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04클럽·HMC 모임 / 후기] 궁궐박사가 들려준 창덕궁 이야기

궁궐을 거닐기에 참 좋은 날씨입니다. 맑은 하늘과 어울리는 신록의 빛과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월 27일, 40여명의 호프메이커스클럽과 1004클럽 회원들의 만남은 이렇게 산뜻한 봄날, 창덕궁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이날의 창덕궁 답사에 대한 부푼 기대감을 내비칩니다.

새로 취임한 박재승 희망제작소 이사장도 이날 회원들과의 첫 만남에서 “우리사회의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는 희망제작소의 회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며 환영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번기회에 비로소 궁궐을 답사하는 올바른 시각을 새롭게 얻어가기에 충분했습니다. 흥미진진한 역사 이야기로 우리를 안내해준 궁궐박사 홍순민 교수의 눈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입궐’ 하기 전 창덕궁에 예를 갖추다

홍순민 교수는 창덕궁 답사를 시작한다는 말과 함께 우리 모두를 창덕궁 입구와는 정반대로 데리고 갔습니다. 돈화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도로변의 제일 끄트머리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창덕궁에 대한 예를 차리는 것은 ‘입궐’하는 것부터 시작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돈화문 옆쪽에 위치하고 있는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바로 쏙 입장해버리는 것은 창덕궁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저 먼 곳에서부터 돈화문의 전체적인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창덕궁 답사의 첫 번째 순서라는 말이었습니다. 더불어 그러한 예를 차리지 못하도록 동선이 만들어져있는 관리체계를 바꾸고 싶다는 말을 꺼내기도 합니다.

창덕궁의 입구인 돈화문은 입장하는 문이 세 개입니다. 왼쪽에 있는 서현문, 가운데의 어문, 오른쪽에 있는 동현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중 어문은 임금이 드나드는 문으로 양쪽의 다른 문보다 너비와 높이가 조금 더 큽니다. 또한 동현문은 우의정, 좌의정과 같은 관료들이 드나드는 문이고, 서현문은 이를 제외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홍 교수는 한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전통건물들 가운데 자연과의 조화를 잘 나타내는 예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어서 돈화문 한가운데의 어문을 통해 보이는 경관을 주의 깊게 보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어문을 액자로 삼은 북한산의 봉우리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닌 철저하게 의도된 것으로, 건물을 지을 때 자연과의 경관을 중요하게 여긴 조상들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궁에 들어갈 때 흔히 ‘입궁’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하는데, 이는 궁녀가 궁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입궁이 아닌 창덕궁에 예를 갖춰 ‘입궐’ 하였습니다.

[##_Gallery|1171684879.jpg|돈화문으로 입궐하는 회원들|1165643545.jpg||1118153639.jpg||width=”500″ height=”333″_##]

창덕궁에 한걸음 내딛다

돈화문을 통과해서도 바로 창덕궁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홍 교수의 말에 의하면 들여다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다보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창덕궁 바깥쪽에서 백성의 눈으로 돈화문을 바라보았다면, 마찬가지로 창덕궁 안쪽에서는 임금의 눈으로 밖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각자 자신이 역사 속 임금이 된 듯 돈화문 너머를 바라보았습니다. 스스로가 임금이 되어 바깥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과연 어떤 성심이 마음속에서 꿈틀댔을까요?

‘입궐’하여 창덕궁 안으로 들어서니 창덕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늠름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홍 교수는 과연 이 기념비가 이곳 창덕궁 입구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맞는가, 남의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의 취지가 초기의 오래된 세계 곳곳의 유산들을 지키자는 것과는 달리, 현재는 힘 있는 국가들이 자기 나라의 문화유산들을 먼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것만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도 드러내보였습니다.

궁 안에는 ‘금천’이라고 불리는 작은 개천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하는 궁의 특성상 물길을 품는 구조를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다리와 물길에 새겨진 돌 조각상에는 당시의 기술로 만들어졌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고 견고했습니다. 돌 조각상을 보려고 일제히 다리 아래로 고개를 내밀어 관찰하는 회원들의 모습이 참 인상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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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문’에 들어서다

‘전·당·합·각·재·헌·루·정’ 이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건물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먼저 ‘전’은 궐과 사찰 등 가장 높은 신분을 가진 분들이 머무는 가장 높은 신분을 가진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은 사가 중에서도 높은 격을 가진 건물이며, 격이 낮아질수록 ‘합’, ‘각’으로 연결됩니다. ‘재’는 특히나 조용한 장소에 지어진 건물을 나타내며, ‘헌’은 마루가 넓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회의 등을 하는 건물, ‘루’는 높이가 높은 건물, ‘정’은 경치가 좋고 탁 트인 곳에 지어진 건물을 말합니다. 결국 건물에 붙여진 이름을 통해 그 건물의 격과 건물주인의 위치(신분)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회원들은 일제히 홍 교수의 선창을 따라 위의 여덟 글자를 한 글자씩 또박또박 외쳐봅니다. 헷갈리고 낯선 단어들이었지만 귀에 착착 감기는 홍 교수의 설명과 함께 외우니 금방 외워졌습니다.

그렇다면 ‘조정에 나아가다’ 라는 말은 무엇일까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아리송하지요? 정확한 의미는 ‘벼슬을 얻거나 국정에 참여하는 지위를 얻다’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조정이 바로 인정문 안쪽 마당처럼 넓게 펼쳐진 공간을 의미하는데 사방을 둘러싼 문을 모두 닫으면 이곳은, 커다란 하나의 폐쇄된 공간이 됩니다. 과거 이곳에서는 즉위례와 같은 각종 행사가 치러졌다고 합니다.

그 커다란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처마에는 여러 개의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나란히 읽어보니 ‘호위청’, ‘상서원’입니다. 호위청은 호위 군사들을 관리하던 곳이고, 상서원은 마패와 같은 직인을 관리하던 곳이라고 합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두 현판이 나란히 처마 밑에 붙어있었던 이유는 바로 끼워 맞추기 식으로 궁을 재편하였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조사 없이 자리만 채우면 된다는 식의 복원은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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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창덕궁 곳곳에서는 ‘오리지날’과 ‘가리지날’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현판과 더불어 바닥에 깔린 박석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오리지날’은 역시나 보기에도 밟기에도 멋스러우면서 자연스럽습니다. 반면 ‘가리지날’은 오리지날과 최대한 비슷해 보이려고 애를 쓴 흔적이 많이 보이지만 부자연스럽고 투박합니다. 홍 교수는 이렇게 가리지날을 가려낼 수 있어야, 비로소 오리지날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단한 흡입력을 지닌 홍순민 교수의 설명에 우리 모두는 잠시 현대가 아닌 과거로 돌아간 듯 했습니다. 우리는 잠시 한 숨 고르고 인정전 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변의 조화와는 전혀 무관하게 삐죽삐죽 솟아있는 건물들 사이로 인왕산이 애처롭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주변 자연경관과의 조화를 중요시 여기던 선조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창덕궁, 그 중 인정전에는 다른 어떤 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물음에 회원들은 내재되어 있던 학구열이 솟아오르기라도 한 듯 다양한 예상 답안을 내놓습니다. 정답은 바로 인정전 바로 뒤에 산자락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너무 익숙해서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새로운 사실이었습니다. 인정전을 한 폭의 자연 속에 고스란히 옮겨놓은 선조들의 지혜가 다시 한 번 가슴을 깊게 울렸습니다.

또다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인정전처럼 건물 뒤에 바로 산자락이 존재하면 전쟁이 잦았던 과거에는 방어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을 것 같다는 질문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약한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 홍 교수의 답변이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구조에는 국가의 특성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과 같은 경우 내전이 많았기 때문에 방어력을 최우선으로 여겼고, 과거 조선의 경우에는 전쟁이 발발하면 산으로 피신을 가는 특성 등을 나타낸 것으로 예상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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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는 궁궐박사!

궁궐박사 홍순민 교수의 설명은 찹쌀떡처럼 귀에 착착 달라붙었습니다. 눈앞에 근엄하게 자리 잡은 창덕궁의 모습과 설명을 대조해보며, 회원들은 홍 교수의 주위를 둘러싸고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을 하는 모습입니다. 또한 씹어야 맛이라며 현재 관람하도록 되어있는 창덕궁의 객관적인 모습과 역사적 사실, 복원과정에서 드러난 문화재 보존의 허술함 등을 신명하게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중간 중간 쌩뚱 맞게 자리 잡은 잔디, 화장실, 카페를 볼 때마다 우리들에게 ‘웬 잔디?’, ‘웬 화장실?’, ‘웬 카페?’라고 속 시원하게 소리칠 수 있는 기회도 선사해주었습니다. 또한 교수님 특유의 양자택일(?) 설명방식에 회원들은 정확한 답을 찾아 열심히 대답해주었고, 설명을 듣는 내내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 밖에도 역사 속 창덕궁의 모습을 실감나고 생생하게 설명해주어서 그런지, 먼 과거의 창덕궁 이야기가 우리 바로 앞에 생생하게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즈넉한 후원을 거닐다

제한된 인원만이 후원을 답사할 수 있었던 터라 우리 호프메이커스클럽과 1004클럽 회원들만이 살며시 들어간 후원은 갑자기 고요해진 분위기로 숲속을 거니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래도록 걷고 있었던 참에 후원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돌렸습니다. 후원은 풍락을 위한 장소만은 아니었습니다. 잔치를 베풀고, 열무와 시사(활쏘기) 등을 했던 종합 광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구경거리, 관광지가 아닌 것이지요. 창덕궁의 곳곳을 둘러보다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습니다. 회원들의 얼굴에 비친 붉은 석양빛이 마치 아쉬운 여운처럼 느껴졌습니다. 내려와서도 한참동안 우리 모두의 발걸음은 여전히 창덕궁 후원 어딘가를 거닐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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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이야기꽃을 피우다

저녁식사를 하며 나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서로 마주한 회원들과 정겨운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새롭게 인사하는 두 명의 회원(김현지 회원, 이승우 회원)의 인사를 들어봅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진심과 진심이 통하면 다 친구가 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좋은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기쁩니다.”

네, 환영합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희망제작소의 벗이 되어주세요. 그리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내민 회원들의 인사도 빼먹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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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만남에는 가족과 함께 동행한 분들이 참 많이 왔습니다. 이 모임의 터줏대감, 영원한 오빠(유영아 회원의 표현) 이영구 회원은 “아내와 함께 왔습니다. 가족과 함께 오신 분들은 축하드리고, 여건이 되지 않아 혼자오신 분들은 잃기 전에 꼭 함께 다니고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세요.” 라고 인사를 전합니다. 천경송 희망제작소 고문은 홍순민 교수와 회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회원들의 안녕을 기원하였습니다.
반가운 만남은 늘 행복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 글 : 이지은(회원재정센터 인턴 연구원)
· 사진 : 나종민(호프메이커스클럽 회원/바라봄 사진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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