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피해자, 뜨개질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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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희망제작소 안신숙 연구위원이 전하는 일본, 일본 시민사회, 일본 지역의 이야기. 대중 메체를 통해서는 접하기 힘든, 일본 사회를 움직이는 또 다른 힘에 대한 이야기를 일본 현지에서 생생하게 전해드립니다. 이번 글에서는 아름다운재단의 동일본대지진 모금액을 지원받아 구호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일본 비영리법인과 복구현장 방문기를 소개합니다. 지난 6월 방문 이후의 구호 사업 진행 상황을 일본희망제작소 정진애 인턴연구원이 전합니다.    


일본통신 (4)
지진 피해자, 뜨개질을 시작하다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지 반 년이 지난 9월 6일, 일본희망제작소는 여러 교수들과 함께 다시 한번 피해 현장과 ‘토오노 야마(山) ?사토(里) ?크라시(暮らし)네트워크(이하 야마사토 네트워크)’를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 6월 방문에 이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 현황과, 새롭게 시작된 ‘EAST LOOP 사업’에 대해 알아보고, 실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아직도 크고 작은 지진이 일본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도쿄를 비롯한 일련의 지역에선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어 각종 매체에서 동북지역에 대한 보도가 줄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더욱 지금, 현장 상황과 활동 기관들의 움직임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먼저 야마사토 네트워크 키쿠치 사무국장에게 지진 당시의 상황과 야마사토 네트워크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러 사업에 대해 개략적으로 소개받고, 오후에는 새롭게 실행되고 있는 사업 중 하나인 EAST LOOP 참여자들의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현재 야마사토 네트워크는 지난 3월부터 지속적으로 진행해온 물자지원 사업과 함께 EAST LOOP, 창업지원과 같은 신규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진 직후 시작한 물자지원 사업은 피해 복구가 시작된 지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물론 시간의 경과에 따라 피해 지역 내 일자리 창출 및 가설주택의 개설 등으로 인해 생활 환경은 개선되었지만, 구호물자 수요는 계속 존재한다. 가설주택 이주자가 늘어나면서 피해 현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물자지원이 현재는 가설주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_1C|1034443059.jpg|width=”680″ height=”25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토오노시에 지어진 가설주택_##]7월 말 발간된 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가설주택 입주 후 물자를 지원받은 가구가 리쿠젠타카다와 오오츠치 두 지역을 합쳐 약 1300여 세대에 달한다. 키쿠치 사무국장은 물자가 필요 없어질 때 까지 이 사업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물자지원 사업과 함께 지난 3월부터 시작된 호또히토이키 사업(지진 피해자에게 관광을 지원하는 사업) 역시 현재까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가설주택에 입주한 뒤에도 요청이 끊이지 않아 현재도 희망자를 모집해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집-목욕탕-식사로 이어지는 스케줄이었지만 최근에는 인근 지역 관광을 하고 싶다는 의견도 많아 새로운 수요에 대응해 나가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야마사토 네트워크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EAST LOOP 사업 참여자들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리쿠젠타카타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도중 지진 피해로 청사가 무너져내려 인근 쇼핑센터 안으로 이동한 토오노 시청과 토오노시에 위치한 가설주택을 간단히 둘러볼 수 있었다.    

공정무역으로 일자리 창출 

EAST LOOP는 간단히 말해 공정무역을 통한 지진 피해 지역 여성 일자리 창출 사업이다. 일자리를 제공할뿐만 아니라 손으로 하는 작업과 창작활동을 통해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공정무역 사업을 진행해온 주식회사 후쿠이치(福市)와 연계해 지난 6월부터 시작했다. 지진 피해 지역 여성에게 수예법(뜨개질)을 교육하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하트 브로치를 일본의 유명 백화점인 타카시마야 백화점에 납품하고 있다.

이 사업을 동북 지역에서 시작하려고 했을 때, NHK 프로그램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일본 유명 디자이너가 사업 취지에 동감해 직접 하트 브로치의 디자인을 제공함으로써 브로치의 가치를 높이고 홍보에도 도움을 얻었다.  

야마사토 네트워크는 오오츠치, 리쿠젠타카다, 카마이시, 그리고 토오노로 피난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참여자를 모집하고 관리ㆍ상품의 수거와 납품ㆍ강습회 운영 등 사업의 운영을 총괄하고 있으며, 아름다운재단의 기부금이 이 사업의 운영 인력의 인건비 일부로 지원되고 있다.
[##_Gallery|1042620099.jpg|하트 브로치|1233767393.jpg|포장지 뒷면에는 상품 설명과 함께 생산지와 생산자의 별명이 기재되어 있다|1070505643.jpg|다섯가지 색상의 브로치 |width=”400″ height=”300″_##]
야마사토 네트워크의 사무실에도 사업 참여자들이 직접 만든 상품이 있었는데, 두 개의 하트로 만들어진 브로치가 주력 상품이었다. 브로치 가격 840엔의 50%가 생산자의 수익이 되며 지난 8월, 사업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임금을 지불했다고 한다. 현재 이 사업 참여자는(공정무역식 표현으로는 생산자) 약 30여 명으로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제작된 브로치를 수거하고, 부족한 재료를 체크ㆍ전달하기 위해 사업 참여자들의 집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집이 전부 파괴된 즉, 피해가 심한 사람이어야 이 사업에 생산자로 참여할 수 있기에 때문에 가설 주택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처음 방문한 곳은 리쿠젠타카다로 가는 길에 세워진 한 가설주택이었다. 가는 길 곳곳에 가설주택이 세워져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던 곳을 잃고 떠나야 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마음만은 떠내려 보내지 마세요’

방문한 가구는 어느 정도 연세가 있는 부부가 입주해 살고 있는 곳이었다. 주인 아주머니는 한국 드라마를 시청 중이었다며,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라고 자기소개를 하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가정의 수입원이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돈을 벌기 위해, 아무런 여가 활동도 없는 차에 소일거리라도 될까해서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집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에 상품을 만든다고 했다.
 
처음과 달리 지금은 조금씩 작업에 익숙해졌으며, 조그만 브로치를 손으로 만들다보니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여러모로 좋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우리와 동행한 사업 담당자는 모자란 재료를 체크하는 것은 물론, 오사카뿐만 아니라 요코하마의 타카시마야 백화점에도 납품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언론 기사 등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해주며 사업 참여자의 기를 복돋아 주기도 했다.

[##_2C|1197036730.jpg|width=”340″ height=”25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인터뷰를 한 생산자(좌)와 정진애 인턴 연구원|1300423600.jpg|width=”340″ height=”25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방문단과 함께 한 생산자(앞 줄 검은 옷)_##]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리쿠젠타카타에서 생산자로 참여하고 있는 분의 집이었다. 첫 인상에서 ‘참 고우신 분이시구나’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 상냥한 참여자와 꽤 오랜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원래 바닷가 지역에서 살았는데 집과 모든 것을 쓰나미에 잃은 뒤 그나마 남들보다는 빠른 시기에 현재 살고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현재 살고 있는 곳도 지진 당시에는 쓰나미 피해를 입은 곳이다.
 
이 분은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해 원래 재봉틀로 소파 커버, 커튼 등을 만들곤 했다고 한다. 그런 일상도 쓰나미에 다 쓸려가버렸다며 담담하게 웃으며 말하는데,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를 슬픔마저 느껴졌다. ‘한 번의 쓰나미가 한 사람의 인생과 소중한 추억을 다 가지고 가버릴 수 있구나, 이 분만의 얘기는 아닐텐데…’라는 생각에 괜시리 코끝이 찡해졌다.

자신의 인생에서 아끼던 모든 것, 사랑했던 모든 것이 떠내려간 상황에서 시작한 것이 EAST LOOP 활동이었다. 야마사토 네트워크에서 시행하고 있는 물자 지원 사업의 마을 담당자가 건넨 “아주머니, 수예하실 수 있어요?” 라는 질문이 사업 참여 계기가 되었다. 원래부터 손으로 만드는 일을 즐긴터라 “그럼, 당연히 할 수 있지” 라고 답한 뒤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이렇게 지역과 밀착된 홍보 활동과 사업 진행 방식이 야마사토 네트워크가 가진 힘이자, 여러 사업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는 비결임을 알 수 있었다.)

강습회에 참가한 뒤 재료를 받아와 작업을 시작했다. 집에서 틈틈이 할 수 있는 여가 생활이 생겼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내가 만든 무언가가 누군가에게 전달된다는 사실, 그것이 누군가에게 기쁨이 된다는 사실, 누군가에게 나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큰 기쁨이자 보람이 되었다고 한다.

처음 상품을 납품하고서 혹시나 반품되는 것이 있으면 어쩌나 조마조마 했는데, “단 한 개도 반품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 다행이다’라며 안심하고 기뻐했다고 한다. 이 분이 얼마나 이 사업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 분뿐만 아니라, 사업 참여자 대부분의 마음이 그렇다고 한다. 현재 이 분은 어떻게 하면 재료를 아끼면서도 튼튼하고 예쁘고 귀여운 브로치를 만들 수 있을지, 어느 정도의 크기가 가장 좋을지를 늘 고민하면서 브로치를 만든다고 했다.

이 참여자는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기 전 일행에게 종이에 쓰인 시 한 편을 보여줬는데, 쓰나미 피해로 상심해 있을 때 마음 깊이 위로가 된 시라고 한다. 이 시를 위안 삼아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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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소중한 것들이 떠내려가 버린
당신의 슬픔을 저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만 간다면
언젠가 꼭 좋은 일이 있겠지요.
부탁합니다.
당신의 마음만은 떠내려 보내지 말아주세요.
불행의 쓰나미에 지지 말아주세요.

– 99세 시인 시바타 토요

EAST LOOP 사업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곳곳에서 아직도 잔해물을 정리하고 있는 포크레인과 휑하게 비어있는 공터를 볼 수 있었다. 우리와 동행한 사업 담당자는 공터들은 원래 다 집이 있던 곳이며, 현재 정말 많이 깨끗해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피해 복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도, 이제는 제법 정리가 되었다는 현장도 처음 목도하는 나의 눈에는 모두 황량하기 그지 없는 공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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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는 길이 이래저래 편하지는 않았지만, 내게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든 현장들이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는 현실이고 삶의 현장인 것이다. 직접적인 활동을 함께하기는 어렵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그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야마사토 네트워크를 비롯한 다양한 지원 기관들이 활성화되고, 그 기관을 지원하는 활동들 역시 좀 더 촘촘하게 연결된다면, EAST LOOP, 호또히토이키와 같은 사업뿐만 아니라 더 다양한 사업들이 좀 더 많은 피해지역, 좀 더 세분화된 대상들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글_일본희망제작소 정진애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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