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곳곳에 ‘해결사’들이 있습니다. 변화를 꿈꾸지만 않고 실행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이들을 ‘소셜디자이너’라고 호명하고 연결합니다. 오는 12월 14일 <2023 소셜디자이너클럽 사회적가치 투자(SIR) 대회(링크)를 여는 이유입니다. 이날 청중심사단(링크)이 소셜디자이너 10명의 피칭을 듣고 모의 투자합니다. 시민을 만날 소셜디자이너 10명을 소개합니다.
‘5000평 정원’으로 농촌 비즈니스를 그리다 | 정서진 농업회사법인 ㈜새실 @전남 영암군
소설가이자 정원가인 카렐 차페크는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는 건데요. 전남 영암군에 위치한 카페이자 정원인 ‘새실’은 무려 5000평 규모의 정원을 갖추고 있습니다. 3대째 조경업을 하는 정서진 대표(35)가 두 번의 “처참한 실패”를 겪은 뒤 오랜 뜻을 품고 차린 정원이기도 합니다.
‘새실’은 일반적인 정원라기보다 지역을 연계한 농촌체험과 관광 농업을 아우르는 곳입니다. 월출산 주변의 자생 동식물을 활용한 교육키트 ‘남생이마을만들기체험키트’에 이어 지역 자원을 연결한 ‘월출산투어패스’까지 개발하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손바닥’보다 훨씬 넓디넓은 정원을 가꾸는 그는 무엇을 딛고 있을까요.
‘5000평 정원’으로 농촌 비즈니스를 그리다 | 정서진 새실 오브 앰비언스 @전남 영암군
– 새실마을에서 교육체험정원(카페)를 운영하고 있죠.
어릴 적 새실마을에서 월출산과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자랐어요. 중학교부터 대학교 이후까지 광주에서 다녔고요. 조경학과를 전공한 뒤 3대째 가업을 잇고 있어요. 2021년 영암에 돌아와 농촌 관광, 교육농장을 창업했지만, 실제 귀농 창업은 세 번째예요. 앞선 두 번의 사업은 처참하게 실패를 맛보고 2017년부터 약 3년간 세종시에서 조경 일을 하다가 다시 영암에 온 거죠. 전라남도 내 고속도로 건설로 광주와 영암 간 접근성이 좋아지니까 사업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고, 오랫동안 준비해오던 걸 현실화했습니다.
‘깡촌에서 될 것 같냐’라는 만류에도 ‘농촌 비즈니스’를
– 두 번의 창업은 왜 망했어요?
자신감이 컸어요. 영암에서 토끼도 키우고, 농산물 직거래도 하고, 반려 식물을 만드는 등 다양한 걸 시도했는데 방법을 몰랐던 거죠. 그땐 저 혼자 바쁘고, 저 혼자 다 하려고 했고, 열정이 앞섰거든요. 하다못해 트렌드만 파악하는 등 여러모로 성급했어요. 세 번째 농촌관광, 교육농장 겸 카페를 창업할 땐 정말 단단히 준비했어요. 그 이후로는 당장 실행 가능한 것 위주로 하니 조금 오래 버티는 것 같아요.
– 도시의 편안한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영암에서 창업한 이유가 있었나요?
일단 저는 이 마을이 좋아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컸는데요. 할아버지는 농업 쪽으로 유명하셨고, 아버지는 과수원과 축산업을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집안일 돕는 게 일상이었는데, 그땐 그게 그렇게 싫더라고요. 근데 대학 생활을 하다보니 저희 마을에서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때만 해도 생산 중심의 과수원을 운영하고, 조경수를 생산했다면 이걸 잘 꾸미면서 외부를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이요. 영암은 인구 소멸 지역이고, 인프라도 없으니까 마을 주민들이 ‘이 깡촌에서 하면 뭐가 될 것 같냐’라고 하셨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농촌 공간이 경쟁력이 있는 비즈니스가 된다면 정말 괜찮은 게 아닐까 싶었어요. 직장은 큰 뜻을 품고 간 건 아니었거든요. 영암은 늘 잊히지 않는 공간이었어요.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크게는 지역 사회에 재밌는 일터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를 떠올리며 창업했어요.
– 창업할 때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저희 어머니는 처음부터 (영암에) 오지 말라고 하셨어요. 반대가 심했죠. 멀쩡하게 직장 잘 다니는 애가 고생을 사서 한다고 생각하셨으니까요. 대뜸 이 깡촌에 건물을 크게 지어서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러냐고요. 그땐 이 사업을 하루라도 빨리 현실화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모님과 주변 분들께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어요. 짧은 시간안에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해서 정말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요.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건물 설계만 2년 넘게 걸렸는데,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이렇게까지 끌고 왔나 싶어요. 당시엔 ‘두고 봐’, ‘보여줄게’ 이런 자만 섞인 자신감이 있었는데, 막상 오픈하고 나니,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마음이 더 컸어요.
청정한 자연을 지키며 공존하는 법
– ㈜새실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새실은 크게 농촌관광, 카페, 교육체험농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카페 새실오브앰비언스에서는 영암의 지역성을 담은 디저트나 음료를 기획해 판매해요. 월출산 깃대종인 남생이(천연기념물 민물거북)를 표현한 음료, 멜론, 대봉감 등 영암 농산물을 활용한 디저트를 만들고 있죠. 또 월출산 주변의 자생 동식물을 활용한 교육키트 ‘남생이마을만들기체험키트’, 자생식물인 끈끈이주걱을 활용한 테라리움상품을 기획 중이고, 월출산국립공원과 곤충박물관과 협력해 세 군데를 방문하면 고향사랑기부제로 답례품을 주는 관광 프로그램인 ‘월출산투어패스’를 운영하고 있어요.
– 영암의 지역자원을 많이 활용하고 있네요.
어렸을 때부터 월출산 주변 산과 들을 누비며 크기도 했고, 조경학과 수업 중 주변과의 관계성을 언급하는 내용을 들었는데 완전히 빠졌거든요. 세종시에서 조경기술자로서 일할 때 현장을 몇 번 경험했을 땐 늘 자연친화적인 방식은 아니었어요. 그 당시 세종시에서는 금개구리 서식처를 둘러싸고 시민단체와 지자체 간 갈등이 불거졌어요. 다행히도 우리 마을은 경상도나 경기권에서 많이 발전돼 보기 힘든 송사리, 개구리밥 등 이런 게 정말 잘 보존된 곳이거든요. 제가 어릴 적부터 친근하게 봤던 것들과 청정지역인 우리 마을을 연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발전논리에 반대하는 입장이셨나요.
기존에 있는 걸 최대한 활용하자는 입장이요. 건물을 짓더라도 논밭의 다양한 생물종이 살만한 환경도 갖춰놓고 개발하는 거죠. 당시 세종시에서 일할 때 현장의 원래 설계안은 마을 집터를 베이스로 시설물을 짓는 거였는데, 발전 논리로 인해 설계가 뒤바뀌었어요. 그에 관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진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그때부터 회의감이 들었고, 공원보다 깊은 이야기를 담는 정원을 가꾸는 게 제 적성에 맞겠다 싶었어요. 지금 카페의 정원도 최대한 원래 살던 식물을 그대로 쓰고, 하나씩 새로 키우며 만들어가고 있어요.
정신줄 붙잡기 위해 고쳐쓰는 사업계획서만 130쪽
– 지역에서 창업하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외로움이요. 편견에 맞서야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거든요. 여태 이런 시도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색안경 끼고 보더라고요. 부동산 투자자로 보거나, 관광 농업하러 왔는데 귀농했다가 딴 곳으로 튀는 거 아냐 등등이요. 마을 주민도 이렇게 건물 지어서 성공하겠냐 반문하셨는데 인접 마을에 실제 건물을 지어서 경매 넘어간 사례가 적잖이 있었거든요. ‘영암에서 이런 사업하고 싶다’고 하면 ‘누가 올 것 같냐’, ‘될 것 같냐’ 등 진심어린 응원보다 저의 가능성을 뭔가 점치려는 태도가 싫었어요. 그때 제가 휘둘리지 않고 정신줄을 붙잡으려고 사업계획서를 끊임없이 수정했어요.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두서없이 130쪽 넘게 썼어요. 할아버지가 새실마을에서 사업을 하시게 된 경위부터 이 사업장을 고른 이유까지 싹 다 기억해내서 적는 거예요. 또 나는 왜 여기에 내려왔는지, 왜 이 카페를 짓는지, 지역자원과 프로그램은 뭘 할지 등을요. 가오픈 전까지 반신반의했지만, 지금 보면 아직 저는 하고 싶은 일의 10%도 다 못했어요.
– 지역에서 사업을 운영할 때 필요한 지자체의 지원은 무엇인가요.
영암을 비롯한 전남 지자체들이 대부분 귀농 중심 지원이 많아요. 은퇴자나 고령자 중심의 귀농 정책, 재배 중심의 기술 지원, 귀촌 정착금 지원이 대부분이거든요. 저도 귀농하긴 했지만, 꼭 농사만 지으려고 시골에 가지 않거든요. 다양한 걸 해볼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면 좋겠어요. 농사꾼만이 아닌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오면 좋겠어요. 귀농인, 귀촌인들도 농업뿐만 아니라 그들의 사업장 인근에 있는 가치있는 지역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또 다른 사업이 이끌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여 주는 정책을 지자체에서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 앞으로 계획은요.
영암에서 친환경 귀리농사를 짓는 영암귀리부인이 있는데요. 친환경 귀리를 활용한 캣그라스 상품을 기획 중입니다. 그리고 새실 마을이 지속가능한 마을이 되면 좋을 것 같고, 월출산 주변에 경쟁력 있는 기업이 많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새실의 의미처럼 새와 억새가 많이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또 아름다운 농촌과 자연을 경험하기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영암을 찾아올 수 있는 공간을 가꾸는 기업으로 만들겠습니다.
– 인터뷰 정리: 방연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