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의 2020년 기획강좌가 희망제작소 희망모울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 연구자와 현장 활동가의 네트워크인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는 창립 10주년을 맞아 사회적경제의 기본인 돈, 관계, 공존, 돌봄, 사회, 경영, 노동의 철학을 총 7강에 걸쳐 학습하는 자리를 마련했는데요. 희망제작소는 기획강좌의 내용을 간추려 시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희망제작소의 핵심가치 중 하나인 ‘‘사회적경제 생태계가 풍성해지는 것”에 한 발짝 다가서고자 합니다.

※ 본 포럼은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여 마스크 착용, 발열 체크, 손소독제 사용, 사회적 거리두기 등을 진행했습니다.

2강 돌봄의 철학 | 나는 돌본다, 고로 존재한다-나준식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원장

자신, 서로, 공동체를 돌본다는 것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민들레)의 여러 표어를 보면 ‘나로부터’, ‘나부터’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2001년, ‘민들레’라는 이름조차 없던 발기인 모임 단계에서도 우리는 홍보 현수막에 “자신을 돌보라, 서로를 돌보라, 그리고 공동체를 돌보라.”라는 말을 내걸었다.

‘자신을 돌보라’가 가장 먼저 나온 까닭은 일상에서 자신을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잘 준비되어 있으면 상대방이 힘들어해도 위로하고 지지할 수 있지만, 나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러한 상태가 일,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돌본다, 고로 존재한다

사전에서 돌봄은 “건강 여부를 막론하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거나 증진하고, 건강의 회복을 돕는 행위”라고 적혀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규정에 따르면 건강은 “질병이나 허약한 상태가 아니라, 정신적·신체적·영적·사회적·생태적으로 안녕한 상태”라고 한다.

따라서 돌봄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 증진하고 회복을 돕는 행위이기에 상당히 포괄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돌봄이라고 하면 제도 속 서비스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 생각에는 돌보는 주체의 문제-돌봄을 받거나 제공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다.

‘돌봄의 철학’은 “나는 돌본다, 고로 존재한다”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돌봄이라는 것이 이미 나의 존재를 정의한다. 내가 여기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돌봄 없이 가능할까? 누군가가 나를 돌보고 있어서 숨 쉬고 있는 거다. 우리의 삶에서 돌봄 아닌 것이 없다. 나는 누군가로부터 돌봄 받고 있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동조, 공명, 동기화라고 부르는 현상이 있다. 대표적으로 반딧불이의 반짝거림이다. 반딧불 수천 마리는 처음엔 각자 반짝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동시에 반짝이는데, 주변 불빛에 반응하면서 동시에 반짝임을 만들어내는 거다.

세계의 많은 존재가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의 주파수나 진동, 에너지를 주고받고 조율하며 살고 있다. 눈에 띄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인간 역시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무언가를 서로 주고받고 동조를 일으키며 살아가고 있다.

돌봄의 철학은 결국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는 문제다. 돌봄은 단지 주고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내가 다른 것들과 연결되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그러한 자각을 바탕으로 삶과 관계를 그 본성에 맞게 재구성하는 실천이 돌봄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방식과 리듬

돌봄의 사회적경제도 마찬가지다. 존재에 대한 자각이 기본이어야 한다. 나는 돌보는 사람 또는 돌봄 받는 사람이라는 한편의 입장에 서 있으면 사회적경제를 할 이유가 없다.

내 안에서 여러 장기가 서로 돌보는 것처럼, 관계 안에서도 나는 돌봄을 주기도 때로는 받기도 한다.

즉, 돌봄은 주고받는 것이다. 누군가 주기만 하는 사람, 받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정확히 규정지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그러다 보면 결국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때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돌봄을 받는 존재지만 동시에 주기도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돌봄의 공급자와 수요자는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내가 돌봄을 받아야 할 경우에도, 나를 돌봐 줄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봐야 하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게 되면 결국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일치하게 된다. 이것 또한 일종의 동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없으면 만들어서 가지, 뭐!

노인요양보험제도 안의 요양 서비스는 해당 등급을 받으면 월 몇 시간 동안 요양사를 쓸 수 있다. 그런데 일상생활을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몇 시간의 돌봄으로 평가되기 어려운 영역이 매우 많다.

개인의 환경이나 조건, 욕구에 따라 필요한 것이 다 다른데, 서비스 제공자 중심으로 정해놓은 방식은 이런 차이들을 사실상 반영하지 못한다. 개인의 환경이나 조건, 욕구에 우선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필요한 부분이 많이 빠져 있거나, 불필요하지만 서비스 제공자 관점에서 돈이 되니까 제공하는 것들이 있다. 어떤 분은 꽤 건강해서 청소 같은 가사 지원만 2시간 해주면 되는데, 불필요하게 그 이상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식인 거다.

당사자의 욕구를 반영하려면 2시간만 재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머지 시간은 지역사회의 다른 활동을 연계하는 등 수요자 특성에 맞춘 서비스를 설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본 내용은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의 주최로 진행된 기획강좌이며 희망제작소의 입장과 무관합니다. 희망제작소는 시민연구공간인 희망모울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 글: 기은환 시민주권센터 팀장 | teum@makehope.org
– 사진: 강의자료(나준식 제공), 한국사회적경제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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