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의 사막을 건너는 법
외사촌을 생각하며
외사촌이 입원하고 있는 병실에 들렀습니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유난히 큰 눈이 초점을 잃은 듯 내 얼굴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 담요 속에서 왼손을 부스럭거렸습니다.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손마디의 뼈가 내손에 느껴졌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의 몸속에서 전개되어온 어마어마한 전투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간세포와 암세포와의 전쟁에서 그의 간세포는 전투력을 완전히 소진한 듯 했습니다.
50년 전 일이 기억에 떠올랐습니다. 그 때도 외사촌은 말 한마디 못한 채 그 큰 눈만 멀뚱멀뚱 뜬 채 허공을 쳐다보았습니다. 파리가 발을 비비며 그의 눈가에 앉아 움직일 때마다 그의 눈은 실룩거렸습니다. 나와 초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그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병원도 없는 시골에서, 병원이 있다 해도 갈 수 없을 만큼 가난했던 시절 그는 부모가 없는 고아였습니다. 할아버지가 초청한 돌팔이 의사가 놓아준 주사가 치료의 전부였습니다.
그때는 뇌염이 창궐하던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뇌염에 걸렸고 그래서 살아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가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 그가 숨을 거둘 날만 기다리던 중 그의 입에서 “할머니!”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정말 기적같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오른 팔은 마비된 채 영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목숨 건진 것만 다행으로 생각했지 그의 팔을 고쳐줄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유난히 총명했던 그는 오른손으로 글을 쓰지 못하고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을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는 앓고 난 후부터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조부 댁에서 농사일과 더불어 성장했습니다. 나는 학교를 다닌답시고 고향을 떠나 살았습니다. 만나도 간단한 안부나 묻고, 아이들이 생기면서는 아이들 얘기 정도나 묻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시골에서, 나는 도시에서 그렇게 50년을 서로 거리를 두고 무덤덤하게 살았습니다.
[##_1C|1166500371.jpg|width=”450″ height=”300″ alt=”?”|사물의 실체는 쉴 새 없이 흐르는 강과 같은 것._##]
내가 시간이 좀 생기면서 그와 옛날 얘기도 하고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을 때에 그는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내내 몹시 고통스러워했고 나와 그런 일상의 얘기를 할 심신의 평온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의 병실로 문병을 하고 나온 다음날 그의 부음을 받았습니다. 어렵게 의사 공부를 시킨 레지던트 딸의 손을 잡고 숨을 거뒀다는 얘기를 듣고 조금 위안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위안은 내가 느끼는 것이었지 그가 숨을 거두면서 평안했는지는 전혀 모를 일입니다.
결코 적게 살았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 그러나 로마시대 황제 철학자의 말처럼 남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의 속도를 느끼게 합니다.
“존재하는 것들과 생성되는 것들이 얼마나 빨리 우리 앞을 지나 시야에서 사라지는지 가끔 떠올려보라. 사물의 실체는 쉴 새 없이 흐르는 강과 같다.”
* 이 칼럼은 자유칼럼에 함께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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