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곳곳에 ‘해결사’들이 있습니다. 변화를 꿈꾸지만 않고 실행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고 연결합니다. 오는 12월 14일 <2023 소셜디자이너클럽 사회적가치 투자(SIR) 대회(링크)를 여는 이유입니다. 이날 청중심사단(링크)이 소셜디자이너 10명의 피칭을 듣고 모의 투자합니다. 시민을 만날 소셜디자이너 10명을 소개합니다.
골칫거리지만, ‘재미있는’ 플로깅을 위해 | 정대웅 플로깅울릉 대표 @울릉
쓰레기를 보면 트렌드가 보입니다. 우리나라 가장 동쪽 끝, 울릉도에서 말입니다. 최근 울릉군 북면 나리분지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 쓰레기는 무엇일까요. 바로 ‘치실’입니다. 무슨 유행인지 쓰다 버린 치실을 길에서 발견하면 ‘부들부들’ 떨리지만, 그걸 줍다 보면 ‘요즘 쓰레기’가 보인다는군요.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골칫거리인 쓰레기가 자꾸 눈에 밟힙니다. 그래서 줍습니다. 울릉도에서 걸으며, 뛰며, 헤엄치며 쓰레기를 줍습니다.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쓰레기 배출량이 50t(환경부 기준)을 넘어섰는데요. 좌절하지 마세요. 돌아서면 도로 쏟아지는 쓰레기더미이지만, 그래도 내 갈 길 간다는 분도 있습니다. 왜냐고요. “나라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서”랍니다. “술을 마시고 등산한 술고래씨 참 잘했어요. 마신 술병을 잘 묻어둔 당신 참 잘했어요. 참말로” 울릉도의 첫 환경단체 <플로깅울릉>이 선보인 정크 단편입니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는 쓰레기 문제에 ‘노잼’을 우회해 ‘재미’를 발굴하는 정대웅 플로깅울릉 대표(@plogging_ulleung)를 만났습니다.
– 원래 어떤 일을 하셨나요.
서울에서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10년 정도 일했어요. 프로젝트를 기획‧운영하거나, 기업사회공헌(CSR) 분야의 업무를 주로 맡았어요. 일하다가 번아웃이 왔고, ‘언제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 ‘이게 맞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보면 성장통이었던 것 같아요. 쭉 서울에서 살면서 마흔이 되면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겠다 싶었는데 좀 빨리 울릉으로 가게 됐지요.
– 여러 지역 중 울릉에 터를 잡았네요.
무작정 지역을 가는 건 무서웠어요.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네다섯 군데 둘러보긴 했는데 단 하나의 조건은 ‘내 친구가 한 명씩 있는 곳만 가본다’라는 거였어요. 비빌만한 언덕 하나쯤은 필요하니까요. 그중에 울릉도가 있었고, 친구를 만나러 3박 4일간 놀러 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제가 여행을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해외에서도 살아보고 여행을 다닌 게 12군데 정도 되거든요. 근데 울릉도의 임팩트가 가장 컸어요. 조그마한 섬인데 앞에는 망망대해가, 뒤에는 산이 있다는 게요. 사실 지역에서 사는 게 어렵기도 하지만, 또 어려운 일도 아니에요. 그땐 서울에서 벗어날 타이밍이라는 생각을 했고, 1년 살아보고 안 되면 돌아가자는 마음도 있었어요. 아니면 말고 이런 마음이요.
서울에서 울릉 지역살이…나홀로 ‘플로깅’ 시작
– 근데 울릉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네요.
본업은 친구와 같이 문화 예술 이벤트 기획 분야에서 일하고, 사이트프로젝트로 플로깅울릉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제가 일하는 기준이자 지향점이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하는 거거든요. 울릉에서 뭔가를 꼭 해야겠다고 해서 쓰레기를 줍기 시작한 건 아니고요. 친구 만나러 왔을 때만 해도 좋기만 하고, 쓰레기는 잘 보이지도 않았거든요. 막상 울릉으로 이사해서 산책하는데 1년 만에 쓰레기가 왜 이렇게 많아졌나 싶을 정도로 곳곳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운동하는 김에, 산책하는 김에 쓰레기를 주웠어요. 혼자서 하면 작심삼일이라 금방 무너지니까 한창 유행하는 인스타그램의 스터디그램처럼 일주일에 하나씩 쓰레기 줍는 걸 올렸어요. 일주일에 하나라도 피드를 올리지 않으면 죄짓는 것 같고, 동기 부여하려고 운영했죠. 근데 그때나 지금이나 재밌어서 해요.
– 쓰레기가 넘치는데, 주울수록 어떤가요.
사실 쓰레기 줍는 행위가 정신적으로 좋지 않아요.(웃음) 즐기고는 있지만 화날 때랑 슬플 때가 훨씬 많거든요. 주워도 끝이 없다는 걸 알고 시작했는데도요. 그 과정을 재밌게 즐기려고 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버릴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사람, 산업, 사회에 대한 회의감도 들고, 마음도 자꾸만 불편해지죠. 이거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최대한 재미있게 이어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 본인이 생각하는 쓰레기를 줍는 재미는 정확히 뭔가요.
울릉에서 보이는 쓰레기가 북한에서 온 쓰레기도 있고, 진짜 다양하거든요. ‘도대체 얘가 왜 여기 있지?’ 그거부터가 재밌어요. 여러 상상을 해보기도 하고. 에피소드가 발생하기도 하고요. <바다수호대>에 참여한 분 인터뷰를 들어보면 특별하고 의아한 쓰레기가 많아요. 작년 가을부터 올해 여름까지 나리분지에서 유독 치실 쓰레기가 많아졌거든요. 2021년엔 보이지 않았던 건데요. 일종 트렌드인가 싶은 거예요. 어르신들이 여행 가는데 ‘이거 정도는 써야지’라는 일종의 부의 상징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쓰레기에는 재미와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 플로깅울릉의 활동을 소개해주세요.
이렇게 활동이 많아질 줄은 몰랐는데요. 1년 차(2021년) 땐 개인적으로 울릉에서 쓰레기 줍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걸로 운영했고요. 2년 차엔 모인 쓰레기들의 정보가 보이더라고요. 각 마을의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나 그곳의 특징같은 게 나오는 거죠. 예를 들면 관광객이 많은 곳, 오징어잡이를 하는 곳 등처럼요. 또 쓰레기가 지닌 이야기를 그림일기로 풀어낸 정크단편(<울릉정크>)도 제작해봤고요. 3년 차인 올해는 우리나라 동쪽 끝까지 와서 쓰레기를 줍는 경험이 특별한 것 같아 플로깅하러 온 분들을 인터뷰(<바다수호대>)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정크픽처> 전시회를 열었어요. 울릉에서 자유롭게 플로깅할 수 있는 <플로깅지도>를 만들고 아이스박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원순환 프로젝트도 운영하고요.
– 자원순환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울릉도는 바람이 많이 불거든요. 분리수거장에 버린 쓰레기나 아이스박스가 바람에 날려 왕왕 바다로 휩쓸려가요. 어느 날 가다가 아이스박스가 바다 위 부표처럼 뜬 걸 보고, “또 날라갔네” 싶으면서도 “필요한 데가 많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민이나, 관광객이 울릉에서 물건을 많이 주문하고, 그때 아이스박스를 쓰는데 필요한 곳에 갖다주면 어떨까 하고요. 울릉에서는 내가 원하는 크기의 아이스박스를 낱개보다 묶음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어서 육지 나갈 때 사거든요. 그래서 동네 주민이 운영하는 약 132군데와 통화해서 스티로폼 아이스박스, 완충재, 아이스팩 등이 필요한지를 여쭤봤고, 실제 19군데가 참여 중입니다. ‘굳이 번거롭게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 ‘소비자가 불편해하지 않겠냐’라고 하시는 분도 계셨죠. 그래서 자원순환에 관해 하나씩 설명하기도 하고, ‘자원순환 아이스박스’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제작해 소비자의 불편함을 덜어내려고 하고 있어요.
– 개인의 재미로 시작한 일이 지역 주민과의 연결이 긴밀해졌네요.
제가 하는 본업을 두고선 상대방의 선호가 생길 수 있지만, 쓰레기 줍는다고 하면 ‘모두’ 칭찬하거든요. 주민 입장에서는 저라는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 모르지만, 쓰레기 줍는 애라고 인식하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개인 간 경계가 명확하고 다른 사람을 신경쓰지 않지만, 이 곳(현포)은 울릉의 번화가에 비해 한적한 마을이라서 제가 어떻게 밥은 벌어먹고 사는지 궁금해하시고, 신경을 많이 써주시죠.
플로깅 ‘추억’에서 일상의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 요즘 고민은 없나요.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마칠 때마다 인터뷰했는데요. 플로깅을 함께 한 분들은 추억을 남길 수 있지만, 그분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지 궁금하더라고요. 추억으로 끝내기엔 너무 그렇지 않나 싶은 거죠. 혹은 울릉에 여행 갔다가 플로깅을 했는데, 일상에 변화가 없다면 마냥 휘발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이걸 연구해보고 싶어요. 일상의 영역까지 변화하는 방법이 무엇인지요. 왜냐면 태안군 원유 누출 사고 당시(2007년) 130만 명 넘게 자원봉사(태안군 방제참여인원 현황)를 했잖아요. 꽤 시간이 흘렀는데, 우리 생활 속 환경 이슈는 여전해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환경 이슈에 참여했는데도요. 어떤 경험이 일상에서 살아 숨쉴 수 있는지 그 효과를 입증해보고 싶어요.
– 앞으로도 플로깅울릉은 계속 이어가겠죠.
개인적으로는 방향성이 생겼는데요. 플로깅울릉 1년 차, 2년 차, 3년 차 됐을 때를 돌아보면 점점 주변의 반응이 느껴지거든요. 군청에서 연락이 오거나 무언가를 물어본다든지요. 어쩌면 이 활동이 내게 또 하나의 커리어가 되겠구나 싶고요. 무엇보다 쓰레기와 관련된 기록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일 자체가 재밌어요. ‘울릉도 쓰레기로 어디까지 해봤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쓰레기를 기록하고, 영상을 촬영해 편집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도 만나고, 돈도 벌었죠. 쓰레기를 줍다 보면 회의감이 밀려들기도 하지만, 재미라는 감정으로 맞서 싸우죠. 재미있게 하다 보면 분노도 잠재우고, ‘뭔가 바뀌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유예하는 것 같아요.
– 인터뷰 및 정리: 방연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