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일본의 수많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는 ‘고향 납세’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제정한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은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어떻게 지역에 자리를 내리고 있을까?
인식의 차이가 만든 찻잔 속 태풍
2022년 여러 혁신 지방자치단체와 지역맞춤형 고향사랑기부금에 대한 답례품을 고민하고, 모금한 기부금으로 어떤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연구 당사자로서 현재 상황은 ‘찻잔 속 태풍’이라는 표현 외 마땅히 정의할 표현을 찾기 어렵다. 여러 지자체의 인구감소 등 맞닿은 위기에 대응할 주요한 무기 중 하나로 고향사랑기부제를 인식했던 (재)희망제작소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에겐 큰 이슈였지만, 대부분에게는 심지어 지자체 현장에서도 매우 작은 사건, 아니 법률 중 하나로 ‘여전히’ 인식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가릴 것 없이 준비는 미흡했고 시작만 시끌벅적했다. 결국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어떠한 변화의 움직임도 찾기 어렵다. 당연히 2023년 한 해 동안 시민 참여, 기부금의 규모 등에 따라 변화를 고민한다는 의견도 맞을 수 있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얼마나 모금될지도 모르는데 인력을 대거 투입하고 사업계획을 수립하거나 시행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268개 지자체(266개 시군구, 세종특별자치시, 제주특별자치도)가 고향사랑기부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는 대동소이하리라 판단된다.
기부 참여 공감을 위한 적극 행정
고향사랑기부제는 기부금이 많이 모이면 지자체에 도움이 되는 일에 쓴다는 방식의 접근으로는 어떠한 효과도 내기 어렵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선제 대응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다. 폐광으로 일본 최초로 지역 파산을 선언한 지자체엔 줄어드는 세수를 조금이나마 반등시키기 위해 고향 납세 제도를 백분 활용한다. 지역의 사회복지 서비스 축소, 제반 시설 붕괴를 여실히 드러내고 시민 참여로 반등을 도모한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에게 기부금이 모이길 기대하며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할 것이 아니라, 시민을 설득하고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기부금이 많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해 준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역시 어떻게 시민을 설득하고 참여를 끌어내는가이다. 행정 현장의 절실한 고민은 이에 집중되어야 하고 홍보 역시 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전라남도 완도군과 함께 고향사랑기부제를 준비하며,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행정 담당자들과 나누었다. 연구 수행 당시 완도군을 비롯한 전라남도 전역은 심각한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의 기부를 끌어내기 위해 기부금의 규모와 무관하게, 기부금이 모금되는 대로 완도군 내 여러 도서 지역에 식수를 제공하는 사업에 기부금을 투입하자는 도모(?)를 했다. 물론 현 제도상 고향사랑기부금은 ‘고향사랑기금운용심의위원회’ 심의를 통해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그 사업이 추진되기까지는 물리적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지역의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해야 한다는 현장의 절실함에 감명 깊었던 경험이 있다.
결국 지자체 현장에서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를 위해 가장 고민해야 할 것은,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이고, 이러한 사용이 지역에 어떤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기부할 시민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즉, 기부자들의 ‘응원’을 끌어낼 스토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역민을 중심으로 지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명확히 정의하고, 어떤 사업에 투입해야 할지를 일차적으로 결정할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민이 정한 사업들을 ‘고향사랑기금운용심의위원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기금사업으로 선정하고, 이에 기반한 기부금 모금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홍보는 이러한 과정과 결정에 따라 자연스레 진행될 것이다.
답례품 보단 지역이 우선
물론 전문가마다 기부를 끌어내는 요인에 대한 의견이 다양하다. 혹자들은 일본의 우수한 답례품 사례를 꼽는다. 하지만 세제 혜택, 제도 설계가 다른 일본 고향 납세 제도 속 답례품과 우리 고향사랑기부제의 답례품은 다르다.
우리나라 고향사랑기부제 특성상 사람들은 기부 시 받을 수 있는 답례품 때문에 기부에 나서지 않는다. 해당 답례품이 시장에서 구매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기부하고 받아야 할 이유 자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정부가 구축해놓은 “고향사랑e음”의 체계 역시 답례품의 매력에 따라 기부를 택하기 어렵게 구축되어 있다.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 “가공식품”, “생활용품”, “지역상품권” 등 6개 카테고리로 답례품을 둘러볼 수 있지만, 해당 카테고리를 타고 들어갈 수고를 기부자들이 할 것인가는 의문이다. 일본 고향 납세 제도 관련 대표 플랫폼인 트러스트뱅크의 “후루사토초이스”만 봐도, 아니 우리나라 일반 쇼핑몰 카테고리만 봐도 수십 개의 카테고리가 존재하고 그 안에 셀 수 없는 상품(답례품)이 존재한다. 결국 답례품에 초점을 맞추려면 더욱 치밀하고 친절하게 구분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중앙정부도 답례품보다는 고향에 초점을 맞춰 기부에 참여하라는 저의를 곳곳에 설치해뒀다. 일례로 ‘고향사랑e음’의 답례품 둘러보기로 접근하면 ‘지자체몰 보러가기’를 통해 답례품을 둘러보도록 유도한다. 답례품보다는 지역이 상위에 있는 것이다. 즉, 기부하고자 하는 지자체, 지역에 대한 선택이 우선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실제 떠나온 고향, 부모님의 고향, 자주 가는 지역 등이 기부하는 주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가며
누가 어떤 지자체에 얼마를 내는지에 대한 홍보를 멈추어야 한다. 이는 선한 영향력으로 기부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 출향민의 참여 의지를 도리어 떨어뜨릴 수 있다. 일본 고향 납세도 제도 시행 초기 기부 한 건당 기부 금액이 과도하게 높았다. 성과 등에 초점을 맞춘 온전히 자발적이지 않은 기부가 이뤄졌다는 평가가 줄을 잇는다. 심지어 대도시 기부금 모금 규모가 더 큰 웃지 못한 결과도 이어졌다.
고향사랑 기부금을 모아 무엇을 할 것인지? 지역에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부족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기후 위기에 신음하고 있는 지역의 환경을 지킬 것인지, 학교와 직장을 이유로 떠나간 이들이 돌아올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줄 것인지, 우리가 기부금을 써야 할 곳이 너무나 많다. 지자체가 기부금으로 무엇을 할지 궁금하다.
* 글: 박지호 부연구위원 | jh@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