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키워드: 모금

[모금전문가학교] 모금은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일

불과 1년 전 만 해도 ‘모금’이라는 단어는 내 생활 영역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춘천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슬기로운 복지관 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업무가 변경되어 후원 및 홍보사업이 내 몫이 되었을 때의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해본 적 없는 업무에 그저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과연 내가 모금을 할 수 있을까?’, ‘누가 나의 말을 들어줄까?’ 등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돈을 구걸해야 하는 자리라는 부담감 때문에 좀처럼 업무를 할 수 없었다. 급기야 일을 그만둘 고민까지 하던 차에 모금전문가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자비로 19기에 입학하게 되었다. 모금전문가학교 교육을 받으며, 모금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춘천에서 서울까지 총 10회 왕복을 해야 했지만, 피곤함이란 없고

[모금전문가학교]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신발 끈을 단단히 매다

그동안 나는 종교인으로서, 세상에는 눈먼 사람처럼 조그마한 희망의 틀 안에서 기도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모금전문가학교에서 이 태도를 반성하게 되었다. 강의시간에 들었던 한 예화가 지금의 나를 잘 대변한다. “도와주십시오” 라는 소망만 두고 길가에 앉아 손만 벌리고 있는 시각장애인이 곧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되었다. 모금전문가학교에서 보낸 10주 동안의 시간은, 그 시각장애인을 지나친 여인이 다시 돌아와 모금함에 적어준 “Today is a beautiful day! But I cannot see”(오늘은 참 아름다운 날입니다. 하지만 저는 볼 수 없어요)라는 문구와 같았다. 이 신선한 글처럼 나를 일으켜 세우며 세상을 다시 보게 했다. 첫 시간, ‘다르게 생각하기’라 는 주제의 강의가 진행됐다. 계란을 깨뜨려 세우는 그림과 함께 ‘모금, 사회혁신의

[모금전문가학교] 모금전문가의 첫 발을 떼다

병원에서만 수십년간 일했던 제가 희망제작소 모금전문가학교를 만나게 된 것은 9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기부, 펀드레이징 분야에서 후원금을 ‘주는’ 입장으로만 살다가, 정반대로 후원금을 ‘요청’하는 입장인 ‘대외협력실장’을 맡게 된 것은 제 인생에 어떤 의미를 주었을까요? 여느 때처럼 정신없이 바빴던 내시경 검사 세션을 마치고, 모금전문가학교 첫 수업을 위해 숨차게 달려 희망제작소에 도착했습니다. 첫 번째 시간 주제는 ‘펀드레이징 설계도 만들기’였습니다. 의학과는 전혀 다른 언어와 환경 덕에 대학의 새내기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모든 수업 내용이 신기하고 새로웠습니다. 기부자 조사 및 설득, 모금기획안 작성법, 후원요청서 작성법 등으로 이뤄진 10주 간의 이론과 실습을 병행하는 수업은,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진 우리 조원(모히또)들이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생각하며, 토론할 수 있게

[초대] 모금전문가학교 총동문회 홈커밍데이

모금전문가학교 총동문회 홈커밍데이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모금전문가학교가 지난 2010년 처음 시작된 이후 전국 곳곳에 1기부터 18기까지 약 800명에 달하는 모금가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이번 홈커밍데이행사에서 모금가로서의 삶과 소중한 현장이야기를 나눠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