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지혜로운학교 – U3A서울> (이하 지혜로운학교)는 희망제작소의 은퇴자 교육 프로그램인 ‘행복설계아카데미’ 수료생들이 주축이 되어 영국의 U3A 정신을 바탕으로 2011년 6월에 문을 연 평생교육 프로그램입니다. ‘누구나 가르치고 누구나 배우는 학교’라는 모토 아래, 순수 자원봉사로 운영되며 누구나 나누고 싶은 지식과 지혜가 있다면 강좌를 개설할 수 있고 누구나 수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지난 5월13일, 첫 연재를 시작으로 <지혜로운학교>와 인연을 맺고 있는 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오늘은 8회에 걸친 이야기를 마무리 하는 순서로 <지혜로운학교>의 운영위원 김정은 님으로부터 온 편지를 소개합니다. 왠지 선선해진 가을 날씨와도 걸맞는 편지입니다. 연재는 끝났지만 <지혜로운학교>의 새로운 도전은 계속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흰머리가 부쩍 많아졌습니다. 이럭저럭 주어진 삶의 기본적인 의무도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생각이 점점 많아집니다. 오늘 주어진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해냈느냐의  현실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유로운 선택 앞에 놓인 창창한 미래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지요.

무엇인가 버겁게 사느라고 열심히 애썼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제 삶은 부모님 세대보다는  덜 영웅적이고 젊은 애들보다는 한참 남루한 중간지대의 어정쩡함에서 헤매고 있더군요. 부모님을 무겁게 등에 지고 있지만 그들의 가치관과 노년의 방식을 따라갈 수는 없고, 자식들을 양팔로 힘겹게 떠안고 있지만 저들에게도 흔연히 나아갈 바를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오리무중의 막다른 길목에 선 짐꾼이 되어 버린 기분입니다.

이제부터는 좋은 어른으로 남고, 잘 늙으면서, 스스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하나 뿐인 소중한 나의 삶이니까요. ‘반면교사’의 나쁜 표본으로 남지 않고 먼저 삶을 사는 자로서 작은 오솔길이라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뒤에 오는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인생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침 이런 고민들을 함께 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희망제작소에 있다고 해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여… 여기가 그 무릎이 닿기도 전에 고민을 해결하여 희망을 제작해준다는 ‘행복설계아카데미’가 마… 맞습니까?”

두 달에 걸친 교육기간이 다 끝나가는 무렵,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도 아직 뭔가 허전했습니다. 말과 글로 배운다는 것의 한계 때문에 실체가 불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럴  때마다 전 언제나 자원봉사라는 심화학습 방법을 선택합니다. 더 알고 싶은데 아직 확실하게 모르겠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일을 도와가면서 체득하는 방법이지요. 스스로에게 처방하는 평생교육의 기본방향입니다.

희망제작소 안에는 이미 시니어들이 모여 ‘지혜로 열린 대학’이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와서 일손을 거들어 보라고 하시더군요. 예전엔 회사의 고위간부나 교수님이셨던 분들이 사회의 완장을 다 떼어 내고 친구처럼 모여 앉아 주거니 받거니 회의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항상 먼저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곳은 이제껏 사회에서 쌓은 각자의 경험을 서로 나누고 배우면서 공동의 발전을 꾀하는 학교였습니다. 참 멋진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이야말로 꿈에 그리던 이상향이 아닐까 마음도 들떴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2년간 운영위원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 생각한 만큼 모든 것이  순조롭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고민과 갈등이 스르륵 풀리는 아름다운 이상향은 역시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더군요. 이상은 높은데 뾰족한 수단이 없으니 현실적인 속도는 더디기만 했습니다. 이곳에서도 세대 차이, 남녀 차이, 성격 차이, 취향 차이가 그대로 있더군요. 혹 떼러 왔다가 고민거리만 한 아름 더 생기는 것 같아서 불만도 생겼습니다. 사서 고생하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여기저기에 하소연을 하면서 좌충우돌했지요.

그러다가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상 어느 곳을 가도 나의 변화와 노력 없이 서로 화합하고 소통이 되는 세상은 없다는 걸 말이지요. 세상 탓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탓인  게 많더군요. 그간 제 불평을 잠자코 들어주셨던 다른 분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그분들 모두 각자의 입장을 접고 양보하고 맞춰 가며 한 걸음씩 오솔길을 찾고 있었던 겁니다. 흔히 나중에 온 사람은 먼저 간 사람의 어설픔을 답답하게 느낍니다. 길도 없이 더듬거리며 앞서간 사람들 덕에 뒤에 오는 사람이 달릴 수 있는 것인데, 그런 자연스러운 이치를 잠깐 잊는 것이지요.

사는 동안 쌓여왔던 모든 불화가 내 안에서 아름다운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조금씩 저도 세상과 화해하면서 편안한 얼굴이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삶에서도 많은 포용력이 생겨났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지요.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함께 공동의 일을 하다 보니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분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보고 또 배울 일이 생깁니다. 이곳에 와서 저는 지혜의 옹달샘을 하나 마련한 기분입니다. 이젠 제 삶의 남은 여정도 그리 불안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함께 하는 다양한 마음과 행동이 이곳에서 서로 양보하고 보완하며 하나의 커다란 원을 이룰 수 있을 때 우리 <지혜로운학교>도 굴렁쇠처럼 잘 굴러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어찌 하루아침에 몇 명의 업적으로 이루어질 일이겠습니까. 이젠 느긋하게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하지만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을 생각하며 보다 많은 사람을 기다리게 됩니다. 누구나 다가와서 서로 손을 잡은 채 서로를 인정하고 큰 원을 만드는 모습을 기쁘게 상상해 봅니다. 그런 모습으로 <지혜로운학교>가 성장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성장을 함께 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글_ 김정은 (지혜로운학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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