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제작소가 지금 우리사회의 아프고 뜨거운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이고 해법을 고민하는 특집 인터뷰 시리즈 <희망마이크-할 말 있소>를 시작합니다. 첫 희망마이크는 교육 현장을 찾아갑니다. 지난 7월 18일 서이초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한 뒤 군산, 용인, 대전에서도 교사들의 부고가 이어졌습니다. 무너져가는 교실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장 선생님들과 학부모, 전문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두 달 동안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매주 거리에 모였습니다. 그만큼 쌓인 분노와 절망이 컸습니다. 놀란 국회는 교권 회복 관련 4법 개정을 논의하고 있고, 교육부는 지난달 23일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 방안’을 내놨습니다. 교사들의 의견을 모아 교육 정책을 제안해온 ‘실천교육교사모임’의 12가지 요구 사항과 비슷한 방향입니다.
이제 뭔가 달라질까요? 전대원 실천교육교사모임 대변인은 법과 제도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교육부, 교육청, 교장이 변해야 합니다.” 지난 13일 21년차 고등학교 사회 교사인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지난 4일 고 서이재 교사의 49재이자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에 가셨나요?
“개인적으로 사정이 있어서 8번 집회 중 두 번 참석했는데 ‘공교육 멈춤의 날’엔 못 갔어요. 수업시간을 바꿀 수 없었어요. 고등학교는 입시가 코앞이라 재량휴업을 하기도 어렵고요. 후배들 고생하는데 매번 못 간 게 미안해요. 제가 처음 교직을 시작한 2002년엔 이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어요. 지금은 같이 호흡하는 학부모나 학생들 때문에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이 많이 생겨요. 젊은 선생님들이 안됐어요. 대학 시절에 꿈꾸던 교직 생활은 이렇지 않았겠죠. 그 본질이 무너져버린 거예요.”
– 선생님도 민원 때문에 고생하신 적이 있나요?
“많은 민원을 받았죠. 맨날 아프다고 조퇴하던 학생이 있었어요. 많이 아픈 건 아닌 거 같아서 ‘조금만 참고 공부해 보자’라고 했거든요. 우리도 그렇잖아요. 직장에서 컨디션 조금 안 좋다고 매번 가버릴 수 없으니까 참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이가 ‘생리통’이라고 하기에 보내줬어요.
다음 날 학부모가 전화해 아이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사과를 요구했어요. 넉 달 동안 계속 괴롭혔어요. 교무실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옆 선생님들이 대화 내용을 다 들으셨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제가 많이 힘들 뻔했어요. 꼬투리 될 만한 게 있으면 아동학대 걸고 그러면 정말 힘들어지거든요. 그 일을 겪고 난 다음엔 아이들이 조그만 일에도 아프다고 조퇴할 때 지도하기가 어려워지더군요.
아이들끼리 싸움이 나도 교사가 중재할 수가 없어요. 학부모들이 ‘왜 쟤 편만 드느냐!’고 하니까요. 정말 폭력의 정도가 심한 케이스는 법으로 가야 하겠지만, 학교 폭력이라고 말하는 사안 중에는 어린아이들끼리 싸움에 불과한 경우도 많거든요. 그런 경우도 교사가 화해시킬 수가 없어요.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해 뭔가를 하려고 하면 교사 자신이 위험에 빠지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아까 사례에서도 제가 오히려 그 애한테 무관심했다면 문제가 안 됐을 거예요.
당장 수능만 해도 교사들이 민원 때문에 감독을 안 나가려고 해요. 선생님 화장이 진해서, 선생님이 기침해서 시험을 못 봤다고 민원 넣고 소송 걸어요. 예전에는 수능 감독할 때 감독 요령을 몇 페이지만 보면 됐는데 지금은 몇십 페이지예요. 아주 사소한 것까지 모두 적혀 있어요. 그거 다 못 외워요. 그러다 문제 터지면 ‘너 몇 쪽에 이렇게 나왔는데 왜 안 했냐’ 이렇게 추궁이 들어옵니다.”
“교사 죽어 나가는데 교육청 교육부는 뭐하나”
– 서이초 교사는 이른바 ‘연필 사건’으로 민원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이 관련 학부모 4명을 고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사가 안 되고 있으니까요. 진상을 알고 싶은 거예요. 만약 학생에게 그런 일이 벌어져 봐요. 교육부가 진상조사하고 관련자들 다 조사하고 담임은 엄청난 시달림을 당했을 거예요. 교사가 몇 달째 이렇게 많이 죽어 나가고 있잖아요. 이번만 있는 일도 아니었고요. 교사들 정신 건강은 교육부가 진작에 신경을 썼어야 할 일이에요. 저희는 감정노동을 하잖아요. 요즘은 콜센터 전화해도 ‘폭언하지 말라’는 녹음이 나오는데 교사들한테는 그런 것이 없어요. 교육청과 교육부는 이렇게 사람이 죽어 나가는 데도 왜 아무런 조처하지 않고 있느냐는 거죠.”
– 서이초 교사 49재이자 ‘공교육 멈춤의 날’ 집회에 참여하는 교사들에게 교육부가 엄벌을 예고했다 거뒀는데요. 실천교육교사모임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습니다.
“이 와중에 징계하겠다고 교사들을 협박하잖아요. 교사들이 더 화가 날 수밖에 없죠. 연가나 병가, 재량휴업일에 대해 교육부 장관은 관여할 권한이 없습니다. 권한도 없는 사람이 학교장을 겁박하고, 교사를 협박하니 이에 상응한 조처를 한 겁니다. 선생님들은 아동학대로 쉽게 신고당하잖아요. 선생님들은 신고당하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해요. 장관을 고발했지만 조사 안 하잖아요. 이런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지금 실천교육교사모임에서 요구하신 내용을 정부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회도 교권 관련 4법 개정 작업을 하고 있고요(‘교권회복 4법’은 15일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했다.)
“진작 됐어야 하는 건데 성과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어요. 저는 중요한 건 제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에서 교사를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해요. 무엇보다 교육부, 교육청, 학교장부터 교사들을 존중해야 해요. 장기판의 졸로 봐서는 안돼요. (이미 있는) 교권보호위원회만 제대로 돌아갔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어요. 기구만 설치하면 뭐해요. 교육부, 교육청, 학교장의 자세가 바뀌어야 해요. 교육부, 교육청, 학교장이 민원이 무서워서 교사를 괴롭히지 말고 중심을 잡고 뭐가 교육적인지 판단해야 해요. 교육부, 교육청이 교사의 교육권을 인정해야죠. 교육 안에서 교사를 존중해 주지 않는데 어떻게 교육 바깥에서 존중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 교권 침해를 생활기록부에 적겠다는 정부 방안도 나왔는데요. 이를 두고 여야가 맞서는 상황입니다.
“(교권 침해를 생기부에 기록하면) 더 난리 나겠죠. 생기부 겁내는 아이가 아니면 효과가 없을 거고 생기부가 중요한 아이면 학부모가 소송을 걸겠죠. 그러면 교사는 더 힘들어질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이 저는 오히려 더 문제라고 봅니다.”
– 정부와 국회는 아동학대에서 ‘정당한 생활지도’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아동학대 관련 법을 개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효과는 있겠지만 저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큰 거 같아요. 지금도 아동학대 신고당해도 기소까지 되는 경우는 극소수예요. 문제는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죠. 경찰서 끌려다니고 범죄자 취급당하는 거잖아요. 교사 혼자 이 과정을 감당하면서요. (무혐의 받아도)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에요. 법이 개정되어도 신고가 조금밖에 줄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학부모가 선생님을 괴롭히려고 하면 ‘정당한 생활지도’가 아니었다고 물고 늘어질 거예요. 그때 교장, 교육청, 교육부가 ‘정당한 생활지도’라고 보호해 줄 수 있어야죠. 선생님들이 교육청, 교육부, 교장에게 도와달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지금은 말하면 ‘네가 뭘 잘못했나 감사하겠다’라고 하죠.”
법 개정은 아동학대 면책 아냐… 교사의 생활지도 영역 보장돼야
– 법 개정으로 학교가 아동학대 면책 지역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학부모도 있습니다.
“법이 개정돼도 진짜 아동학대는 면책이 안 돼요. 아동학대는 처벌해야죠. 그걸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아이 혼냈다고 정서적 학대라고 하고, 애들 싸움을 엄청난 학폭인 것처럼 부풀리는 걸 막을 수 있는 권한은 적어도 교사에게 있어야 한다는 거죠. 아이들을 혼낼 수 없고 싸워도 중재할 수 없는 교사가 교사냐고요. 대체 선생님은 뭘 할 수 있냐는 거죠.”
– 정부에선 교장 중심의 민원대응팀이란 대책도 내놨는데요.
“민원 대응의 주체가 교장이 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런데 실효성이 있으려면 학교장의 자세가 바뀌어야 해요. (교사에게) 다시 일 떠넘기기가 되면 안 되는 거죠.”
–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예방 입법, 직위해제 요건 강화 등 실천교육교사모임 요구 사항 12개를 정부와 국회가 대체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다만 협력교사, 특수교사 확충에 대해선 별 대책이 안 나오고 있는데요.
“예산이 걸려 있으니 교육부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겠죠. 현재 선생님들 일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돼요. 문제행동 학생 두세 명이 생기면 다른 일을 못 할 지경이에요. 고3 담임이면 입시제도 연구만 해도 시간이 부족해요. 애들마다 상황이 다 달라요. 거기에 문제행동 아이가 더 생겨봐요. 이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에요. 당연히 인력확충이 필요하죠. 비근한 예로 부장 수당이 월 7만 원이에요. 몇십 년째 동결이에요. 지금 부장을 서로 안 하려고 해요. 교육부도 모르지 않아요. 교육부를 넘어서서 대한민국 정부가 학교 현장 문제의 심각성을 느껴야 한다고 봅니다.”
– 선생님들이 목숨을 잃는 지경까지 온 근본적인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뭐가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본을 생각해야죠.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게 대학을 잘 보내는 게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 인성이, 실력이 좋아지는 게 목표이지,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목표가 될 수는 없어요. 서울대 정원은 한정돼 있는데 이 학교 아이들이 대학을 많이 가면, 저 학교 아이들은 덜 가게 돼요. 제로섬 게임이잖아요. 여기에 무슨 공교육 교사의 역할이 있을 수 있어요. 되지도 않는 걸 요구하고 있는 게 모두 교권 추락과 연관돼 있어요.
교권 추락의 근본적 원인은 무분별한 시장주의라고 봐요. 교육은 수요자 중심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교육은 서비스업이 아니에요. 공교육은 세금으로 운영하잖아요. 왜 그런지 우리 생각해야 해요. 교사의 사명은 부모 개개인의 이기심을 충족하는 게 아니에요. 부모 이기심은 하나로 귀결돼요. 아이 좋은 대학 가는 거. 민원 방지가 교육의 목표가 아니잖아요. 때로 (학생이)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옳은 걸 가르치는 게 교육이죠.”
“교권추락의 근본원인은 무분별한 시장주의”
–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래도 선생님으로서 보람을 느끼신 적이 있나요.
“제가 담임을 할 때 저희 반 아이를 잃은 적이 있어요. 학교 밖 사건이었는데 아이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면이 있었죠. 제가 그 죽음의 진실을 찾아내려고 막 뛰어다녔어요. 그때 아무도 절 도와주지 않았어요. 당시 관리자는 오히려 제 노력을 막았죠. 학교로 불똥이 튈까봐 걱정을 한 거였죠. 저는 ‘내 아이처럼 반 아이들을 책임지라고 하지 않았느냐, 우리 반 아이가 죽었는데 진상을 밝혀야 할 거 아니냐’ 그랬어요. 아이 장례를 치르고 났더니 반 분위기는 엉망이고 그랬는데, 다행히 아이들이 잘 도와줘서 금세 분위기를 추스를 수 있었어요.
그때 다른 학교에서 잘 적응하지 못한 아이가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어요.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아니었는데 아이가 운동신경이 뛰어나서 체육 실기를 만점 받았어요. 필기만 만점 받으면 잘하면 체육은 1등급 받겠더라고요. 애들한테 ‘쟤 체육 1등급 받으면 내가 짜장면 쏜다’ 했더니 애들이 전부 걔 공부를 도왔어요. 카톡으로 공부시키고 해서 아이가 정말 만점을 받았고, 그래서 다 같이 짜장면을 먹었어요. 학교에서 실내 체육대회를 열었는데 그 아이가 응원단장으로 뽑혔어요. 정말 학교에서 적응을 잘하고 아이들에게 신망받는 아이가 됐죠. 적응을 못할까 봐 걱정했던 아이가 오히려 학교를 재밌어하고 즐거워하게 되었죠.
여름방학 때는 다 함께 계곡으로 놀러도 갔어요. 물놀이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었죠. 그때 반 아이들과 ‘케미’가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아이들도 제가 담임이라 너무 좋았다고 그러고요. 늘 그런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감사했어요. 그때만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옵니다.”
– 인터뷰 및 정리: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