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살고 싶으신가요?

지난해 폭우로 반지하 집이 침수돼 장애인 가족 3명이 숨졌습니다. 서울시 발표를 보면 1년이 지난 지금, 장마를 앞두고 당장 필요한 물막이판도 대상 가구 중 22.3%에만 설치가 됐습니다. 올해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습니다. 왜 삶을 지탱하는 필수적인 공간을 갖기가 이리 힘들까요? 희망제작소가 사회혁신가 4명과 함께 자산 가치가 아니라 삶의 터전인 집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지난 4월 온라인으로 벌인 ‘주거X시민: 터전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지상중계합니다.

철거된 재래지상 떡볶이 할머니는 어디로

1강 ‘눕지 못하는 방, 비적정 주거를 아십니까?’-정상길 전 경기도주거복지센터장
“제가 다니던 대학교 바로 옆에 재래시장이 있었어요. 거기 떡볶이가 이삼천 원인데 성인 4명이 먹어도 될 정도로 푸짐했습니다. 재래시장 재개발되면서 어느 날 상인들이 학교에 와 도와달라는 거예요. 관악구에서 유명한 조폭 출신이 운영하는 용역업체가 와 시장 할머니들을 끌어내고 있었어요. 저도 많이 맞았어요. 무섭고 분하고 쪽팔렸어요. 쫓겨나는 시장 상인들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 인터넷에서 재개발 관련 법을 찾아봤습니다. 이명박 서울 시장 시절이었는데 뉴타운 재개발로 학생들도 하숙집에서 많이 쫓겨났어요. 그래서 노점상, 시장상인, 철거민들과 함께 무대뽀로 세입자학교를 열었습니다. 당시 제 어머니가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전세로 사셨는데 거기도 재개발로 전셋값이 1~2년 만에 3500만 원에서 6천~7천만 원으로 뛰었어요. 몇 년 지나니 1억3천이 되더라고요. 어머니나 재래시장 이웃들은 왜 아무 죄없이 쫓겨나야 할까요?

서울 은평구 신사동은 한강 수재민들이 모여 살던 곳이에요. 제가 일했던 사회적기업 두꺼비하우징이 이곳 산새마을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을 했어요. 원주민이 떠나야 하는 재개발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동네를 만들기로 했죠. 개사육장이 있었는데 마을 주민들과 사회적 기업 직원들 구청 직원들이 함께 청소하고 텃밭을 가꿨어요. 이 텃밭에서 작물 길러 잔치도 해요. 동네 집들 단열도 했고요.

아이엠에프 이후 노숙인들이 많아졌는데 주거지센터에서 이분들에게 임대주택 정보 알려드리고 고시원, 옥탑방, 비닐하우스, 피시방 이런 ’비적정주거‘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을 임대주택으로 옮기는 일을 했어요. 고시원도 월 20~30만 원은 내야 하는데 그 돈이 없는 분들은 피시방에서 지내요. 경매로 집이 넘어가거나 불이나 집이 타버리면 당장 갈 데가 없어요. 임대주택 중 잠깐 남는 주택을 긴급지원주택으로 활용했습니다.

비적정주거는 생활서비스, 건축, 사회적 접근성 등을 기준으로 봤을 때 적정하지 않은 주거이지요. 유엔주거특보가 한국을 다녀갔는데 제도적으로 또 인권적으로 경악스러운 면이 많다고 했어요. 싱가포르 공공임대주택은 웬만한 중산층도 들어갈 정도로 입지가 좋아요. 불안정노동자가 많이 사는 임대주택이야말로 지하철에 가까워야 해요. 우리나라는 주택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는 사회인 거 같습니다. 도시의 비적정주택들은 계속 늘어날 거 같아요. 주택청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평집에서 행복합니다”

2강 스스로 집짓기와 작은집 마을만들기-문건호 작은집건축학교 교장, 손정현 ㈜자크르 대표

“7박 8일 동안 작은집 한 채를 완성하는 건축학교를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만드는 작은집은 3~4평에서 6평까지입니다. 저희는 365일 중 340일 이상 이 작은 집에 사는데 굉장히 행복해요. 시골 작은 집으로 이주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2년 전에 수강생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조합원은 150명이에요. 그분들과 함께 작은집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3년 전세로 살 수 있는 작은집 10개, 모임공간, 카페도 만들었어요. 이런 마을이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작은집 운동은 미국에서 시작됐어요. 제이쉐퍼라는 미술교사가 바퀴 달린 집을 지었는데 거기서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3평 안에 주방, 화장실, 샤워 다 갖춰져 있고 쾌적하고요. 저런 방식도 있구나, 사람들이 놀란 거죠. 작은 집은 시골에 지어야 해요. 문밖으로 나가면 자연이 펼쳐지는 곳에서 이런 작은 집은 아늑하죠. 행복해지는데 그렇게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몸소 살아보니 알겠어요.

시장이 변하고 있어요. 비전문가들도 얼마든지 건축에 접근할 수 있어요. 요즘엔 유튜브에 정보가 다 나와요. 저희 목조 주택도 표준화된 공법을 써요. 모듈화돼 있어 원칙대로만 하면 100년도 유지되는 훌륭한 집을 지을 수 있어요. 공구도 날마다 좋아지고 교육 기회도 늘어나고 있고요. 작은 집에 장점들이 있어요. 먼저 에너지 비용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어요. 또 집에 뭘 채울 수가 없으니 소비가 줄어요. 청소 정리는 5~10분이면 끝나고요.

저희가 꿈꾸는 마을은 이래요. 교육 공간에 강의나 프로그램을 꾸려도 좋지 않을까요? 퇴직하신 분들 재교육도 받고요. 청년들이 바퀴 달린 집을 지어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며 여유로운 스타트업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장년과 청년이 활력을 가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 싶어요.”

“사회주택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

3강 새로운 집들이 몰려온다: 협동조합주택과 사회주택-이주원 도시커뮤니티연구소 대표
“급여를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죠. 지출을 낮추는 게 중요해요. 비용을 낮추면 삶이 윤택해지죠. 사회주택은 저비용 사회를 위한 기반이라고 생각해요. 집은 우리를 지켜주는 물리적 공간이죠. 집은 또 심리적 장소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마친 뒤 휴식할 수 있는 장소죠. 공간이 물리적인 것이라면 장소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의미를 부여한 곳입니다. 집을 잃어버린다는 건 물리적 안전지대와 심리적 장소를 잃는 것입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집을 상실한 고통을 극단적으로 겪게 되는데 정치권에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집, 그게 바로 사회주택입니다. 사회적기업이나 공공이 합리적 가격에 공급하는 사회주택은 가능합니다. 사회주택은 공공 또는 사회적 임대인(비영리법인, 사회적기업, 협동조합)이 운영 관리해 시장보다 낮은 임대료로 수요에 따라 공급하고 안정적인 거주 기간을 보장하는 집입니다. 대한민국에선 민간주택과 공공임대 시장이 따로 놀아요. 다시 말해 이중 임대시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공공임대에 사는 사람이 ‘거지’라고 불릴 정도죠. 생애주기별로 주거 이동을 할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드는 게 정부와 사회주택 사업을 하는 혁신활동가들의 역할이에요.

사회주택을 100년 전부터 시작한 네덜란드의 대표적 사회주택들은 건축상을 받을 정도로 디자인이 훌륭해요. 한 사거리 네 코너엔 사회주의, 가톨릭, 기독교 등 이념이 다른 주체들이 만든 사회주택들이 마주 보고 있기도 합니다. 네덜란드 주택의 34~40%가 사회주택이에요.

한국에서 사회주택의 시작은 2011년 서울 마포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1호’입니다. 민간이 먼저 시작했고 공공이 지원했습니다. 지금 서울에 사회적 주택이 3천 호가 넘습니다. 저는 이 새로운 집을 안정, 안심, 편안 ‘3안’이라고 표현해요. 거주기간이 ‘안정’된 집.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심하며 살 수 있는 집입니다. 그러려면 커뮤니티가 살아 있어 서로를 돌봐줘야겠죠. 그리고 주거환경이 편안한 집입니다. 이 ‘3안’이 갖춰져야 물리적 공간, 심리적 장소로서 주택에 부합합니다. 사회적 임대인이 소유하지만, 우리집처럼 살 수 있는 집, 이는 하나의 큰 흐름이기 때문에 더뎌질 수는 있지만 멈출 수는 없어요.”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이웃, 있나요?”

4강 ‘당신의 주거는 안녕하십니까?: 우리 삶을 바꾸는 공동체 주거 ’위스테이’-양동수 소셜디벨로퍼 그룹 ‘더함’ 대표

“한국 사회는 소득격차 자산격차가 굉장히 커지고 있어요. 자산격차의 핵심은 부동산이죠. 부동산이 신계급을 만듭니다. 더 큰 문제는 주거, 부동산 문제가 우리 사회 관계망을 해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30년간 정부는 자가 소유를 촉진해 왔습니다. 경제 성장과 부동산 가격을 담보로 1가구 1주택 그림을 그리게 했죠. 지금 주택보급률이 104%까지 올라간 건 그 결과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무주택가구가 43.9%입니다. 자가 소유는 획기적으로 늘어날 수 없는 구조예요. 주거 불안정 요소들이 커지고 있고요. 자가이거나 공공임대로 이분화돼 있는 구조에선 우리 선택 폭이 제한적입니다. OECD 인덱스를 보면 우리 사회 주거 품질 수준은 41개국 중 8위입니다. 그런데 삶의 만족도는 35위, 사회적 관계망은 38위예요. 왜 방치하고 있을까요?

주택 공급 관점보다 어떻게 하면 도시에서 새롭게 커뮤니티를 재구성해 사회적 안전망을 다시 만들까 하는 문제 의식에서 사회적 기업을 시작했습니다.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가 원하는 양질의 주택에서 함께 어울려 살 수는 없을까? 2016년 2월 협동조합형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지축과 남양주 별내에 시세 대비 50~60%로 지낼 수 있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파트형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주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거기 사는 사람들인데 건축 과정에서 이 사람들은 항상 맨 마지막에 등장해왔습니다. 주민들이 주도권을 가지려면 개발단계부터 참여해야 해요. 제 목표는 이들의 참여를 최대한 앞당기는 것이었어요. 입주민들이 참여해 커뮤니티공간을 만들었습니다.개발 이익이 건설사나 시행사가 아니라 주민으로 이루진 사회적협동조합에 돌아가요. 다양한 형태 커뮤니티에 사회적 경제 비즈니스까지 연결해 경제공동체까지 가는 구조를 만들려 합니다. 입주자 30% 이상이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고, 주민 71.7%가 급할 때 이웃에게 아이를 맡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씨앗을 봤습니다. 사회적 관계망을 만드는 주택이 많아지고, 도시 전체가 시민참여 구조로 나아가야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을 겁니다.”

주거X시민 강연 1,2강
주거X시민 강연 3,4강

*정리: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monduck@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