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곁의 소셜디자이너(3) – 김태진 ‘동네줌인’ 대표
김태진 대표는 자신을 “동네줌인 대표 플러스(+) 직업이 한 10개 정도 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동네줌인’은 그럼 무엇하는 회사냐고 묻는다면, “사람들을 모아 이런저런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을 도모하는 회사”라고 답할 것이다. 이처럼 모호한 답변은 그가 하는 일이 지지부진하거나 실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김 대표가 그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며 새로이 길을 내고 그 자신이 고유한 브랜드가 된 사람이기 때문이다. 뚜렷한 스승도 선배도 없이 혼자 큰 광주의 국보급 소셜디자이너, 김태진 대표가 삶을 개척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기업을 다니다 그만두고 커피트럭을 운영하셨다고 들었어요. 갑자기 인생의 궤도를 바꾸신 계기가 있나요?
제가 대학 때까지 기초생활수급자였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어머니와 함께 신문배달을 시작해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죠. 그땐 좋은 대학 가서 좋은 회사 취직하는 게 꿈이었어요. 그게 제가 아는 유일한 성공 방법이었으니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26살에 대기업에 입사했어요. 그간 활동했던 것들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추천서도 176장이나 받고…, 갖은 노력 끝에 대기업에 들어갔으니 꿈을 이룬 셈인데, 오히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어요. 한번 사는 인생인데 나도 한 번쯤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뭘 해야 재밌는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내가 진짜 재미있어 하는 일이 뭔지, 뭘 해야 행복한지.
여행이라도 한번 해보자 싶어 회사를 그만두고 친구와 함께 커피트럭을 운영하며 전국일주를 했어요. 여행경비가 없으니 돈을 벌면서 여행을 해야 해서 400만 원짜리 중고트럭을 사서 직접 개조했고, 속이 쓰리도록 커피를 마셔가며 맛있는 커피 만드는 법을 연습하고 메뉴도 개발했고요. 커피트럭을 몰고 1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별별 사람들을 다 만났어요. 그 여행이, 제 인생을 바꿨어요.
커피트럭 여행을 하고나니 무엇이 달라지던가요?
삶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살려고 안간힘을 쓰던 사람이 처음으로 그냥 오롯이 내가 재미있는 무언가를 해본 거예요. 돈도 별로 못 벌었는데 마냥 재밌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도 충분히 행복하게 잘살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이곳저곳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고 인터뷰를 하자고 신문사에서 연락이 오고,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하더라고요. 사업제안도 여기저기서 들어오고요. 참 신기한 일들이 생기는 거죠.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것 말고, 내가 생각한 유일한 성공의 길 말고도 다양한 성공의 길이 존재할 수도 있겠다, 이게 틀린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그냥 재미있게 살려고 하는데, 행복한 일을 좇으려고 했는데 어쩌면 이렇게 살면서도 남들이 흔히 말하는 성공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유명해지고 돈 벌 기회가 생기는 게 성공이라면, 저는 대기업 그만두고 커피트럭을 하면서 오히려 성공한 셈이잖아요.(웃음)
내친김에 해외여행도 한번 해보기로 했어요. 돈 없이 해외에 나가 공장에서 일하고 한국식당에서도 일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면서 두 번에 걸쳐서 세계 30개국 정도 여행을 하고 2015년 2월 마지막 날에 한국에 돌아왔어요. 전 세계를 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생각지도 못했던 경험을 하고나니 굳이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고요, 예전의 나처럼 사회적 기준에 갇혀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성적이 됐든 돈이 됐든 좋은 직업이 됐든 다양한 사회적인 기준에 자신을 끼워맞추느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응원하는 일을 하면 나도 재미있고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거죠.
그런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응원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 ‘동네줌인’이었던 셈이네요?
페이스북 통해서 알고 지내던 이들 중에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 이미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있었어요. 부산, 대구, 서울, 전주…, 곳곳에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러 다니면서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이 생겼죠. 내가 나고 자란 광주에도 ‘공간’을 만들어야겠다. 이 공간에 오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뭔가 하려고 했을 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는, 그런 곳을 한번 만들어보자! 그래서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7천만 원을 대출받아 50평짜리 공간을 하나 빌렸어요. 전기배선이며 수도시설까지 혼자 배워가며 직접 해서 100여 일 만에 공사를 마치고 2015년 10월에 ‘동네줌인’을 열었어요.
광주에선 처음으로 개인이 만든 청년 커뮤니티 공간이 생긴 것인데, 당시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광주에 갑자기 이상한 놈이 나타난 거죠(웃음). 대체 뭘 먹고 사는지는 모르겠는데 다양한 언론에서 막 인터뷰를 하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안 해본 일 없이 전국으로 전 세계로 다녔다고 하는데 정체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고.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좋은 분들 모셔다가 강연도 듣고 토론회도 한다는데, 대체 뭐지?
동네줌인에서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이것저것 많이 했어요. 커피트럭 같이 했던 친구와 ‘움직이는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시골 마을들을 다니며 어르신들 장수사진도 찍어드렸고요. 그러다보니 주변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소개도 해주시고, 일거리도 들어왔어요. 광주에서 청년정책과 관련해서 자문이 필요하거나 청년들과 함께 사업을 하려는 분들이 저와 동네줌인을 찾아오시고, 그럼 또 뭔가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단순히 먹고사는 수준을 넘어서 처음 빌린 7천만 원도 갚을 수 있게 된 거죠. 애초 수익구조 같은 것 없이 그냥 공간을 만들었는데 일이 점점 커지더니 여기까지 왔어요.
동네줌인은 비어 있는 영구임대아파트를 활용해 청년 주거문제를 해소하고 마을과 어우러진 청년 커뮤니티를 조성한 사례로 유명한데, 자세히 듣고 싶어요.
2019년부터예요. 광주에 영구임대아파트 공실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공실에 청년들이 들어가서 살면 청년주거 문제도 해소되고 좋지 않을까, 하는 이슈가 생겼어요. 광주 지자체와 관련 기관, 활동단체 등 20여 곳 관계자들이 모여 방법을 논의했지요. 저는 논의가 시작될 때쯤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해 살면서 입주자 대표를 맡아 사업을 이끌어나가게 됐어요.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대개 성과에 치우치게 마련이거든요. 청년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살면서 주민들과 어울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마을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그런 장밋빛 전망을 그리는 거죠.(웃음) 저는 절대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관계자 분들을 설득했어요. 청년들은 여기에 무슨 활동을 하려고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살러오는 거다, 그러니 사업의 첫 번째 목표는 청년들이 많이 입주해서 각자 잘 사는 것, 두 번째 목표는 입주한 청년들끼리 서로 친해지는 것, 그리고 나서 마을주민들을 위해 청년들이 뭔가 할 수 있다면 이건 말도 못하게 좋은 일이고요, 마지막 단계로 마을주민과 청년들이 함께 일을 도모할 수 있으면 너무 좋은 건데 처음부터 마지막 단계를 바라고 시작하면 다 망한다고 강조했죠.(웃음)
저를 포함해서 20대부터 40대까지 50여 명이 입주해 살면서 아파트 내에 마련된 커뮤니티 공간에 모여 같이 밥 해먹고 이야기하면서 즐겁게 살았어요. 다른 데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만큼 함께 재미나게 살다가,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는 친구는 마을 청소년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누구는 어르신들을 모아 건강체조를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친구는 플라워클래스를 열기도 했어요. 나중엔 소규모 도시재생사업을 유치해서 리모델링 관련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하고 마을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버섯마을협동조합과 협업해 버섯을 라이브커머스로 팔아드리고 키트도 개발해드렸죠. 코로나19 대유행만 아니었으면 지금쯤 마을 커뮤니티가 더 활발해졌을 텐데, 잠시 주춤한 상황이라 아쉬워요.
1인사업자로 출발한 ‘동네줌인’이 상근직원 7~8명, 프로젝트별로는 수십 명이 탄력적으로 결합하는 광주에서 이름난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했어요. 포괄하는 커뮤니티의 범위도 점점 확장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애초 동네줌인은 여행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붙인 제 예명이었어요. 그래서 사진용어인 ‘줌인(zoom-in)’을 사용한건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人)’을 향한다는 의미로 변해갔어요. 프로젝트를 하나 할 때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거렸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과 또 새로운 일을 도모해왔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보다 서로 고립된 채 살고 있고, 네트워크에 목마른 상태라는 걸 알게 됐어요. 융합의 시대라고 하는데 실은 잘 안 섞여요. 개발자들은 개발자끼리, 문화기획자들은 문화기획자들끼리만 만나고 심지어 문화기획자와 예술인이 모이기도 지역에선 힘들거든요. 그래서 광주지역 내에 크고작은 모임과 ‘판’을 만들어내는 것, 네트워크를 촘촘히 잇고 확장해서 광주를 더 살맛 나는 동네로 만드는 게 동네줌인의 중요한 미션 중 하나가 되었어요.
저희가 2019년에 광주지역 사회공헌 관련 기관과 기업, 활동가들을 모아내는 일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에요. 조금만 분야가 달라져도 지원하려는 쪽과 지원이 필요한 쪽이 서로를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기관이나 기업이 공적영역, 비영리영역을 지원하려고 할 때 적절한 파트너를 찾을 수 있도록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운영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앞으로 동네줌인의 계획이 궁금해요.
동네줌인의 시즌3이 시작됐어요. 여러 공적영역에서 활동하던 광주지역 전문가들이 합류해서 판을 조금 키워보려고 해요. 새로운 커뮤니티 공간도 론칭하고요. 물론 시즌이 거듭되더라도 ‘세상의 모든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동네줌인의 모토는 바뀌지 않을 거예요. 구체적인 활동 소식은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지켜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태진 대표는 특정한 직업을 갖지 않고,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면서 자기자신을 브랜드로 만들었어요. 김태진 대표처럼 살고 싶은 청년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좀 조심스러운 것이, 제 사례가 일반화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여러분도 좋아하는 거 열심히 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순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분명한 건,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가든, 남들은 안 가는 길을 나혼자 가든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는 거예요. 또 막연하게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기보다는 일단 부딪혀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경험은 가장 큰 자산이니까요.
이와 관련해 기성세대에 드리고 싶은 말씀은, 청년들에게 일단 일을 좀 맡겨주셨음 좋겠어요. 축제기획자를 양성하고 싶으면, 그냥 청년을 축제감독에 임명하면 돼요. 처음엔 좀 서툴더라도 하다 보면 실력은 늘게 마련이니까요. 또 ‘김태진은 청년 관련 일을 많이 해봤으니까 이번에도 김태진을 불러 이야기를 들으면 되겠지’하는 생각은 그만하시면 좋겠어요(웃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청년들, 저보다 나이 어린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으면 해요. 그 사이 저는 다른 청년들의 경험과 성장을 응원하는 동시에, 저 또한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하는 ‘멋진 놈’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 인터뷰 진행: 안영삼 미디어팀 팀장, 이미경 미디어팀 연구위원
* 인터뷰 정리: 이미경 미디어팀 연구위원 | nanazaraza@makehop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