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제빵사·60대 바리스타의 동행, 걸림돌은 ‘아샷추’?

한국 사회 곳곳에 ‘해결사’들이 있습니다. 변화를 꿈꾸지만 않고 실행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고 연결합니다. 오는 12월 14일 <2023 소셜디자이너클럽 사회적가치 투자(SIR) 대회(링크)를 여는 이유입니다. 이날 청중심사단(링크)이 소셜디자이너 10명의 피칭을 듣고 모의 투자합니다. 시민을 만날 소셜디자이너 10명을 소개합니다.

20대 제빵사와 60대 바리스타의 동행, 걸림돌은 ‘아샷추’? | 정현성·임은수·서동환 동백베이커리 @부산

큰길을 따라 한참 헤맸는데 간판이 보이질 않습니다. 마침 가게 앞을 쓸러 나온 상인이 있기에 물었어요. 동백베이커리, 어디로 가나요? 상인이 앞장서 걸어가더니 골목 안쪽을 가리킵니다. 카페 겸 빵집이 좁디좁은 골목에 있다고요? 누가 알고 찾아가나요?

공연한 걱정입니다. 평일 오후 1시 동백베이커리 매장에선 시니어 바리스타들이 음료를 만들고 따끈따끈한 새 빵을 진열하느라 분주합니다. 널찍한 안마당에는 커피를 마시며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는 손님들이 가득하고요. 매장 2층 커뮤니티 공간에는 도시재생지원센터 주민 모임이 열렸어요. 제빵실은 외부인 출입금지라 문 너머로 슬쩍 봤는데, 청년 제빵사들이 한창 작업 중입니다.

부산 사상구 모라동 주택가에 있는 동백베이커리 건물은 원래 유치원이었습니다. 청년층이 빠져나가고 아이들이 줄면서 문을 닫았고, 덩그러니 남은 건물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청년과 노인이 함께 일하는 세대통합의 장이자 동네 주민과 반려동물, 길고양이까지 편하게 어울리는 따뜻한 공간으로 탈바꿈한 걸까요.

지난 10월 30일, 동백베이커리를 만든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20대 임은수 대표는 제빵·제과 전문가입니다. 30대 정현성 총괄이사는 지역문제 해결에 힘써온 청년 활동가입니다. 60대 서동환 님은 고등학교 국어교사 출신 바리스타입니다.

▲ 동백베이커리의 서동환 바리스타, 김시진 점장, 정현성 총괄이사, 임은수 대표와 반려견 새싹이(사진 왼쪽부터)

-세대, 전공, 활동 분야 등이 모두 다른 분들이 함께 일하고 계세요. 어떻게 만나 지금의 동백베이커리를 만드셨나요?

임은수: 지금은 군 복무 중인 김성현 전 대표와 저, 또 다른 친구 한 명이 뭉쳐 디저트 전문점인 ‘서양다과제작소’를 창업했어요. 다양한 디저트를 만들면서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에게 실습경험과 일자리도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이었는데,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았어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때 정현성 이사를 만났어요.

정현성: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하고 도시재생지원센터 등에서 일했어요. 부산시 소상공인연합회 ESG 위원장, 부산시 청년정책 자문위원이기도 해서, 많은 어르신과 청년들, 공무원들과 알고 지냈고요. 동백베이커리가 있는 모라동은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이에요.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자 비율이 높고 주거환경이나 시설이 낙후된 곳이죠. 마을을 활기차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사회적기업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서양다과제작소 분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건물주를 설득했죠. 빈 유치원 건물을 청년은 창업하고 노인들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공간, 주민 누구나 편하게 찾아오는 사랑방으로 만들 테니 저렴하게 임대해 달라고요. 공간은 마련했는데 제빵공장 설비와 카페 인테리어를 할 돈은 없었어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기금 지원받고 대출도 받고, 인건비 드는 일은 저희가 몸으로 다 때웠습니다(웃음). 2022년 10월에 오픈해 지금까지 정부 지원 없이 오롯이 저희 힘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서동환: 은퇴하면 좋아하는 커피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작년에 퇴직하자마자 바리스타 학원에 등록해서 배우고, 시험 치고, 자격증을 땄죠. 우리(교사)가 시험 같은 건 좀 익숙하게 잘 보는 편이에요(웃음). 근데 취업이 안 되더라고요, 나이가 많아서 힘들겠다고 하고. 실망을 많이 했는데 작년 9월에 사상시니어클럽에서 연락이 왔어요. 시니어 바리스타를 뽑는 카페가 있으니 한번 가 보라는 거예요. 바로 지원하고 10월 오픈할 때부터 근무해서 이제 만 1년이 됐습니다. 굉장히 재밌고, 출근하는 게 정말 즐겁습니다. (은퇴 전 학교에 출근하실 때와 비교하면?) 지금이 더 좋죠, 훨씬 행복하죠. 하하하.

▲동백베이커리에 근무하는 시니어 직원들의 모습

청년과 노인이 ‘천천히’ 함께 일하기

-청년과 노인이 함께 일하는 회사를 만든 이유가 있나요? 창업 기획할 때부터 세대통합 일자리를 만들기로 했다고 들었어요.

정현성: ‘부산엔 노인과 바다가 있다’는 말이 있어요. 부산에서 한해에 1만8천 명이 사라져요. 주로 청년이 서울·수도권으로 가고, 노인들이 남죠. 특히 구도심이나 쇠락한 공단지역의 인구 유출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요. 해가 지면 큰길도 컴컴하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곳에 동백베이커리 같은 공간이 생긴다면 어떨까요? 주변이 밝아지고 사람이 모여들어요. 동네가 쾌적해지고 범죄예방도 돼요. 화려한 카페가 있어서가 아니에요. 청년이 미래를 꿈꿀 수 있고 어르신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지요. 청년들만 있는 카페엔 어르신들은 잘 못 와요. 어르신들이 함께 일하는 카페엔 어르신들도 오고, 부모와 어린아이들도 오고, 인근 학교 학생들도 와요. 골목에 생기가 돌고 마을 안에서 돈이 돌아요. 도시재생 사업의 문제 중 하나가 전문가들한테 많은 비용을 지급하니까 지역의 돈이 외부로 다 빠져나가는 거거든요. 그런데 동백베이커리는 지역 주민들이 지역에서 일하고 돈 벌고 돈을 쓰게 만들어요.

영업적인 측면에서 봐도, 저희가 이곳을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마을공동체를 살리는 거점 공간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1년 만에 입소문이 나고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카페·빵집으로만 생각해 매출과 영업이익만 따졌으면 마음 상하는 일이 많고 더 힘들었을 거예요.

-사회적 가치와 책무에 더 무게를 둔다고는 해도, 직원들의 생계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책임져야 하는 임 대표님 입장에선 매출과 영업이익을 신경 쓸 수밖에 없을 텐데, 동백베이커리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임은수: 저희 사업은 크게 카페 부문과 제빵 부문으로 나뉘어요. 커피와 음료를 만들고 매장에서 판매하는 건 20명의 시니어(60대 이상) 직원들이 담당하는데, 한주에 두 번, 하루 4시간씩 일하세요. 4시간 이상은 힘에 부치시기 때문에 하루 3교대로 근무하세요. ‘동백에이드’와 ‘동백빵’ 같은 신메뉴 개발과 제빵은 20~30대 직원 5명이 맡고 있어요. 아직은 매장에서 판매되는 빵보다 외부 주문을 받아 납품하는 물량이 더 많아요. 지난 1년간은 카페의 적자를 제빵 수익으로 메운 셈이지만, 카페 수익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일하면서 어려운 점은 뭔가요. 청년과 노인이 함께 일하는 비결도 궁금해요.

서동환: 학교에 있을 때 노트북 작업을 해서 저는 좀 나은 편이지만, 아무래도 60대 이상 노인들이 디지털기기를 조작하는 데 익숙하지 않잖아요. 주문을 받으면 단말기(POS)에 입력하고 계산도 해야 하는데,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게다가 젊은 손님들은 메뉴를 막 다르게 얘기하거든요. ‘아바라’(아이스바닐라라떼)가 뭔지 젊은 직원들한테 물어보고 외워뒀는데 ‘아샷추’(아이스티에 샷추가)는 또 뭐냔 말이에요(웃음).

저희가 카페에 잘 안 가던 세대라서 메뉴를 잘 몰라요. 평생 먹어본 적 없는 걸 하루아침에 맛있게 만들 수가 있나요. 요즘 음료들은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고, 정량을 순서대로 잘 넣어야 제대로 맛이 나요. 완성된 모양도 예뻐야 하고요. 그러니 손님들께 내놓을 수준이 될 때까지 연습 또 연습해야죠. 젊은 직원들만 보이면 서로 ‘맛 좀 봐 달라’고 하기 바빴지요. 연습에 들어간 재료비며, 잘못 만들어서 버린 음료값…,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걸 낭비라고 생각지 않고 기다려준 우리 대표님과 점장님, 정말 대단하고 고마운 분들입니다.

청년과 노인이 함께 일하는 비결은, ‘천천히 가더라도 같이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 기다려주고 칭찬해주고 믿어주면서 함께 가는 겁니다.

▲ 서동환 바리스타와 시니어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

임은수: 각오는 했지만, 예상보다 손실분이 엄청나긴 했어요(웃음). 그래도 결국 다들 잘 해내시더라고요. 처음 사상시니어클럽에서 어르신들 연결해주면서, 매장 청소하고 손님 응대하는 것은 가능한데 판매용 커피나 음료를 만들긴 힘드실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어르신들이 ‘카페에 일하러 왔는데 나도 음료 만들고 싶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하실 줄 아는 분부터 한 분 한 분 가르쳐드렸는데, 서로 배우려고 하시고 은근히 경쟁도 하시고…, 열심히 하시니 가르쳐드리는 보람이 있었어요.

서동환: 처음 일할 때 제일 걱정스러웠던 부분이 청년들과 갈등이나 마찰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어요. 같이 일하기엔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거 아닌가도 싶고.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협업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더라고요. 몸을 부대끼면서 일을 하다 보면,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과 선입견이 다 깨지고 서로 맞추고 둥글어져요.

▲동백베이커리에서 열린 마을공동체 워크숍 현장

더 많은 ‘세대융합형 베이커리’ 생기길

-동백베이커리의 다음 계획은 뭔가요? 혹시 2호점?

정현성: 2호점 좋죠(웃음). 저희 같은 세대융합형 베이커리가 부산 이곳저곳에 생기고 전국으로도 확대되면 좋겠어요. 그동안 사상구와 부산시는 물론 다른 수많은 지자체에서 방문하셨으니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죠. 지금은 시니어 슈퍼바이저 교육을 비롯해 구성원의 역량을 높이는 교육과 훈련에 집중하고 있어요. 서로를 이해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동환: 저도 동백베이커리 같은 곳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라요. 여기서 일하면서 세대갈등, 노인비하, MZ비하는 서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거고, 만약 같은 목표를 갖고 함께 일하는 공간이 많아지면 세대갈등이 많이 줄어들겠구나 싶었어요. 젊은 세대의 능력과 패기, 나이 든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가 결합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인터뷰 및 정리: 이미경 시민이음본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