉘어 팀별 실천과제와 실행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1월 13일부터 2월 12일까지 4주에 걸쳐 사회적 재난 치유를 위한 그룹별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애초 계획한 대로 잘 되어가고 있을까요? 그간 참가자들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4개 팀별로 한 명씩, 짧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시민이 만드는 안전사회 매뉴얼
정옥아_PSYLIGHT

Q. 프로젝트 전, 나에게 10.29 참사란
당시 실시간으로 상황을 접하면서 믿기지 않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후 10.29 참사를 생각하면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무의식적으로 사건을 외면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내가 나서서 무언가를 해야겠다’ 혹은 ‘내가 10.29 참사와 관련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Q. PSYLIGHT 팀이 주목한 문제와 해법
저를 비롯해서 팀원들 모두가 10.29 참사 당시 저희도 모르게 많은 사진과 영상을 찾아보았더라고요.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저희가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고, 몇몇 팀원들은 사건을 떠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간접외상’이라고 부르는데, 저희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이 10.29 참사로 인해 간접외상을 경험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에 간접외상의 위험성과 예방법, 그리고 해소법 등에 대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저희 팀은 일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작은 안전사고나 징후들이 모여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압사사고에 대한 우려가 사전에 제기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대비책이 마련되지 않았고,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는 불법건축·시설물이 있었으며, 참사가 발생하기 전 수많은 신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참사로 이어진 것에 대해 한 개인 혹은 소수의 집단에게만 책임을 묻기는 어렵겠죠. 이에 저희 팀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물리적·심리적 안전’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Q. 활동하며 느낀 의미와 재미
팀원들과 함께 10.29 참사에 대해서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까?’ 혹은 ‘어떤 생각과 감정을 느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유익했지만, 무엇보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10.29 참사 이후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함께 논의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실천했던 일련의 과정들 덕분에 추후 사회적 사건이나 재난을 바라볼 때 ‘왜(why)’, ‘무엇을(what)’, 그리고 ‘어떻게(how)’를 모두 고민할 수 있도록 시각이 넓어진 것 같아요.

Q.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이것이 달라졌다!
10.29 참사가 워낙 충격적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사건을 회피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10.29 참사는 한 사람만 경험한 재난,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할 사고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경험했고,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할 사회적 재난임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10.29 참사가 우리 모두에게 상처를 준 사건인 만큼 우리 모두에게 치유가 필요하며, 또 참사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 역시 다 함께 노력해서 치유해야 한다는 점이 사회적으로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 활동기간이 더 길었다면…
저희 팀은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서 ‘아차사고 사례집’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것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사례를 추가하여 위키백과처럼 방대한 자료가 모인 ‘안전백과’가 만들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이렇게 모인 자료들이 단순히 안전에 대한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사고 혹은 사회적 재난을 감지하는 단서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더불어, 한국심리학회에서 참사 직후부터 전문가들의 무료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많이들 모르시더라고요. 이러한 정보들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한국심리학회(혹은 사회적 재난 치유를 위해 힘쓰는 다른 단체)와 시민들을 연결하는 협업 프로젝트’도 진행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간접외상, 공감하고 위로하며 넘어서기
유채빈_비 온 뒤 무지개

Q. 프로젝트 전, 나에게 10.29 참사란
10.29 참사는 거리감을 가늠하기가 유독 어려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의 참사들과 마찬가지로 그곳에 있지 않았던 제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부분들이 있음에 멀게 느껴지지만, 종종 다니던 길목에서 그토록 많은 또래의 시민들이 사망했다는 점에서 참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릴 적 집안 행사에서 몇 번 만나 놀았던 먼 친척 동생이 이번 참사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현실감과 비현실감이 동시에 몰려왔던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슬프고 혼란스러웠다는 느낌이 제게는 컸고, 같은 감정을 겪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것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무언가’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Q. 비 온 뒤 무지개 팀이 주목한 문제와 해법
저희 팀이 주목한 것은 사회적 재난과 물리적으로 혹은 정의된 관계에 있어 가깝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심리적 충격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특히 많은 이들이 경험하였을 간접외상에 초점을 맞추어 그간 다소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었던 참사의 영향과 피해의 범위를 넓혀보고자 했습니다.

또 간접외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이는 결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다른 이들은 이 심리적 스트레스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공유하고자 했습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보다 현실적인 방안들을 나누면서, 그 과정에서 현재 시민들의 이야기를 모으기 위한 설문을 진행하고, 응답을 워드클라우드로 정리해 SNS 상에서 카드뉴스 형태로 배포할 계획입니다.

Q. 활동하며 느낀 의미와 재미
워크숍을 진행하며 인상 깊었던 점은 사람들이 참 같고도 다르게 생각한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워크숍의 가장 첫 활동으로 10.29 참사가 일어난 당일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감정을 경험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모두가 애도라는 큰 흐름 안에서 각자의 온도와 시각을 갖는다는 것이 새삼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치유에 관한 더 다양한 의견, 더 다양한 방안들을 듣고 실천과제를 구체화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로젝트 계획을 세울 때에도 개인으로서는 간과하였던 민감한 부분들, 혹은 스스로 너무 민감하게 생각해 깨지 못했던 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순간들이 있어 좋았습니다. 팀 프로젝트가 이래서 도움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Q.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이것이 달라졌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민들이 모여 재난에 대응하고자 하는 것이, 또 한 개인으로서 그에 참여하는 것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재난에 대한 사회적 치유라는 것이 필요한지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저 한 사람이 경험하는 어려움, 심리적 스트레스를 나름대로 지나보내고 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또 전문가도 아닌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민의 관점에서 더 잘 보이는 것들과 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 개인들이 모여 공동체로서 재난에 대응하는 것이 (단순히 그에 참여하는 감각만으로도) 생각보다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Q. 활동기간이 더 길었다면…
개인적으로 이 프로젝트에서 하고 싶었던 활동 중 하나는 인터뷰인데요, 저희 프로젝트의 핵심이 이야기를 수집하고 공유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을 보다 확실하게 아는 분들을 만나 그 경험을 구체적으로 나눌 수 있다면 저희 가이드 제작에도 도움이 되고, 그를 본 다른 분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 더 큰 독려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타깃을 조금 좁혀 이태원 상권에 계신 분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10.29 참사가 100일가량 지난 지금에도 그 직·간접적 영향을 모두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계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상대적으로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계시지 않나 합니다.

* 인터뷰 정리: 이미경 연구위원 | nanazaraza@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