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오만과 편견

혁명의 땅, 쿠바. 깊은 밤 첫발을 디딘 그곳은 더운 공기로 가득했다. 공항은 작고 어두침침했지만, 걱정과 달리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뜨거운 공기를 맡으며 버스에 올라 호텔로 가는 길, 가로등 하나 없는 깊은 어둠을 지나는 그 순간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익숙하다 못해 삶이 되어버린 ‘문명’과의 단절을 말이다.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와 번갈아 격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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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땅, 쿠바. 깊은 밤 첫발을 디딘 그곳은 더운 공기로 가득했다. 공항은 작고 어두침침했지만, 걱정과 달리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뜨거운 공기를 맡으며 버스에 올라 호텔로 가는 길, 가로등 하나 없는 깊은 어둠을 지나는 그 순간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익숙하다 못해 삶이 되어버린 ‘문명’과의 단절을 말이다.

세상 어디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어떤 정보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은 한국의 인터넷 환경에 익숙했던 나. 그런 나에게 쿠바라는 곳은 절대적인 문명과의 차단과도 같았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게 만들던 스마트폰은 카메라와 시계 기능을 제외하고는 무용지물이 됐고,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국영 통신사에서 전용 카드를 구매해야 했다. (그마저도 계속 연결이 끊겨 시도하고 또 시도해야 했다) 지루한 순간의 반복은 그곳의 여유를 맛보기도 전에 불편함과 답답함을 머릿속에 박아버렸다.

나는 왜 불편했던 걸까?

10여 년 전 쿠바를 꿈꿨던 적이 있다.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를 도서관에 박혀 이 책 저 책 읽으며 고민하던 시기에 만났던 한 자전거 여행기 덕분이었다. 그땐 무엇을 봐도 가슴이 뜨거웠고, 나도 어서 빨리 세상을 탐험하고 바꾸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여전히 텍스트에선 감동하고, 몸은 움직이지 않고, 순간순간의 열정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것들이 조금씩 사라졌다. 중독처럼 SNS를 찾고 웹서핑을 그리워하며, 호기심과 열망으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파편적인 장면을 자랑하기 바쁘다. 그곳에서 내가 왜 불편했는지에 관한 고민 없이, 그 불편함마저 액세서리처럼 이용하는 ‘관종’(관심에 목매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빠른 것, 새로운 것, 편리한 것에 대한 집착

그래서 아직 쿠바에서의 시간을 떠올리는 게 말끔하지 않다. 내 머릿속에 박힌 불편함은 혁명, 사회주의, 경제봉쇄, 이중화폐 등의 배경과 이슈에 갇혀 대화 한마디 나눠보지 않은 쿠바인의 삶을 재단했다. 재미없는 삶, 의욕 없는 삶, 벗어나고 싶은 삶. 피상적 느낌과 섣부른 판단, 나의 기준과 세상에 맞춰 그들을 바라봤다. 내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며 자신을 찍어달라던 쿠바의 청년에게 난 어떤 눈빛을 하고 있었을까?

여행이 좋은 건, 낯선 공간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나고 만나지 못했을 너를 만나며 비우고 또 채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툰 색안경은 비움을 훼방 놓고, 마음속에 엉뚱한 것들을 채워 버린다. 내게 남은 쿠바의 잔상이 그렇다. 빠른 것, 새로운 것, 편리한 것에 대한 선호와 집착이, 있는 그대로의 속도와 자연, 그리고 그 안의 삶에 무뎌지게 만들었다. 이건 일종의 반성문이다. 언제든 내가 다시 쓰게 될지 모를 색안경을 좀 더 빨리 자각하기 위한.

– 글 : 조현진 | 목민관클럽팀 연구원 · heyjayzo@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