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여행이 뭐길래

 2011년 1월, 공감만세의 필리핀 공정여행에 참가한 동화작가 이선희님의 여행 에세이 ‘편견을 넘어’를 1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공감만세는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있는 청년 사회적기업으로 희망제작소의 청년 소셜벤처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희망별동대 1기를 수료했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조금 더 많은 분께 공정여행을 알리고, 또 다른 여행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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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을 넘어 (12)
공정여행이 뭐길래

필리핀 공정여행을 다녀온 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받았다.
“공정여행이 뭐예요?”

얕은 지식을 있는 대로 끌어다가 설명해보기도 하고 추상적인 답변으로 감정에 호소도 해보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공정여행은 ○○이다’와 같은 명확한 대답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지식이든 감정이든 내가 열을 내어 설명하고 난 뒤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좋은 경험했네” 혹은 “그런 불편한 여행을 왜 해?”

그러니까 두 가지 다 내가 원한 반응은 아니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했더라면 한 사람이라도 더 공정여행에 참여하고 싶은 의지가 생겨야 할 텐데 내 얘기를 들은 가까운 친구들조차도 공정여행을 특별한 혹은 특이한 여행으로 취급할 뿐 앞으로 자신들이 다닐 여행의 범주 안에 쉽사리 공정여행을 껴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싼값에 태국 패키지여행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얘기에 여행사가 어디냐, 얼마가 들었느냐, 뜨거운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일반적으로, 그러니까 내 주변에 직장을 다니는 20대 후반 이상의 여자들이 원하는 여행은 아름다운 휴양지에서 여유를 누리거나 화려한 도시에서 쇼핑을 즐기는 것이지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거나 원주민의 집에서 입에 맞지 않는 식사를 하거나 골치 아픈 현실을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그렇다. 내 친구들이 원하는 여행은 공정여행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공정여행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말이다, 친구들아. 나는 왜 이렇게 너희들과 공정여행을 나누고 싶지? 도대체 공정여행이 뭐길래.

지난 8월, 다시 한 번 필리핀 공정여행을 다녀왔다. 1월에 다녔던 루트에서 바기오만 빠지고 똑같은 일정이었다. 두 번째 하는 여행은 첫 번째 하는 여행과 다른 설렘, 다른 기대를 안겨주었다. 멋진 풍경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설렘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기대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얼굴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옷가지와 여행용품 대신 필리핀 친구들에게 줄 선물로 배낭을 채웠다. 그렇게 다시 필리핀을 찾았다.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 끼앙안 홈스테이 때 나를 재워주고 먹여 준 맘, 노래를 불러주었던 드웨인, 그리고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눈물을 글썽였던 다이몬. 이들을 다시 만났다. 다이몬은 헤어질 때처럼 눈물을 글썽이며 달려와 나에게 안겼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아, 드웨인의 잘생긴 형 아얀이 바기오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여 집을 떠난 것만 빼고 말이다. 나는 여행자가 아니라 친구였고, 그곳은 여행지가 아니라 내 친구네 집이었다.

[##_1C|1036804576.jpg|width=”500″ height=”37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다시 만난 끼앙안 친구들_##]끼앙안 뿐만이 아니었다. 바세코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바세코 홈스테이 때 만났던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끼앙안의 가족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데 반해 바세코 가족들의 생활은 몹시 불안정했으니까. 그들이 그곳에 계속 살고 있을지, 살고 있더라도 그 넒은 바세코에서 과연 그들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만날 인연이었을까. 너무도 쉽게 다니 -바세코에서 나를 재워주고 먹여 주었던 꾸야(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따갈로그어)-를 찾은 것이다. 아니, 그냥 눈앞에 그가 있었다. 카발리캇(바세코의 주민조직) 사무실 앞에서 열심히 가구를 만들고 있는 다니를 보았다.

“다니!”
내가 그를 부르자,
“써니!”

놀라움에 눈을 크게 뜨며 그도 내 이름을 불렀다. 아쉽게도 가족들 전부를 보지는 못했다. 가져간 선물을 다니를 통해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나야(다니의 여동생)가 보내준 선물을 받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지난 홈스테이 때 나야가 구워주었던 생선.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구워주었던 바로 그 생선이 연두색 비닐 봉투 안에 가득 들어있었던 것이다. 한번 먹어보았을 뿐인데 그 맛이 너무도 익숙했다. 한번 만났을 뿐인데 그 사람들이 너무도 친근한 것처럼.

반가운 사람들을 만났는가 하면 새로운 사람들도 만났다. 물에 잠긴 마닐라 도로를 운전하며 나와 종교에 대한 경건한 대화를 나누었던 운전수 에이드리안(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말로 나는 그를 경악시켰다), 내가 묵었던 끼앙안 홈스테이 집에서 지내며 이푸가오 전통과 문화를 연구 중이던 캐서린, 동화작가라고 소개했더니 “작가는 거짓말쟁이”라면서 나를 놀리던 바나우에 청년 존 폴. 비록 짧은 대화, 짧은 만남이었을 뿐일지라도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여행은 또 새롭고 더 풍요로웠다.

여행은 무엇일까?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곳을 가보는 것, 그것이 여행이다. 이것은 너무도 쉽다. 집만 나서도 여행이 된다. 여행은 또 무엇일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 이것 또한 여행이다. 하지만 여행에서 사람을 만나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관광책자에 나오는 명소들만 좇다보면, 다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편리한 숙소만 이용하다 보면, 값비싼 브랜드 매장으로 가득한 백화점만 돌다보면 결코 사람을 만날 수가 없다. 그곳에서 우리는 그저 여행이라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일 뿐이고,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은 우리의 소비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우리가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새로운 곳을 가는 것, 타인을 만나는 것, 그것이 여행이라면 공정여행이 바로 여행이다. 낯선 골목길에서, 익숙하지 않은 다른 나라의 대중교통수단 안에서, 원주민들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그들의 가정집에서, 이름 모를 과일을 팔고 있는 재래시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난다. 인사를 나누고 시간이 된다면, 말이 통한다면 좀 더 긴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마음이 맞는다면, 연락처를 주고받는다면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공정여행이다.  

[##_Gallery|1244423717.jpg|이푸가오 지역의 쌀의 신 불룰(Bulul). 집집마다 보이지 않는 곳에 하나씩 두어 풍년과 집의 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1354740191.jpg|바나우에의 불룰|width=”400″ height=”300″_##]
삶이 힘들어 마음이 쉽게 각박해진다. 자신을 돌보는 것도 힘들어 타인에게 관심을 갖기란 어렵다. 그렇게 모두가 외롭다. 마음이 무뎌지고 딱딱해진다. 오늘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내 친구들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공정여행을 떠나보라 말하고 싶다. 힘들 것이다.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 뜨거워질 것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있다는 것, 그 세계 속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사실로 위로받게 될 것이다.

공정여행은 이런 것이다, 공정여행의 원칙은 이런 것이다, 이렇게 자로 재듯 공정여행을 설명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말하고 싶다. 내가 만나게 될 사람들, 내 친구가 될 사람들.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사람마다 친구가 되는 방법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지 않을까?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그렇게 여행지와 여행지의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여행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공정여행일 것이다.

추신: 첫 인상은 좋지 않았더라도 사귀어보면 좋은 친구가 있다. 내게는 필리핀이 그랬다.

글ㆍ사진_이선희
가늘고 오래 공부한 끝에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다방면에서 부족함을 절감, 불꽃 튀는 경험을 원하던 중 공정여행에 반해 청년 소셜벤처 공감만세의 일원이 되었다.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북촌을 여행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동화를 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월간 토마토에서 어른이 읽는 동화를 연재중이다. 
● E-mail: sunheemarch@gmail.co?m  ● Facebook:
www.facebook.com/sunheemarch

 

공감만세는
‘자유롭게 고민하고 상상하며 길 위에서 배우는 청년들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라는 구호 아래, 대전충남 지역에서 ‘최초’로 법인을 설립을 한 청년 사회적기업이다. 현재 필리핀, 태국, 제주도, 북촌, 공주 등지에서 공정여행을 진행하고 있으며 공정한 여행이 필요한, 공정한 여행을 실현할 수 있는 지역을 넓혀갈 생각이다.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보자. ●홈페이지:
fairtravelkorea.com  ●카페: cafe.naver.com/riceterrace


※ 12회로 공정여행 에세이 ‘편견을 넘어’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글을 읽고 ‘공감’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 연재 목록
1.
나는 왜 공정여행을 떠났는가    
2.
필리핀 ‘골목길 미소’에 반하다  
3. 여자 여섯 명, 수다로 지새운 필리핀의 밤  
4. 끼앙안, 천국보다 평화로운    
5. 이푸가오의 독수리   
6. ‘천상의 녹색계단’ 앞에 말을 잃다
7. 계단식 논은 왜 무너져내릴까
8. 탐아완 예술인 마을, 그리고 바나나
9. 마닐라 빈민지역 바세코의 검은 웅덩이  
10. 바스코 홈스테이가 남긴 것  
11. 필리핀은 우리의 미래다
12. 공정여행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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